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생의 슬픈 고민 “책상이냐, 침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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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를 앞두고 서울 대학가에서 직접 자취방을 구해봤다. 전세방은 씨가 말랐고, 월세는 너무 비싸다. 대학생용 신축 원룸은 크게 늘어났지만, 재개발과 전세난 여파로 방값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겨우 찾았다. 수십 번 “싼 전세 있어요?”를 반복한 끝에 요새 그 귀하다는 대학가 전세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전세 보증금도 단돈 3500만원.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근 부동산을 샅샅이 뒤지면서 소개받은 전세 매물 네 개 가운데 가장 쌌다. 반지하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만한 가격으로 서울 대학가에서 전세방을 구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나섰다.
횡재했다는 생각도 잠시, 반지하 방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가 반응했다. 수신 감도가 0으로 떨어지더니 전화가 불통이었다. 부동산 중개인도 이를 보더니 당황한 듯 얼른 화제를 돌렸다. “지하방이지만 여기 창문이 있어서 어느 정도 빛이….” 드르륵 열린 창문 밖으로 시커먼 콘크리트 외벽만 보였다. 낮 한 시의 밝은 햇살은 한 줌도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서울 땅인데도 지상과 지하의 차이는 이렇게 컸다. 부동산 중개인은 연방 “싼 집이라 그래요”라고 반복했다.
지난 2월16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신촌·안암동·회기동·흑석동·신림동 등 대학가를 돌며 직접 자취방을 구해봤다. 지역에 따라 방값과 상황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대학가에 ‘싸거나 좋은 방’은 있을지 몰라도, 싸고 좋은 방은 없다는 진리는 어느 곳에서나 통했다. 특히 전세난이 겹친 올해 대학생의 새집 찾기는 유난히 힘겨워 보였다.
2월2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가파른 골목 비탈에서 차에 실린 이삿짐을 내리고 있는 한 부자(父子)를 만났다. 학부모 박정희씨(51)는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아들의 이사를 돕기 위해 울산에서 올라왔다. 한 달 전, 낯선 서울 길을 찾아 헤맨 끝에 월 55만원으로 하숙집 계약을 마친 터였다. 박씨는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이었다”라고 말했다. “비싸다고 해봐야 하숙비가 한 달에 40만원쯤 들지 않을까 예상하고 왔는데, 그 정도 가격대 하숙집은 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도저히 아들을 그런 곳에 살게 할 수가 없었다.”
대학가 주변에 싼 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방값을 깎다보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대흥동에 있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5만원짜리 자취방은 주변 평균 시세보다 조금 싼 대신 방 모양이 ‘먹다 만 피자 조각’이었다. 역삼각형 모양의 5평짜리 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가구를 놓을 만한 각이 나오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침대나 책상, 둘 중에 하나만 놓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편안한 잠과 공부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안암동에 있는 보증금 없는 월세 35만원짜리 ‘잠만 자는 방’은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쾨쾨한 냄새가 났다. 6개 방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 두 곳 가운데 한 곳에서만 샤워가 가능했다. 복도 끝에 주방이 있기에 반색하며 “여기서 밥 해먹어도 되겠네요”라고 말했더니, 주인 부부는 “아니, 뭐 라면 정도만 끓여 먹는 거지”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잠만 자는 방임을 강조했다.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찾은 보증금 100만원, 월세 25만원짜리 방은 삐걱거리는 목재로 만든 방문이 신경 쓰였다. 귀중품은 반드시 ‘외부에’ 보관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북구 종암동의 한 반지하방은 전혀 방음이 되지 않았다. 동작구 흑석동의 보증금 4000만원짜리 방은 더 기막혔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고, 벽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방에 달린 또 다른 공간은 바닥이 시커먼 콘크리트로 돼 있어 분명 창고처럼 보였는데, 그곳에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 주인은 그곳이 화장실이라고 했다.
방은 많다. ‘돈만 있으면’ 대학가에서 고를 수 있는 방은 차고 넘친다. 지난 2월16일, 최근 기숙사를 신축한 중앙대 근처 흑석동 일대에서는 자취방 호객 행위가 극성이었다. 중앙대 정문 앞에서 중년 여성 여럿이 모여 방 찾는 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작구 상도동 칠성공인중개사 이경구 대표는 “기숙사 때문에 수요가 줄었는데도 인근에 신축 원룸이 매년 100실 이상 생긴다”라고 말했다. 안암동 고려공인중개사 김만규씨는 “몇 년 전부터 대학생용 원룸이 매력적인 투자처로 인식돼 지금 월세 원룸은 오히려 남아돈다. 언론에서 대학가 방값이 오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최근까지도 원룸 신축을 상담하는 전화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개발 여파에 대학가 방값까지 크게 올라
하지만 ‘공급 과잉’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울 흑석동·상도동의 경우 인근에 있는 중앙대·숭실대가 기숙사를 신축하고 원룸 주택이 다량 공급되었는데도 종전의 높은 방값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흑석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이 아무개씨는 “2~3년 전, 인근에서 재개발이 시행되면서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학교 주변으로 이사와 집값이 크게 올랐다. 그 여파로 덩달아 오른 학생들 방값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등이 있는 신촌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ㄷ부동산 대표는 “이쪽은 특히 전세가가 많이 올랐다. 매물은 없는데 찾는 사람은 많아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인근에서 ㄹ부동산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대표도 “올 들어 월세 평균가가 월 5만원가량 올랐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인근 ㅇ부동산 이 아무개 과장은 “홍대 쪽은 방값이 훨씬 더 비싸서 젊은 사람들이 결국 여기로 밀려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주택가 골목까지 카페·식당이 들어서는 등 홍대 앞이 번창하는 이면에서 가난한 청년들이 발붙일 곳은 점점 좁아진 셈이다.
“내가 들어갈 만한 방은 없네요.” 길에서 만난 한 중앙대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 중이라는 그는 지난 2월부터 방 찾기 대열에 합류했다고 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 정도면 웬만큼 괜찮은 방을 고를 수 있던 2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부분 살 만한 방은 월세 50만원 이상을 요구했다. 방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더 발품을 팔아야 할지,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따져보는 그의 모습 뒤로 복잡하게 얽힌 대학가 자취촌 풍경이 펼쳐졌다. 그 빽빽한 방 중에 아직 그에게 허락된 방은 없었다.
출처: 시사인
겨우 찾았다. 수십 번 “싼 전세 있어요?”를 반복한 끝에 요새 그 귀하다는 대학가 전세방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전세 보증금도 단돈 3500만원.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인근 부동산을 샅샅이 뒤지면서 소개받은 전세 매물 네 개 가운데 가장 쌌다. 반지하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만한 가격으로 서울 대학가에서 전세방을 구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부동산 중개인을 따라나섰다.
횡재했다는 생각도 잠시, 반지하 방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가 반응했다. 수신 감도가 0으로 떨어지더니 전화가 불통이었다. 부동산 중개인도 이를 보더니 당황한 듯 얼른 화제를 돌렸다. “지하방이지만 여기 창문이 있어서 어느 정도 빛이….” 드르륵 열린 창문 밖으로 시커먼 콘크리트 외벽만 보였다. 낮 한 시의 밝은 햇살은 한 줌도 들어오지 않았다. 같은 서울 땅인데도 지상과 지하의 차이는 이렇게 컸다. 부동산 중개인은 연방 “싼 집이라 그래요”라고 반복했다.
지난 2월16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신촌·안암동·회기동·흑석동·신림동 등 대학가를 돌며 직접 자취방을 구해봤다. 지역에 따라 방값과 상황은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대학가에 ‘싸거나 좋은 방’은 있을지 몰라도, 싸고 좋은 방은 없다는 진리는 어느 곳에서나 통했다. 특히 전세난이 겹친 올해 대학생의 새집 찾기는 유난히 힘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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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 인턴 기자 사다리꼴 모양의 한 대학가 원룸 안에서 대학생 오 아무개씨(24)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
대학가 주변에 싼 방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방값을 깎다보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대흥동에 있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45만원짜리 자취방은 주변 평균 시세보다 조금 싼 대신 방 모양이 ‘먹다 만 피자 조각’이었다. 역삼각형 모양의 5평짜리 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가구를 놓을 만한 각이 나오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은 “침대나 책상, 둘 중에 하나만 놓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편안한 잠과 공부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안암동에 있는 보증금 없는 월세 35만원짜리 ‘잠만 자는 방’은 올라가는 계단에서부터 쾨쾨한 냄새가 났다. 6개 방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 두 곳 가운데 한 곳에서만 샤워가 가능했다. 복도 끝에 주방이 있기에 반색하며 “여기서 밥 해먹어도 되겠네요”라고 말했더니, 주인 부부는 “아니, 뭐 라면 정도만 끓여 먹는 거지”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잠만 자는 방임을 강조했다. 동대문구 회기동에서 찾은 보증금 100만원, 월세 25만원짜리 방은 삐걱거리는 목재로 만든 방문이 신경 쓰였다. 귀중품은 반드시 ‘외부에’ 보관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북구 종암동의 한 반지하방은 전혀 방음이 되지 않았다. 동작구 흑석동의 보증금 4000만원짜리 방은 더 기막혔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고, 벽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방에 달린 또 다른 공간은 바닥이 시커먼 콘크리트로 돼 있어 분명 창고처럼 보였는데, 그곳에 변기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 주인은 그곳이 화장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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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서울 중앙대 앞에 나붙은 하숙·자취생 모집 광고들. 월세 40만원짜리 괜찮은 방은 옛말이다. |
재개발 여파에 대학가 방값까지 크게 올라
하지만 ‘공급 과잉’이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울 흑석동·상도동의 경우 인근에 있는 중앙대·숭실대가 기숙사를 신축하고 원룸 주택이 다량 공급되었는데도 종전의 높은 방값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흑석동에서 공인중개업을 하는 이 아무개씨는 “2~3년 전, 인근에서 재개발이 시행되면서 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학교 주변으로 이사와 집값이 크게 올랐다. 그 여파로 덩달아 오른 학생들 방값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 등이 있는 신촌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ㄷ부동산 대표는 “이쪽은 특히 전세가가 많이 올랐다. 매물은 없는데 찾는 사람은 많아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인근에서 ㄹ부동산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 대표도 “올 들어 월세 평균가가 월 5만원가량 올랐다”라고 말했다. 연세대 인근 ㅇ부동산 이 아무개 과장은 “홍대 쪽은 방값이 훨씬 더 비싸서 젊은 사람들이 결국 여기로 밀려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주택가 골목까지 카페·식당이 들어서는 등 홍대 앞이 번창하는 이면에서 가난한 청년들이 발붙일 곳은 점점 좁아진 셈이다.
“내가 들어갈 만한 방은 없네요.” 길에서 만난 한 중앙대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 중이라는 그는 지난 2월부터 방 찾기 대열에 합류했다고 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 정도면 웬만큼 괜찮은 방을 고를 수 있던 2년 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대부분 살 만한 방은 월세 50만원 이상을 요구했다. 방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더 발품을 팔아야 할지,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따져보는 그의 모습 뒤로 복잡하게 얽힌 대학가 자취촌 풍경이 펼쳐졌다. 그 빽빽한 방 중에 아직 그에게 허락된 방은 없었다.
출처: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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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님의 댓글
경계인 작성일한국의 부동산 투기를 잡지 못한 역대 정권들이 원망스럽네요. 집값 땅값의 상승은 다른 경제 영역의 원가 상승을 부채질하기에 한국사회를 무한경쟁 사회로 만드는 악의 근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