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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전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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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7,024회 작성일 22-03-0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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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높은 교단

정 철 학


함경북도 회령시의 서부에는 송학리라는 자그마한 산골리가 있다.

시내에서 70여리 떨어진 이 리의 가운데로는 아이들이 반두질하기 좋음직한 크지 않은 하천이 룡천수라고 불리우는 자못 어마어마한 이름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맑고 잔잔한 물살로 흰 조약돌들을 가벼이 어루쓸며 조잘조잘 흘러내리고있다.

리의 중심에 위치하고있는 송학고급중학교는 바로 이 룡천수곁에 자리잡고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 학교에는 소박하고 성실한 교원들과 순박하고 수수한 산골학생들이 평범한 교정의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있었다.

바로 이 이름없는 학교의 평범한 교원들과 학생들이 이제 하게 될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의 주인공들로 되였으니 그것은 소낙비가 억수로 내리던 주체105(2016)년 8월 31일 저녁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에 있은 일이다. …

그칠줄 모르고 억수로 내리퍼붓고있는 소낙비를 창밖으로 내다보는 송학고급중학교의 부교장 김정활의 마음은 무거웠다.

(이러다가 이거 무슨 일이 나는게 아닐가?…)

착잡해진 그의 뇌리로는 문득 어렸을 때 겪은 물란리가 떠올랐다.

김정활은 원래 여기 송학리출신이다. 그가 어렸을 때 이 고장에 큰물이 난적이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면 가슴이 서늘해지군 한다. 그때 그가 살던 집은 그 큰물에 허물어졌는데 그의 아버지 김경창은 그 물란리에 너무도 혼이 나서인지 새집을 높은 둔덕우에 지어놓았다. 새집에 들며 아버지가 하던 말이 지금도 떠오른다.

《…이담에 큰물이 나면 절대 이 집밖을 나서지 말아라. 우리 집은 높은 곳에 있으니 여기만 있으면 아무 일 없을게다.》…

지금 김정활이 있는 곳이 그때에 지은 그 집이다. 밖에는 온통 물천지이지만 역시 지대가 높은 곳에 지은 집이라 집주변에는 물이 고이지 못하고 아래쪽으로만 흘러내린다.

정활은 룡천수곁에 있는 학교가 걱정되였다.

(아무래도 학교에 나가보아야겠군.)

분주히 비옷을 걸치며 나갈 준비를 하는 정활을 그의 안해인 신영옥이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학교에 나가보시려구 그래요?》

정활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마음이 놓이질 않소.》

학교일밖에 모르는 남편의 성미를 잘 아는 안해는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얼굴에서 근심스러운 빛을 지우지 못했다.

《인츰 다녀오세요.》

안해는 입술을 감빨며 바재이다가 조심스레 한마디 더 덧붙이였다.

《당신 올 때까지 기다리고있겠어요.》

정활은 정겹게 안해를 바라보았다. 결혼한지 벌써 12년이 되였지만 날이 갈수록 소중하게만 여겨지는 안해였다.

문가를 나서는 정활에게 초급 1학년에 다니고있는 아들이 얼른 다가와 손에 우산을 쥐여주며 말했다.

《아버지, 내가 오늘 교실에 필갑을 두고왔는데 올 때 갖다주세요.》

《그러마.》

정활은 웃으며 아들의 어깨를 다정히 쓸어주고나서 집을 나섰다.

폭우는 세차게 내리퍼붓는데 바람까지 지동치듯 불어 가지고나온 우산도 비옷도 별로 맥을 추지 못했다. 얼마 안있어 정활의 온몸은 화락하니 물참봉이 되고말았다.

그가 둔덕을 내려서는데 앞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왜 자꾸 이러는거요?》

정활은 눈정기를 모아 앞에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형체들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여느때라면 아직 훤할 때이지만 소낙구름이 하늘을 꽉 가리워 저녁의 어스름은 일찍도 깃들어 누군지 선뜻 가려보기가 힘들었다.

《같이 가요.》

《글쎄 집에 있으라는데.》

여기까지 듣고나니 그 목소리의 임자들이 누구들인지 이제는 짐작이 되였다. 그들은 고급반의 수학교원인 정성국과 식료실습교원인 전은경이였다. 그들은 부부교원간인데 여간만 의가 좋은것이 아니여서 항상 같이 다녔다.

정활은 사방 고여있는 물을 걷어차며 그들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거 성국선생 아닙니까?》

억수로 쏟아지는 비발사이로 정활을 알아본 성국과 은경의 반색하는 얼굴이 보였다.

《부교장선생님이군요.》

《예. 그런데 지금 길가에 서서 뭣들 합니까?》

성국은 게면쩍은듯 안해를 힐끔 돌아보고나서 말했다.

《실은 걱정이 돼서 학교에 나가보려는데 이 사람이 자꾸만 따라와서 그러지 않습니까?》

은경이 잽싸게 말을 받았다.

《세대주 혼자 내보내려니 어디 마음이 놓여야지요. 꼭 강가에 아이를 혼자 내보내는것 같은게.》

정활은 부지중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더 듣지 않아도 알만 한 일이다.

키가 크고 체격이 사내싸게 그쯘한 성국에 비해 체소한 은경은 얼굴까지 애티나보여 만일 교복을 입고 자신이 가르치는 고급반녀학생들속에 섞이기라도 한다면 쉬이 가려보지 못할 녀성이였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부부간의 관계를 보면 안해는 남편을 마치 머리 큰 아이처럼 여기고 이것저것 돌봐주느라 할 때가 많은데 일견 우스운것은 덩지큰 남편 또한 그러한 보살핌을 과히 싫어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하지만 평시에 안해의 말에 그리도 고분고분하던 성국도 오늘같은 날에는 따라나서려는 안해에게 그저 머리를 끄덕일수 없는 모양이였다.

난처한 표정으로 도움을 바라듯 자신을 바라보는 성국의 눈길을 느끼며 정활은 은경에게 말하였다.

《오늘같은 날에 녀선생들이야 학교에 나가지 못하지요. 게다가 은경선생은 가정부인이 아닙니까.》

은경의 얼굴은 금시 울것 같은 표정으로 되였다.

《가정부인이라고 비오는 날 학교에 나가지 못한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건… 불공평 합니다.》

떼를 쓰는듯 한 은경의 어조에 정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원래 교원이라는 직업은 엄숙한데가 많은 직업이다. 교원들을 가리켜 딱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그것은 그들의 직업상 자연히 그렇게 보일수밖에 없는것이다. 왜냐하면 학생들을 다루어야 하는 교원생활에서는 교권이 필요한데 그것을 위해서는 일거일동을 엄정히 할 때가 많기때문이다.

하지만 교원도 사람나름인만큼 모든 교원들이 다 그렇게 근엄한것은 아니다. 은경만 놓고보아도 애티가 나보이는 외모처럼 교원생활의 이모저모에서 순진한 성품이 완연히 드러나는 선생이였다.

《그러지 말고 들어가보십시오. 집의 딸애도 돌봐야 하지 않습니까.》

정활이 듣기좋게 타일렀으나 은경은 무가내였다.

《우리 지예는 시부모님들이 봐주고있습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은경의 고집에 정활이 잠시 설복할 말을 고르는참에 뒤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비가 이렇게 세게 내리는데 길가에 서서 회의를 하는가요?》

말소리가 나는쪽을 돌아본 은경의 얼굴은 금시 구원자라도 만난듯한 표정으로 되였다.

《윤성희선생이군요. 학교에 가는 길입니까?》

《예.》

소학반 교원인 윤성희는 짧게 대답하며 그 특유의 단정한 걸음새로 가까이에 다가왔다. 소낙비가 창대같이 쏟아지고 바람이 날려보낼듯 불어치는 이런 속에서도 그의 침착한 자세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집의 세대주가 이런 날에 선생을 밖에 내보내던가요?》

정활이 이렇게 물은것은 성희의 남편이 얼마나 소문난 애처가인가 하는것을 잘 알기때문이였다.

《우리 철성이 아버지는 포전을 돌보느라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성희의 남편인 김희철은 농장청년분조장이였다.

《그럼 그 집 철성이를 어떻게 하고 나오는겁니까?》

정활이 다시 묻자 성희는 비바람이 몰아치는 속에서도 마치 교수안이라도 읽듯 또렷하고 명료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 철성이야 이젠 초급 2학년이니 다 큰 애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

성희는 잠간 말을 끊고나서 마주선 선생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러는 그의 눈길은 아주 위엄이 있었다. 그의 이러한 눈길앞에서는 아무리 장난이 심한 학생이라고 해도 순간에 조용해지군 하였다.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학교로 갑시다.》

성희는 이러며 제먼저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자 은경은 얼른 그를 따라섰다. 그러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정활이 성국을 돌아보며 허거프게 웃자 성국도 마주 웃고말았다. 이제는 별수없이 녀선생들과 함께 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학교에 도착하니 거기에는 박선일교장을 비롯한 여러 교원들과 학생들이 나와있었다.

비에 흠뻑 젖어 교장실로 들어서는 정활을 박선일은 반갑게 맞이하였다.

《정활선생이 왔구만.》

박선일과 정활은 학교의 교장과 부교장으로서의 사업상관계뿐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아주 가까운 사이이다. 소년시절의 김정활이 송학중학교(당시)를 다닐 때 박선일은 그의 담임선생이였다. 학생때에는 학교소년단위원장, 청년동맹초급단체비서로서 담임선생님을 적극 도왔던 김정활이 오늘은 학교의 부교장이며 당세포위원장으로 교장인 박선일과 함께 일하게 된것이다. 원칙이 강하고 책임성이 높은 일군으로 성장한 옛 제자에 대한 박선일의 믿음과 신뢰는 류달랐다.

《마침 잘 왔소. 태풍에 어디가 잘못됐는지 아까부터 영 전화가 되질 않는구만. 내 우리 집사람한테 다녀올테니 그동안 학교를 좀 봐주.》

박선일의 안해 리금옥은 회령시 기상관측소의 송학리분소에서 일하고있다. 오늘같은 날에는 안해가 관측소에서 떠나지 않으므로 거기 가서 형편을 알아보려는것이였다.

정활은 걱정스레 말했다.

《이자 오면서 보니 비바람이 보통 심하지 않던데 일없겠습니까?》

선일은 헌헌히 웃어보였다.

《일없소. 잘 아는 길인데 뭐.》

잠시 생각해보던 정활은 말했다.

《아직 식사를 못하셨겠는데 갔다오는 길에 집에 들려서 저녁을 들고 오십시오.》

선일은 손을 내저었다.

《이런 때 식사가 다 뭐요.》

《그래도 끼니야 번지면 안되지요.》

정활은 다심하게 권하며 서둘러 비옷을 걸치는 옛 스승을 거들어 팔을 꿰여주었다.

《내 제꺽 갔다올테니 그동안 학교를 잘 봐주오.》

재삼 당부하고 방문가를 나서던 교장은 돌아보며 한마디 덧붙이였다.

《무슨 일이 있다해도 우리는 교원들이라는걸 잊어서는 안되오.》

정활은 빙그레 웃었다. 그 말은 교장이 자주 외우는 말이였다. 홍안의 젊디젊은 청년시절부터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오늘까지 오랜 세월을 이곳 학교에서 교육자로 일해온 박선일은 교원이라는 직업을 아주 신성한것으로 여기는듯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주 교원이라는 부름으로 많은 말을 대신하군 하였다.

떠나는 교장을 바래우고나서 정활은 학교를 돌아보았다. 학교는 백두산절세위인들을 따라배우는 학습실들을 비롯하여 교원실과 교실들이 있는 기본청사와 실험실습실, 토끼사 등 여러 호동들로 되여있었다.

학교를 한바퀴 돌아본 정활은 기본청사로 돌아와 교원들과 마주앉았다.

《내 학교를 돌아보니 이번 폭우에 운동장이 많이 못쓰게 되였습니다. 그러니 래일 과정안에 포함된 체육수업은 그만두고 대신 다른 과목들로 보충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학교에서 야외관찰을 진행하던 학교뒤산도 장마에 크게 패이였으니 래일 야외관찰을 예견한 자연과목은 수업내용을 변경시켜야겠습니다.》

교원들속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대다수 교원들이 의아하여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있는데 윤성희만이 태연한 자세를 형클어뜨리지 않고 과정안을 펼쳐들고 무엇인가 적어넣고있었다.

그러한 교원들을 둘러보고난 정활은 말을 이었다.

《그럼 다들 나가서 자기 일들을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학교에 나와있는 학생들을 잘 안심시켜야겠습니다. 학생들이 우리 교원들의 얼굴을 바라보고있다는것을 명심합시다.》

다들 사무실에서 나간 후 따로 남았던 정성국은 정활과 단둘이 있게되자 주저하며 물었다.

《저… 부교장선생님은 이런 속에서 정말 우리가 래일 수업을 할수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까?》

정활은 한동안 물끄러미 성국을 바라보았다. 그는 성국이 의문이 있어서라기보다 불안한 자신의 마음에 의지가 될만 한 말을 듣고싶어 묻는것이라는것을 알았다.

오래전부터 성국은 정활과 몹시 가까운 사이이다. 성국도 정활처럼 이곳 송학리태생으로 여기 송학중학교를 다녔고 또한 박선일교장의 제자이다. 정활이 학교를 졸업하고 군사복무를 떠난 후 중학교에 입학한 성국은 비록 학창생활을 함께 하지는 못했으나 한마을에 살던 정활을 어려서부터 친형처럼 따랐다.

군사복무를 마친 정활이 전문학교(당시)와 양성기관을 거쳐 송학리에서 50여리 떨어진 유선구의 유선초급중학교에서 교원으로 있을 때 사범대학을 얼마전에 나온 전은경은 그 학교의 교원이였다. 그때 정활을 만나러 유선초급중학교에 찾아갔던 성국은 거기서 은경을 알게 되였고 정활의 적극적인 소개로 하여 그들은 가정을 이루게 되였던것이다. 결혼후 은경은 남편을 따라 송학고급중학교 교원으로 왔으며 그후 정활도 모교의 부교장으로 임명되여 이곳에 오게 된것이였다. 3년전 정활이 부교장으로 왔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싱글벙글하던 성국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활은 가벼운 미소를 띄우며 성국에게 말하였다.

《너무 긴장해서 그러지 마오. 혹시 이제 날이 개일지 알겠소. 그러면 래일 수업을 할수도 있는건데 미리 준비를 해놓아야지. 우리야 교육이 본분인 교육자들이 아니요.》

《그렇기는 한데…》

성국은 말끝을 채 맺지 못했다. 창밖에서는 소낙비내리는 소리가 세찬 바람소리에 뒤섞여 소란스럽게 들리여왔다. 성국의 마음을 진정시켜줄 말을 생각해보던 정활은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를 하나 해줄가?》

성국은 의외인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이야긴데요?》

《실은 성국선생도 다 아는 이야기요. 성국선생은 우리 회령에 언제부터 인총이 많아지기 시작했는지 알고있겠지.》

《그야… 조선봉건왕조 4대왕인 세종이 김종서를 보내여 6진을 설치한 때부터지요.》

《옳소. 압록강상류의 4개의 군과 함께 두만강하류에 6진을 내오고 통털어 4군6진이라고 불렀지. 그때 군사적으로 중요한 회령진이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6진의 하나로 되였소.》

자기 고장의 래력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성국의 긴장했던 얼굴에는 저으기 화색이 돌았다.

《옳습니다. 그때가 1434년 10월이였지요. 김종서가 함길도 도절제사로 된 다음해에 있은 일입니다.》

정활은 빙그레 웃었다.

《역시 성국선생은 력사와 수자에 밝구만. 옳소. 그때부터 인적드물던 여기 회령땅에 인총이 많아지기 시작했소. 봉건정부는 이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서 남쪽지역의 백성들을 수많이 이주시켰지. 그런데 말이요, 난 이따금 이런 생각이 들군 하오. 그때 갓 개척된 이 지방에 교육자들이 있었을가? 그때말로 하면 훈장님들 말이요.》

정활의 뜻밖의 질문에 성국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글쎄요… 아마 있었다해도 아주 적었을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그때 글을 아는것은 량반선비들뿐이였는데 그들은 여기가 사람 못살데라고 오려고 하지 않았으니 글을 가르칠 사람이 아주 적었거나 어쩌면 아예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 지방에는 아마 오래동안 까막눈들이 많았을거요. 그러다가 함경도지방이 정배지로 되고 글아는 선비들이 귀양이랑 오게 되면서 차츰 서당도 생겨 났겠지. 편지가 온다 해도 뜯어볼 사람 하나 없던 고장에 훈장이 갓 생겼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존경했겠소. 아마 그 훈장님이 젊은 사람이였다해도 필경 신주모시듯 했을거요.》

거센 태풍은 폭우를 휘감고 창문을 요란스레 두드려대고있었으나 이야기에 끌려들어가기 시작한 성국의 얼굴에는 어느결엔가 불안감이 사라지고 웃음기가 떠돌기 시작하였다.

《그랬을겁니다. 그때 교육자가 사람들속에 미치는 영향은 아마 굉장히 컸겠지요. 북방이 개척된지 30여년이 지난 1467년에 한때 이곳 회령부사로 있었던 리시애가 폭동의 기치를 들자 온 함경도가 호응하여 전국을 뒤흔든 함길도농민전쟁이 일어나게 된것도 봉건정부에 불만을 품은 귀양온 선비들이 주로 함경도지방의 훈장들이였는데 적지 않은 원인이 있었을겁니다.》

성국의 나름대로의 해석을 들으며 정활은 소리없이 웃었다.

《그럴수도 있겠지. 예나지금이나 새 세대의 세계관형성에 제일 큰 영향을 주는것은 역시 우리 교원들이니까. 그런데 난 이런 생각이 떠오르는구만. 그 옛날 갓 생긴 서당에 젊은 훈장이 있었다면 그의 심정이 어떠했을가?》

성국이 선뜻 대답을 못하는데 정활은 명상에 잠긴듯 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난 이렇게 생각되오. 그 훈장이 아마도 몹시 거북스러웠을거라고 말이요. 글을 안달뿐이지 그도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이였는데 사람들이 마치 신선이나 대하듯이 어려워했을테니 사소한 일거일동도 아주 심중히 해야 했을거란 말이요. 아마 그 훈장은 길을 가다 비가 와도 함부로 뛰지 못하고 천등이 쳐도 놀라는것을 내색하지 못했을거요.》

성국은 얼굴이 붉어지며 서둘러 말하였다.

《옛날에야 그랬겠지요.》

정활은 어딘가 떠보는듯 한 눈길로 성국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교원이라면 아주 위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성국은 끝내 뒤더수기를 어루쓸며 속에 찔리는바를 솔직히 말하였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전 사실 교육자의 자질이 많이 부족합니다. 진짜 교원이라면야 윤성희선생이나 교장선생님같아야지요.》

정활은 면구스러워하는 성국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면 나도 교원자격이 없는셈이지. 성국선생이나 나나 다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들이 아니요.》

정활의 말은 사실이다. 원래 쾌활하고 시원시원한 성미인 성국은 학생들속에 있을 때에는 늘 입가에 웃음을 띄우고 다녔고 제자들과 간격이 없이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성국이 가르치는 과목은 딱딱하다고도 볼수 있는 수학이였으나 그가 수업을 들어간 교실에서는 자주 청높은 웃음소리가 들려나오군 하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크게 들리는것이 바로 성국자신의 웃음소리였다. 다정다감하고 락천적인 정활도 학생들을 소탈하게 대하였으며 그들과 자주 휩쓸려 체육경기랑 하기를 즐겼다. 학생들도 성국과 정활을 몹시 따랐다. 정활의 경우만 놓고보아도 그가 유선초급중학교에서 떠나온지 3년이 되였지만 지금도 명절날이나 생일날같은 때면 그때의 제자들이 50여리나 떨어진 이곳으로 그를 찾아오군 한다.

정활은 말을 이었다.

《옛날에 학생들이 교원을 성인처럼 여기며 어렵게 대한것은 있을수있는 일이였소. 그때로서는 학생들이 문명을 접할수 있는 대상은 오직 선생뿐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오. 이제는 집집마다 TV나 록화기가 없는 집이 없고 콤퓨터들도 많지. 그리고 아이들이 리해하기 쉽게 씌여진 책들은 또 얼마나 많소. 그러니 오늘날 아이들은 교원말고도 얼마든지 문명과 접촉할수 있고 학교에서 배워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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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위에서 계속)

학교에서 배워주지 않는 많은것을 알수 있소. 그러니 옛날처럼 교원이 자신의 위신을 절대화하며 애써 엄정하게 처신할 필요는 없는거요. 난 오늘날 우리 교원들이 꼭 갖추어야 할것은 다른것이라고 생각하오.》

창밖의 비바람소리는 더욱 세차졌다. 하지만 이야기에 완전히 끌려든 성국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상싶었다. 그러는 성국의 모습을 보며 정활은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교원이라고 결코 완성된 인간은 아니다. 사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애써 수양하며 배워야 하는것이 다름아닌 교원들인것이다. 그래서 배우고 배워주는것이 교정의 륜리라고 하지 않는가.

성국과 같은 젊은 교원들을 키우며 교양하는것, 그것은 부교장이며 학교당세포위원장인 정활의 책임이자 선배교원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한것이다. 이러한 사업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이며 어떤 환경속에서도 중단할수 없는것이라고 정활은 여기고있었다.

《부교장선생님은 그것이 어떤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성국의 물음에 정활은 심중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건 우리 교육의 제일 중요한 목적과 관련된다고 보오. 성국선생은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어찌보면 너무도 간단한 물음이여서 성국은 선뜻 대답을 못하였다.

정활은 말을 이었다.

《난 이렇게 생각하오. 우리 사회의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목적은 말이요…》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얼굴이 상기된 박선일교장이 들어섰다. 언제봐야 례절이 너무도 밝아 제 방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있을 때에는 들어서기 전에 문을 두드리군 하던 교장의 그 습관은 이런 때에도 변하지 않는것이였다.

《이거 큰일났소. 이자 기상관측소에서 들었는데 이번 폭우에 두만강의 수위가 위험계선으로 접근해서 제방이 우려된다오.》

교장은 이렇게 말하며 별로 서두르는 빛이 없이 비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벗어 옷걸이 한쪽구석에 조심히 벗어놓고 그밑에 소랭이를 받쳐놓았다. 그러는 그의 행동거지는 도무지 큰일날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같지 않게 침착해보였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다우쳐 묻는 성국에게 선일은 가라앉은 어조로 대답하였다.

《이런 때일수록 덤비지 말고 침착해야지. 제방에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가있는데 정 위태로울것 같으면 제꺽 학교로 련락을 보내주기로 했소. 그러니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립시다. 얼마전에 든든히 보수해놓은 제방이니 견디여낼수도 있을거요.》

찬비에 흠뻑 젖었음에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교장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정활은 가까이에 다가들어 그의 이마에 손등을 대보았다.

《아니, 열이 심하게 나는군요. 옷을 갈아입구 좀 누워서 쉬십시오.》

《제가 의무실에 가서 약을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성국이 이러며 얼른 문밖을 나서자 선일은 미안한 어조로 말하였다.

《공연히 나때문에 수고를 끼치는군.》

고박한 옛 스승의 말에 정활은 부지중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놓구 쉬십시오. 제방은 일없을겁니다. 얼마나 든든하게 보수해놓았다구요. 》

정활의 말은 옳았다. 갓 보수한 제방은 끝까지 이번의 큰물을 견디여냈다. 그러나 위험은 그와 전혀 반대쪽에서 그들을 향해 덮쳐들었다.

학교의 바로 곁에서 흐르고있는 룡천수는 두만강의 제1지류로서 회령시와 무산군사이에 있는 가라지봉의 동쪽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송학리를 거쳐 두만강으로 흘러든다. 해발높이 1 418m의 가라지봉은 주변의 산들에 비하여 특별히 우뚝 솟은 산이라고 하여 그렇게 불리웠다.

이날 해방후 기상관측이래 처음 보는 돌풍과 무더기비로 하여 가라지봉방향과 여러 골짜기들에서 흘러나온 산골물들이 무섭게 범람하여 룡천수가 학교건물을 위협하기 시작한것은 밤 11시경부터였다.

여느때는 그리도 온순하게 조잘조잘 흘러내리던 룡천수는 갑자기 무서운 괴물로 변하기라도 한듯 길길이 미쳐날뛰였다. 대개 산골물들이 홍수때 갑자기 불어난다고 하지만 룡천수는 말그대로 급작스레 콱 불어나 담벽처럼 일어선 물사태로 사납게 덮쳐들었다. 후날 어떤 사람들은 무더기비가 골짜기들에서 합쳐진데다 땅속에서 별안간 엄청난 물줄기가 뿜어나와 룡천수가 그리도 갑자기 불어난것이라고도 하였다.

노상 금빛은빛으로 찰랑이는 잔물결로 기슭의 모래불을 가볍게 어루쓸며 잔잔하게만 흐르던 룡천수가 이번에는 정말로 자기의 어마어마한 이름값을 단단히 하려고 마음먹은듯싶었다. 흙탕이 섞인 시누런 물갈기를 태풍에 날리며 광란하는 물살은 집채같은 바위들과 아름드리나무들을 지푸래기마냥 휘감고 쏜살같이 흘러내려갔다. 산골의 좁은 곬에서 물이 너무도 갑자기 불어 굉장히 빨리 흐를 때에는 물흐르는 소리가 거세지다못해 나중에는 천을 찢는듯 한 새된 소리로까지 된다. 그런 물소리에 물살에 휘말려오는 바위들과 통나무들이 서로 마구 부딪쳐 등골이 오싹해지게 하는 소리들까지 서로 합쳐져 무서운 굉음이 룡천수를 덮은 캄캄한 밤의 장막속으로 울려퍼졌다.

그 소리에 놀라 학교정문밖에 나가보았던 정성국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뛰여들어왔다.

《룡천수가 범람합니다!》

마치 성국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불어나는 물은 그의 발뒤꿈치를 쫓는것처럼 잇달아 운동장으로 따라들어왔다.

번열이 심하게 나는 교장을 사무실에 억지로 눕혀두고 나왔던 정활은 순간에 결심을 내렸다.

《빨리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들과 영상작품들을 안전하게 모십시다!》

사품치며 밀려드는 물은 보는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리만큼 빨리도 불어나 금시 발목을 넘어서는가싶더니 어느새 무릎우까지 차올랐다. 물이 이처럼 빨리 불어날 때에 인간의 공포심은 그에 기하급수적으로 정비례하며 급격히 커지는것이다. 하지만 교원들은 누구하나 가슴속깊이에 차오르는 공포를 함부로 내색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름아닌 교원들이였으며 그들의 곁에는 학생들이 있었던것이였다.

교원들과 학생들은 삽시에 가슴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치며 여러 호동에 나누어져있는 모든 교실들의 초상화들을 본청사의 사무실에 안전하게 모시였다.

사람들이 다 있는가를 헤여보던 박선일교장이 놀란 어조로 소리치듯 말했다. 언제봐야 큰소리치는 법이 없던 교장으로서는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아야 할것이였다.

《윤성희선생이 어데 갔소?》

사람들은 서로 둘러보며 윤성희선생을 찾아보았으나 분명 그는 없었다.

《이자까지 제옆에 있었습니다.》

전은경의 이 말에 교장은 확인하듯 다시 따져물었다.

《그게 확실하오?》

《예. 분명히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나가 찾아보겠습니다.》

성국이 이러며 막 나가려는데 가슴에 비닐박막에 싼 무엇인가를 한아름 안고 성희가 들어섰다.

《그건 뭐요?》

교장이 성난 어조로 묻자 성희는 물에 젖어 얼굴앞으로 흘러내린 앞머리카락을 단정하게 쓸어넘기며 이전과 다름없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교편물들인데 물에 젖어 못쓰게 될가봐 가져왔습니다.》

교장은 아무말도 못하는데 은경이 웃음섞인 소리로 말하였다.

《역시 모범교원이 다르군요. 이런 속에서 교편물생각을 다 하구.》

정활도 웃으며 성희를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바로 한달전에 정활은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는 성희의 입당보증을 섰었다. 그날 윤성희는 너무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는데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녀교원으로 배치받아왔을 때부터 함께 있은 오랜 교원들은 그의 눈물을 처음 본다고들 하였다.

지금 소학반 4학년을 담임하고있는 윤성희는 학교적인 실력가로 존경받고있다. 교원년한에 있어서 그보다 오랜 선생들도 많지만 교원급수는 학교적으로 제일 높은 선생이다. 그는 시적으로도 몇사람 안되는 10월8일모범교수자이며 또한 새교수방법등록증소유자이고 교편물창안증소유자이다. 어떤 아이이든 그의 학급에만 들어오면 얼마 안있어 품성이 좋고 공부를 잘하는 모범학생이 되고야만다는것이 송학리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그가 담임한 학급에 자식이 들어가면 큰 행운이라도 차례진듯이 기뻐하며 자랑하군 한다. 그러면 그 자랑을 듣는 사람들 또한 진정으로 부러워하는데 리가 작아 소학반의 매 학년에 학급이 하나씩밖에 없기에 망정이지 둘만 되였더라면 다른 학급을 맡은 교원은 정말로 섭섭했을것이다.

학교에 갓 배치받아온 윤성희가 출근할 때면 길가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꽃처럼 아름다운 처녀교원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토록 인물곱고 품성좋은 성희에게는 따르는 총각들이 적지 않았으나 그는 늦도록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눈이 특별히 높은것도 아니였다. 그의 결혼조건은 기실 놀랄만큼 단순했으니 자신이 평생 교원생활을 할수 있도록 도와줄수 있는 사람에게 일생을 맡기겠다는것이였다. 그만큼 성희는 교원이라는 직업을 사랑했다. 그는 끝내자신의 리상을 소중히 여겨주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였으니 그가 바로 당시 평범한 농장원이였던 김희철이였다. 오늘에 와서 훌륭한 교원으로 존경을 받는 안해에 짝지지 않게 희철도 이제는 농장청년분조장이며 온 회령시가 다 아는 시대의 공로자이다. 그들부부를 가리켜 사람들은 가정이 화목하면 만가지 일이 잘된다는 말의 산 실례라고 이야기하군 한다.…

9월 1일 새벽 3시경 운동장으로 차오르던 물은 창문턱을 넘어섰고 청사복도도 잠겨들기 시작하였다. 제일 바깥쪽에 서있던 토끼사벽체가 물을 가득 먹었는지 쾅 하고 무너져내리는 소리에 뒤이어 쿵 하고 벽체가 넘어가는 소리가 또 들려왔다.

《?!》

모두가 고열에 시달려서인지 낯빛이 창백하게 질린 박선일교장과 돌로 깎은듯 까딱하지 않는 정활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한참만에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며 박선일이 정활에게 나지막한 어조로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마른 침을 삼키고난 정활은 자신도 너무 긴장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숨을 크게 쉬며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이런 때일수록 침착하자. 너는 교원이 아닌가. )

그는 스스로 심중속깊이 이렇게 뇌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들과 영상작품들을 모심함에 모십시다.》

그의 이 말에 사람들은 숙연한 분위기에 휩싸이였다. 모두가 정중한 자세로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한상한상 정히 싸기 시작하였다.

그 시각 그들은 자기들이 처한 위험도 어쩔수 없이 가슴속에 스며들던 두려움과 공포도 죄다 잊어버렸다. 수령님들의 존귀하신 영상들을 습기 한점 스며들세라 정히 싸고 또 싸는 그들의 마음속에 가득 차오른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보위해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새벽 5시경부터는 길길이 날뛰던 산골물이 더욱 요동을 치며 위험은 각일각 그들을 위협하였다.

교장과 정활의 인솔밑에 모든 교원들과 학생들은 그중 안전한 본청사지붕우에로 올랐다.

지붕우에 오르니 사나운 태풍이 기다렸다는듯 폭우를 채찍마냥 후려갈기며 그들을 맞이하였다. 때때로 밤하늘을 찢어발기며 번뜩이는 번개불은 소용돌이치며 광란하는 룡천수의 범람한 급류를 드러내보여주는데 뒤따라 천지를 뒤흔드는 우뢰소리는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룡천수상류의 채벌장에 쌓아놓았던 통나무무지가 물살에 떠내려오며 청사를 쾅쾅 들이치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흠칫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새벽 6시경에는 본청사를 제외한 학교의 모든 호동들이 허물어져 물속에 잠겼다. 그러나 본청사라고 결코 안전한것은 아니였다.

그들이 올라선 본청사가 갑자기 움찔하는듯싶더니 근 100여메터나 되는 본청사의 량옆이 별안간 뭉텅 떨어져나가면서 30메터정도의 중앙현관부분만이 남았다.

지붕우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 굳어졌다.

숨막힐듯 한 한순간이 지나가자 한 학생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초급반 3학년의 남주영학생이였다. 그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포의 전률을 공명시키는듯 했다. 전은경이 터져오르는 흐느낌소리를 막으려 손으로 입을 꼭 막았다. 만일 곁에 학생들이 없고 그가 교원만 아니였다면 아마도 목놓아 울었을지도 모를 일이였다. 그의 옆에 있던 정성국이 안해를 끌어당겨 품에 꼭 안아주며 저으기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가볍게 어깨를 쓸어주었다. 그가 학교에 나와 안해에게 부부다운 살뜰한 정을 나타내보이기는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였을것이다.

정활은 흐느끼는 남주영학생에게 다가가 흠뻑 젖은 그의 머리를 쓸어주며 부드럽게 물었다.

《무서우냐?》

주영은 비물과 눈물이 함께 흘러내리는 볼을 닦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정활은 다소 엄격한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앞에서 그렇게 머리를 끄덕거리는게 아니다. 똑바로 대답해야지. 》

그 말에 주영은 얼른 흐느낌을 삼켜버리고 목메인 소리나마 또렷이 대답하였다.

《예. 좀 무섭습니다.》

《주영학생은 문학과목을 좋아하지. 동시 〈우리 교실〉 을 한번 읊어보거라. 》

정활의 이러한 말이 뜻밖인듯 주영은 의아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정활은 힘을 주듯 가볍게 웃어보이며 다시 일렀다.

《어서 큰소리로 읊어봐라.》

정활의 웃음이 신기한 힘을 가지고 마음을 진정시켜준듯 주영은 울음을 완전히 그쳤다. 이윽고 동시를 읊는 그의 목소리가 랑랑히 울리기 시작하였다.



아름다운 교실

언제나 재미나는 교실

앞에는 원수님초상화

환하게 모셔져있지요





교원들과 학생들치고 누가 이 동시를 모르랴. 정활이 함께 읊기 시작하자 지붕우의 교원들과 학생들은 하나 둘 그 시의 구절을 따라 읊기시작하였다. 얼마후에는 모두가 다같이 목소리를 합쳐 그 시를 읊어나갔다. 그들의 시읊는 소리는 억수로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지동치듯 몰아치는 바람소리를 누르며 먼동이 터오는 누리로 울려퍼졌다.



추운 겨울은 지나가고

봄바람에 실버들 푸르렀네

우렁찬 건설의 노래와 함께

원수님을 우리는 받드네





새날은 밝아오고있었다. 무너진 호동들이며 학생들이 뛰여놀던 운동장은 온통 물속에 잠겨 형체도 찾아볼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합쳐 동시를 읊어나가는 교원들과 학생들의 눈앞에는 더 훌륭히 일떠설 래일의 교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우리 원수님 계시여 여기에는 훨씬 더 크고 멋있는 학교가 꼭 일떠서게 되리라. 그들은 마음속을 후덥게 하며 솟구치는 이런 생각속에 절절히 시를 읊어나갔다.



우리는 언제나 받드네 원수님을…

원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새 나라 일군이 되자!

항상 준비하자!



시랑송이 끝난 후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 못하였다. 한참만에 정활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저력있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제는 청사에서 빠져나가 물곬을 벗어나는 길외에 다른 출로가 없습니다. 우리의 목숨을 다 바친다 해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셔야 합니다. 사생결단하고 물을 헤쳐나갑시다!》

사람들의 눈빛이 번뜩이였다. 만일 자신의 생명 하나만을 위해서였다면 저 사품치는 물속에 뛰여들기보다 차라리 이 지붕우에 그냥 남아있을것을 택할 그런 사람도 그들속에는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일이 있어도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보위해야 한다는 정활의 말은 그들모두에게 광란하는 급류를 헤치고 나갈 힘을 준것이였다.

물은 지붕밑에서 몸서리치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사납게 기승을 부리고있었다. 처마에 서서 그것을 내려다보던 정성국이 곁에 선 정활에게 물었다.

《엊저녁에 우리 교육자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것에 대해 이야기하다 말았지요. 그 말을 이제 마저 해주겠습니까?》

정활은 성국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진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난 오늘날 우리 교육의 제일 큰 목적이 새 세대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원수님께 충직한 아들딸들로 키우는거라고 생각하오. 그러자면 우리 교원들부터가 참된 혁명가들로 되여야 하오.》

정활은 잠시 말을 끊고 주위에 둘러선 교원들을 둘러보았다.

《이 회령이 어떤 곳이요. 수령에 대한 충실성의 참다운 모범을 보여주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고향이 아니요. 우리는 학생들을 김정숙어머님처럼 수령께 무한히 충실한 전사들로 키워야 하며 또 자신부터가 그렇게 준비되여야 할 회령의 교원들이요!》

정활은 이 말을 남기고 사품치는 물우로 뛰여내렸다. 그뒤로 련이어 한사람 또 한사람이 뛰여내려 나중에는 모두가 물우로 내려섰다.

그리하여 맨앞에는 붉은 초상화모심함을 어깨에 멘 김정활이 서고 그를 따라 정성국과 전은경, 윤성희를 비롯한 10여명의 교원들과 학생들이 손과 손을 맞잡고 선두대렬이 되여 물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뒤로 얼마쯤 떨어져 박선일교장이 중간대렬을 거느리고 따라왔고 맨뒤의 마지막대렬은 소년단, 청년동맹책임지도원이 인솔하였다.

이날 미친듯이 길길이 날뛰는 산골물이 얼마나 세찼던지 재해후 그자리가 지진으로 갈라진것처럼 땅이 깊숙이 패여져나간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수 있다.

그런 속에서도 윤성희는 비닐에 겹겹이 싼 교편물들을 꼭 안고있었다. 곁에서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놀란 어조로 말했다.

《아니, 그걸 아직도 가지고있소?》

성희는 빠른 물살을 헤치느라 헐떡거리면서도 응당한 일인듯이 대꾸 하였다.

《이제 비가 그치면 집에서라도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부를 시켜야지요. 그때 뭘 가지고 가르치겠어요.》

《원참…》

이제는 날이 퍼그나 밝았다. 물저켠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을 긴장하게 바라보고있었다. 문득 정활은 자신을 찾는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

눈정기를 모아 바라보니 물저켠에 선 사람들속에 아들의 모습이 보이였다. 아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휘저으며 아버지를 소리쳐 부르는데 그곁에 선 안해는 두손을 가슴에 모아잡고 안타깝게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 이제 곧…)

정활은 힘을 내여 물을 헤가르며 나아갔다.

물은 세곬으로 세차게 사품치며 흐르고있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물곬을 지나 룡트림하는 마지막 세번째 물곬에 들어섰을 때 갑자기 더욱 사나와진 물결이 무섭게 선두대렬을 휩쓸었다.

뒤따르던 사람들과 기슭에 섰던 사람들은 일시에 악- 하고 비명소리를 질렀다. 그 급작스러운 물살이 얼마나 사나운것이였던지 거기에 휘말려들어간 사람들은 머리도 변변히 솟구치지 못하고 순간에 떠내려갔다. 그 물살이 지나간 후 한풀 숙어든 물우로 정활의 아들 국진이의 목메인 웨침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버지!…》



정성국은 물살에 휘말려갈 때 그만 붙잡고 나가던 안해를 놓쳐버렸다. 한참후에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얼마간 떨어진 곳에 사람의 형체가 물살에 떠내려가는것이 보이였다. 성국은 있는 힘을 다하여 그리로 헤여갔다. 물속에 막 가라앉으려는 사람을 붙잡고보니 그는 안해가 아니라 초급반 3학년의 남주영학생이였다. 성국은 주위를 애타게 둘러보며 피터지게 안해를 찾았다.

《여보!…》

그러나 주위에 보이는것은 사품치는 물결뿐이였다. 성국은 눈물을 씹어삼키며 품속에 안겨든 학생을 꼭 그러안았다.

《맥을 놓지 말아.》

물살에 떠내려가던 성국과 주영은 학교에서 lkm정도 떨어진 송학류벌사업소가 있던 두만강 한켠의 섬에 닿게 되였다. 교원은 학생을 그중 큰 나무우로 떠밀고 어린 제자는 선생님을 안전한쪽으로 떠밀며 하루, 그때 제대군인이며 남달리 헤염을 잘 쳤던 성국이 제 한몸만 생각했더라면 얼마든지 헤염쳐나올수 있었을것이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제자를 두고 제 목숨을 구할 교육자가 어데 있으랴. 그날 밤부터 더욱 불어난 물결로 하여 나무우에서 서로 양보하던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더는 찾을수 없었다.…

물이 찐 후 온 송학리사람들이 떨쳐나 물에 떠내려간 10여명 교원들과 학생들의 시신을 찾았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소중히 간직하고 숨진 정활의 시신을 찾았을 때 그에게서는 아들이 교실에 두고갔던 필갑이 나졌다. 그 필갑을 안고 국진이는 목놓아 울며 아버지를 찾았다. 그 애절한 부름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발기발기 찢어내는듯 하였다.

그때 물곬을 지나다 떠내려간 선두대렬의 교원들과 학생들속에는 고급반 3학년의 신대룡학생도 있었다. 며칠후 그의 시신을 찾았을 때 학생의 손에는 무엇인가가 꼭 쥐여져있었다. 그 손을 펴본 사람들은 그만 오열을 터뜨렸다. 그 손에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존귀하신 영상이 모셔진 초상휘장이 정히 들어있었던것이였다.

후날 사람들은 윤성희선생의 시신을 찾았을 때 그가 꼭 살아있는것처럼 여겨졌다고 이야기들 하였다. 녀선생은 죽어서도 여전히 생시처럼 아름다왔다. 그의 가슴에는 물살을 헤치며 가져오던 교편물들이 그대로 안겨져있었다. 그것을 보며 학부형들과 교원들, 학생들은 흐느껴 울었다. 그가 담임했던 학생들은 살아있었을 때처럼 여전히 근엄한 표정을 한 선생님의 시신곁에서 떨어질줄 모르고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이전에 늘 엄격했던 녀교원이였으나 어린 학생들은 좀처럼 그를 잊지못하고 자주 추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건져온 교편물로 림시교사에서 공부를 하며 울었고 그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새 교편물들과 학용품들을 받아안으면서도 선생님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 어린 학생들이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로 떠나는 날 선생님의 묘소를 찾았을 때 사람들도 함께 목메여 울었다.…



×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수령결사옹위의 길에서 값높은 최후를 마친 이들의 소행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송학고급중학교 부교장 김정활을 비롯한 교원들에게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을 수여해주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북부의 이번 큰물피해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자기들의 친자식처럼 키우는 속에 남포시의 한 마음고운 부부가 정성국과 전은경의 5살난 딸 정지예를 데려다가 자신들의 친딸로 삼았다.

김정활의 아들 김국진과 윤성희의 아들 김철성을 비롯한 희생된 교원들의 여러 자식들이 당의 배려로 만경대혁명학원으로 떠났다.

아버지가 남겨준 필갑을 소중히 품에 안고 학원으로 떠나는 국진을 바래우며 박선일교장은 갈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너의 아버지는 참 훌륭한 교육자였다. 너도 이담에 커서 너의 아버지처럼 꼭 훌륭한 사람이 되여라.》…

그들은 오늘도 살아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인민사랑, 후대사랑속에 사희주의선경으로 변모된 리의 한복판에 새로 솟아오른 송학고급중학교의 웅자속에 부교장 김정활을 비롯한 10여명 교원들과 학생들이 영생의 모습으로 남아 사람들에게 참된 삶의 의미를 뜨겁게 새겨주고있다.

자기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심장속깊이에 간직한 이러한 교원들이 이 나라의 높은 교단들을 지키고있고 그 교단밑에서 자라난 모든 새 세대들이 수령결사옹위의 명맥을 꿋꿋이 이어가고있기에 우리 조국은 그토록 강한것이며 이 땅의 미래는 창창히 밝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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