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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래일에 사는 사람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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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304회 작성일 22-05-01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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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제 1 편 최 첨 단 목 표

7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할 때만 해도 최일의 의기는 하늘에 닿아있었다.

그는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 과학화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현대화연구소에 배치받았고 여기서도 핵심적인 조종장치연구실에 들어왔다.

처음부터 남다른 정열을 안고 장치와 프로그람계통을 다같이 터득해나갔다. 그는 한 대학생의 발견이 때로 세계 쏘프트웨어체계를 뒤흔들어놓는 이 경이적인 시대에 오랜 연구사들의 뒤시중이나 들어주고싶지는 않았다.

작년 가을 진흥기계공장에 가서 새형의 종합가공반의 CNC장치를 개발하게 되였을 때 최일은 과제책임자인 리윤덕실장에게 쌈싸우듯 제기하여 그 돌격대에 기어이 망라되였다. 주요과제였던만큼 실장이 일러주던 송춘도조차 여기에 끼여들념을 못했었다.

공장에 나간 최일은 리윤덕실장이 추진하는 CNC장치가 눈에 차지 않았다. 우리의 CNC기술이 최근년간에 급속히 발전하여 세계적으로 다섯손가락안에 든다는 공작기계생산국들과 당당히 키돋움을 하며 경쟁을 벌리고있는판이 아닌가. 그런데 윤덕실장의 개발방안은 너무도 구태의연하며 소극적이였다.

최일은 큰 규모의 프로그람론리소자를 써서 기판을 제작하고 기발한 프로그람적인 기교로 세계 첨단수준에 접근할수 있는 CNC장치를 만들안을 무르익히였다.

공장의 한 처녀가 최일의 눈에 든것도 이무렵이였다.

오은경이라고 부르는 이 처녀가 속한 공장설계연구소 사람들은 최일이네와 함께 종합가공반을 설계하고있었다. 설계연구소에서는 기계부분을 주로 맡고 현대화연구소에서는 조종장치부분을 맡았다.

최일은 그 처녀를 공장합숙 주방에서 처음으로 띄여보았었다. 그 처녀는 최일이네들이 도착한 날 저녁에 조리대앞에서 료리솜씨를 보이면서 식탁에 한가지 찬이라도 더 오르게 하려고 마음을 썼다.

이튿날 설계현장으로 산유를 가지고 나온 그 처녀앞에서 최일은 여느때없이 싱거운 소리를 하고싶어졌다. 이것은 평소에 녀자들을 어느정도 내려다보던 최일이자신으로서도 뜻밖으로 느껴질만큼 이상한 충동이였다. 그 처녀와 마주서면 어쩐지 자기쪽이 기울고 주눅이 드는것 같고 그럴수록 엇서서 사나이의 체면을 세우려고 허세를 부리게 되는것이였다.

그는 처녀가 설계연구사라는것을 알면서도 첫 대면에는 착각한듯이 말을 걸쳤다.

《산유가 별맛이군요. 어제 식당에서 뵈운것 같은데 료리사라기보다는… 혹시 의사선생이 아닙니까?》

처녀는 롱소리로 들었는지 미소를 머금고 산유를 한고뿌 더 권하는것이였다.

최일은 그에게 기어이 말을 시키고싶었다.

《몸이 갑자기 으시시한데 이게 무슨 증상인지 모르겠습니까?》

《미열이 납니까?》 처녀는 드디여 걸려들었다.

《체온은 재보니 정상입니다.》

《?…》

처녀는 유심히 총각의 얼굴을 주시하였다.

《지치들이 잘못 나온것 같군요. 뽑지 않았지요?》

《지치라니요?!》 최일은 도리여 얼떨떨해졌다.

《스무살무렵에 나온 8번째 어금이 말이예요.》

《어금이요? 빼지 않았는데…》

《몇년간 고생하셨겠어요. 피곤하면 지치주위가 부어오르고 쏠거예요. 처음엔 몸살이 나는것 같답니다.》

《그건 어떻게 알아냅니까?》 최일은 진정으로 놀라왔다. 처녀는 친절히 설명하였다.

《환자의 하악골 형태를 보면 짐작할수 있어요. 이제 더 붓고 열이 나기 전에 지치들을 뽑아버리는게 나을거예요.》

최일은 얼결에 아래턱에 손을 가져갔다.

《지금은 쏘지 않는데요. 전혀…》

《일단 쏘기 시작하면 빼기 힘들거예요. 이제 밤낮으로 현장전투를 하겠는데 피곤이 몰려 악화되기 전에 미리 수술을 받으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수, 수술까지야 뭐?…》

《한쪽을 수술하는데 40분밖에 안 걸려요. 우리 공장병원 구강과 의사선생한테 제가 안내해드릴가요?》

《그건 좀 생각해봐야겠는데요. 아니, 내절로 찾아가지요!》 최일은 다급히 발뺌을 하였다.

처녀는 호수처럼 맑고 그윽한 눈으로 최일을 바라보았다. 꼭 그렇게 할수 있는가고 진정으로 묻는것 같았다.

《걱정마십시오. 예!》

최일은 서뿌르게 롱을 걸다가 그만 진땀을 빼고말았다.

그뒤에 처녀는 정식 설계연구사의 신분으로 최일이네와 설계토론도 하게 되였지만 최일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였다.

《병원에 가시겠다더니?…》

《지금 결심하는 단계입니다.》

어느날 처녀는 위생복을 걸친 중년의 암팡지게 생긴 사나이를 데리고 현장에 나타났다. 구강과 의사였다. 콤퓨터작업을 하던 최일은 기급하여 뺑소니를 치고말았다. 연구사들과 설계가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최일은 별수없이 처녀앞에서 이제 조종장치제작을 끝낸 다음에 공장병원으로 가서 지치치료를 받겠노라고 다짐을 두고서야 궁지를 면할수있었다.

그런데 두어달 현장에서 밤을 패운탓인지 최일의 한쪽 볼이 독을 쓰며 부어오르더니 정말 8번째 어금이주위가 쿡쿡 쏘기 시작하였다. 부은 상태여서 수술은 못하고 응급처치만 받았다.

그는 공장 외래자합숙 호실에 누워 앓음소리를 쳤다. 설상가상이라고 편도까지 부어서 좋다는 약들도, 그 처녀가 쑤어온 미음도 목으로 넘기지 못하였다.

그 모양을 안타까이 지켜보던 처녀는 집에 가서 생마늘 몇톨을 가지고왔다.

병마에 지친 최일은 처녀가 시키는대로 고분고분 마늘쪽을 입에 넣어 잘게 깨물고 혀로 움직여 부은 편도부위에 가져다댔다. 잠간 기다리느라니 정말 그쪽 귀뿌리가 찡하니 달아오르며 눈물이 쑥 나왔다. 신기하게도 편도가 가라앉으며 목이 열렸다.

이렇게 되여 최일은 미음과 약을 목으로 넘기게 되였다.

이 비방은 지혜로운 그 처녀가 스스로 찾아내고 먼저 시험해본것이라고 하였다.

오은경이라는 처녀는 지내볼수록 오히려 더 신비한 존재처럼 최일에게 안겨왔다. 그 처녀가 병석을 지켜줄 때면 마치도 사려깊은 누이같았다. 주의를 주는듯 한 엄한 눈길과 물기어린 한숨까지도 그렇게 다정하고 아름다운줄 최일은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

최일은 병을 털고 일어난 후 그 처녀와 더 가까와졌다.

처녀는 그를 자기 집에 초청하였다.

그 집에는 오래된 태엽식축음기가 있었다. 역시 오래전에 제작된 축음기판들도 여러장 되였는데 그중에는 인민배우 백고산이 연주한 바이올린협주곡《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도 있었다. 이 판은 집에 귀한 손님들이 올 때만 돌리는것이였다.

귀에 익은 바이올린 선률이 울리자 최일은 노을 비낀 바다가에 원경으로 솟은 용광로가 보이는것만 같았다.

그는 처녀에게 자기의 어릴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국립교향악단의 바이올린수였는데 유독 막내인 최일에게만 4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워주었다. 장차 국제콩클무대에까지 내세우자는 속심이였다. 목표가 높은것만큼 회초리로 가르쳤다. 최일은 공연무대들을 타지 않고 계속 련습곡들만 돌파해나가다가 중학교 2학년에 이르러서야 큰 작품들을 형상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 제일 힘든 곡이 바로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였다.

최일은 그 곡을 다 익히지 못하고말았다. 과학의 세계가 더 큰 힘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과학자들을 소개한 책의 한 문장은 어린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과학을 발전시키지 않는 나라는 불피코 식민지로 되고만다.》

큐리부인의 사위이며 물리학자인 노벨상수상자 프레데리크 죨리오가 한 말이였다.

14살 잡히면서 최일은 자기의 앞길을 다시 정하였다.

과학을 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얼마나 분통을 터뜨렸던가!

그때 최일은 회초리맛을 톡톡히 보았다.

후에 가정방문을 왔던 담임선생이 아버지를 설복하였다. 최일에게 자연과학을 시키면 성공할수 있다고…

어느날 밤에 아버지는 최일이를 보고 마지막으로 바이올린협주곡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를 연주해보라고 하였다. 그는 그날만은 어느 대목의 결함을 짚거나 반복하라는 소리가 없이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들을 칭찬하는것이였다.

《흔치 않은 재능이다.… 한데 수학에도 재능이 있다니 지금 구태여 그 우렬을 론하고싶지는 않구나. 네 좋을대로 해라. 아마도 네 결심이 옳은것 같다. 재능보다 더 귀한것이 있다. 그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 이야기는 처녀에게 깊은 인상을 준것 같았다.

최일은 다시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의 착안은 리윤덕실장의 반대에 부닥쳤다.

《보다 큰 소자를 쓰는게 좋다는거야 뻔한 리치지. 허지만 그런 욕망이나 원리만 가지고야 조종장치가 되나. 최동문 반작용의 법칙만 가지고 로케트를 날려보낼것 같소? 공학이란 도입의 학문이요. 기초연구보다 열배의 품을 들여야 한단 말이요. 지금 우리 형편에선 동무가 주장하는 세계 첨단수준에 오르기가 힘들어.》

《실장선생, 과학의 력사는 불가능한것을 가능한것으로 전변시켜온 력사가 아닙니까.》

《동무의 젊은 혈기가 부럽구만 응, 부러워.》

윤덕은 웃어넘겼다.

최일은 물러서지 않았다.

《정 그렇다면 나 혼자서라도 해보겠습니다.》

《젊은 사람이 겸손해야지. 여기에 온 오랜 연구사들이 뭐 동무만 못해서 잠자코 있는줄 아오?》

《과학은 나이로 하는게 아닙니다. 우린 경험주의도 경계해야 합니다.》

날이 갈수록 언쟁은 더 심해졌다.

공장사람들도 과학원사람들의 내부모순을 눈치챈것 같았다.

리윤덕실장은 신경질을 냈다.

《골이 아프구만. 동무 하나때문에 집단의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는가.》

최일이도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집단이 건전해지려면 부단히 새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여러말 할것 없소. 동문 연구소로 돌아가오. 이 전투장엔 동무같이 복잡한 인물이 있을 자리가 없소!》

그 순간 최일은 리윤덕실장을 경멸하였다.

《가겠습니다. 보수적인 편견과는 거리를 두는게 오히려 마음이 편합니다.》

떠나는 마음이 편할리가 없었다. 분하고 수치스러웠다.

그는 마감으로 오은경을 만날가 어쩔가 망설이였다. 옳고그른 사연은 어떻든 전투장에서 쫓겨난 처지가 아닌가. 만났댔자 그앞에서 구차스러운 꼴이나 보이게 될것이다. 그렇다고 작별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자니 자신이 더 못난 놈으로 보였다.

그는 공장 구내전화로 처녀에게 작별의 말을 하였다.

그런데 처녀는 그를 바래주러 역전까지 따라나왔다.

그날따라 비가 구질구질 내렸다. 장마가 시작되는것 같았다.

처녀의 작은 우산이 그를 가리워주었다. 최일은 자기가 우산을 들어야 한다는것도 잊고 침울한 기색으로 물창을 밟으며 터벅터벅 걸어갔다.

처녀 역시 슬픈 기색이였다.

《전번에 말씀하셨지요, 떠나시기 전에 우리 공장병원에서 치료를 받겠다고…》

그런 념려의 말이 최일에게는 어떤 비난처럼 들리였다.

《그랬지요. 한데 이렇게 실패하고 떠나갑니다. 변명할 소리가 없습니다.》

《저, 좀더 여유있게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킬수는 없었을가요?》

친누이와 같은 다심하고 애정어린 눈매, 처녀는 여느때보다도 더 아름다왔다. 그럴수록 최일은 그에 비한 자신의 렬등감을 더 통절히 느끼게 되는것이였다.

《납득이요? 그것도 리해를 하려고 하는 상대일 때 가능한거지요.》

《좀 다르게 생각해볼수도 있지 않을가요. 상대의 자존심과 인격을 존중하지 않고 그와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거예요. 나이로 보아도 실장선생님은 웃사람이고…》

최일은 그만 분통이 터졌다.

《옳습니다! 모든게 내탓입니다.》

《저는 그저…》

《됐습니다. 난 그런 동정을 받을만 한 가치도 없는 존재지요!》

《최일동지… 그러지 마세요.…》

《?!…》

처녀의 눈물을 보는 순간 최일은 못나게 군 자신을 속으로 꾸짖었다.

소리쳐 울부짖고싶었다.

렬차가 떠날 때 처녀는 눈물을 감추며 속삭이였다.

《너무 그렇게 자기를 괴롭히지 마세요. 오늘만 날인가요.…》

《…》

연구소에 돌아온 최일은 한동안 의기소침해있었지만 다시금 분발하였다.

그는 자기가 세계적인 판도에서 사물을 보고 높은 과제를 제기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기어이 이 첨단과제를 해결하여 윤덕실장에게 보여주자. 그리고 그 처녀에게도…

헤여질 때 처녀가 말했었지. 오늘만 생각지 말라고… 그건 단순한 위안의 말이 아니다. 그는 기다려줄것이다. 나를 믿고 언제까지나!…

최일은 호수같이 그윽한 처녀의 눈매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 처녀의 전자우편주소를 알고있었지만 최일은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최일은 청년과학자로서의 존엄과 명예를 론문완성으로 떨쳐야 한다고, 그때에야 비로소 그 처녀앞에도 떳떳이 나설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대규모프로그람론리소자를 쓰는 새로운 수자조종장치에 대한 연구를 심화하여 이제는 론문을 준비하기에 이른것이였다.

그런데 실장이 바뀌였다.

이러나저러나 매일반이지, 난 지금은 박사원생이니까.…

그러나 그는 그대로 앉아있지 못하고 가끔 2층에 있는 수자조종장치실로 올라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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