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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헌법에서 정의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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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513회 작성일 11-05-0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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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이퍼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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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말해 둘 것은 글이 좀 길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이 글을 다 읽는다면 <국가란 무엇인가>에 담긴 대체적인 내용과 흐름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롤로그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후불제 민주주의>를 다시 들춰봤다. 공통점이 있다. <헌법>이다. 차이점도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일종의 철학적, 이론적. 총론적인 책이고, <후불제 민주주의>는 구체적, 현실적, 각론적인 책이라는 점이다.

순서로 본다면, <국가란 무엇인가>를 먼저 읽고 <후불제 민주주의>를 다시 읽는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책 읽는데 참고하시기 바란다.

특히 이 책은 일종의 개괄서이다. 따라서 각 챕터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토론주제로 삼아도 부족함이 없다. 즉 스터디 교재로 활용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자연스럽게 토론 기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 책은 세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첫째, <국가란 무엇인가>는 국가론을 둘러싼 정치철학의 논쟁을, 쉽고 간명하게 정리해놓은 대중서다. 도서관에서 먼지 뒤집어 쓰고 있는 고전들을 불러내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공동체를 들여다보게 해주는 '살아있는 안경'으로 부활시켰다. 이를 통해 일반 시민들의 국가관 정립에 도움을 주는 것과 동시에 선택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이 책은 유시민이라는 정치인이 어떤 국가관을 갖고 있는지를 밝혀놓았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적시해놓았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과 비교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2011년 현재 한국 정치, 특히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라는 국가주의 세력에 맞서고 있는 여타 보수자유주의, 진보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세력에게 '연합정치'를 구현함으로써 정치인의 '책임윤리'를 다하자고 촉구하는 한편, 야권 내의 연합을 위해 진보자유주의자 유시민이 진보주의 세력을 향하여 '진보소통합'을 외치는 공개제안서이기도 하다.


운명

“주어진 기회를 살리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는 일차적으로 국가의 상황에 좌우된다” - 8쪽

보수주의자들은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중시한다. 인간의 삶은 각자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조건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따라서 유시민의 이 같은 ‘선언’은 보수주의와 명확하게 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진보주의자’로서 유시민의 정체성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유시민의 선언과 비슷한 발언으로는 세계 제일의 부자인 빌 게이츠의 아버지 빌 게이츠 시니어(Bill Gates Sr)의 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내가 벌었다'는 말은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정부의 요긴한 도움을 받아 벌었다'는 얘기다. 서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그렇게 벌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런 일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 스펄링의 <성장친화형 진보> 58쪽에서 재인용

보수주의자들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부분이다. 국가는 태어나는 순간 ‘주어진다’. 우리는 이걸 가리켜 ‘운명’ 혹은 ‘숙명’이라고 한다. 우리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운명을 개척해왔다. 삶이 주어진 그 순간부터 운명과 맞닥뜨려 싸워야 한다. 인류사는 그 투쟁의 역사다. 혹독한 자연질서와 싸우기도 하고, 다른 생명체와 싸우기도 하고, 인간과 인간이 싸우기도 하면서 생존을 영위해왔다. 무수한 조상들의 헌신과 노력, 땀과 눈물이 쌓여서 오늘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국가 없이는 시민들의 훌륭한 삶도 있을 수 없다....(중략)...나는 대한민국이 더 훌륭한 국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애썼으며,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같은 책 9쪽



진보와 보수의 개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제 각각의 기준이 있다. 인간의 삶을 국가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질 것인지, 국가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를 놓고 진보의 개념이 달라진다.

세계적으로 보수주의의 기준은 거의 동일하다. “인간은 각자 노력하기 나름이다”는 철학이 그것이다. 이같은 보수주의 철학에서 국가의 역할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어떻든 보수주의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영국, 독일도 거의 똑같다. “인간이 하기 나름”이라는 것.

하지만 진보의 개념은 제 각각이다. 바로 <국가와 개인의 책임분담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부터,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을 적절하게 나눠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더 크게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이 진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리얼 진보'니 '짝퉁 진보'니 하는 논쟁이 그런 경우다. 그래서 진보는 다양하게 분화할 수밖에 없고, 보수는 하나로 단결하기 쉽다.

유시민은 진보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과거에 비해 악을 더 적게, 선을 더 많이 행하는 쪽으로 진화해왔다고 믿는다. 이것이 문명과 역사와 인간의 진보라고 생각한다.” - 10쪽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의 구분에 대해서는 <청춘의 독서>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베블린이 다시 등장한다.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모두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 같은 책 189쪽

이는 기존의 진보담론과는 다른 주장이다. 한국에서의 진보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쟁이 <국가와 개인의 책임 분담 범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유시민은 <국가가 선을 더 많이 행하느냐? 악을 더 많이 행하느냐?>로 구분하고 있다. 유시민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 차근차근 살펴보자.



국가의 역할

여기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소개하고 있는 홉스의 국가주의 국가론, 로크와 밀 등의 자유주의 국가론, 마르크스의 국가론,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국가론 등에 대한 내용은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을려고 한다. 사실상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 되어서 저자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서다.

저자는 4개의 국가론을 설명하면서, 그냥 과거의 정치철학으로 박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각 이론이 태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철학자들이 시대적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해서 이해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자들이 혐오하고 있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주장한 홉스에 대해서도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이런 기괴한 이론을 세운 것으로 보아 홉스는 어딘가 괴팍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의심할 필요는 없다. 어떤 철학자도 자기 시대를 완전히 초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같은 책 29쪽

그것은 홉스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국가론을 주장한 로크, 애덤스, 밀도 마찬가지고 마르크스도 피할 수 없는 한계다. 그리고 목적론적 국가론을 주장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 철학자들의 주장을 오늘날의 관점으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사회적 환경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론의 전망

유시민은 먼저 국가주의 국가론의 경우 민주주의자들에게는 혐오의 대상이지만 결코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주의 국가론자들을 '이념형 보수'로 칭하면서 대한민국 국민 1/3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긴 생명력을 가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국가주의 국가론이 전쟁의 위협이나 가상의 공포심을 토대로 사회질서유지와 국가안전보장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오랜 생명력을 유지시키는 토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국가주의 국가론을 무시하는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념형 보수'를 무식하다고 경멸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실과 희망사항을 잘 구별하지 못한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 같은 책 43쪽

하지만 유시민이 이렇게 말했다고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주의 국가론은 오래 살아남겠지만 사회적-기술적 분업이 더욱 진전되고 정보통신기술과 지식혁명이 더 진전됨에 따라 그 기반이 조금씩 축소되어갈 것이다. 국가주의 국가론이 위축되면서 생기는 담론시장의 공백을 채울 다른 유력한 국가론이 지금으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 공간을 차지할 수 있는 담론은 자유주의 국가론뿐이다." - 같은 책 72쪽

유시민의 이같은 언급에 대해 '리얼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반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시민이 앞서 언급했듯이 <희망사항>과 <현실>은 냉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국가는 그 자체로는 형태가 없다. 결국 사람이 운영한다. 그래서 누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말을 바꿔보면 <리더십 스타일>에 관한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유시민은 플라톤의 철인정치, 맹자의 왕도정치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스타일의 지도자가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즉 기원전 시대의 철학자들이 누가 지도자가 되어 국가를 다스리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유시민은 국가주의자들은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십, 자유주의자들은 말로 다스리는 리더십을 선호한다고 밝혀놓으면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별 관심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유시민은 리더십 스타일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가 가지는 한계 때문이다. 유시민은 민주주의 제도의 장점을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은 가장 훌륭한 사람을 권력자로 선출하여 많은 선을 행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사악하거나 거짓말을 잘하거나 권력을 남용하거나 지극히 무능하거나 또는 그 모든 결점을 지닌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목적이며 강점이다." - 같은 책 106~107쪽

그러나 민주주의 제도의 강점은, 그 자체로 단점이 된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선을 행하는 것도 동시에 방해한다....(중략)...훌륭하고 지혜로운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없게 만든다면 이는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대가로 감수하지 않을 수 없는 부작용이다." - 같은 책 107쪽

노무현 대통령님이 그런 분이 아닌가 한다. 민주주의 제도가 대통령님을 탄핵으로 몰아가기도 했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데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각종 복지정책을 추진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제도가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양면의 칼날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는 것도, 악을 행하는 것도 제어하는 제도이긴 하지만, 문제는 리더십의 스타일에 따라 악을 행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떠올리면 될 듯 하다. 그래서 유시민은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시스템과 제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선호하는 국가주의자들이 최소 1/3의 지지를 받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와 진보주의 진영에서 선호하는 리더십 스타일이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보통 말을 수단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리더십을 선호하지만, 진보주의 내부를 보면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선호하는 경향이 무척 강하다. 한때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의 차베스 띄우기를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치행위는 최종적으로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되기도 한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가 그렇다.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문제와 함께 중요한 권력투쟁의 핵심문제가 또 있다. 유시민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래에 인류의 모든 조직체에서 전개될 권력투쟁의 핵심문제는 지식이다. 지식 그 자체는 최고 품질 권력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물리력과 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지식은 과거 금권과 완력의 부속물이었으나 이제는 그 본질적 요소가 되었다." - 같은 책 97쪽

지식의 중요성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인류의 진보는 사상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결국 지식이 본질적일 수밖에 없다.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국가와 연관해서는 애국심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국에서 애국심을 말하면 거부감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내가 예전부터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여러번 언급한 바 있다. 박봉팔닷컴 오픈 초기에 올린 글에서도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언급한 바 있는데, 나는 솔직히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대목이 나오면 가슴이 떨린다. 어떤 감흥이 느껴진다. 그래서 트윗에서 설전을 벌인 적도 있는데, 대체로는 부정적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이해한다. 우리는 시민을 국가에 복종시키는 국가주의 시대를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국가론을 이야기하고, 누가 다스려야 하는지를 말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국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애국심을 피해갈 수는 없다. 애국심은 국가에 대한 사랑이지만, 이걸 좁혀보면 <내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꾸로 출발해보자.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가족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간다. 따라서 이런 감정은 인간의 본성에 적합하다고 봐야 한다.

6.25전쟁을 겪은 세대가 군복입고 태극기 휘날리며 집회를 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고,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한 것도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애국심을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애국심의 범위는 국민국가 단위다. 여기서 국민국가는 대체적으로 민족과 언어를 중심으로 나누는 경향이 있는데, 다민족국가로 넘어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면 조금 더 확장할 수도 있다. <세계와 세계시민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말이다. 그런데 유시민은 <국민국가>에서 사랑을 멈춘다.

그렇다면 유시민은 국수주의자인가? 아니다. 이건 조금 뒤에 다시 말한다. 일단 세계와 세계시민에 대한 사랑부터 짚고 가자. 코스모폴리탄은 나름대로 존중할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냉정한 <현실>과 <희망사항>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마음으로야 아프리카의 모든 가난과 배고픔을 해결해주고 싶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국가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이제 유시민의 책으로 가보자. 유시민은 이 책에서 피히테, 톨스토이, 르낭 등의 애국심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렇게 축약된다.

"피히테는 독일인이었고, 르낭은 유럽인이었고, 톨스토이는 지구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사랑했다." - 같은 책 136쪽

결국 사랑의 범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떤가? 애국심은 '이념형 보수'의 전유물이었다. 바로 피히테의 애국심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애국심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애국심은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함께 귀속되어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공동의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들 속에서 이 의지를 북돋을 책무가 있다." - 같은 책 137쪽

유시민은 르낭의 견해를 채택하고 있다. 르낭이 말하는 애국심의 핵심은 이렇다.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의지>를 애국심으로 이해한다. 즉 "어느 민족 또는 국가에 귀속되어 함께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사랑이다" 

언어를 중심으로 애국심을 강조했던 피히테와의 차이다. 애국심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내가 앞서 이야기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문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만들려고 하는 의지를 애국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애국심으로 충만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유시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동의할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유시민은 어떤 사람인가?

이 책을 통해 유시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래서 <국가란 무엇인가>는 <후불제 민주주의>의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그 내용이 조금 더 충실해졌다. 즉 자신이 지향하는 국가론과 이념을 좀더 자세하게 밝혀놓았다.

1. 진보자유주의자 유시민
 
유시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국가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국가에도 본연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책 서두에서 밝혀놓았듯이 <훌륭한 국가>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훌륭한 국가인가?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훌륭해야 한다는 것인데,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최선의 정체(政體)는 누구나 가장 훌륭하게 행동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도여야 한다. 훌륭한 입법자가 할 일은 국가나 민족이나 공동체가 어떻게 훌륭한 삶과 행복에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 같은 책 203쪽

그래서 유시민은 국가주의 국가론을 대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유주의 국가론>과 선을 실현하는 것을 국가의 목적으로 보는 <목적론적 국가론>을 결합한 이론을 <진보자유주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밝힌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 것과 똑같이 간절하게 정의를 소망한다. 그래서 자유주의 국가론이라는 땅을 딛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이것이 내가 스스로를 진보자유주의자라고 말하는 의미이다." - 같은 책 242쪽

그렇다면 유시민이 말하는 <정의는 어디에 있을까?>

2. 헌법애국주의자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헌법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헌법 정신이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헌법 그 자체는 모든 훌륭한 가치를 담고 있다.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특히 철학적 근거를 설명해놓은 것이다.

유시민은 국가의 목적이 '선을 행하는 국가'와 '훌륭한 국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선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주로 공직과 명예의 배분과 관련해서만 다뤘다.

그런데 유시민은 <헌법>으로 달려간다. 이것은 <정의란 무엇인가>로 열풍을 일으켰던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덜과 비슷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장정일 같은 민주주의 신봉자들은 싫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샌델을 반박하기 위해 나온 책 <무엇이 정의인가-도서출판 마티>의 저자들도 불만스럽겠지만, 유시민은 헌법으로 달려간다. 

"모든 희생을 지불하면서 세운 정의의 원칙들은 민주주의 문명국가의 헌법에 새겨졌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그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 같은 책 225쪽

그렇다. 유시민은 정의를 멀리서 찾지 않는다. 헌법에 이미 규정되어 있는데 어렵게 멀리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시민은 헌법애국주의자다. 그래서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국가로 하여금 어떻게 정의를 실현하게 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면 그 어떤 철학자의 위대한 저서보다 먼저 헌법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 - 같은 책 226쪽

헌법은 대한민국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명령해놓았다. 유시민은 헌법이 명령한 국가를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유시민은 헌법애국주의자다. 정의를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헌법만 잘 지켜도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있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3. 공화주의자 유시민

유시민은 스스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공화주의자다. 공화주의는 군주가 없는 국가를 뜻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서로 다른 가치를 존중하는 상대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바로 공화주의 정신이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공화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공화주의는 서로 모순을 일으키기도 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한국의 민주주의자들은 자유주의를 적대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공화주의 정신은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화해시킨다. 그래서 진보자유주의자는 필연적으로 공화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특정한 하나의 이념이나 가치를 절대적 가치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말을 보자.

"진보자유주의자는 어떤 가치 하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거나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진보자유주의는 모든 형태, 모든 종류의 절대주의를 거부한다. 자유, 복지, 안전, 평등, 평화, 환경 등 헌법이 규정한 사회의 최고 목표 또는 최고 가치는 모두 평등한 지위를 가진다." - 같은 책 243쪽

헌법에는 국가주의자들의 핵심가치인 '안전'과 '평화', 자유주의자들의 가치인 '자유', 진보주의자들의 핵심 가치인 '평등', 신좌파가 내세우는 '평화와 환경'이 모두 담겨있다. 공존의 원리인 것이다. 유시민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진보자유주의자와 헌법애국주의자는 공화주의자의 또다른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시민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유시민이 이 책을 쓴 이유는 한국 진보진영에게 문제제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제안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1. 진보의 개념을 확대하라

한국의 진보 논쟁에서는 단연코 <반신자유주의>가 핵심이다. 그리고 진보의 개념을 가장 좁게 설정한 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라"고 주장하는 김상봉 교수 같은 진보주의자들이다. 이들한테는 참여정부도 신자유주의 정권이다. 따라서 보수주의로 규정한다. 심지어 김교수는 "한국의 자칭 진보정당들은 내심으론 자본주의 극복도, 재벌해체도 포기했으니 주검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이 견해를 받아들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진보정당이 아니다. 산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는 생명이 없는 '좀비정당'이 되고 만다. 하물며 이 두 정당이 '짝퉁 진보', '사이비 진보'라고 비판하는 다른 정당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 같은 책 196쪽

실제로 김상봉류의 주장은 많다. 김규항, 박노자가 비슷한 부류이고, 한겨레, 경향, 오마이, 프레시안 등에서도 주류적인 견해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진보의식의 과잉이 빚어낸 겉치장에 불과하지만, 그래서 <패션좌파>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기도 한다. 그래서 유시민은 단호하게 말한다.

"진보를 자본주의 극복과 같은 의미로 규정한다면, 진보주의 운동은 곧 사회주의 운동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 - 같은 책 196쪽

그러나 한국 진보주의자들이 대놓고 사회주의를 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씨알도 안먹히는 주장임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감만 있지 대안은 없는 게 한국 진보의 현실이다.

유시민은 사회주의에 대해 별도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시민이 또다른 확장된 진보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남곡의 견해에 따르고 있다. 다음과 같다.

"진보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것을 지향하는 것이 진보주의이다. 인간을 자유롭지 못하게 얽어매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불합리한 제도, 물질의 결핍, 낡은 생각이 그것이다." - 같은 책 198쪽

따라서 유시민의 진보개념은 특정 사상이나 이념, 제도에 고정적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 유시민이 말하는 진보의 개념은 교조적이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진보는 현재 자신의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것과 호나경의 변화 사이의 불일치나 부조화를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생각이 막히고 닫히는 순간, 기존의 사유습성에 갇히는 순간, 그 사람은 진보와 멀어진다. 중요한 것은 사회관계와 물질, 의식의 모든 면에서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하고자 하는 진보의 방향을 의식하고 유지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 같은 책 199쪽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사유가 멈춰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2. 국가론을 세워라

앞서 애국심에 대한 진보주의자들의 거부감을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국가론도 마찬가지다. 진보주의자들의 국가론은 애매하다. 대놓고 마르크스주의자임을 밝히는 김규항 같은 사람들에게는 국가론 자체가 의미가 없다. 국가 자체는 최후에 소멸되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소수를 제외하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지지하는 진보주의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주의 국가론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충만하다. 그래서 유시민은 하버드대의 마이클 샌덜 교수의 말을 빌려셔 이렇게 말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되며 더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 같은 책 201쪽

즉 한국의 진보주의자들도 국가의 역할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진보주의 운동이 필연적으로 정치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진보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치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정치행위를 하게 되면 반드시 국가와 마주치게 된다. 따라서 애매하게 방황할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국가의 역할에 대해 입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3. 복지국가론은 국가론이 아니다

보충적으로 유시민은 최근 진보진영에서 논의하고 있는 복지국가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유시민은 복지국가론이 진보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복지는 국가주의 국가론과도 손잡을 수 있고, 자유주의 국가론과도 손잡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의 결합'일 뿐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복진논쟁의 초점은 국가가 얼마나 다양한 서비스를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제공하느냐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참고로 복지의 수준에 대한 각 입장별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진보주의자 : 가능한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가급적 보편적 복지제도라야 하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 자유주의자 : 개인의 자유와 삶에 대한 개인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보수자유주의자 : 작은 정부를 선호하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인의 책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 진보자유주의자 : 개인의 자유와 국가의 책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4. 진보주의자들은 헌법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유시민이 책에서 밝혀놓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내 주관적인 생각을 보태본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국가에 대해서만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법이 지배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헌법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유시민은 한국 진보주의자들에게 헌법에 관심을 기울 것을 촉구하고 있다.

5. 진보소통합 공개제안서-신념이 아닌 결과로 책임지는 정치를 하자

유시민은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칸트의 도덕법에 따라 '신념'에 의해 정치를 한다고 지적하면서 베른슈타인을 배우라고 권유하고 있다. 개량주의자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딱지가 붙었지만, 베른슈타인은 현실에서 승리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베른슈타인 노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주류노선이 되어 복지국가 시대를 만들어냈다.

특히 유럽이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진보주의 정당과 자유주의 정당의 연합>에 의한 것이다. 그들은 연합을 통해 국가주의와 보수주의 정당을 물리치고 다수당이 되어 집권에 성공했다. 그리고 복지국가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유시민은 막스베버의 책임윤리를 언급하며 한국의 진보주의자들도 연합정치에 나서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신념윤리에 투철한 정치인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책임윤리에 투철한 정치인은 존경과 믿음의 대상이 된다.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대중의 존경과 믿음을 받는 길이 바로 연합정치에 있다. 연합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훌륭한 국가를 만들 수 없다." - 같은 책 283

하나 덧붙이자면,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는 연합정치의 대상에 민주당이 포함되느냐 여부다. 내 해석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책 내용의 흐름을 보면 보수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이 책에서 말한 <연합정치>는 <진보소통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결선투표제가 없기 때문에 진보자유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과 진보주의 정당인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연합을 하기 위해서는 통합을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진보소통합 후 '연대'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이 부분은 나의 주관적 해석이다. 그러나 문맥 흐름상 그렇게 읽었다)



끝내며

이 책은 290쪽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말 방대한 양의 정치철학을 다루어 놓았다. 일종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읽기가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글을 통해 힌트를 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 읽은 후 <후불제 민주주의>를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린다. 그런 연후에 <대한민국 헌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읽어보실 것을 추천해드린다. 긴 글을 끝까지 다 읽어주신 분들은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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