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lheukgil Lim9 hrs6.25는 도대체 무엇인가?아래 글은 한 5년전에 인터넷에 나왔던 글입니다.누가 쓴 저자도 없는 글인데 6.25에 대해서 여러 많은 글들 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글이라 오늘부터 한쪽씩 약 100여 쪽까지 여기에 씁니다. 많은 도움이 되길 빕니다. 4348(2015)년3월9일. 다물흙씀.한국전쟁, 북침,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1.미 국무차관보 존 D. 히카슨의 폭로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사전 시나리오에 의해 계획된 전쟁이었다고 했다.해방 직후 박헌영 (북한정권에서 부수상 및 외상에 취…
[김갑수 근·현대사]16 ‘민족 개조론’이란 무엇인가 김갑수|2014-10-2 13:22 ‘민족 개조론’이란 무엇인가 1920년대 초반 잡지 <개벽>과 <동아일보>에는 ‘민족적 경륜’이라는 제목의 글이 2년 간격으로 게재되었다. 이른바 ‘민족 개조론’으로 더 알려진 이 글은 <개벽>에 발표되었다가 2년 뒤인 1924년 <동아일보>에 다시 5회에 걸쳐 게재되자 전국적인 파급력을 행사했다. 소설가이자 동아일보 편집국장인 이광수는 아주 요상한 방법으로 조선인의 자존심을 훼손했…
[김갑수 근·현대사]⑩ 한국 가톨릭은 105인 사건의 공범이었다 김갑수|2014-9-25 09:05 한국 가톨릭은 105인 사건의 공범이었다 “오늘의 추기경들, 뿌리는 제국주의 선교사” 1911년에 발발한 ‘105인 사건’의 명칭은 1심 재판에서 105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 이는 ‘데라우치 총독암살미수사건’, ‘선천사건(宣川事件)’ 등으로도 불렸는데, 이것은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직후 민족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데라우치 총독에 대한 암살미수사건을 날조하여 일으킨 사건이다. 비교적 잘 알려진 사건이…
.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2-01 10:05:53 자유게시판에서 복사 됨]
[백년전쟁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 보고서 1부 '박정희의 경제 신화'를 파헤친다. 한국 경제의 고속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학자들은 '수출주도형 공업화' 전략에 있었다고 말한다. 그럼 누가 이 전략을 수립하고 이끌었을까?한국의 중장년층은 박정희가 주인공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비밀이 해제된 미국 기밀문서들은 박정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 도대체 누구인가? 백년전쟁 스페셜 에디션 '프레이저 보고서' 1부가 그 진실을 추적한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2-12-01 10:03:47 자유게시판…
“1915년 국민회 분열, 이승만 ‘자산 사유화’가 씨앗” 한겨레-최원형 기자 20110816 21:44 사료수집가 로버타 장, 하와이 부동산 등기자료 추적“국민회 자금으로 부동산 구입 담보대출 상환책임도 떠넘겨 한인들이 준 독립운동자금 단 한번도 전달된 적 없어 자기이익 챙긴게 그의 실체” » 국민회와 하와이 이민사에 관련된 사료를 수집해 온 하와이 한인 2세 로버타 장씨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호놀룰루 신문 등 당시 자료를 보여주며 국민회의 활동과 이승만의 행적에 대해 이야기…
3.1운동史 모두 다시 써야 하나? 3 .1운동은 상해로부터 점화(5부) 3.1운동, 임시정부, 파리강회회의는 함께 묶어서 보아야 한다. 김상구 2011.08.08 역사복원신문 2) 삼일운동은 상해로부터 점화되었다.1919년 12월 3일, 조선군참모부가 작성한 선내외일반정황을 보면 '朝鮮軍配置圖, 國外排日鮮人獨立運動關絡圖(조선군배치도, 국외배일선인 독립운동관련도)'라는 서류가 첨부되어 있다.1) ▲ 국외배일선인 독립운동관련도, 상해지역 인물에 김복이 보인다. © 김상구 이 연락도를 보면…
3.1운동의 핵심배후는 김규흥과 신규식 (4부) 3.1운동에 대한 기존의 잘못된 이론은 역사발전을 위해 재고되어야 일제가 파악한 3·1운동의 배후1) 김복과 신정이 모든 일의 배후이다.1919년 8월 23일 조선총독부(朝鮮總督官房外事課長)가 일본외무성정무국장(埴原正直)에게 보낸 기밀문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1) ▲ 파리강화회의, 임시정부 수립, 삼일운동의 배후로 김복(김규흥)과 신정(신규식)을 지목하고 있는 일제의 기밀문서 《즉 민족자결주의를 부르짖고 조선의 현상을 호소하여, 미국 및 세계 여…
3.1운동 민족지도자 33인에게 선고된 가벼운 형량 (3부) 일제는 33인이 3.1운동의 실질적인 주모자가 아니라고 보았다. 김상구 2) 33인의 민족지도자에게 선고된 형량3·1 운동에 대한 당시 일본 정부의 공식적 사건 명칭은 .조선만세소요사건‘(朝鮮萬歲騷擾事件)이고, 기본적 시각은 ‘소요’(뭇사람이 들고 일어나서 폭행·협박을 함으로써 한 지방의 공공질서(公共秩序)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였다.<삼일운동참가자의 형량> 무기 유기형 벌금 구류 과료 태형 합계 10년 이상 5년 이상 2년 …
일제가 파악한 3·1운동의 전개과정 1) 우리가 몰랐던 민족대표 33인의 허상 김상구 민족대표를 자처했던 사람들이 정작 시위현장인 탑골(파고다) 공원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이 선언문 낭독 장소로 택한 곳은 태화관이란 요정이었고, 참석자도 일신상의 사유를 들어 4명이 불참한 29명뿐이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은 너무나 관대했다. 적극적인 친일행위자로 변절했던 박희도, 정춘수, 최린 그리고 유일하게 무죄를 선고받았던 길선주(그가 2009년 제64주년 광복절을 맞아 건국훈장 독립장이 서훈된 사실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Copyright © 2010 - 2025 www.hanseattle.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