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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게시판 내 결과

  • 3. 지양개군민련환대회보천보를 치고 귀로에 오른 대렬이 구시골에 들어서자 대원들은 지휘관들을 통하여 나에게 하루의 휴식을 제의하였다. 그때까지의 항일전쟁행정에서 대원들이 사령부에 휴식을 요구한 전례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피곤이 겹쌓였으면 그들이 그런 제의를 하였겠는가. 사실 그무렵에 우리 대원들과 지휘관들은 단 하루도 편안하게 쉬여본적이 없었다. 곤장덕에 가서도 만 하루를 지냈지만 모두가 열에 떠서 잠을 자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피곤이라는것을 몰랐다. 그런데 전투가 일단락을 짓게 되자 어느새 대오를 지배하고있던 탕개가…

  • 2. 보천보의 불길 (2)우리는 장백현 19도구 지양개에서 국내진공대렬을 편성하고 대원들에게 일제히 여름군복을 갈아입히였다. 장사진을 이룬 대오가 일매지게 새 군복을 입고 지양개를 떠났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차림새가 그때처럼 좋은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우리의 걸음은 작전상의 단순한 위치이동이 아니였다. 그것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국의 하늘밑에서 나라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국땅에 큰 총성을 울리기 위해 여러해동안 피흘려 준비해온 길이였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 리별끝에 몹시 그리웠던 부모를 찾아가는 심정으로 …

  • 제 17장 조선은 살아있다1. 보천보의 불길(1)보천보전투의 력사적측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연구하고 이야기하였지만 이 전투를 직접 조직하고 지휘한 나에게는 정신적체험이나 추억거리들이 적지 않다. 지금도 반세기전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정경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보천보전투는 한마디로 말하여 생리별을 당한 어머니와 그 자식들의 상봉과 같은 사변이였다고 할수 있다. 조국은 보천보에서 울린 총소리를 계기로 하여 자기를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충직한 아들딸들을 만날수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전투는 망국사의 흐름을 광복에로 …

  • 7. 유격대의 어머니백두산에서 여러해동안 우리와 함께 고락을 같이한 전우들가운데는 《어머니》로 불리운 녀성유격대원이 한명 있었다. 그는 사령부작식대원 장철구였다. 부대에는 녀대원들이 수십명씩이나 있었고 작식대원들도 여럿이였지만 유독 장철구만은 《어머니》로 불리웠다.나이는 우리보다 10살나마 이상이였다. 10살 정도의 차이라면 《누이》나 《동무》라고 불러도 무방할 나이이다. 그러나 나도 평시에는 그를 《동무》라 부르지 않고 《철구어머니》라고 부르군하였다. 장철구보다 나이가 어방없이 많은 《대통령감》까지도 《철구어머니》, 《철구어머니…

  • 6. 스쳐버릴 수 없었던 사연무송원정을 끝낸 다음 부대를 이끌고 장백땅에 다시 돌아와 신흥촌근처에 머무르면서 조국진군준비를 갖추고있던 1937년 5월하순이였다.어느날 나는 전령병을 데리고 신흥촌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는 길성촌이라는 마을로 향하였다. 길성촌은 우리가 백두산지구에 나온 첫해 겨울부터 인연을 맺어온 동네였다.우리는 장백에 나와서도 군중공작을 많이 하였다. 원호물자를 가지고 밀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였고 중간련락지점이나 이러저러한 비밀장소에 필요한 사람들을 부르기도 하였으며 주민지구에 직접 내려가 군…

  • 5. 권 영 벽권영벽은 말수더구가 적은 사람이였다. 선전일군이라면 의례히 말을 잘하는것으로 통하고있지만 그는 사단선전과장으로 사업할 때에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요긴한 말을 조리있게 몇마디 할뿐 실속없는 빈말을 늘어놓거나 한번 한 말을 다시 곱씹는 법이라고는 없었다. 얼굴표정이나 외모를 보아서는 그의 생각과 감정상태를 좀처럼 가늠할수 없었다.권영벽은 거짓말을 하거나 허장성세하는것을 제일 싫어하였다. 그는 자기가 한다고 말한것은 몸이 열쪼각이 나도 기어이 해내는 사람이였다. 언행의 일치, 아마 그것이 권영벽의 사람됨을 단마디로…

  • 4 . 삼천리방방곡곡에백두산기슭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조국광복회건설운동은 만주전역과 삼천리방방곡곡에 료원의 불길처럼 거세차게 번져갔다.나라와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일관된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구절구절은 민족의 넋에 새로운 활력을 심어주고 삼천리 온 강토가 광복열망으로 끓어번지게 하였다.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민족주의자들, 로동자, 농민들과 더불어 지식인, 청년학생, 수공업자, 종교인, 민족자본가를 포함한 애국적인 온 겨레가 하나의 광복전선에 합세하였다. 조국광복회건설운동은 장백을 비롯한 서간도와 만주땅에서 먼저 활발히 벌어…

  • 3. 경위대원들나는 생애의 많은 부분을 전장에서 보냈다. 항일전쟁 15년에 반미대전 3년을 합치면 스무해 가까운 세월을 포연탄우속에서 보낸것으로 된다.그런데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천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단 한번의 상해도 입지 않았다. 항일전쟁시기 유격부대들에서는 이신작칙을 몹시 강조하였다.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는 언제나 지휘관들이 서있었는데 그들은 이신작칙을 하는데서 보람을 찾았다. 공격할 때에는 대오의 앞장에 서고 퇴각할 때에는 대오의 뒤에 서서 전우들을 돌보는것이 인민혁명군지휘관, 정치일군들의 기풍이고 도덕으로 되여…

  • 2. 만강부근에서여러 차례의 격전을 치른 다음 우리는 부대를 이끌고 양목정자밀영으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양목정자는 시난차에서 로령으로 올라가는 산중턱에 있었다.이 지명은 버들이 많은 고장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령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좌우에 밀영이 각각 하나씩 있었는데 한쪽 밀영을 동양목정자밀영이라 하였고 다른 쪽 밀영을 서양목정자밀영이라 하였다.우리가 먼저 간 밀영은 서양목정자밀영이였다.그 밀영에 바로 유참모부대가 있었다.동양목정자밀영에서 남쪽으로 고개 하나를 넘어가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고력보자밀영이 있었다.로…

  • 세기와 더불어 제 6권 제 16장. 압록강을 넘나들며1. 무송원정도천리와 리명수에서 <동기대토벌>에 혈안이 되여 돌아치던 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후 나는 주력부대를 이끌고 또다시 장백산줄기를 넘어 북상행군의 길에 오를 결심을 하였다.내가 무송원정안을 공포하였을 때 우리 부대의 대원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하였다. 이제 당장 국내에 들어가서 적들을 답새기게 되였다고 가슴들을 들먹이며 명령을 기다리는 때에 갑자기 북상행군이라니 웬일인가, 모처럼 개척한 서간도와 백두산을 등지고 북으로는 왜 간다는것일가, 이것 참 모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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