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균등만으론 충분치 않다 - 장하준 vs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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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복지국가에 대한 담론이 한국을 점령하고 있는 시대다. 심지어 정동영의 입에서마저 부유세니 보편복지니 하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즈음에서 유시민의 진보자유주의가 추구하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다.
장하준의 책 <23가지>는 참 재밌고도 유익한 책이다. 그 재밌는 23가지 꼭지 중에서도 특별히 꼽고 싶은 꼭지가 Thing 20 "기회의 균등이 항상 공평한 것은 아니다"라는 부분이었다. 이 장에서 장하준은 기존의 자유 시장주의가 주장하는 기회의 균등에 대한 보장만으로는 경제의 효과적인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불충분할뿐만 아니라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균등이라는 개념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사회주의를 가르는 가장 첨예한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우리 국민들중의 대다수가 가진 시각이라는 것도 일단 기회라도 균등하게 보장해주면 공정하게 경쟁해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겠다는 것이 상식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이것이 통상적인 자유주의자들의 공정과 정의에 대한 일반적 관점일 것이다.
그러나 장하준은 보다 엄밀하게 기회의 균등을 통한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도 결과의 균등이 적정선에서 반드시 보장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결과의 균등이라는 개념에 접근하는 방법은 다소 신선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기존의 진보주의자들이 결과의 균등을 얘기할 때 그것은 다소 이념적이거나 도덕적 관점에 입각한 경우가 많았기 떄문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무상교육을 시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얘기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돌봐주는 부모들의 소득에 대한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꽤나 직관적으로 와닿는 설명인 것 같다.
더해서 결과의 균등이 가장 잘 적용되고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 계층간의 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즉 미국보다는 영국이, 영국보다는 스웨덴에서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의 이동이 훨씬 자유롭고 빈번했다는 얘기다.
물론 그는 말미에 지나친 결과의 균등은 해로울 것이라면서도, 이 '지나치다'는 것의 경계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왠지 마르크스 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교수에게서나 나올법한 주장이 장하준의 참신한 설명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조금은 놀랐다.
이와 관련해 유시민은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복지국가론' 챕터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소 드라이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실 최근 복지국가 논쟁에서 유시민의 태도는 정말이지 드라이하다. 조금은 정열적으로 이 문제에 임해도 괜찮을 듯 싶은데, 천성이 치우침을 싫어하는 분이라 그런 것인지 참 냉정하고 객관적인 편이다.
그는 복지국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설명하면서 진보주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와 삶에 대한 그 자신의 책임을 일차적으로 중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공동선, 기회균등,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노력과 민주적 개입을 요구한다고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기존의 자유 시장주의적 기회 균등에 대해서는 확실히 진보적인 태도이다. 그러나 역시 원론적이며 너무 드라이하다는 느낌이 짙다.
나는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유시민이 장하준의 견해 이상의 뜨겁고 정열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 다소 치우치고 다소 경박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복지문제나 결과의 균등에 대한 문제는 시민들이 진정 목말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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