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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실화소설집 북부전역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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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135회 작성일 22-02-1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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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서포땅의 녀인들

최학명

2


구역녀맹위원장 허정희는 서포역을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예상외로 회의가 길어진데다 녀맹원들의 새로운 춤가락까지 배워오느라 늦은 걸음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별안간 렬차의 기적소리가 길게 울려퍼졌다.

마음이 조급해진 허정희는 역전을 향해 막 달음박질쳐갔다.

렬차의 마지막차량이 역구내를 벗어나고있었다.

그러나 응당 보여야 할 순희와 안영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허정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듯 한감을 느끼며 그 자리에 펄쩍 주저앉았다. …

안영옥은 《쾅-》하고 문이 닫기는 소리와 씽- 하고 밀려들어온 찬기운에 놀라 게슴츠레해진 눈을 비비며 문가쪽으로 머리를 돌리였다. 꿈이 아닌듯싶었다.

《위원장동지, 저…》

《승조원들의 도중식사를 어쨌어요?》

날카롭게 따져묻는 허정희의 목소리에 안영옥은 허둥지둥하며 한쪽구석에 놓여있는 비닐구럭을 가리켰다.

허정희는 말없이 비닐구럭을 걷어안더니 올 때처럼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지금 자기가 어디로 정처없이 달리는지 알수 없었다.

머리속에는 오직 하나 북부피해지역으로 달리는 기관사들에게 자기들의 성의를 꼭 전해야 한다는 그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굽높은 신발뒤축이 꺾어지는것과 동시에 그는 도중식사를 안은채 길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심한 무릎아픔을 느끼며 머리를 쳐들어보니 역전이 멀지 않은 차도로복판이였다.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 했으나 쑤셔나는 아픔으로 하여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눈앞에 환한 차조명이 비치더니 《삑-》 하며 급정거하는 차소리가 들려왔다. 코앞에 멎어선 소형뻐스에서 젊은 운전사가 뛰여내렸다.

《아주머니, 무슨 일입니까? 혹시 어디 상하지 않았습니까?》

걱정스레 묻는 운전사의 말에 정희의 가슴속에는 한가닥 기대가 불꽃마냥 확 타올랐다.…

정희는 운전사의 옆좌석에 올라 안타까운 눈길로 도로앞쪽을 주시했다.

운전사청년은 벌씬 웃었다.

《걱정놓으십시오. 이래뵈도 운전급수 1급인걸요.

암만 그래도 우리 차가 먼저 간리역에 들어설겁니다.》

운전사청년의 말대로 소형뻐스는 렬차가 역에 들어서는것과 거의 동시에 역사앞에 들어섰다. 허정희는 밥곽이 든 구럭을 안고 역사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목에 호각을 건 운전지휘원이 왼손에 든 푸른 신호기발을 서서히 흔들기 시작했다.

《붉은기5036》호기관차가 금시 역을 떠나려는듯 기적을 길게 울리고있었다.

《세우세요, 기관사동무-》 허정희는 목이 터지게 웨치며 달려갔다. 신호기를 흔들던 운전지휘원이 어리둥절한 눈길로 뜻밖에 나타난 낯선 녀인을 바라보다가 앞을 막아나섰다.

허정희는 그가 미처 어쩔새없이 밀쳐버리고 안고온 구럭을 높이 쳐들며 기관차승강대를 향해 소리쳤다.

《기관사동무, 이걸 좀 받아줘요. 어서요.》

당황한 기관조사청년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얼결에 손을 쑥 내뻗쳤다. 정희도 손을 힘껏 내뻗쳤다. 손과 손이 거의 맞닿을듯말듯 한찰나 녀인의 눈길이 엉망이 되여버린 구럭안의 밥곽에 가 멎었다.

순간 정희는 로반의 자갈을 걷어차며 멈춰서버렸다.…

역사밖에서 서성거리던 운전사청년은 금시 쓰러질듯 비칠걸음을 하며 밖으로 나온 허정희를 발견하자 기쁜듯 마주 달려갔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비닐구럭이 그대로 들려있었다.

《기차를 놓쳤습니까?》

《…》

청년은 정희의 두눈에 그렁하니 고인 눈물을 보자 더 물을념을 하지 못하고 구럭안을 들여다보았다. 밥곽들이 터지고 온통 뒤범벅이 된 음식물이 운전사청년의 망막을 아프게 자극하였다.

《타십시오.》 운전사청년은 망연자실한채 서있는 정희에게 차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허정희는 도리머리를 했다.

《아깐 정말 미안했어요. 전 걸어가지요.》

청년이 노여운듯 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다구요? 사람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립니까? 어서 타십시오. 그 다리를 가지곤 못 갑니다.》

그제야 정희는 무릎에 심한 아픔을 느꼈다.

정희를 태운 소형뻐스는 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며 도로를 따라 달렸다.

《녀맹위원장동지!》

무거운 생각에 짓눌려있던 허정희는 운전사청년이 자기를 알고있는것이 놀라와 머리를 쳐들었다.

운전사청년은 머리도 돌리지 않은채 앞쪽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저도 북부지구에 탄원했습니다.

이제 며칠후면 떠나지요. 물론 아직은 돌격대원이 아니지만… 그래도 녀맹위원장동지에게 북부지구 피해복구돌격대원들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고싶습니다.》

《운전사동무…》

허정희는 불시에 목이 꽉 메여오르는것을 느꼈다.…

허정희가 도중식사를 안고 간리역까지 갔다가 다리까지 크게 상했다는 안영옥의 전화련락을 받자마자 순희는 정신없이 구역녀맹위원회 청사를 향해 달려왔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담. 무슨 일을…)

숨이 턱에 닿아 단숨을 헉헉 내불며 들어선 순희를 정희는 처음 보는듯 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서늘한 그 눈길에 위압된 순희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나가!》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였다.

《말해봐. 만약 그 기관사들이 자기의 남편이나 자식들이라면 그렇게 했겠는가?》

《위원장동지…》 순희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울음을 터뜨렸다.

《썩 나가! 보기도 싫다.》

순희가 나가자 정희는 불시에 고독감을 느끼며 눈물이 솟아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자기의 진정을 몰라주는 순희가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그때 따르릉- 전화기가 울었다. 정희는 급히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한손으로 송수화기를 들었다.

구역당위원장 봉성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장동무에게 말을 다 들었소. 렬차가 들어온 시간에 전화를 받느라 미처 알려주지 못해 구역녀맹위원장이 간리역까지 달려갔다고 말이요. 우나? 허허… 녀맹위원장도 울줄 아누만. 용서하오. 하긴 동무도 녀성이지. 그런데 난 왕왕 동무가 녀성이라는걸 잊군 했거던.》

《당위원장동지, 제가 그만 마음이 약해져서…》

《허허, 이젠 응석까지 부릴줄 알구. 힘들지, 왜 그렇지 않겠나. 하지만 난 우리 녀맹원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거던.

바로 동무들이 녀성이기때문에 그처럼 견디기 어려운 엄혹한 시련과 난관앞에 그토록 이악하고 강의한것이 아닐가 하고 말이요. …》

허정희는 가슴이 찌르르해났다.

《당위원장동지, 용서하십시오.》

《정희동무, 힘을 내오. 지금 경애하는원수님께서는 북부피해지역 인민들을 생각하시며 때식도 밤잠도 잊으시고 피해복구사업을 진두에서 지도하고계시오.…》

허정희는 눈굽이 척척히 젖어들었다.

내가 무슨 일군인가. 온 나라 천만자식을 돌보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피해를 입은 북부지역 인민들때문에 밤을 밝히실 경애하는원수님의 그 로고를 생각지 못하고 자그마한 일로 눈물을 흘리며 나약해지다니 …

《정희동무, 이번 북부지구 피해복구지원정형을 료해해보니 구역녀맹이 단단히 한몫 했더군. 생활을 쪼개며 저축한 자금을 통채로 바친 동무들이 있는가 하면 아들딸 시집장가갈 때 주려고 마련한 새 이불과 가구까지 내온 동무도 있고 수십벌의 솜옷과 백여벌의 어린이옷을 지원한 초급단체도 있고… 아직은 자기들의 생활도 넉넉치 못하지만 그 무엇도 아끼지 않고 성심성의로 지원한 그들의 소행을 보니 정말 눈시울이 뜨거워져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소.》

당위원장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녀맹위원장동무, 우리 녀맹원들의 힘을 믿읍시다.

오늘 일도 놓고보면 결국 철도수송지원사업을 몇몇 녀맹일군들과 기동선동대원들의 힘만으로 협소하게 벌리려고 했기때문이요.

혁명의 한쪽수레바퀴를 밀고나가는 녀성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을 불러일으킨다면 틀림없이 좋은 결과를 얻을거요. 우리 서포땅의 녀맹원들을 단지 지원자로만이 아닌 북부전역의 참전자들로 키웁시다. 구역당에서도 적극 밀어주겠소.》

봉성권의 전화가 끝났으나 정희는 마비라도 온듯 한동안 송수화기를 내려놓을념을 못했다.

(…지원자만이 아닌 북부전역의 참전자.)

불시에 뜨거운것이 가슴속에 꽉 차오르는것 같았다.

정희의 눈앞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싸우는 고지에로 포탄과 탄약을 나르던 남강마을녀성들의 불굴의 모습이 하나의 화폭이 되여 서서히 안겨들었다.

…불타는 남강, 끊임없이 날아와 터지는 폭탄과 포탄으로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물기둥, 세찬 물살이 가슴을 치고 원쑤들이 떨군 소이탄으로 그야말로 불바다를 이룬 강복판으로 무거운 탄약과 식량을 머리에 인 남강의 녀인들이 서슴없이 뛰여든다.

파편에 치명상을 입었으나 피흐르는 가슴을 부둥켜쥔것이 아니라 머리에 인 포탄상자를 더욱 꽉 쥐고 이를 악물고 건너편 강대안을 향해 억척으로 걸어가는 강의한 녀인…

그렇다. 북부전역은 말그대로 전쟁이다. 우리 당이 선언한 인민사수전, 인민복무전의 위대한 사랑의 전쟁이며 우리의 제도와 우리의 신념을 허물어보려는 적대세력과의 총포성없는 치렬한 전쟁이다.

전화에 우리 녀성들이 그러했던것처럼 우리의 녀맹원들, 서포땅의 녀인들을 오늘의 이 전쟁의 참전자, 북부전역의 남강마을녀인들로 되게 하자.…

허정희는 깊은 생각에 잠겨 창문을 열었다.

새날이 희붐히 밝아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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