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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계 어디로 가는가 2-14. 아프리카에서 가깝고도 먼 섬나라 마다가스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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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343회 작성일 22-03-29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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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류태영 박사

아프리카에서 가깝고도 먼 섬나라 마다가스까르

마다가스까르는 아프리카본토 모잠비끄해협을 사이에 두고 인디아양에 떠있는 열대성의 섬나라로서 아프리카대륙의 자연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원시림의 식물과 동물들이 많다.

또한 마다가스까르에는 아프리카전역에 퍼져있는 식물과 동물들과는 별다른 특이한 종류의 식물들과 희귀한 동물들이 많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찾는다.

 

마다가스까르의 독립을 처음으로 망친 프랑스

 

마다가스까르의 고대력사에 대한 정확한 설은 없지만 석기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는것으로 보아 B. C. 2000년경부터 사람들이 살고있었던것으로 보인다. B. C. 2000년경에 알렉산드리아의 지리학자 포틀레미가 Menuthias라고 적은 기록이 있는데 아마 마다가스까르를 가리킨것으로 추정하고있다.

A. D. 5~6세기경에 마다가스까르에 처음 들어온 이주자들중의 대부분은 말라이-폴리네시아계인들이였는데 이들은 인디아양을 건너 동남아시아에서 키우던 농작물들을 가지고 왔다.

기록에 의하면 마다가스까르에는 인디아의 항해가들도 왔고 9세기에는 많은 아랍인들도 왔으며 동아프리카에서 흑인들도 왔다.

결국 이러한 인종들이 정착하여 다양한 부족과 씨족들을 이루게 되였다.

마다가스까르에 유럽인들이 처음 발을 들여놓은것은 1500년에 뽀르뚜갈군함이 상륙한 때인데 그후부터 줄을 이어 네데를란드, 영국, 프랑스가 서로 다투어가면서 마다가스까르에 침략의 발을 들여놓았다.

17세기에 유럽의 침략자들은 마다가스까르를 완전히 수중에 넣기 위해 원주민들을 매수하고 평화롭게 살던 부족들사이에 대립을 조장하는 교활한 수법을 적용하였다.

프랑스는 이러한 과정에 부족들사이에서 주도권을 잡은 이메리나족과 형식상 독립을 인정하는 조약을 맺음으로써 이 부족을 완전히 매수했다.

그후 프랑스식민주의자들은 마다가스까르의 왕국에 예속조약을 강요하였으며 1895년에는 이 섬을 강점하고 이른바 보호조약을 체결하였고 1896년 8월에는 마다가스까르와 그 부근의 섬들을 식민지로 선포하고 이메리나국가의 주권을 전복하였다.

1896년 프랑스는 마다가스까르에 총독을 임명하고 모든 정치단체들을 추방했으며 프랑스어를 마다가스까르의 공용어로 규정하였다.

프랑스는 총독통치로 마다가스까르를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구축하였다.

이렇게 수백년동안 유럽렬강들의 식민지지배를 받던 마다가스까르인들은 1947년 저주로운 식민지력사를 끝장내기 위해 자주독립을 위한 투쟁에 궐기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당황한 프랑스는 침략자의 본성을 드러내 무자비한 진압으로 8만여명의 마다가스까르인들을 살해했다. 그러나 마다가스까르의 민중적봉기의 불길은 절대로 꺼지지 않았고 3년동안의 투쟁끝에 력사상 처음으로 토착민의 정치적정당들이 결성되였다.

마다가스까르인들의 투쟁이 끊임없이 계속되자 1960년 프랑스는 하는수없이 마다가스까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형태로 마다가스까르에 대한 지배를 포기하지 않고 막후세력의 역할을 놀았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마다가스까르의 초대대통령으로 필리베르 치라나나가 취임하여 12년동안 집권하다가 1972년에 퇴진당하였다.

프랑스가 세운 꼭두각시정당인 마다가스까르사회민주당의 회장이였던 치라나나는 집권 12년동안에 독재정치로 수없이 많은 반독재, 반프랑스애국인사들을 투옥하였다.

 

사회주의로선을 선택한 디디에 라찌라까대통령

 

치라나나에 이어 제2대대통령으로 취임한 가브리엘 라만 초아는 프랑스를 멀리하면서 아프리카국가들과 우호적련대를 강화하고 특히 사회주의권에 속하는 나라들과 외교를 새로 시작했다.

집권기간 가브리엘 라만 초아대통령은 전임대통령에 의하여 투옥되였던 정치범들을 전격 석방하면서 개혁정치의 용단을 내렸다. 하지만 너무 무리하게 개혁을 단시일내에 성취하려 한것으로 하여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라만 초아의 뒤를 이어 마다가스까르의 제3대대통령으로 올라선 인물은 디디에 라찌라까였다.

집권하기 전에 최고혁명평의회 의장사업을 하고있던 디디에 라찌라까는 혁명방위민족전선을 결성하고 은행을 국유화하였으며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사회주의혁명헌법을 제정하였다.

1976년 1월에 제3대대통령으로 정식취임한 디디에 라찌라까는 프랑스와의 모든 관계를 끊었으며 정부는 사회주의적정책을 실시해나섰다.

디디에 라찌라까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정치로선을 견지하면서 1982년과 1989년에 련이어 대통령으로 재선되였다.

하지만 디디에 라찌라까대통령은 정치적시련도 겪어야 했다.

사회주의로선을 주장하는 디디에 라찌라까대통령을 못마땅하게 여겨오던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이 IMF가 준 차관의 대가로 긴축조치를 요구하고 채무위기 등이 조성됨에 따라 라찌라까정권에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였던것이다.

하여 디디에 라찌라까는 1993년 2월에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패하였다.

제4대대통령으로 대학교수출신인 알베르 자피가 취임하였으나 그의 임기기간에 마다가스까르의 경제적사정은 급속히 악화되였다. 결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급격히 떨어졌으며 1996년 9월에 국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통과시킴으로써 자피대통령은 퇴임하게 되였다.

그후 1999년 11월 마다가스까르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진행되였는데 세계정치사에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지게 되였다.

1993년에 퇴임한 디디에 라찌라까 전임대통령과 탄핵을 당하여 3년전에 퇴임된 자피 전 대통령이 맞대결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런데 투표결과 디디에 라찌라까가 또다시 당선되여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탄생함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렇게 정권을 잡은 디디에 라찌라까는 4선대통령으로 2002년 5월 6일에 퇴임하였는데 사회주의를 지향한 대통령으로서 그의 집권기간은 총 23년이였다.

 

마다가스까르에 그리스도교 왕국을 꿈꾼 대통령

 

사회주의자대통령으로 오래동안 명성을 날린 디디에 라찌라까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하여 옛 종주국 프랑스와 영국에 있어서 눈에 든 가시가 될수밖에 없었다.

디디에 라찌라까대통령에게 항상 뒤따라다니는 제국주의자들의 비평은 그 무슨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락오자》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디디에 라찌라까대통령은 미국이 강요하는 서유럽제국주의국가들과의 《관계개선》과 《자유시장경제제도 도입》을 끝끝내 반대하였다.

이러한 그가 또다시 5선대통령이 되기 위해 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은 마르크 라발루마나나를 그에 맞설 인물로 내세우고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마르크 라발루마나나로 말하면 마다가스까르의 《그리스도교 교단》평신도회의 회장과 수도 안따나나리부의 현직시장을 겸하면서 개인소유의 방송국까지 가지고있던 인물이였다.

서방세력은 이러한 라발루마나나를 극성스럽게 지원하였다.

이러한 속에 2001년 12월에 진행된 선거결과는 1차투표에서 량편이 다 과반수를 얻지 못하여 법적으로 2차결선투표를 해야 하였다.

하지만 라발루마나나는 자신의 승리를 일방적으로 주장하면서 2차 결선투표에 참가하기를 거부하였다. 그것은 만일 2차결선투표에 참가하면 실패할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마다가스까르의 고등법원은 2차결선투표를 거부하고 취소할뿐만아니라 일방적으로 라발루마나나를 대통령당선자로 공식선포하였다.

이 일방적인 판정에는 분명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들의 압력이 작용하였다.

이렇게 서방세력들에 의해 대통령으로 당선된 라발루마나나는 IMF의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외국투자를 무분별하게 끌어들이는 길로 나갔다.

그리고 이전 정권에서 제정한 농민을 위한 토지소유권관련법들을 완전히 개정하여 서유럽식경제기법을 도입하였으며 개방정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그의 집권후 농민을 비롯한 일반서민대중의 빈곤은 더욱 더 심화되였다.

하여 마다가스까르를 그리스도교왕국으로 개조하여 범죄와 빈곤이 없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한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의 선거공약은 거짓으로 판명되였다.

또한 라발루마나나대통령자신이 국가자금으로 개인소유의 비행기를 구입하는 등 부정부패와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그 과정에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은 시위군중에게 총격을 가해 30여명이 사망하는 큰 사태를 빚어냈다. 드디여 2009년 3월 17일에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은 군부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자기자신이 외롭게 고립되고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발루마나나가 그리스도교인으로 대표적인 큰 교단의 부총재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은 민중의 반대에 부딪쳐 정권의 자리에서 물러나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되였으며 그의 《그리스도교왕국건설의 꿈》도 완전히 끝나게 되였다.

과도정부의 수반으로는 반정부투쟁에서 활약한 안드리 라주엘리나가 선출되였다.

 

30대 중반의 젊은 대통령의 행방은 어디로?

 

마다가스까르의 2선대통령으로서 친서방적이며 막강한 권력으로 독재체제를 만들어놓았던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은 이메리나족에게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2007년 12월에 마다가스까르의 수도인 안따나나리부시에서 시장선거가 있었는데 32살의 안드리 라주엘리나가 무소속후보자로 출마했다.

결국 안드리 라주엘리나는 현직대통령의 여당에 속하는 후보자와 대결하게 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소속의 안드리 라주엘리나가 막강한 여당후보자를 누르고 62%의 득표로 안따나나리부시의 시장으로 당당히 당선되게 되였다.

시장으로 취임한 후 젊은 라주엘리나는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하여 로골적인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어느날 TV방송의 인터뷰시간에 사회주의자대통령으로 명성이 높았을뿐만아니라 민중의 가슴속에 깊은 애정으로 간직되여있는 전직사회주의자대통령인 디디에 라찌라까와 함께 출연했다.

또한 TV방송은 라발루마나나 현직대통령의 불법행위도 공개적으로 폭로하였다.

이에 불안을 느낀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은 TV방송국에 대한 페쇄명령을 내리였고 안따나나리부시에 정부가 공급하게 된 전기와 물을 끊을데 대한 명령을 내렸으며 나중에는 라주엘리나를 시장직에서 쫓아내는 해임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의 이와 같은 행동은 민중의 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으며 라발루마나나는 정권의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2009년 3월 마다가스까르의 림시대통령으로 라주엘리나가 취임했다.

그러나 이 취임식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외교관들은 전혀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서도 그들의 로골적인 불편한 심사를 알수가 있다.

사실 친미적인 라발루마나나대통령의 몰락을 내심으로 끝끝내 반대해온 미국이 반미적인 젊은 라주엘리나가 등장하는것이 마음에 내킬수 없었다.

한편 새로 등장한 라주엘리나 림시대통령은 라발루마나나 전임대통령이 국고금으로 구입한 비행기를 몰수하여 국민들에게 돌릴것을 선포하였다.

과도정부 대통령 안드리 라주엘리나는 인터뷰에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사이의 차이가 너무 큽니다. 라발루마나나정부는 그 문제에 대해 별로 생각하고있는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마다가스까르의 국민들에게 해줄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약속입니다.》라고 했다.

이제 2011년 5월 4일에 실시될 력사적인 마다가스까르의 대통령선거에서 젊은 안드리 라주엘리나가 대통령으로 당선될것이 확실시 되고있다.


[주: 아래는 위키백과에서 옮김]

안드리 니리나 라조엘리나(말라가시어Andry Nirina Rajoelina1974년 5월 30일 ~ )는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이다. 디스크 자키 출신으로, 2007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안타나나리보의 시장이었다. 2009년 3월 21일에 군부의 지지하에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이 되었다가 2014년 1월 25일에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고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이 자주 갈리는 마다가스카르의 시국을 지켜보던 프랑스에서 압력을 넣자 결국 전현직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 5명이 모두 모여서 2018년 12월 27일에 실시한 선거에서 55%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이로써 안드리 라조엘리나는 2019년 1월 19일에 2번째로 대통령에 취임해서 현재 마다가스카르의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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