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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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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509회 작성일 21-12-2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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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17년이 지나 새 고장에서


1


밤이였다. 밖에서는 1월의 찬바람이 눈가루를 휘말아가지고 창문에 뿌려치며 아우성을 치고 석탄불을 때서 훈훈한 사무실안에서는 두사람이 마주앉아있었다.

한사람은 키가 어지간히 크고 나이도 어지간히 든 농장기사장으로서 방의 주인이였다. 부석부석한 얼굴의 표정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은 키가 크지 않고 나이도 기사장보다 아래되는 잠정리 리당비서로서 방금전에 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눈이 하늘처럼 맑고 표정이 밝았다. 그가 기사장을 찾아온 목적은 자기들의 농장에 있어서 자못 중대한 소식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기사장은 눈길을 떨구고앉아서 찾아들어온 사람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였다.

《관리위원장동무가 해임되고 새 관리위원장이 임명되여 곧 도착할것이라고 군당에서 알려왔습니다.》

리당비서 차성재가 말했다.

기사장 로정만은 눈섭을 추켜올리며 새 소식을 접했다. 눈빛이 흐릿해지는 그의 심정은 착잡한듯 했다.

이 잠정협동농장의 관리위원장은 나이가 많은 아바이였는데 성실하고 공로가 있는 사람이였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도병원에 입원까지 했었고 벌써 석달남짓이 자기 사업에서 떨어져있었다. 그간 기사장 로정만이 관리위원장사업을 대리했다. 로정만은 앞으로 관리위원장이 자기 직책에서 더 일할수 없을것이라는 예감이 들었었는데 그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그가 해임되고 새 관리위원장이 온다는것이다.

《새로 임명되여오는 관리위원장은 어디 사람이랍니까?》

로정만이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연백벌에서 관리위원장을 하던 녀성인데 서른아홉살났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랍니다.》

차성재의 대답을 듣고 로정만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이름이 허명숙이지요?》

《그 녀성을 압니까?》

《잘 모릅니다.》 로정만이 대답했다. 《얼굴도 보지 못했지요. 그렇지만 잘 알려진 관리위원장입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라니 허명숙이겠지요.》

허명숙은 처녀로 관리위원장사업을 시작하면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닌 녀자였고 그후 오랜기간 일해오며 실적을 올려 소문이 났다. 그처럼 연백벌에서 명성이 높은 관리위원장이 온다니 우선 안심이 되였다.

이전 관리위원장은 진짜배기 농사군답게 일을 잘했고 이신작칙을 하는데서는 그 누구도 따르지 못했지만 나이가 많아지면서 조직력과 내밀성이 차츰 부족해졌다. 그래 기사장 로정만이 애를 많이 썼다. 하지만 기사장이 관리위원장을 대신할수 없지 않는가. 기사장은 농산을 전적으로 책임지고있다. 관리위원장은 농장전반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며 로력을 관리하고 농장원들과의 사업도 하며 군과 도에도 부지런히 다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관리위원장이 나이들면서 힘들어한다.

로정만기사장이 걸린 문제들, 례를 들면 뜨락또르부속품이라든가 비료를 해결받기 위해 나서지 않으면 안되였는데 그는 반드시 해결받아가지고 왔다. 이런 과정에 로정만의 모습이 뚜렷하게 부각되였다. 재작년과 작년에 잠정리는 풍작을 이룩했고 국가알곡생산계획을 수행하였다. 특히 작년에 성과가 컸다. 하긴 70년대말인 작년은 전국적으로 농사가 잘된 해였다. 그저 잘된것이 아니라 최고수확년도를 기록하였다.

잠정리에서는 농호당 평균 알곡 8. 5톤과 2 400원의 현금을 분배하였다.

이러한 성과를 가져온데는 관리위원장과 기사장의 노력이 컸다는것을 누구나 인정하고있었다.

로정만은 이곳 잠정리에서 태여나지는 않았지만 부모를 따라 잠정리로 와서 성장했고 나이가 되자 농사를 지었다. 농업협동조합이 조직된 후에는 분조장도 했고 농업대학을 졸업한 후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에서 사업하다가 다시 본고장에 기사장으로 내려와 어느덧 10년 잘되게 일해오고있다. 그는 농장의 내부실태와 살림살이, 초급일군들은 물론 농장원들의 성격까지도 환하게 알고있으며 그래서인지 관리위원회 성원들이나 작업반장들이 그를 어려워했고 그의 지시를 무겁게 대했다. 그는 농장원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농장에서 사업적권위가 있었다. 오랜 농사군이지, 기사장을 10년가까이 했지, 안면이 넓지, 말이 적고 점잖지, 이런것으로 하여 그는 잠정리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있었을뿐아니라 군적으로도 인정받고있는 일군이였다.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에서 로정만이를 경영위원회의 책임적인 위치에 끌어올려야 한다는 론의가 작년부터 있었다.

《여보, 로동무.》

로정만이 군경영위원회에서 일할 때 같이 있었고 지금은 경영위원장을 하는 사람이 작년 봄에 로정만이에게 내놓고 말했었다.

《동무가 잠정리에 지내 오래 있는것 같소. 경영위원회로 다시 올라와야 하겠소. 한해를 총화할 때마다 군당과 도당에서는 우리 군이 알곡 10만톤수준에 도달 못한다고 말하는데 로동무가 경영위원회에 올라와서 나와 같이 손을 잡고 우리 군을 10만톤군으로 만들어봅시다.》

같이 손을 잡고 일하자고 하는데는 군경영위원회 기사장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뜻이 담겨져있는것이 아닐가? 로정만이는 그의 말에 겉으로는 별로 반응하지 않았지만 내심으로는 충동이 컸다.

그자신도 자기가 지내 농장기사장을 오래 하고있다고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군경영위원장은 이미 시작한 올해농사나 짓고는 군으로 소환하겠다고 기일까지 찍어 말했다. 로정만은 신바람나고 기운이 솟아 작년농사에서 풍작을 마련하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관리위원장이 앓기 시작하여 부득불 해임되였다. 이런 상태에서 농장기사장을 뽑아갈수 있을가? 아닌게아니라 한해가 지나가고 새해 정월달에 접어들었지만 군경영위원장은 로정만이에게 다른 사업상 이야기는 하면서도 군에 소환하는 문제만은 의식적으로 피하고있었다. 경영위원장이 가만있는데 로정만이 먼저 말을 꺼낼수가 없지 않는가. 또 경영위원장이 그 문제를 피하고있는것이 관리위원장의 해임과 관련되여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는데 구태여 캐여물어보아야 하겠는가. 그래 로정만이도 침묵을 지키고있는데 방금 리당위원장이 새 관리위원장이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러한 상태에서 로정만의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가? 로정만이 허명숙이가 새 관리위원장으로 온다니 안심되는것은 자기 문제가 다시 상정될수 있다고 보았기때문이였다. 이름난 쟁쟁한 녀성관리위원장이 오게 되였으니 로정만이를 예정했던대로 군에 소환해갈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한편 새 관리위원장이 자리잡도록 방조해야 할것이고 군에서도 그렇게 하기를 바랄것이다.

어째서인지 자기의 소환문제가 꼬이는것만 같아 로정만이는 불안스러웠다.

리당비서 차성재가 말을 계속했다.

《군당에서 그러는데 도당책임비서동지로부터 새 관리위원장이 들 살림집을 잘 보수하고 부엌에 불도 지펴서 온돌을 덥혀놓으라는 지시가 왔답니다. 어쩌면 도당책임비서동지가 같이 올수도 있다고 합니다.》

(도당책임비서가 직접 허명숙을 선정했을수 있겠군.)

로정만은 허명숙에 대해 말은 좀 들었으나 실지 대상해본적은 없으니 호기심이 부쩍 동했다. 녀성이니 더욱 그랬다.

《새 관리위원장을 맞이할 준비를 잘해야 하겠구만요.》

로정만이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차성재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로정만은 도당책임비서의 지시가 없다 하더라도 관리위원장을 맞이할 준비를 잘할 생각이였다. 잠정리에 인격이 있고 례절밝은 사람들이 있다는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허명숙이 오는것이 기뻤다.

리당비서 차성재는 기사장을 존경했고 그의 말을 함부로 무시 못했으며 나이도 자기보다 많아 대화할 때 존경어를 썼다. 로정만도 차성재가 나이가 아래지만 리당비서여서 존경어를 썼다.

차성재가 방에서 나간 후 기사장은 부위원장을 찾아가서 관리위원장집 보수문제를 의논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도당책임비서동지도 같이 올수 있으니까 잠정농장의 실력을 보여야 하겠소. 완전히 새집처럼 해놓읍시다. 그러되 빨리 해야 할거요.》

부위원장은 난처한 표정이였다.

《세멘트랑 자재를 갑자기 어디서 가져오겠소?》

《보수반에 자재가 없소?》 로정만은 불만스러워했다.

《어데서 돌려쓰든 대책을 세워보시오.》

관리위원장사업을 대리하고있는 로정만이 부위원장에게 독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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