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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준무 칼럼] 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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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08회 작성일 25-01-2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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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준무 칼럼] 인민의 뜻으로 선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가

글: 리준무 (재미동포 음악가)

[민족통신 편집실]


《애국가》는 가사를 읽어볼 때나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선률을 들어볼 때나 언제나 감동으로 안겨오고 있으며 모두에게 드높은 긍지와 신심을 안겨주고 있다. 나라를 이끄는 영도자의 만년을 내다보는 원대한 구상과 자주의 기상이 노래 전체에 웅비하고 있으며 민족의 존엄과 영예가 가슴 뿌듯하게 안겨온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감정을 승화시켜주고 인민에게 자기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높은 긍지를 심어주고 있다. 슬기로운 인민들이 신성한 노동과 투쟁으로 이루어 낸 화목한 사회, 일심단결을 승리의 보검으로 굳게 믿고 뭉친 인민의 뜻으로 세워진 나라,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것이 없다는 신념과 어떤 난관이나 장애물이 전도를 가로막는다 해도 부강조국건설을 기어이 자력으로 이루어내고야 말겠다는 배짱과 담력이 노래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내 나라 푸른 하늘아래의 한줌의 흙까지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이 노래는 너무 소박하고 정말로 순수하다. 진리로 뭉쳐진 인민들의 무진장한 힘 만을 하늘같이 믿고 일떠선 나라라고 노래는 힘있게 웨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애국가》는 시인 박세영이 1946년 여름 가사를 썼다. 《김일성장군의 노래》 작곡가이자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원균이 1947년 6월에 곡을 붙였다.

《애국가》의 가사는 1절과 2절로 되어있다.

약간 느리고 장중하게 부르도록 요구하고 있다.




조국해방기념 중앙보고대회가 끝난 뒤인 1946년 8월 16일 김일성주석님은 창작가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애국가도 없이 조국해방기념 보고대회를 마치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였다고 하면서 애국가가 없는 것에 대하여 못내 아쉬워하였다.


김일성주석님은 애국가의 창작사업을 몸소 발기하시고 창작방향과 실천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구체적인 해결방도들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시면서 본격적인 애국가창작사업에 들어가도록 구체적인 과업을 제시해 주었다.


김일성주석님은 나라의 주인 된 기쁨을 안고 새 조국건설에 발벗고 나선 우리 인민들은 자주독립국가의 진정한 《애국가》를 요구하고 있으며 빛나는 조국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한다고 하였다. 그러자면 그들이 부르는 국가는 조국에 대한 열렬한 찬양과 대중적인 노래로 되어야 한다고 간곡한 당부를 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해방된 우리 인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되고 자기의 손으로 정권을 세우고 또 민족문화를 건설하고 있는데 아직도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애국가》창작사업에 모든 작가들과 예술인들이 참가하는 것은 물론 작곡가가 아니더라도 창작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다 참가하도록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면서 《애국가》에 꼭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하여서도 자세히 알려 주었다.


빼앗긴 조국을 다시 찾아 인민에게 안겨준 항일의 전설적 영웅, 김일성주석님은 당시 30대초의 청년장군 이였다. 장군은 해박한 지식뿐만이 아니라 천리혜안적 선견지명을 지니신 위인중의 위인이시라는 사실에 감동하였다고들 말한다.


“우리 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산들은 기세차고 장엄하며 전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지하자원과 금은보화도 무진장합니다, 우리 인민은 반만년 오랜 역사를 가진 인민이며 찬란한 문화를 가진 슬기로운 인민입니다, 우리 인민은 먼 옛날부터 외적을 물리치고 우리 강산을 피로써 지켰으며 특히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영웅적으로 싸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조국과 슬기로운 투쟁전통을 가진 조선인민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노래에 담아야 합니다, 인민들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 자기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더욱 솟아날 것입니다”라고 창작가들에게 《애국가》에 담아야 할 지침들을 절절하게 강조하였다.


애국가가 창작되어 선포될 때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애국가》의 작곡가이며 인민예술가인 김원균은 이렇게 회상하였다고 한다.


《수령님의 강령적인 가르침을 받으면서 진정 수령님이시야말로 인민들의 사상감정과 념원을 한몸에 체현하고계실뿐만 아니라 그이께서는 누구보다도 가장 철저하시고 가장 열렬하신 절세의 애국자이시라는것이 더더욱 나의 가슴에 와 닿았다》


가사로 제출된 여러 작품들중에서 두편의 창작곡이 최종심사를 받기 위한 《애국가》후보작으로 등록되었다. 김일성주석님이 참석하신 가운데 드디어 《애국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역사적인 시연회순간이 다가왔다. 공정한 심사를 하기 위해 작곡가의 이름을 표시하지 않고 번호로 표시했다.


역사적인 시연회장에는 새로 탄생할 《애국가》를 들어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날씨가 몹시 무더웠음에도 불구하고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시연회장에 들어서시는 김일성주석을 우러르며 김원균은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이 줄줄 흘러 어찌할 줄 몰랐다고 했다.


《김일성장군의 노래》의 시연회때는 자신에 대한 노래라고 매번 사양하시던 김일성주석께서 이번에는 친근하게 창작지침도 주시고 몸소 시연회에까지 참석해주시니 그가 어찌 감동되지 않았겠는가!

1947년 6월 27일, 그날은 날씨가 찌는듯이 무더웠다. 한 일군이 선풍기를 가져다 그분 옆에 설치하려고 하자 김일성주석께서는 선풍기를 회의장 가운데에 놓고 모두에게 바람이 골고루 가게 하라고 하시였다. 시원한 바람을 일구며 돌아가는 선풍기를 한동안 바라보시던 김일성주석께서는 오늘은 인민들이 그렇게 기다리는 《애국가》가 나오게 되였으니 얼마나 기쁜일인가라고 하면서 좀 덥기는 하지만 선풍기를 끄는것이 어떻겠는가, 얼마나 힘을 들여 만들어낸 열매인가고 뜨겁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모두들 주석님을 우러러보았다. 가사를 쓴 시인도 노래를 부를 합창단 성원들도 선풍기소리가 《애국가》를 감상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까지는 미쳐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창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을 이처럼 귀중히 대해주시는 김일성주석의 배려가 예술인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였고 시연회에 온 모든 참가자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윽고 피아노반주가 흘러나오고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많은 신청작품중에서 선발된 두곡중 한곡은 100번으로 하고 또 다른 하나는 50번이라고 정하였다. 마음은 설레이고 심장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장중한 《애국가》의 선률이 힘차게 울려퍼지자 모두들 엄숙한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김일성주석님은 무엇인가를 가끔 수첩에 적고 있었다. 이때에 100번노래와 50번노래연주가 모두 끝났다. 청중들은 김일성주석의 말씀을 들으려고 흥분된 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김일성주석님은 “노래를 들어보니 마음이 고상해지고 삼천리강산이 보이는 것 같다. 노래에 사람들의 마음을 틀어잡는데가 있다”고 하시면서 “첫번째 노래를 한번 더 들어보자”고 요청하였다. 첫번째 노래를 다 들어본 다음 두번째 노래도 들어보자고 하였다. 두번째 노래가 끝난 다음 주석님은 “먼저 들어본 곡이 장중한 맛이 있고 무게가 있으니 《애국가》로 하고 후에 들은 곡은 제목을 고쳐 그대로 부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김일성주석님은 《애국가》에서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으로부터 길이 받드세까지의 가사를 반복하여 한 번 더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주석께서는 우리 나라는 찬란한 문화로 자라난 유구한 력사를 가진 나라인데 어떻게 한번만 부를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한번만 부르고 끝나면 곡이 너무 단조로우니 한번 더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선률로 보아도 더 효과적이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한결 장중해지니 부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였다.


김일성주석의 이러한 가르치심은 비범하면서도 무게가 있었다. 그 자리에 와있던 《애국가》를 작사한 사람이나 작곡한 사람 그리고 시청회장에 참석한 그 누구도 그런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날 연주된 첫번째의 노래가 김원균작곡 《애국가》이고 두번째 노래가 오늘날 제목을 바꿔서 부르고 있는 리면상작곡 《빛나는 조국》이다. 오늘도 《빛나는 조국》은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개막식 등 중요한 국가적행사에서 귀중하게 사용되고 있다.


김일성주석께서 《애국가》의 탄생을 선포하시는 그 역사적인 순간 장내에서는 폭풍같은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시연회참가자들은 모두가 김일성주석을 우러러보며 음악예술에 대한 그분의 천품앞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처럼 애국가의 가사에 스며 있는 의미를 음미하고 되새겨 보노라면 다시 한번 주석님의 위대함을 우러르게 되고 긍지로움으로 머리를 숙인다.


그가 누구이든지 애국가를 듣고 부르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나가겠다는 각오를 하게 될 것이다. 지난날 조선(북)의 인민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사회주의 조국건설에서 세상에 부럼없는 주체의 낙원을 건설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사랑이 어려있고 현명한 영도의 만년대계가 아로새겨진 《애국가》는 주체조선의 양양한 전도에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으며 인민을 하늘처럼 대하는 이민위천의 뜨거운 사랑의 노래인 조선의 애국가는 주석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생 불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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