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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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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620회 작성일 21-12-2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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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처녀관리위원장


하루해가 지평선너머로 떨어지고 서늘한 바람이 바다쪽에서 불어오고있었지만 낮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대지는 아직 따뜻했다. 허명숙은 들바람에 파란 머리수건을 날리며 수로뚝우를 걸어 마을로 들어가고있었다. 종일 넓디넓은 들에서 일을 했으나 처녀의 늘씬하고 튼튼한 몸에는 아직 정력이 넘치고있는듯 걸음걸이가 힘찼다.

수건밑으로 보이는 둥그스름하고 볕에 익어 발그레한 얼굴에 저녁노을이 곱게 물들었다. 올해 22살, 관리위원장이 된지 반년도 채 안된다. 논배미들에서 벼이삭들이 바람에 설렁이는 들에서는 익어가는 낟알향기가 벌써부터 풍기는듯 명숙의 가슴은 부풀어올랐다.

어느덧 하늘의 구름에 비꼈던 노을빛도 꺼지고 대지에 어둠이 찾아들었다. 관리위원장방에 들어선 명숙은 머리수건을 벗어 걸고 앉은뱅이책상에 마주앉았다. 그 순간 전화종이 울리였다.

군당위원장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왔다.

《관리위원장동무요?》

《예, 허명숙입니다.》

처녀관리위원장은 쟁쟁한 목소리로 반갑게 대답하였다. 그러면서 이마와 코등에 송글송글 내돋은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씻었다.

《마침 있구만. 앓지는 않소?》

이 물음은 명숙의 웃음을 자아내였다. 산골마을에서 태여나 가파롭고 숲이 우거진 산속을 꿰질러다니고 성미급한 산촌의 개울물에 뛰여들고 맨발로 걸어다니며 땅과 함께 성장한 명숙은 아직 병이라고 할만 한 병을 앓아보지 못했다. 이곳 관리위원장으로 와서도 마찬가지인데 만일 감기에 걸린다 해도 누워 앓을 짬이 없는 명숙이였다.

《아이참, 위원장동지도! 제가 왜 앓겠습니까?》

《그래? 허허…》

사람좋은 군당위원장은 웃고나서 이렇게 또 물었다.

《나들이옷이 있소?》

이건 또 무슨 소릴가?

《있습니다. 치마저고리가 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처녀는 의혹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그저. 신발은 있소?》

명숙은 더 참을수 없어 《아이참, 그러면 맨발로 다니겠습니까?》 하고 어리광스럽게 반발했다.

《아니, 외출할 때 신는 구두같은거 말이요.》

《구두는 없습니다. 편리화를 신고다닙니다.》

《몇문을 신소?》

《37문을 신습니다.》

《발이 크구만. 키가 크니 발도 크겠지. 알겠소. 래일 아침에 나들이옷을 입고나와서 사무실에서 대기하고있소, 들에 나가지 말고. 알겠지?》

《녜.…》

명숙은 《군당위원장동지, 왜 그러십니까? 회의가 있습니까?》 하고 묻고싶었으나 아무래도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공손히 대답했다. 그러한 물음이 경솔한것일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무슨 일때문일가?)

허명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이마를 고이고앉아 군당위원장의 전화내용을 어떻게 리해할것인가 한동안 고심하였다. 도에서 어떤 중요한 회의가 있거나 아니라 해도 어떻든 그러루한 무슨 일이 있는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런데 참가할 자격이 있을가. 아무튼 나들이옷을 물었는데 새 치마저고리가 없지, 신발도 편리화를 신고 어딜 가? 명숙은 금시 울상이 되였다.

좋은 천으로 지은 새옷을 입고 구두를 신어야 할 기회가 자기에게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었다. 농사일밖에 몰랐었다.

명숙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원래 굵게 땋은 외태머리가 허리까지 치렁치렁 늘어졌었는데 관리위원장이 된 후 들일에 방해가 되여 잘라버렸다. 그래 지금은 중발머리인데 거울속의 그 중발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명숙은 치마저고리를 입고나오기가 어색하여 여느날처럼 작업복차림으로 출근했다. 아침모임을 끝내고 좀 기다려보다가 군당위원장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으면 작업반으로 나가기로 작정하고있는데 밖에서 빵빵 경적소리가 울리였다. 창문으로 내다보니 군당위원장의 승용차가 들어서고 거기서는 명숙이도 알고있는 군당지도원(당시)이 내려서고있었다.

순간 명숙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속이 활랑거리였다. 군당위원장이 차까지 보낼줄이야 어떻게 알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정말이지 낡은 치마저고리를 입고 편리화를 신고서 어떻게 저 차에 올라타랴. 명숙은 속이 타들었다.

관리위원장사무실에 들어온 군당지도원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군당위원장동지가 직접 통지를 했다던데, 왜 작업복차림이요? 빨리 서두르시오.》

《…》

《왜 그러오?》

《저는 가지 못하겠습니다.》

《뭐요? 이건 무슨 롱인가 하오?》

군당지도원이 펄쩍 뛰였다.

《못 갑니다.》

《왜 못 가오?》

《…》

《자, 이런! 이 동무 이제 보니 별난 고집이 있구만, 응?》

《…》

《허참, 중학생같이 떼를 쓰는구만.》

그는 두덜거리며 나가더니 리당위원장을 데리고왔다.

리당위원장은 체소하고 생김새도 별로 볼품이 없는 사람이였다. 그가 관리위원장방에 들어서자 명숙은 앉은자리에서 급히 일어섰다. 리당위원장이 처녀관리위원장보다 나이가 두곱이 넘는 아버지같은 사람이기때문일가?

리당위원장은 낮으나 굵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군당위원장이 부르는데 고집을 쓰면 되겠소? 어서 떠날 준비를 하오.》

《예, 알았습니다.》

처녀관리위원장은 두말없이 공손히 복종했다. 그 모양을 보는 군당지도원의 입가에 가벼운 웃음이 실리였다.

명숙은 집에 들어가 차비를 하고 군당지도원과 함께 읍으로 향했다.…

명숙이가 리당위원장 라순돌이 사무실에 들어섰을적에 바삐 일어섰고 그의 타이름에 순응한것은 그가 나이 많거나 리당위원장이기때문만은 아니였다. 명숙은 라순돌을 지극히 따르며 존경하고있었다.

올봄에 이 농장에 관리위원장으로 부임되여온 허명숙은 그 책임적인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연하기도 했고 애젊은 나이에 협동조합에 들어 오늘까지 들에서 일하는데 익숙된 몸이 사무실에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있자니 불편하고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였다. 그래 들에 나가 어느 분조의 모판에서 종일 락종을 했다. 이튿날도 마찬가지로 모판에 나가 일했다.

《래일은 나하고 같이 농장을 돌아봅시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에 라순돌이 합숙으로 찾아와 말했다.

《저는 일부터 하겠습니다.》

《관리위원장이 할 일은 따로 있소. 우선 관리위원회를 운영해야 하지 않겠소?》

《그건 기사장동지가 다 합니다. 저는 모판에 나가 일하는것이 재미나고 좋습니다.》

천진하다 할지 고집스럽다고 할지 라순돌은 어떻게 설복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그는 화를 냈다.

《그럼 나도 리당위원장사업을 걷어치우고 락종이나 할가? 그러면 머리도 아프지 않고 편안하지. 그래 편안하게 지내자는거요? 어렵고 중요한 직책을 피하고 쉽고 편안히 지내자는거요? 동무를 공부시키고 당원으로 키워주고 관리위원장으로 내세워준 당의 혜택에 그렇게 보답하려는거요?》

그에게서 처음 당하는 추궁이 명숙을 숨가쁘게 했지만 왜 그런지 아프지는 않았다.

《명심해두오. 내 이름은 순돌이지만 사업과 원칙앞에서는 순돌이가 아니요.》 이렇게 엄격하게 말하던 라순돌은 처녀가 머리숙이는것을 보고 지내 혹독하게 말한것 같아 어성을 낮추었다. 《미안하오, 관리위원장동무에게 큰소리를 쳐서! 저녁식사전이요?》

《…》

명숙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푹 쉬시오. 래일 아침에 내가 올테니 같이 농장을 돌아봅시다.》

라순돌은 명숙이가 공연히 고집을 부리며 제멋대로 하려 하면 눈물이 나오도록 호되고 날카로운 비판을 주군 했으나 인정이 많고 대범하고 다심하며 성실한 인간이였다. 그는 당원으로나 일군으로나 모든 면에서 아직 미숙한 처녀관리위원장을 하나에서부터 시작하여 꾸준하게 일을 배워주고 이끌어주어 명숙이가 자기 직책에 익숙되고 자리잡도록 해주었다. 명숙을 뒤받침해주느라 애도 태웠다.

명숙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가 훌륭한 당일군을 만났다는것을 알게 되였으며 첫인상에 볼품이 없는 남자로 보았던 라순돌에게서 인간적매력을 느꼈다. 명숙은 그를 존경하고 어려워했으며 아버지처럼 대하게 되였다.

군당지도원은 이런 내막을 깊이 알수 없었다.

군당청사에 도착한 명숙은 지도원의 안내를 받으며 군당위원장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아, 왔소?》

군당위원장은 반기면서도 앉으라는 말은 하지 않고 처녀관리위원장의 옷차림을 살펴보았다. 흰 저고리와 검정치마, 농촌녀성들이 나들이를 갈 때면 차려입고 나서는 수수한 옷이였다. 명숙이에게 잘 어울리였다. 하지만 옷이 낡았다. 신은?… 군당위원장은 눈길을 얼른 돌리였다.

《형국동무.》 군당위원장은 지도원에게 말했다. 《지시한대로 하오. 명숙동무, 지도원동무를 따라가오.》

명숙은 지도원을 따라나가면서 얼굴이 화끈해났다. 군당위원장에게서 본 어두운 눈빛때문이였다.

(공연히 왔어. 오지 말았어야 할걸.)

하고 후회하며 명숙은 지도원을 흥심없이 따라갔다. 그런데 지도원은 그를 조선옷을 전문하는 옷점으로 데리고갔다. 거기서 명숙은 몸을 쟀다. 아마 새옷을 지어주려는가봐 하는 생각에 명숙은 속이 뜨거워났다.

그다음은 상점으로 갔다. 거기서 발에 꼭 맞는 가죽구두를 샀다. 어찌나 그 구두가 멋있었던지 명숙은 당장 신고싶었는데 지도원은 포장곽채로 승용차안에 실었다. 그리고 지도원은 명숙을 군려관으로 데리고갔다. 미리 이야기가 있었는지 관리원이 열쇠를 선뜻 주었다.

지도원은 2층 1호실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당분간 여기에 거처하게 되오. 좀 쉬고나서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미용원에 가서 머리를 좀 다듬으시오.》

《전 돈도 가져온것이 없고…》 군에 온 이후 어리뻥뻥해져 지도원이 안내하는대로 그저 따라다니고만 있는 명숙은 얼굴을 붉히며 소곤거리듯 말했다. 지도원이 없으면 어디도 갈수 없을것 같아 당황해졌다. 목욕탕이나 미용원에 남자지도원과 같이 갈수 없으니 혼자 가는수밖에 없지 않는가.

《아, 그건 걱정마오. 이야기가 다 되여있으니 가기만 하면 되오.》

목욕을 끝내자 레스가 달린 하얗고 매끈매끈한 명주속치마를 주었다. 아, 꿈엔들 이런 속치마를 바라볼수 있었으랴. 이어 미용원에 가서 머리를 다스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보는것 같아 머리를 숙이고 려관으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였다. 그는 성의껏 차려준 식사를 하고 호실에 들어가앉았다. 그리고 꼼짝하지 않고 이 모든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명해보려고 깊은 상념에 빠졌다.

군당위원장동지가 관리위원장으로 사업을 시작한 자기 명숙을 생각해서 앞으로 군이나 도에 회의도 다녀야 하니까 보살펴주는것일가. 피살자유가족이라고 리당위원장 라순돌이도 명숙이네 집일에 관심을 많이 돌려주었다. 군당위원장동지도 그래서일가. 군당지도원은 오후 네댓시경에 자기가 데리러 오겠다고 하였다. 그때 가면 옷이 다 만들어질테니까 같이 가서 입어보려는것이겠지.…

육체를 놀려 일하던 사람이 빈방에 홀로 우두커니 앉아있다는것은 참으로 맹랑한 노릇이여서 명숙은 려관앞거리로 나가 산보를 하였다. 그러던중 안면이 있는 군인민위원회 과장을 만났는데 그는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어버이수령님께서 읍협동농장과 천태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시고 떠나가셨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명숙은 깜짝 놀라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수령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알고싶어 캐물었으나 과장은 그 이상 더 아는것이 없었다.

(아, 언제면 농사를 잘 지어 우리 농장에도 수령님을 모실수 있을가.)

아직 아무것도 해놓은 일이 없는 애숭이관리위원장으로서 명숙은 이렇게 념원하면서 려관으로 돌아왔다.

오후 늦어 군당지도원이 약속한대로 찾아왔다.

《갑시다.》

그는 이렇게 간단히 실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려관앞에 서있는 승용차를 타고 조선옷을 전문하는 옷점으로 가는 명숙은 많은것을 묻고싶었으나 지도원의 표정이 여전히 실무적이여서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옷점에서는 조선옷을 이미 다 지어놓았다. 눈처럼 하얀 옥당목저고리와 까만 치마! 명숙은 황홀해서 옷을 만져보며 어쩔줄 몰라했다.

《어서 입어보오.》

《예.》

잠시후 명숙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편안하오?》

《편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옷점책임자가 《꼭 맞습니다. 정말 보기 좋습니다.》 하고 결론을 내렸다.

체경속에 비낀 자기의 모습을 신비하게 들여다보며 기쁨을 금치 못하는 처녀에게 지도원이 들고온 포장함을 열고 까만 가죽구두를 내주었다.

《신으시오.》

명숙은 여태 신고있던 편리화를 벗고 번쩍이는 새 구두를 신었다. 그리고 자기도 어쩔수 없는 호기심에 끌려 다시 체경을 들여다보았다. 앞머리를 약간 지져 굽실굽실하게 만든 미용사의 솜씨는 처녀의 얼굴을 다른 모양으로 만들었다. 눈에 가득 실린 황홀감에 환해진 얼굴이 과연 자기 명숙이란 말인가? 옥당목치마저고리는 얼마나 눈부신가. 까만 가죽구두는 처녀의 다리를 더 미끈하고 탄력있게 보이게 했고 키를 더 늘씬해지게 했다.

명숙은 지도원과 책임자를 향해 돌아섰다.

《멋있소.》

지도원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명숙은 활짝 웃으며 수태를 머금고 얼굴을 붉혔다.

《갑시다.》

명숙은 입던 옷과 신이 들어있는 보자기를 들고 뒤따라 승용차에 올랐다. 차가 움직였다.

《지도원동지…》

《뭐요?》

《전 도무지 꿈을 꾸는것만 같아서… 무슨 일인지?》

《군당위원장동지가 기다리오.》

그는 딴 대답을 하였다.

군당위원장이 자기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인사를 하는 명숙이에게 말했다.

《음. 여기, 여기루 가까이 걸어와보라구… 음, 됐어, 됐어!》

수집음을 머금고있는 처녀의 얼굴을 보며 군당위원장은 웬일인지 눈을 슴뻑이였다.

(일밖에 모르는 순박한 농촌처녀, 우리 처녀들도 이렇게 차려입히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는 손을 내저으며 목메여 겨우 말했다.

《나가 기다리오.》

명숙은 영문을 모르고 지도원을 따라나갔다.

군의 책임일군들과 허명숙이 먼저 두대의 승용차로 떠나고 뒤따라 군내 관리위원장들이 뻐스를 타고 떠났다.

해가 기울어질무렵 명숙은 꽃들이 피고 나무들이 우거진 정원속의 아담한 건물에 도착하여 어느 한 방으로 들어갔다. 대여섯명정도의 관리위원장들이 이미 와있었다.

이윽하여 겉모양이 끼끗한 젊은 사람이 들어와서 동무들은 곧 수령님의 접견을 받게 된다고 알려주면서 몇가지 사항을 언급하였다.

그 순간 허명숙은 온몸이 둥둥 뜨는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군에서 새옷을 입혀주고 새 구두를 신겨준것이 단순히 군당위원장의 성의에서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회의때문일것이라고 고쳐 생각했지만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될줄 어찌 알수 있었으랴. 처녀관리위원장으로서 감히 바랄수 없었던 념원이 이렇듯 이루어질줄 어떻게 생각이나 할수 있었으랴. 꿈 아닌 현실이였다.

심장은 세차게 뛰였다. 명숙은 가슴을 부둥켜안았다. 처녀가 지금 제일 자신을 속박하는 생각은 다른 관리위원장들은 남자건 녀자건 다 나이도 있고 공로도 있으며 경험도 풍부한 사람들인데 자기는 아무것도 해놓지 못했으며 겨우 출발선에 서있는 상태라는것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영광의 자리에 참석하게 되였을가. 혹시 수령님께서 무엇인가 물으시면 무슨 대답을 드릴수 있을가. 정말 명숙은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저 속이 떨리기만 했다.

이윽하여 그들이 들어왔던 문과 반대되는 곳의 문밖에서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를 준비시켰소?》

준비시켰다고 대답하는것 같았다.

문이 열리였다. 환한 웃음을 만면에 담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 들어오시였다. 명숙의 첫 느낌은 문이 꽉 차고 방안에 신비로운 빛이 비쳐드는듯 밝아지는것이였다. 사람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몇몇 간부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맞은편 창문들이 있는 벽의 걸상에로 가시여 수령님께서 손을 흔드시였다.

《앉으시오, 앉으시오. 박수는 무슨 박수요.》

그이께서 앉으시며 관리위원장들을 쭉 둘러보시는데 그이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명숙은 온넋이 하늘로 뜨는듯 하였다. 그이의 안광은 강렬하고 신비롭게 번쩍이였다.

금시 자기에게 누구냐고 물으실것 같아 명숙은 속이 한줌만 해졌다. 엄엄한 분위기에 눌려 처녀는 자기를 잃고있었다.

《래일 황해남도 농사를 가지고 협의회를 하는데 동무들과 먼저 좀 이야기해봅시다.》

그이의 목소리가 어찌도 우렁우렁한지 방안의 대기가 울리고 그 파동이 가슴에까지 미쳐왔다.

그이께서 한 남자관리위원장의 이름을 부르시였다. 50대의 건장하고 오랜 농사일에 꽛꽛해진 손등에 힘줄들이 툭 불거진 농민이 일어섰다. 수령님께서는 그와 잘 아는 사이인지 건강상태며 가정형편, 올해 작황에 대해서와 경험은 무엇인가 등을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다음은 역시 나이 들어보이는 녀성관리위원장과 담화를 하시였다. 명숙은 시간이 감에 따라 엄엄한것 같던 분위기가 집안사람끼리 모인것처럼 허물없고 따뜻한 분위기로 바뀌는것을 느끼였다. 속도 떨리지 않았다. 언제면 자기도 공로있는 관리위원장이 될가 하는 부러움이 짙어갔다. 그들은 수령님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한 일이 있고 따라서 할 이야기가 있기때문일것이다.

수령님께서 한 중년의 관리위원장녀성과 담화를 끝내고 도당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여기 처녀관리위원장도 참가했소?》

《예, 허명숙동무.》 하고 도당위원장이 명숙을 불렀다.

명숙은 어떻게 일어섰는지 알수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을 다잡고 쟁쟁하게 울리는 맑은 목소리로 크게 《현촌협동농장 관리위원장 허명숙이 인사드립니다.》 하며 머리를 깊이 숙이였다. 일단 일어서자 시원시원하고 대담한 성미가 본색을 나타냈다. 그의 씩씩한 대답을 들으시면서 수령님께서는 대견해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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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몇살이요?》

《스물두살입니다.》

《나이가 좋아! 언제부터 관리위원장을 하나?》

《올해 3월부터입니다.》

《몇달이 안되였구만. 그래, 관리위원장을 해보니 어떻소?》

마치도 아버지처럼 부드럽고 다정하게 물어주시니 명숙은 긴장감이 얼음녹듯 했으나 이 물으심에는 쉽게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 《해보니 해볼만 합니다.》 혹은 반대로 《힘에 부칩니다.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경솔하게 또는 지내 천진스럽게 말씀드릴수 없지 않는가.

사실 처녀들에게 관리위원장사업을 시켜보는것이 좋을것 같다는 의도를 내놓으실 때 수령님께서는 조선처녀들의 성격적특질에 대한 깊은 파악에서 출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전쟁시기에 우리 녀성들이 전선과 후방에서 발휘한 영웅주의에서 깊은 감명을 받으시였다. 실례로 개천군의 처녀보잡이를 들수 있다. 그는 10대의 처녀시절에 남정들을 대신하여 보탑을 잡았고 전후에는 맨먼저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첫 처녀관리위원장으로 선거되였다. 키가 작으나 오돌차고 말이 적으나 실천력이 강하고 유순해보이나 속대가 센 외유내강한 처녀였다. 이처럼 마음이 곱고 고지식하며 부지런하고 이악한 대바른 녀성들을 처녀시절부터 관리일군으로 내세워 풍부한 경험을 쌓게 하고 단련시켜 농업전선의 믿음직한 간부로 키우는것이 우리의 사회주의건설의 전반적인 견지에서나 녀성들이 많은 농촌의 현실적요구에서나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천리마동상에 태운 근로자들의 형상에서 벼단을 안은 녀성의 모습이 상징적이라 할수 있다.

수령님께서 오늘 관록있는 오랜 실농군관리위원장들과 함께 처녀관리위원장을 만나보시는것이 의미가 깊었다. 그러므로 그이의 물으심에 명숙이 어떻게 대답을 드리는가 하는것이 주목되였다. 도당위원장이 가슴을 조이였다.

수령님께서 서글서글 웃으시며 처녀에게 용기를 주듯 재차 말씀하시였다.

《힘들지 않소? 솔직히 말해보오. 내앞에서는 솔직히 말해야 해.》

《일이 힘듭니다.》

명숙이가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솔직히 말하라니 너무 고지식하게 대답올리는것이 아닌가? 도당위원장은 얼굴빛이 컴컴해졌다.

《음, 힘들테지. 왜 힘들지 않겠나? 힘들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야. 일을 쉽게 하자는 사람에게는 힘들지 않을수 있어. 그러나 진짜 일을 잘해보려는 욕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일이 쉽지 않지. 힘은 들지만 해내고야말겠다는 각오와 열정이 있으면 해내는거야.》

얼굴빛이 밝아진 도당위원장이 허명숙이가 관리위원장으로 임명받고 못하겠다고 내빼던 일과 리당위원장이 데리고다니며 걸음마다 일깨워주고 이끌어주던 일, 당조직의 지도방조를 받으며 아직 경험은 없지만 열성을 다해 들에 나가살다싶이 하며 농사를 짓고있는 사실들을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처녀가 대견하였다.

《명숙이, 아버지는 뭘 하오?》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그 순간 명숙은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그러나 설음을 누르고 대답을 드리는데 어쩔수없이 목소리가 떨리였다.

《전쟁시기 원쑤놈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원이였소?》

《세포위원장이였습니다.》

《그랬구만.》

수령님께서는 낯빛을 흐리시며 성냥곽을 눕혔다세웠다 하시면서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였다.

무거운 침묵… 이윽하여 그이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요가 깃든 방안을 꽉 채우며 울리였다.

《집에 누구누구 있소?》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습니다.》

《동생들이 몇이요?》

《둘입니다.》

《어머니는 뭘 하시오?》

《전쟁때 폭격에 허물어진 집을 다시 지으려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가 허리를 상한 후부터 농장에서 일을 못하고 부업을 합니다.》

《그러니 집에 들어가서는 세대주고 농장에 나와서는 관리위원장이고, 참 용소. 마음고생이 많았겠소.》

명숙은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라 눈물에 젖어 말씀드리였다.

《수령님, 저는 열살때에 원쑤놈들에게 아버지를 잃었고 미국놈폭격에 집도 잃었습니다. 앓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 피살자유가족이라고 학습장과 연필들을 무상으로 주어 공부를 할수 있었고 쌀도 내주고 옷도 주어 굶지 않고 살아갈수 있었습니다. 수령님께서 보살펴주셨기에 저는 아버지없는 설음을 몰랐고… 오늘은 관리위원장으로까지…》

명숙은 목이 메여 더 말을 못했다.

《음… 앉소, 앉으라구.》 그이께서 명숙이가 앉자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나는 피살자유자녀들을 만나본 날이면 가슴이 아파 잠이 오지 않소. 그때마다 나는 동무들의 친아버지가 되여 훌륭한 일군으로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오.》

명숙은 헉헉 흐느낌이 가슴속에서 솟구쳐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있었으나 어깨는 더 떨리였다.

다른 관리위원장들의 눈가에도, 도당위원장의 눈에도 눈물이 어리였다.

《진정하오, 명숙동무!》

도당위원장이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명숙은 입을 더 힘껏 막으며 가까스로 진정하였다.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나는 명숙이에게 믿음이 가오. 힘이 든다고 솔직하게 말하니 믿음이 간단 말이요.… 힘이 들지! 그러나 당에서 하라는대로만 하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도 능히 관리위원장사업을 잘해나갈수 있소. 녀성들이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남자들보다 일을 깐지게 하고 농장살림살이를 알뜰히 할수 있소.》

수령님께서는 일을 잘하겠다는 열의만 높아서는 안된다, 과학기술을 알아야 한다, 일하면서 농업대학을 통신으로 다니라, 군당에서 도와주라고 다심한 관심을 돌려 말씀하시였다.

《동무들과 같은 땅의 주인들인 농촌의 핵심들이 제일 큰 재산입니다. 나는 동무들을 믿습니다. 농업생산은 인민생활과 직접 련관되여있습니다. 나라에 쌀이 많아야 인민들이 배불리 먹게 되고 모든 일이 다 잘 펴입니다.》

수령님께서는 이와같이 간곡하게 말씀하시며 황해남도 농사에서 전변을 가져오리라고 확신한다고, 래일 협의회에서 실무적인 문제들을 토의하자고 하시며 자리를 뜨시였다.

눈물속에 잠긴 명숙은 어떻게 수령님을 바래워드리였는지, 또 어떻게 식당으로 안내되여 들어갔는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그저 어슴푸레하게 생각될뿐이였다.

이날은 허명숙의 일생에서 관리위원장으로서의 시작점에서 가장 큰 영광과 은정을 받아안은 잊을수 없는 날이였으며 정신상태에서 새로운 전환적국면이 열려진 날이였다. 명숙은 어버이수령님을 친아버지로 마음속깊이 모시였고 수령님께서 가르치시는대로 일해나갈 신념의 맹세를 더깊이 간직했다.

농장으로 돌아온 명숙은 저기 바다기슭 동뚝까지 아득히 펼쳐진 들판으로 나갔다. 세기를 두고 내려오며 우리 조상들의 원한이 서리고 눈물에 젖은 대지, 하지만 그들이 땅의 주인이 된 때로부터 애국의 구슬땀에 젖고 우리 제도를 지켜싸운이들의 성스러운 피가 스민 어머니대지! 어찌하여 지금 명숙의 가슴은 이 대지에 대한 애착으로 더욱 후더워오는것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대로 머리속을 꽉 채우고있었다. 그이의 말씀에는 얼마나 크나큰 믿음과 뜨거운 사랑이 깃들어있는가. 나라에 쌀이 많아야 모든 일이 잘 펴인다. 그렇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쌀은 곧 사회주의라고, 다른것과는 혹시 타협할수 있어도 배고픈것과는 타협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내 진정 이 대지의 주인으로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어버이수령님께서 바라시는대로 나라의 쌀독을 채우기 위해 충정의 더운 땀을 흘리리라! 명숙은 바다쪽으로부터 낟알이 익어가고있는 넓은 들판을 스쳐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가슴깊이 들이키였다. 머리수건이 나붓기고 치마자락이 펄럭이였다.

《관리위원장동무!》

등뒤에서 명숙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숙은 라순돌리당위원장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리당위원장동지!》

《관리위원장동무, 축하하오!》

둘이 손을 맞잡는데 명숙의 눈굽에 물기가 어리였다.

《허허… 자, 여기 좀 앉기요.》

라순돌은 명숙이와 함께 보뚝우에 앉았다. 그리고 명숙의 손을 다시 쓰다듬어주면서 어서 이야기하라고, 수령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였는가고 재촉하였다.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라순돌은 생각깊은 엄숙한 얼굴로 벼이삭들이 설렁이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땅의 주인들이라 하신 말씀을 명심해야 할거요.》

라순돌은 해방후 우리 농민들이 토지를 분여받았을 때의 그 감격이 얼마나 컸던지 이루 다 말할수 없다, 그래 해마다 풍작을 마련하여 나라의 쌀독을 채웠다, 오늘 협동화된 이 대지의 주인들은 주인구실을 더 잘해야 할것이다, 진짜 땅의 주인구실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고 자기의 느낌을 토로하였다.

《리당위원장동지, 저를 더 채찍질하고 깨우쳐주십시오!》

명숙이 진심으로 부탁했다.

《수령님께서 다 가르쳐주셨는데 무슨 말을 더 하겠소. 동무들의 친아버지가 되겠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참된 딸이 되기를 부탁하고싶을뿐이요.》

이렇게 말한 라순돌은 그날부터 허명숙이 진실로 수령님의 참된 딸이 되도록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뒤에서 이전보다 몇배의 노력을 기울여 도와주었다.

탈곡작업이 한창이던 초겨울, 6작업반의 탈곡이 늦어진다고 걱정하는 명숙의 소리를 들은 라순돌은 이튿날 아침 일찌기 작업반탈곡장에 나타나 아무말없이 농장원들과 같이 일에 붙었다. 그는 전쟁시기 구월산에서 빨찌산투쟁을 할 때 다리에 부상을 입은 사람이였는데 저녁늦게까지 탈곡을 하였다. 이날 6작업반의 탈곡실적이 쑥 올라갔다. 그는 이렇게 관리위원장을 뒤받침해주었다.

이날 뒤늦게야 이 일을 알고 작업반탈곡장에 달려간 명숙이는 그를 작업장에서 떼여내며 《왜 이렇게 무리합니까? 자기 몸상태를 알아야지요.》 하고 안타깝게 말했다.

탈곡장밖으로 나와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담배를 말며 라순돌이 빙그레 웃었다.

《좀 무리했소. 관리위원장동무처럼 해보려 했지. 어방도 없더군.》

《저야 젊지 않았습니까.》

《젊었지. 그래서 나는 농장의 앞날을 락관하오.》

그의 얼굴에 넘치는 따뜻하고 밝은 표정을 보며 명숙은 좋은 당일군을 만난 행복감에 눈굽이 뜨거워났다.

로당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허명숙은 이렇게 한해두해 성장했으며 연백벌―어머니대지에 깊이 뿌리내리였다.

이 과정에 가슴아픈 상실의 슬픔도 겪었다. 연백벌 앞바다의 섬에 둥지를 틀고있는 원쑤놈들과 련계를 가지고 마을에 잠입한 반동놈에 의해 라순돌이 피살되였던것이다.

라순돌의 죽음은 명숙이로 하여금 절망에 빠지게 한것이 아니라 계급적원쑤놈들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연백벌에 알곡풍년을 가져오기 위한 영농사업에 더욱 분발하게 했다.

그렇게 1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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