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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대지의 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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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570회 작성일 22-01-2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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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한 해 총 화


26


설날에 류순절은 새해에는 분조원들의 단합을 실현하고 분조농사에서 결정적인 전진을 이룩할 결심을 품고 우선 나이 많은 분조원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분조원세대를 찾았다.

먼저 안종기네 집에 들리였다. 대문을 두드리고 들어서는데 털이 부르르 일어서고 대가리가 엄청나게 크며 상판대기가 괴상하게 생긴 수개가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순절이가 처음 이 집에 찾아왔을 때 이발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였던 이 늙은 수개는 어느새 면목을 익혔는지 반갑게 마중나오는것이였다. 그래도 순절이는 경계심을 품고 《주인 계시나요?》 하고 찾으며 조심스럽게 마당을 걸어들어갔다.

안종기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아버님, 새해에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순절은 머리숙여 인사를 했다.

《어, 분조장두 새해에 건강하구 복 많이 받으라구.》

《고맙습니다.》

《추운데 어서 들어오라구.》

순절은 방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안종기네 터밭을 돌아보았다. 이 추운 날에도 터밭에 비닐박막으로 온실을 만들어놓고 남새들을 재배하고있는것이 희한했다. 개인리기주의를 한다는 비난을 받고있지만 바로 이처럼 겨울날에도 쉬지 않고 오륙을 놀려 각종 남새를 가꿔 생활보탬을 하고있으니 안종기네가 다른 농장원세대보다 수입이 높은것은 응당한 귀결이다.

방안으로 들어간 순절은 목도리를 벗으며 안종기네 식솔들과 새해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권하는대로 따뜻한 아래목에 앉았다. 나이 어리지만 분조장이라고 대우하는것이였다.

순절은 터밭의 온실에 관심이 컸다.

《아버님네는 저 온실에서 어떤 작물들을 재배합니까?》

순절의 물음에 안종기는 대머리를 쓰다듬으며 좀 어색해하였다.

《그건 알아서 뭘하겠니?》

《신기해서 그래요.》

《신기하기까지야 무슨… 난 여기다가 심을수 있는건 다 심는다. 올감자, 완두, 무우, 배추, 오이… 이런것 말이다. 네가 들어오면서 봤는지는 모르겠는데 추운 겨울에는 잘 안된다. 그래 남새를 좀 심지.》

《여름에는 온실이 필요없겠지요?》

《필요없다. 그래서 올감자, 강냉이같은것을 심고 남새를 또 심는다.》

《그러니까 이 터밭에서 2모작을 하겠군요?》

《어떤것은 3모작까지 한다. 세벌농사지.》

순절은 입을 딱 벌리였다.

《그러니까 이 터밭수입이 대단하겠습니다.》

《어험, 뭐 그저 좀…》

순절은 눈을 깜빡이며 한동안 속궁냥을 하였다. 안종기는 그가 개인리기주의를 한다고 자기를 탓할 말을 고르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순절은 관리위원장 명숙이가 해주었던 이야기를 상기하고있었다. 명숙은 안종기가 일하고있었던 남새반 3분조에 갔던 이야기를 했었다. 남새반 3분조는 비닐박막으로 온실을 지어놓고 겨울에도 값나가는 남새를 재배하고있었는데 그것은 안종기의 착상에 의한것이라고 하였다. 안종기는 이처럼 자기 집 터밭농사도 잘 지을뿐아니라 분조의 남새생산에도 특기할 공헌을 하였으니 별로 미움을 받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남새반 3분조장은 안종기가 농산반으로 간것을 아쉬워하였다. 류순절이는 명숙의 권고대로 안종기의 터밭농사열성을 분조를 위한 열성으로 이끌어갈 생각으로 이렇게 물었다.

《아버님, 우리 분조에서 2모작하는 밭들을 보았지요?》

《보았지.》

안종기가 대답했다.

《어때요?》

안종기는 손으로 대머리를 쓰다듬었다.

《신통치 않아.》

《옳아요. 신통치 않아요. 그런데도 여태 나한테 아무 소리도 안했지요?》

순절이가 무슨 소리를 하는것인지 짐작이 되여 안종기는 좀 당황해했다. 그는 대답을 피했다.

《아버님은 응당 나한테나 분조원들한테 두벌농사를 이렇게 하면 쓰겠느냐고 말했어야 했고 아버님자신이 분조의 2모작을 여기 터밭에서처럼 알심있게 짓기 위해 노력했어야지요. 안 그런가요?…》

안종기는 바빠나서 어험어험 헛기침만 했다. 그는 순절이가 그것이 개인리기주의때문이 아닌가고 보다 심각하게 말할것 같았다.

그러나 순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우리 분조에서 생산량을 늘이기 위해서 2모작을 더 많이 하고 더 잘하자고 해요. 그러니 아버님이 터밭에서 하는 2모작의 경험을 살려서 분조에서 하는 2모작농사에서 앞장서주면 좋겠어요. 지금 어떤 분조원들은 2모작이 힘들다면서 달가와하지 않아요. 그런데 아버님네 터밭을 보니 힘들어도 더 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굳어집니다.》

안종기가 드디여 입을 열었다.

《분조장말이 옳아. 2모작을 하면 힘이 그만큼 더 든다. 내가 터밭에서 2모작을 극성스럽게 하는게 그만큼 힘이 더 드는거야. 그래두 그렇게 하니 수입이 늘거던. 땅이 거저 주는 법은 없지. 분조장, 분조사람들이 모두 각오하고 달라붙으면 해낼수 있어.》

《해낼수 있지요? 아버님이 앞장서줄수 있지요?》

《허허…》

순절이는 안종기가 자기의 부탁을 받아들인것으로 인정했다. 안종기가 앞장서서 자기의 터밭농사경험을 살려 분조의 2모작농사를 추켜세우면 분조는 더 많은 생산물을 낼것이고 수입도 물론 늘어날것이다. 순절이는 기운이 났다.

물론 안종기가 실천단계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집단을 위해 노력하겠는지는 두고보아야 할것이다. 그러나 당조직에서 일깨움을 주었고 관리위원장도 안종기의 결함만 보지 말고 우점을 살려 실농군으로서 집단을 위한 일에 발벗고나서도록 부단히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순절이는 농사경험으로 말하면 안종기에 대비도 안된다. 그러나 아무리 실농군이고 나이가 퍽 많다 해도 안종기에게 부족한것이 처녀에게는 있었다. 순절이자신이 그것을 느끼고있었기에 안종기를 당에서 바라는대로 옳게 이끌어갈 결심이 확고했다.

순절이는 집으로 가며 이제 봄이 오고 땅이 녹기 시작하면 랭습지를 개량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두벌농사를 착실하게 하며 분조성원 매 농가에서 돼지를 2마리씩 기르는 등 타산을 하느라 길까지 헛갈리였다. 돼지를 기르면 고기를 먹을수 있고 현금수입을 높일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퇴비를 많이 질적으로 생산하여 논밭에 낼수 있다. 지금 적지 않은 농가들에서 돼지들을 기르고있으며 2마리이상 기르는 농가들도 있다. 그러나 아직 모든 농가들에서 다 2마리씩 기르고있지 못했다. 류순절이네 분조만 보아도 그렇다. 그래서 순절이가 결심한것이였다. 새해에는 농사를 잘 지어 분배몫을 결정적으로 높이려는 결심에서 이런것, 저런것들을 타산해보니 좋은 방도들이 떠올랐다.

며칠후 저녁시간에 순절은 관리위원장을 찾아갔다. 목도리를 두르고 솜옷을 입은 순절은 키가 크고 어깨도 너부죽해서 웬만한 남자로력자보다 건강해보였다. 추위에 빨개진 뺨에서는 싱싱한 젊음이 넘치고있었다.

《순절분조장이 어떻게?》

년간총화보고서를 쓰고있던 명숙이가 반갑게 맞아들이였다.

순절이는 설날에 안종기네 집에 가보았던 일과 거기서 그와 한 약속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래, 응, 잘했어! 안종기동무가 실농군이고 경우도 밝은 사람이니까 딸자식같은 처녀분조장이긴 해도 분조장에게서 새롭게 느껴지는것을 기특히 여겨 감수했을거야. 참, 기쁜 일이구나. 글쎄 약속 하나로 다 해결되는것은 아니니까 부단히 자극을 주고 이끌어야 하겠지만 어쨌든 출발이 좋아요. 두벌농사를 잘해보자구.》

명숙은 순절을 치하하면서 자신도 기분이 뜨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위원장동지, 저는 이런 계획도 세웠습니다.》

순절은 벗어든 목도리를 두손에 쥐고 앉아서 새로운 문제를 꺼냈다.

명숙은 이 처녀분조장이 또 어떤 계획을 내놓으려는지 흥미를 가지고 《어서 말해, 어떤 계획인지?》 하고 재촉했다.

《새해에 우리 분조는 랭습지를 개량하는 동시에 돼지들을 매 세대당 2마리씩 의무적으로 길러 고기도 생산하고 중요하게는 논밭에 낼 두엄을 해결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당장 돼지목장에 가서 돼지새끼들을 사다가 세대별로 나누어주려 합니다.》

(이 처녀의 지혜는 샘솟듯 하고 열정은 불길처럼 타오르는구나. 그 열정이면 당정책관철에서 두려울것이 무엇이랴!)

명숙은 감동되였다.

순절은 실농군들의 집에 가보면 돼지를 많이 먹이고있기때문에 늘 세대별 거름생산에서 앞서고있는것임을 절감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음, 아주 좋아. 달구지를 가지고가서 실어오라구, 돈은 부기실에 가서 타고.》

명숙이 적극 지지하고 고무해주자 류순절은 신이 나서 어쩔줄 몰라했다. 명숙은 순절이에게 돼지새끼들이 얼지 않게 대책을 세워가지고 래일 떠나라고 일렀다.

순절이를 보낸 후 명숙은 장차로 이 모범을 일반화하여 모든 분조들에서 돼지새끼들을 가져다 기르도록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돼지새끼들을 모든 분조세대들에서 2마리이상 의무적으로 먹이도록 하려 한 류순절의 시도가 실천단계에서는 약간한 곡절을 겪게 되였다.

이튿날 순절은 관리위원장이 일깨워준대로 돼지새끼들이 수송도중에 얼거나 기타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준비를 끝낸 다음 그것들을 얼른 달구지에 싣고 경섭이와 창길이를 목장에 보냈다.

그렇게 사온 돼지새끼들을 분조원들의 집집에 나누어주었다.

닷새쯤 지났다.

혜옥의 어머니가 괴롭게 소리지르는 새끼돼지가 든 자루를 둘러메고 류순절의 집을 찾아왔다. 새끼돼지들의 꿈틀거림이 뒤잔등에 심하게 느껴졌다.

《분조장 있나?》

순절이네 집앞에 이른 녀인이 소리를 쳤다. 아침밥을 먹던 순절이가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무슨 일이야요?》

《새끼돼지를 가져왔어.》

혜옥이 어머니는 돼지들이 꽥꽥거리며 꿈틀거리는 자루를 마당에 내려놓았다.

《아니, 그건 왜요?》

순절이가 놀란다.

《우리 집엔 사료가 없어서 당장은 돼지를 기르지 못하겠다니까.》

《매 분조원세대들에서 2마리씩 기르기로 하지 않았어요?》

마당으로 나온 순절이가 울상을 했다.

《그런데 글쎄 먹일게 없다니까.》

《그럼?…》

《사료가 장만되는 차제로 기르겠다니까. 이 돼지는 분조장이 처리하라구. 어디다 꺼내놓을가?》

혜옥이 어머니의 눈길은 순절이네 돼지우리로 돌아갔다.

《혜옥이 어머니, 이러면 안되지요.》

《그러면 새끼돼지를 굶겨죽이라나?》

한창 이러는데 순절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왔다. 순절이 어머니는 마음이 후한 녀자이지만 혜옥이 어머니의 처사가 괘씸해서 한바탕 해댔다. 하지만 저쪽은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당초에 결심을 단단히 하고 온 사람이라 《다른 분조사람은 상관마오.》 하며 새끼돼지가 든 자루를 들고 돼지우리로 가려 했다.

분조를 조직할 당시 순절의 아버지, 어머니는 4분조성원이였다.

《내가 4분조사람이지만 우리 딸애가 2분조장이니까 우리 집에서도 돼지새끼를 기르는데 왜 상관말아야 하우?》

순절이 어머니 옥화가 지려 하지 않았다.

《더구나 분조장이라구 세마리를 치는데 혜옥이네가 두마리를 가져다놓으면 다섯마리가 아니요? 그래, 자기네는 두마리도 못 치겠다면서 우리더러 다섯마리를 치라는건 도대체 무슨 심보요?》

《누가 당장 가져다달랬나? 그러니까 분조장이 책임져야지.》

《너무하구만.》

《뭐가 너무하우?》

이러는데 순절이 아버지가 꽥 소리쳤다.

《그만들 하라구.》

그는 새끼돼지들이 그냥 꽥꽥거리는 자루를 들고 돼지우리로 가서 자루안의 새끼들을 꺼내여 놓아주었다.

《자, 자루를 가지고 어서 가오.》

그는 빈 자루를 혜옥이 어머니에게 주었다.

혜옥이 어머니는 빈 자루를 나꿔채다싶이 하여 받아쥐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옥화가 마당에 아연하여 서있는 딸에게 화를 터뜨렸다.

《야, 너는 농사나 착실하게 지을게지 새끼돼지는 왜 서둘러 실어다가 나누어주며 부산을 피우니? 네가 우리 돼지우리에 가져다넣은것에다가 혜옥이네것까지 치자면 네 애비에미가 고생하지 네가 고생할것 같니?》

《엄마!》 순절이는 금시 울음을 터뜨릴것 같았다. 《내가 몇번 말했어요?》

《난 모르겠다. 안개틀논에는 왜 암거를 만들면서 분조원들이 불만을 품게 하는가 말이다. 네가 하는 일이 다 사람들을 고생시키는 일이지 어디 칭찬받을 일이냐?》

순절이 아버지가 굵직한 저음으로 끼여들었다.

《그만하우. 고생이란 소리는 함부로 쓰는게 아니야. 농사군이 농사를 잘 짓자고 애쓰는게 고생인가. 애써 일하는것만큼 잘사는 세상인데 무슨 고생이야. 해방전에 지주놈한테서 학대받던걸 잊었소? 그게 고생이요, 남에게 다 빼앗겼으니까. 저를 위하는건 고생이 아니지.》

남편에게 꼼짝 못하는 옥화는 입을 다물고 방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버지가 딸을 보고 들어가서 아침밥을 마저 먹자고 해서 순절이도 뒤따라 들어갔다.

어성버성한 분위기속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순절은 이날 저기압상태였다.

또 다른 집에서 당장은 새끼돼지를 못 치겠다고 가져올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미안했다. 어머니가 말한것처럼 돼지를 먹이는것은 부모들이 했다. 순절은 분조사업때문에 언제 집안일에 정신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순절이네 집에서는 원래 치던 돼지까지 해서 모두 일곱마리를 먹여야 할판이다. 하지만 부모들이야 딸을 리해하고 도와주려 하지 욕으로 그치지는 않는다. 어머니가 순절이를 욕한것도 따져놓고보면 딸이 벌려놓은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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