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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게시판 내 결과

  • 7. 1930년 여름엠엘파계렬의 종파분자들은 5.30폭동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1930년 8월 1일 국제반전일을 전후하여 길돈철도연선지방을 중심으로 또다시 무모한 폭동을 일으켰다.폭동으로 하여 우리 혁명앞에는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였다. 5.30폭동후 지하에 깊숙이 들어가있던 얼마 되지 않은 조직들마저 적들앞에 로출되였다. 우리가 감옥에서 나와 사방으로 다니면서 가까스로 수습해놓았던 조직들도 재차 타격을 받고 파괴되였다. 만주각지에서 우수한 지도핵심들이 무리로 붙잡혀 처형되였다. 적들은 공산주의를 헐뜯고 공산주의운동을 탄압…

  • 제4장 새로운 진로를 탐색하던 나날에1. 손정도목사나는 만주의 정세가 매우 험악한 때에 감옥에서 석방되였다.반일독서회사건으로 온 도시가 발칵 뒤집히던 1929년의 가을처럼 길림의 거리에는 계엄상태를 방불케 하는 긴장된 분위기가 떠돌고있었다. 도로교차점들과 관청건물의 주변에서는 독군서의 헌병들이 통행인들을 세워놓고 검문검색을 하고있었다. 총대를 들고 이골목, 저골목에서 가택수색을 하는 군경들도 보이였다.리립삼의 좌경로선때문에 온 만주땅이 진통을 겪고있던 시기여서 공기가 이만저만 살벌하지 않았다. 그때 만주지방에서는 5.30폭동이 한…

  • 10. 철창속에서《길림바람》이 만주의 여러 지역을 흽쓸게 되자 일제와 중국의 반동군벌은 점차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게 되였다. 길림에서 세차게 일어난 청년학생운동과 중동철도사건, 남만청총대회사건으로 하여 우리에 대한 소문이 여러곳에 퍼지게 되면서부터 적들은 길림의 공기를 소란스럽게 하는 장본인이 청년학생들이라는것을 간파하고 우리의 뒤를 캐기 시작하였다.일본제국주의자들은 만주를 침략하기 위하여 도처에 정탐군들을 박아넣고 조선사람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감시하는 한편 중국의 반동군벌을 부추겨 공산주의자들과 반일독립운동자들을 닥치는대로…

  • 제3장 길림시절1. 선진사상의 탐구나는 집에서 한달가량 머무르다가 설까지 쇠고 이듬해 정월중순에 무송을 떠났다. 내가 길림에 도착한것은 행인들의 왕래가 번잡한 한낮이였다. 길을 물을 때마다 아버지친지들의 주소가 적혀있는 수첩을 꺼내들고 언손을 놀려가며 종이장을 번지는것이 거치장스러울것 같아서 나는 미리 내가 찾아야 할 거리와 번지들을 머리속에 다 외워두었다.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대도시의 번창한 풍경은 첫 순간부터 조용하고 한적한 농촌지대에서만 살아온 나를 위압하는상 싶었다.나는 개찰구를 나선 다음에도 가슴을 치미는 흥분때문에 걸…

  • 제 1권은 1장부터 3장까지입니다.제 1권에 올려진 사진 가운데 일부입니다. 독립군의 여걸 리관린의 사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제 2장. 잊을 수 없는 화전1. 화성의숙장례식이 끝난 다음 아버지의 친구들은 무송에 며칠간 머무르면서 나의 장래문제를 의논하였다.그들의 보증과 소개를 받아가지고 내가 화성의숙으로 떠난것은 1926년 6월중순이였다.그때로 말하면 우리 나라에서 6.10만세시위투쟁이 일어난 직후였다.6.10만세시위투쟁은 3.1인민봉기후 민족해방투쟁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직된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이였다.우리 나라 민족해방투쟁이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전환을 하는데서 3.1인민봉기가 분기점의 역할을 하였다는것은 세상…

  • 7. 유 산팔도구시절에 우리 집으로 자주 찾아오던 황씨는 우리 아버지의 생애에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이였다. 후창에서 일경들의 손으로부터 아버지를 탈환해낸 사람이 바로 황씨였다.아버지는 국내조직들과의 련계를 지으려고 포평에 건너갔다가 비밀아지트로 리용하던 국수집근방에서 매복경관들에게 붙잡히였다. 적들에게 아버지를 밀고한것은 우리 뒤집에서 객주업을 하던 손세심이였다. 이자가 사흘이 멀다하게 우리 집에 찾아와서는 아버지의 곁에 딱 붙어앉아 《김선생》, 《김선생》하면서 알랑거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손세심이 밀정이라는것을 모르고 …

  • 6. 나의 어머니내가 팔도구거리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문뒤였다. 천리를 걸으면서 내내 불안에 조이던 마음이 집앞에 다닫자 몹시 긴장되였다.그런데 어머니의 표정은 뜻밖에도 퍼그나 여유가 있고 침착하였다. 어머니는 두손으로 나를 꼭 부둥켜안고 나는 한번도 그렇게 못해봤는데 너는 혼자서 천리길을 갔다 돌아왔구나, 사내가 다르긴 다르다고 하면서 반가와하였다.나는 고향소식을 간단히 말씀드리고나서 아버지는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어머니는 목소리를 낮추어 무사하다고 대답하였다. 다른 말씀은 없었다.나는 어머니의 기색을 보아 아버지가…

  • 5. 《압록강의 노래》1923년초에 아버지는 나를 불러앉히고 이제는 소학교를 졸업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장차 어떻게 할 생각인가고 물었다.나는 상급학교에 가서 공부를 더하고싶다고 말씀드리였다. 나를 상급학교에 보내려는것은 우리 부모님들이 평소부터 품어온 소망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장래에 대한 포부를 물으니 나로서는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아버지는 심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제부터는 조선에 나가서 공부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였다.그 말씀 역시 나한테는 뜻밖이였다. 조선에 나가서 공부하려면 부모님의 슬하를 떠…

  • 4. 타향에서 타향으로아버지가 활동거점을 자주 옮기였기때문에 우리는 이사를 여러번 하여야 하였다.내가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것은 다섯살 잡히던 해였다. 그해 봄에 우리는 봉화리로 이사를 갔다. 그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일가친척들과 헤여지면서도 별로 서운한줄을 몰랐다. 아직 철이 덜 든 때여서 리별에 대한 생각보다도 새고장, 새것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그러나 중강으로 들어가던 그해 가을에는 가슴이 아팠다.우리가 북쪽 한끝으로 이사를 간다니 집안식구들도 못내 서운해하였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지지해주고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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