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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년 전 독일 실패 답습하는 MB 정부의 4대강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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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돼지
댓글 1건 조회 12,575회 작성일 10-09-08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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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년 전 독일 실패 답습하는 MB 정부의 4대강 사업

[현지 리포트] 이자르강의 수난과 회복의 역사…"강 지배의 대가는"?

기사입력 2010-09-09 오전 11:53:03

원래 독일 뮌헨은 운하의 도시였다. 12세기 건립 이래 19세기까지만 해도 베니스처럼 운하가 뮌헨 시내에 실핏줄처럼 촘촘히 얽혀 있었다. 지금은 시내?거의 모든 운하가 자동차 도로와 지하철에 밀려 복개되거나 폐쇄됐지만, 인구 몇 만의 작은 도시였을 때에도 총 운하 길이가 70㎞였다니 그 장관을 상상할 수 있겠다.

▲ 오늘의 피스터 거리(Pfisterstr.)에 있던 피스터천, 1907년 사진. ⓒ위키피디아

▲1613년 뮌헨 지도. ⓒ위키피디아

뮌헨과 인접해 흐르는 이자르강은 알프스를 흐르는 산악 하천답게 물살이 빠르고 계절에 따라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해서 수위가 불안정하고, 수많은 잔가지를 만들며 이리저리 구불구불 흐르다가 홍수라도 한 번 나면 엉뚱한 곳에 새 물길을 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주민들은 물을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 이자르강보다 높이 위치한 도심 쪽으로 운하를 파서 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였다.

주민들은 운하의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물레방아를 돌려 밀가루를 찧었다. 운하는 도시의 오폐수를 흘려보내는 하수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이자르강을 통해 먼 곳에서 온 와인이나 건축자재를 도심으로 운송하는 뱃길 역할도 했다.

▲ 밀가루를 빻아 왕궁에 조달하는 빵을 굽던 뮌헨의 물방앗간. 오른쪽에 보이는 난간 밑으로 1960년대까지 운하가 흘렀다. (현재의 Pfistererstr와 Sparkassestr 모퉁이) ⓒ임혜지
옛날부터 이자르강의 홍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계절에 따라 강물이 넘쳤지만 강 주변을 넓게 비워두어 인간에게 미치는 범람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인간은 수만 년 동안 강을 이용하면서도 강의 본성에 적응하며 살았다.

이자르강 '수난의 역사'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과 강 사이에 처음 변화가 생겼다. 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오자 도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다. 인구가 급증하니 집값이 올랐고, 가난한 이들은 범람의 위험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땅값이 싼 강변에 집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홍수가 날 때마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나기 시작했고, 인간은 산업 혁명으로 발달한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강물이 이리저리 넘치며 흐르지 않도록 강바닥을 깊이 팠고 강변에 둑을 쌓아 강물을 가두었다.

1888년부터 이자르강에도 이런 공사가 있었다. 그러자 강변으로 넘쳐나며 흐르느라 힘을 소진하던 물살이 강둑으로 막히자 남아나는 힘으로 강바닥을 강타하여 깎아냈다. 강바닥이 낮아지자 강변 지하수도 내려갔다. 질척질척하던 강변 토지에서 물이 빠져버리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고, 집을 짓고 살기에도 좋아졌다. 가용할 땅도 생겨나 홍수도 막아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물방앗간이나 증기기관차 공장처럼 물을 이용하는 시설을 이제는 강가에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도심에 있는 운하의 필요성도 점차 줄어들었다.

때마침 산업혁명의 꽃이라 불리는 전기가 발명되자 독일은 2차 산업혁명의 기수답게 19세기에 이미 이자르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주1) 강변에는 전기와 증기를 이용한 공장들이 세워졌다. 수력발전은 일정하게 흐르는 물을 필요로 했기에 강 옆에 수로를 만들고 강물을 빼돌려 가둬두었다가 이용했다. 물이 인간의 유일한 동력자원이던 시절, 유럽에서는 이렇게 강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달하고 강변 도시가 새로 생기거나 발전했으므로, 그곳에 흐르는 강에도 그런 역사적 흔적이 남았다.

▲뮌헨 티볼리 수력발전소. 1896년 건설, 증기기관차 공장과 제분소를 위한 전력 생산. 1985년 문화재 등록, 0.9MW (현재 유럽에 세워지는 신형 풍차 한 대의 전력은 5MW). ⓒ임혜지

▲ 뮌헨의 개인소유 수력발전소 '벡커뮐레'. 원래는 역사적인 물방앗간이었는데 1988년부터 터빈을 달아 소량의 전력 생산 (0.138 MW). ⓒ임혜지

개발에 상처 입은 이자르강의 '복수'

그런데 강을 굴착하고 직선화한 지 20여 년이 지나자 이자르강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공사의 후유증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이때부터 인간에게 피해를 입힐 만큼 커졌다는 말이 맞겠다. 강바닥과 지하수가 내려가고 강변 토지에서 물이 빠져버리자 그 땅을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강바닥과 지하수가 계속 하강했다는 점이다. 1910년경에는 강바닥이 공사 이전에 비해 10m나 더 내려갔다. 그러자 나무가 뿌리를 내려도 지하수에 도달하지 못해 인근 숲이 죽어갔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으며, 우물을 깊게 파도 지하수에 도달할 수 없어 주민의 안녕이 위협받게 되었다.

1910~1920년 사이 이자르강에서는 다시 한 번 대대적인 하천공사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지난 공사의 후유증인 지하수의 하강을 막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강바닥에 200m 간격으로 일정하게 50~60cm 높이의 콘크리트 단을 만들어 강바닥을 강타하던 물살의 힘을 그곳으로 유도했다. 바닥 경사가 특히 급한 곳에는 콘크리트로 강화한 인공폭포나 폭포수 계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통해 강바닥이 더 깊이 패는 현상과 그에 따르는 지하수의 하강을 일단 막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인공적인 공사로 발생한 피해를 더욱 강력한 인공구조물을 통해 막아나가는 동안 강은 점차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 수목과 모래톱이 어우러졌던 물가는 검푸른 이끼로 미끌거리는 콘크리트와 돌 벽에 갇혀 흐르는 수로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점차 길들여져서 "문명 세계의 강은 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문명 세계의 강은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들고 나던 강이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예기치 않게 넘쳐 올라 인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보다 강력한 둑을 지어가며 이에 맞섰다.

독일인의 후회…"강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자"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르고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인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홍수의 재앙이 날로 심각해지는 이유가 바로 선조들의 하천공사에 있다는 것을(주2)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주3) 어떤 기술로 어떤 둑을 쌓아도 인공적으로는 홍수의 위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증명되었다.(주4)

▲ 라인강 보 설치와 100년 빈도 홍수의 상관 관계. 세로축은 홍수 수위, 가로축은 보 설치 연도를 뜻한다. 1928년 최초의 보 설치 이후, 1950년대부터 보를 줄줄이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라인강의 홍수 간격은 짧아져 100년 빈도 홍수가 최근에는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다. 아울러 라인강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던 식물성장기 홍수마저 일어나는 이변이 생겼다(검은 막대). ⓒ독일연방자연보호·생태계 연구소

그리하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작업만이 가장 저렴하게 홍수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정부와 학자들 사이 팽배했지만, 하천 건설업계의 로비 또한 치열했다. 일단 보나 댐을 건설해 강을 막으면 그 후유증을 막기 위해 하류 쪽에 보나 댐을 계속 건설해야 하므로(주5) 건설업체의 입장에서 보나 댐 공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런 이유로 도나우(다뉴브) 강에 보나 댐을 설치하려는 RMD AG(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건설한 업체)에 대항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여전히 강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매년 대대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주6)

유럽인을 홍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2000년부터 '물 관리 기본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이 지침은 2015년까지 가능한 한 모든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고, 불가능할 경우라도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복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엄중한 벌칙금 제도를 통해 회원국들을 단속하고 있다.(주7) 유럽에서는 큰 강이 인접하는 여러 국가를 거치면서 흐르기 때문에 상류에 위치한 회원국이 잘못해서 환경이 파괴되면 그 피해가 하류에 위치한 다른 회원국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2015년이 5년 앞으로 다가온 현재, 모든 회원국은 국내법을 '물 관리 기본지침'에 맞추어 크고 작은 강의 재자연화 공사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독일 이자르강의 뮌헨 구간 복원공사는 성공사례로 손꼽혀 미국과 러시아까지 벤치마킹하기 위해 답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도시 속 하천' 이자르강, 독일인들은 어떻게 복원했나

뮌헨 이자르강 복원 공사의 매력이자 어려움은 인구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심 구간을 되도록 자연으로 되돌리는 시도를 했다는 데 있다. 독일의 3대 대도시이자 독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뮌헨 시내를 관통하는 이자르강이니, 건물이며 도로들이 강변에 얼마나 바짝 붙어 들어섰겠는가? 그럼에도 홍수 피해를 막고 시민에게 도심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강변에 남은 자투리 땅을 이용해 복원 공사를 벌인 수고가 얼마나 컸겠는가?

▲ 이자르강 시내구간의 재자연화공사 결과. ⓒ임혜지

또 다른 이자르강의 핸디캡은 역사의 상흔이 남아 있는 강이라는 점이다. 이자르강에는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고색창연한 수력발전소 뿐 아니라, 하천공사의 실수를 만회하고 강을 다시 구하기 위해 강바닥에 박아놓은 인공 폭포수 계단 같은 인공구조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손댈 수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강을 한 뼘이라도 자연으로 되돌리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독일을 오늘의 기술 강국으로 키워준 조상의 업적은 그대로 존중하고 보존하되, 미래를 살아갈 후손이 입게 될 환경피해는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안간힘 쓰는 마음씨가 갸륵하다.

제 나라에서 이렇게 극진히 보살핌 받는 이자르강이 요즘 엉뚱하게도 남의 나라에서 수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 측 전문가들은 이자르강의 바닥이 더 내려가지 않도록 100년 전에 설치한 구조물을 새로 만든 보와 댐이라 우기고(주8), 수많은 보들이 물을 막고 있어 이자르 강물이 깨끗한 것이라고 법정에서 위증하고 있다.(주9) 이자르강 뮌헨 전체 구간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8개를 합쳐도 오늘날 북해에 줄줄이 설치되는 현대식 풍차 세 대가 생산하는 전력량에도 못 미치는데,(주10) 이를 두고 "독일은 강을 활용하는 선진국"이라서 잘 산다고 말한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상습으로 하는 건지, 참 예의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 6월 18일 열린 4대강 사업 한강 재판에서 정부 측 전문가가 이자르강의 '보'라고 위증한 구조물. 이 구조물은 강을 가로막는 보가 아니라 두 개의 섬 사이에 위치한 낙차공이다. 이 장소는 중세시대부터 뗏목이 정박하던 선착장이었고, 이자르강보다 높이 위치한 뮌헨시 가까이로 뗏목을 대려고 강을 일부 막아 수위를 끌어올렸다. 높아진 물이 이자르강으로 되돌려지는 곳에는 낙차가 생겨 그 부분의 강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폭포처럼 생긴 낙차공을 만들었다. 1873년 건축, 문화재 지정. (이자르강 공사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 씨가 2010월 7월 5일 필자와 전화통화에서 확인) ⓒ임혜지

▲ 위의 뗏목 선착장과 함께 문화재 '앙상블'로 지정된 5단 짜리 카스카덴(폭포 계단). 100년 전 직선화 공사 이후에 강바닥이 패는 현상을 막기 위해 설치했다. (이자르강 공사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 씨가 2010년 7월 5일 필자와 전화통화에서 확인) ⓒ임혜지

▲ 한강소송 법정(2010. 6. 18.)에서 정부 측 전문가가 이자르 강의 '보'라고 위증한 구조물. 이 구조물은 정부 측 전문가가 주장하듯이 유량 확보를 위해 물을 막는 보가 아니라, 강바닥을 보호하는 하상보호공이다(높이 2.5m). 위에 얹은 다리가 100년 되었으니, 그 밑에 있는 하상 보호공은 더 오래된 것이다. 이 장소(Flaucher)는 중세 때부터 뮌헨으로 들어가는 운하가 시작되는 곳으로, 오래전부터 인공구조물들이 존재했다. ⓒ임혜지

강의 '복수' 부르는 4대강 사업…이자르강 사례서 배워야

조상을 존중하면서도 그들의 실수를 자손에게 물려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독일에 비해, 4대강 사업을 추진하는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세대에 대한 존중도 없고 현재를 사는 국민에 대한 예의도 없으며,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 역시 눈곱만큼도 없다. 우리 조상들은 독일과 같은 기술 강국의 초석을 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독일처럼 강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 보존해주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전화위복의 행운아들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조상이 지켜온 강을 함부로 훼손해서 후손에게 미칠 재난을 초래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들을 빚더미에 앉혀놓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방관하고만 있으니 정말이지 조상과 후손에게 면목이 없다. 우리는 조상이 지켜준 강을 훼손함으로써 그 분들의 공덕을 날려버리고 후손에게 무관심과 거짓의 빚만 떠넘기고 있다. 우리 세대는 무능하고 부패했던 세대로 역사에 길이 남아 두고두고 후손의 원망을 살 것이다.

4대강 사업은 누구의 임기가 끝나기만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하천공사는 나중에 조금만 돈을 더 들이면 원상복구 되는 성격이 절대 아니다. 지금 망쳐지는 만큼 허물어져 사라져 버리고 그 피해는 세밀하게 가지를 치며 폭발적으로 퍼져나간다. '하면 된다'라는 뚝심도, '어떻게 되겠지'라는 신앙도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이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에 도전해 강을 굴복시켰다고 믿었던 산업혁명의 기수들이 150년 만에 깨달은 과학적 진실이다.

내 자식을 위해 밥 짓는 일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동네로 들어오는 산불부터 끄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살기 바쁘더라도 조상이 물려준 집도 날리고 어린 자식들에게 빚만 잔뜩 남기는 계약서에 찍히는 도장 단속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4대강 사업은 아직 반도 끝나지 않았다. 한 삽이라도 덜 떴을 때 막아야 한다.

글을 쓴 임혜지 박사는 한국에서 태어나 10대 때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 칼스루에 공과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건축사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뮌헨에서 살고 있는 그는 프리랜서독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실측조사와 발굴연구를 하고 있다.

2003년 <프리드리히 바이브렌너 시대의 칼스루에
주택>을 독일 유명출판사에서 펴냈고, 그동안 인터넷 <한겨레> 등에 써온 글을 묶어 2008년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한겨레출판), 2009년 <고등어를 금하노라>(푸른숲) 등의 책을 펴냈다. 위 글은 임혜지 박사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도 함께 실렸다. (www.hanamana.de/hana)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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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자연.......그대로 내버려두기만 해도 좋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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