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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근·현대사]⑤서구 숭상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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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이엘
댓글 0건 조회 2,851회 작성일 14-09-1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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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근·현대사]⑤서구 숭상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김갑수 | 2014-9-17 12:12


서구 숭상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얼빠진 놈’들이 득실거리는 대한민국


21세기 들어 일본은 아시아에서 주변국으로 밀려나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의 국민소득은 일찌감치 일본을 앞질렀으며 한국도 일본 국민소득의 90% 선까지 육박해 들어갔다. 일본의 국가 경제력이 중국에 밀린 지는 오래고 이제 머잖아 인도에도 뒤질 것이 확실시된다.

일본은 한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도 않으며 중국과는 소원하고 조선(북한)과의 관계는 거의 적대적인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지진, 태풍,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의 공포로부터 한시도 자유로워 본 적이 없는 나라다.

나는 지난 몇 차례의 글에서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비판한 바 있다. 물론 나는 일본이 메이지유신에 성공하여 ‘근대화’라는 것을 이룸으로써 제국주의 열강의 대열에 올라서는 토대를 마련한 것까지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화라는 것은 미국에의 종속화를 유발했고, 제국주의란 결국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부국강병을 이루겠다는 침략주의와 하등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요컨대 제국주의는 ‘주의’라고도 할 수 없으며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그것은 ‘강도 근성’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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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일본의 제국주의는 1930년대에 들면서 한 단계 더 악화된 군국주의로 치달음으로써 수십억 아시아인에게 막대한 고통을 주었다. 여기서 간과되어서 안 되는 것은 이로 인해 타국민뿐 아니라 일본 자국민들도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는 점이다.

전후 일본의 강점은 경제에 있었다. 한국전쟁은 일본의 경기를 삽시에 되살려 놓았고 이후 전개된 미소냉전체제는 일본 경제에 엄청난 특혜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일본은 경제를 얻는 대신 정치와 문화를 포기해야 했다. 민족의 주체성 따위를 언급하는 것은 불온시되었다. 결국 일본이 미국 발 경제발전에 도취하면서 얻은 것은 ‘문화적 망각’이라는 정신병이었다.

사실 일본의 후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역사의 눈으로 볼 때 더욱 그렇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전인 19세기 중엽까지 아시아의 중심국가였던 적이 없었다. 따라서 주변국가였던 나라가 다시 주변국가로 되돌아가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면 그것이 바로 이상한 일 아닐까?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논문, 「일본사 인식의 페러다임 전환을 위하여」에서, “현재 일본은 경제적으로 어떨지 몰라도(그것도 상당히 이상하게 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주변 여러 국가에 뒤쳐지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관점은 일본의 학자들 사이에서 이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다.

단언하건대 나는 일본이 다시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앞에서 말했듯이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인해 ‘문화적 망각’이라는 정신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서구화·근대화에 탐혹된 나머지 전통적인 동양정신, 즉 유교문화를 팽개쳐 버렸다.

21세기 들어 세계의 힘은 3대 중심권으로 모아지고 있다. 미주와 유럽과 동아시아권이다. 그런데 미주는 쇠퇴, 유럽은 정체, 동아시아는 비약하고 있으니 향후 수십 년의 판도는 명약관화한 일 아닌가? 결국 동아시아의 중심국이 되는 것은 세계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을 의미할 때가 임박했다.

지금 고속 경제성장 국가들의 공통점은 유교문화권에 속해 있던 나라라는 점이다. 우리는 유교의 모범국가였던 조선을 냉소해왔지만 그래도 우리의 문화체질은 국민정서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만약 군사독재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된 모습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했을 것이다.

요즘 들어 동아시아 고속성장의 비결이 유교정신이라는 데에 동서양의 학자들은 거의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물론 한국에는 불교도와 기독교도가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면, 유교적 불교이고 유교적 기독교인 것이다.

유교는 근면성, 교육열, 실용주의, 자기절제는 물론 공동체정신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미덕을 하나로 압축할 수 있는 말이 ‘선비정신’이다. 선비정신은 근면성, 실용주의, 자기절제 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막스 베버가 말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비슷한 면이 있다. 유교는 평화공존을 지향하고 약육강식의 논리를 배격한다. 선비정신은 비판과 언론을 중시하며 전인적 인문교양을 강조한다.

현대적 관점에서 선비정신의 놀라운 점은 ‘공개념의 숭상’에 있다. 개인의 사리보다 집단의 공익성을 우선시하고 공익 속에서 정의로운 이익분배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선비정신의 공개념이었다.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공전(公田)인데, 이는 토지와 같은 기본생산수단은 만인의 공유물로 보아 엄격한 사유개념을 적용하지 않았다.

맹자의 혁명론과 저항권은 또 얼마나 민주적인가. 그는 왕이 정치를 잘못할 경우 잔적(殘賊)에 불과한 일부(一夫)일 뿐이니 갈아치워야 한다고 말했지 않은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나쁜 것을 죄다 유교로 돌리는 이상한 현상이다. 거듭 말하지만 식민사관의 핵심은 ‘조선과 유교에 대한 모함’에 있다. 일례로 유교에는 여필종부나 남존여비 따위의 말이 없다. 그런데 이런 것이 죄다 유교문화의 소산이라고 하니 참 답답하다. 단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은 있다. 하지만 이것도 유교 이전 중국 주나라 때 『관윤자(關尹子)』에 있는 말인 데다 그나마 이 책 자체에 위서 논란이 있다.

‘사농공상’이라는 말은 유교에 있다. 이것은 사회의 주요한 구성요소인 관리ㆍ농민ㆍ공장(工匠)ㆍ상인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민(四民)이라고도 했다. 이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중국에서 사용된 말이다. 『서경』에서는 “사농공상, 즉 사민의 업(業)이 있다”고 하여 민(民)의 직업을 네 종류로 구분했다. 『관자(管子)』에서는 “사농공상, 사민은 나라의 초석(士農工商四民, 國之礎)”이라고 했다. 조금도 틀린 말이 아니지 않은가?

‘좆도 모르는 놈이 불알 잡고 탱자탱자’한다는 말이 있다. 어감이 좀 험악하지만 사실 나는 이 말을 은근히 좋아한다.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책이 꽤 팔린 적이 있다. IMF 환란으로 불만에 빠져 있는 한국인의 심리에 편승하여 모든 잘못의 요인을 공자와 유교에 전가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이 책의 저자가 공자도 모르고 유교도 모른다는 데에 있었다. 이런 사람이 ‘탱자탱자’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숭미주의자에 불과한 범부였다.

우리는 조상과 역사를 무시하거나 비하하면서 모든 것을 서구의 잣대로 평가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고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심했다. 근본을 생각하는 마음을 ‘얼’이라고 한다. 얼이 없는 사람을 ‘얼빠진 놈’이라고 하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식물인간’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에게도 부끄러운 역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끄러운 역사도 그것을 이겨냈을 때에는 더 이상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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