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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7,397회 작성일 22-04-23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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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9 회

바다가 보인다

라 광 철

4

무산은 10월이면 찬서리에 나무잎이 떨어지고 진눈까비가 내리는 초겨울날씨이다.

그러나 이해는 전투원들의 뜨거운 열기에 하늘도 땅도 화끈 달아올라서인지 이달이 다 지나가도록 아직 눈비 한번 내리지 않고있었다. 전투장들에서는 추위가 닥쳐오기 전에 살림집건설을 전부 끝낼데 대하여 당에서 정해준 그 날자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새로운 기적들이 폭발적으로 창조되고있었다.

군인건설자들은 착공의 첫삽을 박은지 불과 한달 남짓한 사이에 벌써 5층살림집골조공사를 끝내고 만리마속도로 내부미장에 달라붙었다.

광석이도 오늘은 여느날보다 더 많은 물을 길어나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수가 새삼스럽게 별로 반겨맞으며 롱담까지 했다.

《전투원동지, 수고했어요! 시장하겠는데 어서 식사를 하세요.》

《허허, 오늘은 형수가 왜 이렇게 살뜰해요? 하늘이 지내 맑으면 뒤끝에 비가 온다고 했던가.》

광석이도 형수의 마음을 떠보느라고 웃으며 능청스럽게 한마디했다.

《뭐예요? 누가 그런 소리 들으면 내가 여느땐 삼촌을 랭대하는가 하겠어요.》

《형수가 오늘따라 전투원동지, 전투원동지 하면서 별스레 노니까 그러지요.》

그러자 웃음을 참으며 또 무슨 말인가 할듯 하던 형수는 광석이 세면장으로 들어가자 밥상을 차리러 부엌으로 내려갔다.

밥상앞에 마주앉은 광석은 코를 벌름거리며 형수에게 얼굴을 돌리고 말했다.

《아, 이거 오늘 색다른 음식냄새가 난다!》

《닭곰이예요! 이러니저러니해도 이 형수만한 사람이 없지요. 호호, 자, 어서 잡수세요!》

그는 닭곰을 광석이앞에 먹음직하게 뜯어놓으며 권했다.

《이거 정말 오늘 도대체 어떻게 된거예요? 닭곰까지 다 해놓구. 그런데 형님은 잡수었어요?》

《이건 덕평이 아버지 잡술게 아니라 삼촌몫으로 차례진것이니 어서 잡숴요.》

광석은 무슨 말인지 알쑹달쑹한게 리해가 잘 안됐지만 우선 형수가 뜯어주는 닭곰을 받고 노죽을 부리며 말했다.

《내가 이거 빨리 장가를 가야 형수님의 이 은혜를 다 갚겠는데…》

《에구, 장가를 가면 제 색시한테 빠져 언제 형님이나 이 형수 같은건 돌아나 보겠어요?》

《형수, 아무리 롱담이라도 그런 말은 정말 듣기 싫군요.》

광석이 진정으로 섭섭해하자 성격이 활달한 형수는 또 호호 웃었다.

광석에게 있어서 형수는 그의 빨래로부터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는 진정 친누이나 어머니와 같았다.

《삼촌, 정말 장가를 가겠소?》

형수가 바투 다가앉으며 흥이 나서 말했다.

《갑자기 장가소린 왜 또 해요? 글쎄 마음에 맞는 처녀가 있어야 가지요. 내같이 앞 못 보는 사람한테 그게 어디 쉬운 일이예요.》

《그래서 말이예요, 내가 봐둔 처녀가 한명 있는데 어디 한번 만나 보겠어요?》

《형수가 마음에 드는 처녀라면 한번 만나보지요 뭐.》

광석은 형수의 성의를 그저 마다할수 없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됐어요. 사실 이 닭곰도 그 집에서 가져온거야요! 삼촌이 불편한 몸으로 전투장을 지원하는것을 보고 감동되였다고 해요. 그러면서 이 닭곰까지 해보내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자기네가 이걸 해보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고 대접하라구 한건데 내 성미에 어디 그럴수 있어야지.》

《예?! 그게 누군데요?》

《아, 우리 현관 5층집!》

《5층집?》

《아, 언젠가 우리가 베란다창문을 막지 못하고있을 때 영예군인이 사는 집이라고 자기네 집 베란다창문으로 가져왔던것을 내려다주었던 집이 생각 안나요?》

《왜 생각 안 나겠어요. 난 내가 영예군인이라고 따뜻한 정을 준 그 모든 사람들을 정말 잊을수 없어요.》

광석은 그때 그의 집에 대해 들은 말도 기억났다.

딸이 둘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들이 있는데 그는 무산광산에서 일하다가 동상을 당한 어느 후방가족의 집에서 아들구실을 하며 늙은이들을 도와주고있다고 했었다.

《그러니 형수는 오늘 명절기분이였군요. 이 닭곰이 처음부터 어딘가 좀 이상하다 했더니… 허허.》

광석이 호쾌하게 웃으며 자기의 눈치만 살피는듯 한 형수를 시까슬렀다.

《그래 삼촌 생각엔 어때요? 그 집에서는 삼촌을 생각하는게 남다르던데…》

형수는 광석이 별로 싫어하는 기색이 없어보이자 더 바싹 다가붙었다.

《글쎄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 알지 본인을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어요.》

《하긴 그렇지. 그럼 래일 한번 그를 만나보라요. 소뿔은 단김에 뽑으랬는데!》

《아, 그럴수는 없어요. 지금 피해복구전쟁이 한창인데 처녀선이나 본다는게 말이 됩니까. 이 전쟁이 끝난 다음에 보자요.》

그 이튿날 저녁 집에 들어서며 신을 벗어 신장에 넣던 광석은 집에 없던 녀자신발이 하나 더 있는것을 알았다.

집안에서는 여느때 없던 화장냄새도 연하게 풍겼다.

그는 륙감적으로 혹시 어제 형수가 말하던 그 처녀가 오지 않았는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형수, 집에 누가 왔어요?》

형수가 전실로 나오며 아닐세라 광석에게 소곤거렸다.

《삼촌, 어제 말하던 그 처녀를 내가 데려왔어요!》

《야 정말, 지금은 그럴수 없다고 내 그만큼 말했는데 참!》

《됐어요. 영화나 소설책을 보면 아무리 전쟁이라도 사랑이 없는게 없더군요 뭐. 원래는 삼촌이 찾아가봐야겠지만 내가 사정하여 데려왔으니 날 괜히 망신시키지 말구 어서 한번 만나보라요!》

광석은 할수 없었다.

집에까지 온 처녀를 안 만나는것은 실례였다. 그러나 정작 처녀를 만나자니 어쩐지 마음이 두근거리고 당황해지기까지 했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방으로 올라가 인사를 했다.

《김광석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권은향입니다.》

방안에 앉아있던 처녀도 일어나 몸둘바를 몰라하며 수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서로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 서있기만 했다.

그 모양을 지켜보고있던 형수가 입을 싸쥐고 호호 웃으며 말했다.

《아니, 한 현관 아래웃층에 살면서 뭘 그렇게 무슨 대표단단장들처럼 식을 차리면서 그래요. 어서 앉아서들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그는 집에서 어디론가 조용히 나갔다.

광석은 한동안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하다가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담배연기를 한모금 빨고나니 어느덧 마음이 좀 안정되는듯 했다.

《은향동무라 했지요?》

《예!》

《방안에 있기가 좀 답답한것 같군요. 우리 시원히 밖에 나가 좀 거닐지 않겠습니까?》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숨소리조차 죽이고있던 은향이 어느새 어두워진 창밖을 내다보며 혹시 밖이 어두워진것을 모르고 그러지 않는가하고 생각하다가 말없이 그의 의견을 따라나섰다.

광석이와 나란히 걷는 은향은 지팽이대신 자기가 그의 팔을 끼고 걷고싶었지만 처음부터 그럴 용기가 생기지 않아 그저 그가 길을 헛딛지나 않을가 마음만 조이며 함께 걸었다.

그의 걸음에 따라서다나니 어느덧 피해복구전투장이 한눈에 안겨오는 삼봉언덕마루에 이르렀다.

드넓은 야간전투장은 불바다를 이루고있었다.

《은향동문 여기에 나와본적이 있습니까?》

《예, 낮에는 와보았는데 이렇게 어두운 밤에는 처음이예요. 정말 굉장하군요!》

은향이 대번에 흥분되여 격동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저 밤하늘을 밝히며 쏟아져내리는 용접불꽃들이 마치 사회주의선경거리로 일떠서는 이 거리를 축복하는 축포의 꽃보라같지 않습니까?》

은향은 눈앞에 펼쳐진 전경을 그대로 보고있는듯 한 광석을 놀랍게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저 광경이… 보입니까?》

《예, 보입니다.》

《예?! 어느 정도 보여요?》

《환히 보입니다.》

은향은 어리둥절해졌다. 전혀 못 보는줄 알았던 그가 한밤중에도 앞을 보고있는것이다.

그 모양을 직감한 광석이 웃으며 말했다.

《난 지금 이 심장으루 보고있습니다.》

은향은 그제야 광석의 말뜻을 리해했다. 정말 시인과 같은 아름다운 상상력을 가지고있는 사람이였다.

《광석동진 시인이 되였더라면 아마 훌륭한 시를 썼을것 같아요!》

은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시는 몰라도 지금도 이 전투장에 나오면 저도 모르게 무엇인가 노래하고싶은것이 가슴가득 차오르군 하지요!》

열정에 넘친 그의 모습을 보는 은향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광석동지, 이제부터라도 전 광석동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수있다면 늘 함께 다니고싶어요!》

광석은 그의 마음은 고마왔지만 선듯 대답하기 힘들었다.

사심없이 남을 잘 도와주는 그 집의 가풍과 자기를 위하려는 은향의 진정에 대해서도 형수를 통해 잘 알고있었지만 일생을 앞 못 보는 사람을 위해 바친다는것은 사실 헐한 일이 아닌것이다. 그 어떤 의무나 동정만으로는 한생을 바칠수 없는것이다.

또 이것은 그 무슨 위훈을 떨치는 일은 아니였지만 그보다 더 큰 노력이 깃들어야 하는것이다.

《은향동무! 그 마음은 고맙지만 다시 잘 생각해보오.》

은향은 광석의 그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직하나 절절하게 말했다.

《광석동지! 난 광석동지를 결코 동정해서 이러는것이 아니예요. 난 광석동지의 그 마음과 정신력에 반했기때문이예요.

광석동지와 같이 강의한 의지와 정신력을 가진 사람과 같이 있으면 난 언제나 큰힘을 얻을것 같아요. 아무리 멀쩡한 사람이라도 정신이 허약하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불구자나 다름없지 않아요!》

사실 은향의 이 마음은 하루이틀에 결심한것이 아니였다. 그는 언젠가 광석이 물길어나르기전투를 끝내고 허은연이라는 소녀의 손목을 잡고 마을길에 들어서는것을 보고 생각이 많았던것이다.

어느날 저녁 은향은 언니에게 조용히 말했다.

《언니! 이밑에 2층집 영예군인 말이야, 요새 피해복구전투장에 물이 긴장하다는걸 알구 매일 물배낭을 지고 나가는거 알아?》

《응, 나도 들었어!》

《앞을 못 보는 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가. 정말 괜찮지!》

《그럼! 최전연에서 복무한 영예군인이 역시 달라. 군사복무시절에 조선인민군 초병대회에도 참가했다고 하더라.》

《언니, 그런 신념과 강의한 의지를 가진 사람과 일생을 함께 하는것도 행복이 아닐가?》

《행복?》

《그래 영예군인들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은 우리 시대 처녀들의 응당한 본분이라고 난 생각해. 그들은 조국을 위해서 한몸을 서슴없이 바친 영예군인이거던.》

은향의 말을 듣고있던 어머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은향아, 그 영예군인을 두고 네 언니도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언니는 척추를 다친 몸이니 오히려 그 사람에게 부담이 될것같아 고민하고있단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느덧 담담해졌다.

《이 에미 생각엔 그 영예군인을 둘째사위로 맞았으면 한다.》

은향의 가슴속에서는 그 무엇이 작렬하는듯 했다.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하면서도 자기가 그 자리에 설수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였다.

《예?!》

그는 금시 얼굴이 발개지며 얼떨떨해져 중언부언했다.

《그 문젠 우리 집에서 토론하면 되는거구. 기본이야 네 마음에 달려있는거지. 그러나 이런 일은 영예군인에 대한 의무감만으로 결심할 일이 아니니 하여간 잘 생각해보아라.》

은향은 광석을 새로운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자 우연히 그를 계단에서 마주치거나 먼곳에서 볼 때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생각이 많아졌다. 때로 그의 집 창가에서 흘러나오는 해병시절의 노래를 들을 때면 저도 모르게 눈굽이 뜨겁게 젖어들기도 했다.

(아직도 바다를 그리워하고있구나! 내가 과연 저 영예군인의 일생의 길동무가 될수 있을가.

그는 비록 두눈을 잃어 앞은 보지 못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나와 비할수 없는 높이에서 사는 동지인데 그가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겠는지?… 내가 그 높이에 따라설수 있을가? 하지만 진정으로 그를 위한다면 그도 마다하지는 않을거야! 그건 어머니의 말처럼 나에게 달려있어!)

그는 마음속으로 영예군인들의 충실한 길동무가 되여 사심없이 한생을 깡그리 바쳐가는 우리 시대 훌륭한 녀성들의 미풍을 떠올려보며 자신을 가다듬어보았다.

(당에서는 우리 영예군인들을 귀중히 여기고있는데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 바칠수 있다면…)

광석은 은향이네 가풍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느꼈지만 자기를 위하려는 그의 마음이 이처럼 뜨겁고 절절할줄은 몰랐다.

정말 이런 처녀와 일생을 같이한다면 더없는 행복이 아닐수 없었다.

《은향동무! 고맙소!》

광석의 가슴속에서는 천만마디의 말이 소용돌이를 일으켰지만 그저 그의 따스한 손을 더듬어 꽉 잡았다.

은향이 달아오른 얼굴을 광석의 드놀지 않을 억센 가슴에 묻으며 행복에 겨워 가볍게 몸을 떨었다.

순간 광석은 동지들의 뜨거운 사랑속에 생사운명을 같이하던 잊지못할 전우들의 모습과 그리운 바다향기가 물씬 스며드는듯 하여 무한한 격정에 사로잡혔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축복하는듯 전투장의 밤하늘이 더욱 충천하게 불타올랐다.

《우리 이렇게 나온김에 전투원들과 함께 땀을 좀 흘려보는게 어떻소?》

《좋아요!》

그들은 그날 밤깊도록 땀을 흠뻑 흘리며 전투원들의 일손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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