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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학 교수가 말하는 북한 사회 실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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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일OneKoreamovem…
댓글 4건 조회 9,909회 작성일 10-09-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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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인터뷰 기사지만 참고가 될 것 같아요^-^;;


[평양]정기풍 교수 통해 북의 실체 진단

민족통신, 김철주사범대학 정치사학과 강좌장과 특별대담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은 '재미동포경제인 대표단의 평양방문'을 계기로 이북을 방문한 기간 동안 김철주사범대학 정치사회학과 강좌장 정기풍 교수와 특별대담을 갖고 이북의 고난행군 발자취와 함께 붕괴위기 극복의 역사, 선군정치의 배경, 먹는 문제 해결대책과 그 전망 등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4가지 주제들의 질문에 정기풍 교수가 답변한 내용들을 소개한다.[민족통신/평화통신 편집실]

정기풍 김철주사범대학 정치사학과 강좌장과 민족통신과의 특별대담

[질문]이북은 일제때와 90년대 크게는 두차례에 걸쳐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계기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이유들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먼저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을 아시겠는지 모르겠는데 그 말의 유래가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의 유래는 1938년 항일무장투쟁 때 나온 말입니다. 36년 일본에서 해군총독이던 사이또가 총독이 되면서 문화통치로 바꾸게 됩니다. 그 전에는 무단통치였는데 문화통치 때는 조선사람의 마음부터 변화시켜야 한다면서 동서동군, 내선일체 이따위 소리를 하면서 조선말과 글을 말살하고 조선반도의 유명한 명산들의 정기를 끊겠다며 산 정수리에 쇠말뚝을 다 박아놓던 때가 이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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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풍 교수(김철주사범대학 정치사학 강좌장)
이렇게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김일성 장군이 항일무장투쟁을 군사적으로 전례없이 최대로 압박하던 때입니다. 정말 이대로 영영 쓰러져서 조선독립운동의 명맥이 끊어지는가 하는 가장 어려울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일본놈들이 항일무장투쟁 세력을 최종적으로 뿌리 뽑겠다고 백두산 일대, 김일성 부대가 출몰하는 지역에는 비행기까지 띄우면서 야단을 떨었습니다. 이래서 비민분리라고 공산비적과 양민 분리한다면서 집단부락을 설치한다고 하니 식량을 얻을 수가 없지, 일본놈들의 동기토벌공세가 가장 심했던 때죠. 빨치산은 여름에야 숲에도 숨고 풀도 좀 뜯어먹고 하겠는데 겨울이라는 것은-백두산의 겨울은 거울 혹독합니다- 추운데 입을 것도 없고 눈도 덮혀 먹을 것도 없고 일본놈들은 사면팔방에서 조여들지…. 그래서 그 해 겨울 김일성빨치산이 다 녹아난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심리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놈들은 ‘솔직히 말해서 김일성공산군 사령부가 다 녹아났다. 김일성 장군을 체포했다’ 별소리를 다했습니다. 체포돼서 처형됐다는 이야기도 하고…. 이래서 김일성빨치산과 연계되었던 지하 반일투사들이 다 검거되어 함흥, 서대문 형무소가 끌려가 처형되는 등 조직이 무참히 파괴되던 때입니다. 그야말로 조선독립운동은 김일성빨치산이 주류 아닙니까. 그런데 이런 상황이니 조선독립운동의 명맥이 끊어지는가 마는가했습니다.

37년도에 보천보전투가 있었잖습니까. 보천보전투가 국내 인민들에게 준 영향이 굉장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일본놈들은 저 김일성빨치산을 놔두면 안되겠다, 결정적으로 괴멸시켜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이때 김일성빨치산은 '남패자'라는 곳에서 '북대정자'까지 원정을 하기로 합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 백두산 일대로 뚫고 가서 국내 인민들에게 힘을 줘야 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몇몇 빨치산 가지고 조선독립 하는 게 아니라 조선민족 전체를 불러 일으켜야 되는데 일본놈들이 문화통치라고 해서 조선 사람의 얼을 말살시키자고 들지, 또 투쟁의 기수였던 김일성빨치산이 다 녹아나서 없어졌다고 말하지, 이렇게 말할 때 우리가 백두산 일대에 나가서 총소리 몇 방만 울려도 국내 인민들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일본놈들은 일본놈들대로 빨치산이 국경일대에 못나오도록 봉쇄하는 겁니다. 진드기작전이라고 해서 일본놈들은 병력이 많으니까 백만대군이 교대로 오늘 쓰러지면 내일은 다른 부대 이런 식으로 사면팔방에서 포위했다 이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 국내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결심으로 남패자에서 북대정자까지 행군을 하는데 100날 남짓 걸렸습니다. 여기까지 가는 기간이 보통걸음이면 천천히 가도 일주일정도 가는데 일본놈들을 꼬리에 달고 어떤 부대는 여기에다 팽개치고 어떤 부대는 저기에다 팽개치고 하면서 가니까 백날이 걸렸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이 준비기 5년, 조직적인 무장투쟁 15년 아닙니까. 그런데 조직적인 무장력을 무어서 한 32년부터 45년까지 15년 사이에 가장 힘든 행군이 이 100날 행군입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행군을 넘기는 바람에 사람 문제를 풀었단 말입니다. 그전에는 일본군이 미우니까 너도나도 투쟁대오에 나오고, 조선독립이 인차 된다니까 나도 하겠다며 너도나도 끼어들었는데 그 100날 행군동안 옥석이 가려졌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명도 변절자가 없단 말입니다.

그때가 김일성 주석께서 시작하신 혁명운동에서는 제일 힘든 고비였다면 1990년대 접어들면서 조성된 정세가 딱 그때처럼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살자는 겁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고난의 행군으로 명명할 만큼 우리 형편이 악화됐는가.

이유를 세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사회주의 시장의 붕괴입니다.
지난 시기 우리는 주로 사회주의를 함께 했던 나라들하고 경제관계를 많이 가졌습니다. 여기서는 자본주의 시장과는 달리 형제나라니까 예를 들면 우리한테 봄에 휘발유가 필요하면 돈 안주고 가을에 주겠다고 하고 먼저 가져옵니다. 가을에는 과일이면 과일, 물고기면 물고기를 줍니다. 이렇게 경제를 운영했는데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시장이 사라졌습니다. 자본주의 나라들과 처음 경제관계를 맺자니까 컴퓨터도 체계가 다르면 호환이 안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잘 모르니까 이게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사람들은 고지식하게 뭘 모르고 계약도 대강 체결해 놓고, 사회주의 때는 어깨 툭 치면 ‘아, 합시다’ 했는데 자본주의는 안 그렇습니다. 표받침 하나 틀리지 않게 하면서 안 된다 안 된다 이러니까 자본주의 나라들과 새롭게 경제관계를 가져야 하는 속에서 대외경제관계가 절벽같은 난관에 딱 봉착합니다.

둘째가 90년대 접어들면서 연이은 자연재해가 있었습니다. 실지 우리는 1960년대에 수리화가 끝나고 물문제는 완전히 해결됐었습니다. 큰 물도 모르고 가물도 몰랐는데 이때에 와서 100년대의 장마가 들었습니다. 제일 심각했던 게 저수지의 댐이 다 터져나가다나니 농토를 수만정보를 쓸어갑니다. 지금은 막말하지만 그때는 남들이 업수이 볼까봐 그런 말 일체 비밀에 부치고 못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자연재해가 겹치니까 탄광들에 침수됐습니다. 우리 탄광들은 전기로 물을 끊임없이 퍼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갱에 물이 차니까 석탄이 안나오지요. 석탄이 안나오니까 화력발전소가 못돌아가고 우리는 섬유, 피복 문제도 무연탄 가스화를 해서 석회석에서 비날론을 뽑았습니다. 그런데 석탄이 안나오니까 전기가 죽고 화학공업이 죽습니다. 화학공업이 죽으면 제일 큰 타격이 비료가 죽고 섬유문제가 걸립니다. 이렇게 연쇄적으로 되는 겁니다.
또 우리나라 철도는 전부 전기철도인데 전기가 죽으니까 철도가 다 마비됩니다. 그래서 그 전에는 기차가 일분만 연착해도 성에까지 보고 돼서 상이 야단을 때렸는데 고난의 행군 때는 달리던 기차가 레일위에서 하루동안 멎어도 대책이 없을 때도 있었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그렇게 겹친 겁니다.

전기가 없으니까 철도가 멎지, 광석을 실어나르지 못하고 전기를 대지 못하니까 용광로가 멎으니까 철이 안나오죠. 철이 안나오면 기계공장이 멎습니다. 기계공장이 멎으면 경공업공장들이 다 타격받습니다. 이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서 정말 공장굴뚝이 숨죽었습니다. 이렇게 공장이 하나둘 숨죽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식으로 연쇄반응이 나서 경제가 딱 막힌 겁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가 셋째인데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열강들의 대조선 고립, 봉쇄, 압살 책동입니다. 그때로 말하면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다른 나라들이 다 무너지고 중국은 사회주의 깃발을 들고는 있지만 워낙 큰 나라니까 호락호락 할 수 없는데다가 중미관계는 부드러운 관계가 오래 지속돼 왔습니다.

사회주의를 건설한 나라에서 우리 하나 남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사회주의 나라 중 미국과 군사적으로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도 우리 하나입니다.

거기다가 말로서 미국을 마음대로 툭툭 때리는 것은 우리 하나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외교적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미제라고 안하고 펜타곤에서는 어쩌고, 워싱턴에서는 어쩌고 하지만 우리는 말부터서 ‘미제 침략자의 각을 뜨자’는 말을 막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미국이 이번 기회에 조선을 최종적으로 압살해야 한다고 여긴거죠.
각을 뜨자는 것을 남쪽에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각을 뜨자는 말이 왜 나왔는가 하면 옛날 소련이 미국과 짝짜꿍하면서 수정주의 할 때 큰 나라가 미국과 가까이 지내니까 작은 나라가 미국을 어떻게 당하겠냐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이럴 때 수령님께서 작은 나라들이 힘 합치면 미국을 당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어떤 나라는 왼쪽 팔 잘라내고 어떤 나라는 오른쪽 팔 잘라내고 그럴 힘도 없는 나라들은 꼬집기도 하고 눈깔도 찔러놓고 하다못해 머리카락이라도 잡아 뽑고 이렇게 사방에서 미국을 협공하면 미국도 못견딘다고 하셨습니다.

각을 뜬다는 말이 짐승을 잡을 때 사지를 뜯어내는 것이죠. 그래서 작은 나라들이 단결해서 미국의 사지를 뜯어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정 힘 없는 나라는 하다못해 머리카락 잡아 뜯고 꾀집기라도 해라. 솔직히 말해 모기 만 마리가 덤벼들면 곰도 못 견디는 거고…. 민족통신에서 읽은 것 같은데 아프리카에서 개미가 곰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그런 식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미국을 제일 욕하니까 미국은 우리를 미워했는데 50년대 군사적으로는 안됐고 사회주의는 다 무너졌지 경제적으로 어렵지 이번 기회에 압살하자고 한 겁니다.
이래서 우리에 대한 봉쇄가 첫째 군사적 압력 도수를 높입니다. 계속 전쟁장비 끌어들이고 전쟁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반도란 쬐끔하다보니 전쟁연습에서 비행기 몇 대만 뜨면 -지금은 현대전 시대 아닙니까- 눈 깜짝할 사이에 타격하면 일차 타격받은 데는 소생하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군사적으로 늘 긴장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인권문제, 종교문제, 탈북자 문제 해가지고 우리를 굉장히 헐뜯는데 전 세계가 미국의 목소리는 듣지만 우리 목소리는 세계에 멀리 나가지 못합니다. 미국놈들 말만 듣고서는 진짜 북에서는, 민족통신에서 봤는데 종교 믿는 사람들 용광로에 집어넣는다고, (웃음) 지금이 어느 땐데 문명시대에 그런 야만적인 전설같은 말을 하는가 했는데 실제 우리를 대고 그렇게 선전했답니다. 이게 정치적 압박입니다.

경제적으로 일체 우리에게는 자금도 꿔주지 않고 물건도 사고팔지 못하게 했죠. 유통부문, 금융부문 등 일체 우리를 봉쇄했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디 가서 마그네사이트 팔겠다 하면 미국의 영향 받는 다른 회사가 값을 팍 떨궈(낮춰)놓습니다. 우리 것이 안팔리죠. 우리가 뭐 사오겠다고 하면 값을 팍 올립니다. 경제봉쇄 기가 막힙니다.
이래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리를 압살하기 위한 책동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로 해서 우리가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됩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2.]유럽 사회주의가 붕괴된 원인과 이북의 사회주의가 그렇지 않았던 그 이유들과 배경은 무엇때문인지 설명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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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풍 교수
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첫째는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겁니다. 예컨대 사회주의 원칙이라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 사회주의의 고유한 관리운영방식,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세력들에 대한 방어대책 이 세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소련사람들은 미국놈들이 사상의 다원화를 이야기하면서 지금은 탈이데올로기 시대니까 여러 가지 사상을 도용해라 하니까 여러 가지 사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나니까 반사회주의 사상이 소련이 막 쓸어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보고 왜 북에서는 주체사상 한 가지만 교육하고 다른 사상은 탄압하는가고 하는데, 이 기회에 명백히 말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상탄압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어느 땐데 문명시대에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사상을 탄압합니까. 그럼 왜 학교에서는 주체사상 교육만 하는가. 이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는 자식에게, 모든 스승은 제자에게, 모든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국가는 자기 인민에게 좋은 것을 가르쳐주려고 하지 나쁜 것을 가르쳐 줄 수 없지 않습니까. 성경책에서도 자식에게 뱀을 갖다 주는 아버지는 없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선배는, 아버지는, 스승은 자기 제자, 자기 아들에게 좋은 사상을 물려주고 싶은 겁니다.

우리는 살아오는 과정에서 실천으로 경험했습니다. 주체사상이 창시된 게 30년대 아닙니까. 우리도 실존주의도 연구해봤고 미국이 번영한다 해서 미국의 정치철학인 실용주의도 제가 공부 많이 해봤습니다. 토마스철학이요 스콜라철학이요 종교철학이요 다 연구해봤는데 제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공부시킬 것은 주체사상 이상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체사상 교육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데 교육을 해도 싫은 사람은 다른 사상을 따라가라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회주의 나라들에서는 사상의 자유화 이야기하면서 반동사상을 먹이는 겁니다. 한가지 이야기할 것은 사회주의에서는 여러 사상이 있을 자리가 없다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적대되는 세력들이나 여러 계급계층이 있지 않습니까. 매 계급계층이 자기 사상이 요구되고 자기가 정권을 잡고 싶어하는데 사회주의 사회는 착취계급이라는 게 없고 전체 인민이 근로자입니다. 하나의 계급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사상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마땅히 근로자들의 지향을 대표하는 사상이니 만큼 그걸 양보하지 말아야 하는데 지배착취계급, 반사회주의 사상을 허용한 겁니다.

또 하나는 사회를 관리하는 방법이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고유한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돈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지 않습니까. 모든 가치가 화폐관계에 의해 규제됩니다. 진리의 현금가치는 돈이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건 자본주의 사회의 고유한 것이고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이념, 마음으로 해나가는 사회입니다. 그 마음이 사회 전체를 포괄할 때라야 집단의 위력이 나오는 겁니다. 이 말을 간단히 하면 자본주의는 개인주의 사회고 사회주의는 집단주의 사회입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기본 징표는 개인주의냐 집단주의냐 인데 사회주의는 집단주의이기 때문에 집단주의적 방법으로 운영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종업원이 30명 되는 공장을 운영한다 합시다. 자본주의는 종업원에게 돈을, 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돈 더 많이 주는 방법 등으로 운영하고, 사회주의는 이 방법을 전혀 무시하지는 않지만 이건 보조적이고 기본은 종업원들을 사상적으로 계몽해서 필요성을 설명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옳다’ 이렇게 의견 합의를 봐서 나가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이 원칙을 어기고 자본주의적 경영방법을 받아들인 겁니다.

건강한 사람도 절뚝발이 노릇을 계속하면 절뚝거리게 되고, 제대로 말하던 사람도 ‘떼떼떼데’ 하는 훈련을 한 30분만 하면 자기도 모르게 ‘떼떼’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기능에서 변화가 오면 체질에서 변화가 오기 마련입니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의 고유한 방법대로 운영해야 하는데 자본주의적 경영방법을 받아들인 것이 무너뜨리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다른 사회주의가 무너진 원인은 셋째로 가장 중요한 건데 제국주의에 굴복한 겁니다. 미국이 협박하니까 무릎을 꿇은 겁니다. 종교 받아들이라면 종교 받아들이고 미국이 황금만능주의 경영관리방법을 받아들이라면 그걸 받아들이고 이렇게 한걸음 한걸음 양보한 게 마지막에는 무너졌습니다.

사회주의는 집단주의 원리에 의해서 관리운영하는 겁니다. 사람들의 사상을 발동하는 겁니다.

사람들을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그들의 자각성을 발동하는데 기본을 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물질적 욕구를 자극하는 방법으로 한 겁니다. 사회주의 사회에도 가치법칙이 작용합니다. 그러나 가치법칙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보조적으로 작용해야 합니다. 기본은 정치도덕적 자극이고 물질적 자극은 그것을 안받침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사상사업을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물질적 자극이 기본이고 사상동원사업은 보조적입니다. 이렇게 순서가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주의는 왜 무너지지 않는가.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는 사회주의가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 뿌리 내렸기 때문입니다. 동유럽 사회주의는 소련군대의 방조하에 이뤄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사회주의는 순 우리 힘으로 건설한 겁니다. 그럼 북에서는 소련이나 중국의 지원을 받지 않았냐? 아니 받았지요. 그렇지만 기본은 소련이 우리에게 돈을 주면서 너네 협동조합을 건설해라 국유화를 해라 이런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소련이나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애를 먹은 게 그겁니다. 자꾸만 자기네 식으로 하라 이겁니다. 우리가 농업협동화를 하겠다고 하면 시기상조라고 하지, 또 무슨 주요 산업 국유화를 하겠다면 그것도 안된다지 자립경제건설 하겠다면 세브에 들라 하지, 이런 압력을 계속 받아온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걸 물리쳤습니다. 물론 그들의 권고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때는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큰 나라라는 것은 작은 나라가 제 말을 안들을 때는 압력을 가합니다. 원래 사회주의란 그래서는 안되는데 그 나라 사회주의 하는 지도자들이 사회주의 사상으로 완전히 투철하지 못하니까 압력을 가합니다. 예전 56년도인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소련의 후루시초프가 베이징에서 평양에 오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소련 총비서가 온다는 바람에 순안비행장에 평야사람 수만명이 환영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소련대사가 후루시초프에게 알려준 게 비행장에 수만명이 나왔다, 그런데 붉은 깃발 들고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후루시초프가 붉은 깃발을 다 내려라 그래라, 붉은 깃발 흔들면 나 평양 못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붉은 깃발은 사회주의의 상징이고 후루시초프는 한창 미국하고 밀월관계를 즐길 때였습니다. 평양에 오면 미국 욕하는 말을 해야 되겠는데 붉은 기까지 들고 나온 인민들 앞에서 미국 욕 안하고 혁명이라는 말 안하면 체면 안 되겠으니까 붉은기를 내리지 않으면 안 오겠다고 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후루시초프가 안와도 산다. 하지만 붉은기 내리고는 못산다. 이래서 우리는 붉은기를 안 내렸습니다. 환영군중이 손깃발을 내리지 않은거죠.

후루시초프가 집권할 때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은 후루시초프는 평양 안가 하면서 베이징까지 왔다가 도로 소련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역대 소련 총비서가 한번도 우리한테 안 왔습니다. 그 후 브레즈네브가 할 때 푸에블로호 사건 나지 않습니까. 제가 브레즈네브 욕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우리 도와준 것도 많은데 이런 측면에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 우리가 푸에블로호 잡으니까 미국이 전쟁하겠다고 하지요. 브레즈네브는 계속 돌려주라고 합니다. 우리는 못 돌려줍니다. 1월29일에 잡았던가 하는 것을 12월달까지 버티고 안줬습니다. 미국 정부가 항복을 해도 병사만 보내고 배는 안줬습니다. 병사는 명령받고 집행했기 때문에 정부가 사죄해라, 함장 사죄 가지고는 안된다는 겁니다. 미국 정부가 사죄하고 몇 시간 후에 돌려줬습니다. 최초로 미국이 사죄문을 쓴 거죠. 이렇게 우리는 소련말 듣고, 다른 사람 말 듣고 사회주의 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다른 나라에서는 좋은 겅험도 우리에게 맞으면 받아들이고 안맞으면 안받아들였습니다. 자본주의 경험도 좋은 것은 받아들이는 거죠. 우리에게 맞지 않으면 안받아들입니다.

이렇게 하다나니까 우리 사람들이 사회주의라는 게 참 좋은 거니까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에서 북한 주민들이 배고픈 고생을 좀 더 하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고난의 행군 하면서 우리 사람들은 반대로 사회주의만이 살 길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 사회주의 원칙이 제대로 작용할 때에는 전구 국가가 헐값이나 다름없이 주니까 쌀값, 물건값 이런거 모르고 살았습니다.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집에서 돈 주무르는 아낙네들도 제 주택 사용료를 모른단 말입니다.

그런데 고난의 행군하면서 국가가 쌀을 주지 못하니까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쌀 사먹는 겁니다. 그때가 되니 비로서 ‘야, 우리가 얼마나 편하게 살았는가’ 하게 됐습니다. 약값이라는 거 모르지, 쌀값 모르지, 그때 비로소 사회주의를 지키면 우리 아들, 손자 다 쌀값, 집값, 약값 모르고 살겠는데 사회주의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 아들, 손자는 비싼 돈 주고 쌀 사먹어야 되는구나. 우리가 억천만번 죽더라도 자식들에게 사회주의를 지켜서 물려주어야 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됐습니다. 이 정도면 사회주의가 우리 인민들 마음속에 뿌리내렸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게 첫째고 둘째는 영도자 문제입니다. 사회주의 나라 지도자라고 해서 다 잘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잘하는가 못하는가의 기준은 한가지입니다. 인민대중의 마음을 어떻게 읽어내는가 이겁니다. 그리고 인민대중에게 얼마나 충실하려고 하는가 입니다. 인민대중의 마음을 읽고서도 인민의 마음에 맞게 할 능력이 없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영도자의 첫째는 인민의 마음을 읽어내는 겁니다. 그런데 사회주의 하다 망한 나라 지도자들은 인민의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관료주의를 하고 제 개인의 생각을 직권으로 내리먹이자고 들니 세상 누가 견디겠습니까.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오는 50년 동안 폭동한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게 공산독재가 세서 그렇겠습니까. 독재는 아무리 세도 히틀러독재도 망하고 일본의 도죠 히도끼도 망하고, 이탈리아 무쏠리니 독재도 다 망했습니다. 독재가지고는 50년 넘게 사람을 기만하지 못합니다. 연설 잘하면 하루이틀, 일이년은 속일 수 있겠지만 50년은 아닙니까. 50년은 옹근 두세대가 아닙니까. 우리 장군님이 정치경력이 아주 오래지만 정식 정치활동만 꼭 40년입니다. 독재를 해서 영리한 우리 인민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인민이 뭘 희망하는가 뭘 싫어하는가 그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긴 얘기 괜찮겠습니까. 지난 46년 31 운동절을 맞으면서 그래도 해방이 되었는데 그냥 보내겠는가 하면서 북조선 사회의 지도급 인사가 다 모이고 우리를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 모여서 지금말로 국가연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큰 연회장이 없다나니 어느 학교에 연회상을 차리는데 방이 너무 좁아서 아무리 해도 사람을 다 넣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걸상 다 들어내고 서서 먹는 연회를 차렸습니다. 그런 연회를 차렸는데 그날 저녁에 당장 우리 김일성 주석님한테 신소 편지가 들어왔습니다. 서양 것이 아무리 좋아도 음식 서서 먹는 문화만은 받아들이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 수령님께서 평생 말씀하신 게 앞으로 우리나라에는 절대로 서서 먹는 연회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청류관에 가면 올방자 틀고 앉아 먹는 자리가 있는데 청류관 설계할 때는 그게 없었습니다. 멋쟁이 식당 만들었다니까 내 한번 가보자시며 장군님께서 가셨는데 보시니까 다 좋은 데 앉아 먹는 식사칸이 없단 말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옛날부터 올방자 틀고 먹는 거 좋아하는데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만들라고 하신 겁니다. 정치를 전부 이런 식으로 하는데 인민들이 싫다 할 턱이 있습니까. 이게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그 나머지 영도수완이 비범하다 이건 다 그 다음입니다. 김정일 장군이 잘 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주의가 안무너졌습니다.

[질문3]로동신문을 보면 흔히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주력군으로 내세우는 글들이 많이 나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인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그것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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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풍 교수
다시 말해 선군정치가 무엇인가 하는 말과 비슷하다고 보는데 선군정치 하면 크게 두가지 내용입니다. 하나는 인민군대를 강화해서 자기 힘으로 자기 나라를 지킨다는 뜻이고 두 번째는 인민군대를 중심으로 해서 나라 사업 전반을 추켜세운다는 겁니다. 저는 두 번째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참고적으로 인민군대를 주력군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만 제기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서로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여러 세력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군대가 중립을 지켜야지 군대가 어느 한 당, 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면 이건 군대가 나쁜 기능을 하게 됩니다. 반대파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기능이 되는 거지요.

사회주의 사회는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세력이 없습니다. 전체인민이 다 같은 사회주의 근로자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에서 인민군대는 말 그대로 인민의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를 주력으로 내세운다는 말이 안통할 겁니다. 돈이면 된다는 말이 통할 겁니다. 그래서 세금조절 잘하고 통화정책 잘하고 이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습니까. 사회주의는 돈이 아니라 사람들의 정신이 운영의 기본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전체가 하나의 집단으로 된 사회이기 때문에 그 집단을 움직이는 기본 원리는 정신이 되는 겁니다. 때문에 사회주의 사회를 움직이는 데서는 사상이 기본입니다.

그럼 어떤 사상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나가겠는가 할 때 첫째가 인민군대의 군인정신, 딱 집어서 말하면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겁니다. 그럼 혁명적 군인정신이 무엇인가 하면 세가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수령결사옹위, 이건 풀이 안하겠습니다. 자기 영도자의 권위를 최고로 내세우고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수령의 명령 지시 결사관철 정신, 최고영도자의 구상은 인민의 의사를 집대성한 것이기 때문에 수령님의 명은 무조건 집행한다는 것은 조국과 인민의 요구를 무조건 관철한다는 뜻이 됩니다.

셋째로 조국과 인민을 위한 영웅적 희생정신입니다. 이 희생정신이란 말은 목숨을 버린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고 조국과 인민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한다는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빈터위에서 발전소 건설하라면 건설하고, 빈터 위에서 닭공장 건설하라면 건설하고 어떻게 해서든 조국과 인민의 요구를 결사관철하는데 그걸 하는 기풍이 자기 한몸을 다 바칠 정도입니다. 그래서 영웅적 희생정신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지난 80년동안 우리 인민에게 체질화된 것으로 한순간에 이 정신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많이 다니면서 감으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인민군대의 정신을 따라배운다고 할 때는 이 세가지입니다. 이 세가지를 좀 더 풀이하게 되면 결국 수령을 왜 내세우는가 할 때 수령은 조국과 인민의 최고대표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애국, 애족, 애민 이런 말 하지 않습니까. 애국이란 어디서 표현되는가. 이건 나라와 민족의 최고대표자인 수령과의 관계에서 표현됩니다. 그러니까 가정이 화목한가 볼 때는 가장이 가족 성원들로부터 존경받는가를 보면 되는데 그와 비슷한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혁명적 군인정신을 애국, 애족, 애민의 최고표현이라고 말해도 됩니다. 그래서 조국과 민족, 인민대중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다 바치는 정신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 구체적으로는 혁명적 군인문화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군사문화를 다 철폐하는데 북조선에서는 군사문화라는 말을 왜 씁니까 하는 질문을 받아봤습니다. 군사문화라는 것은 군사파쇼독재, 즉 지배계급의 수중에 장악된 무력을 가지고 인민대중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군인문화는 조국과 인민을 사랑하는 정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는 낙관주의 정신, 군대가 벌써 의기소침해지고 후퇴하기 시작하면 안된다, 군대는 아무리 힘들어도 기관총탄이 쏟아지는 속에도 돌격하라면 돌격하는 것, 이런 가운데 이야기하는 것이 군인문화입니다.

그 다음에 어려움이 겹칠수록 알뜰하고 문화적으로, 깨끗하고 깐지게(깔끔하게) 살아가는 풍모입니다. 먹을 것이 없고 어려움이 겹친다고 해서 거리와 마을을 어지럽게 하고 되는대로 사는게 아닙니다. 오늘 저녁에 전쟁이 터져도 아침에는 목칼라 깨끗하게 빨아서 입고 단추 다섯 개 잠그고, 먹을 걱정 추운 고생 하지만 거리와 마을을 더 깨끗하게 해놓고 생활을 더 절도있고 규모있게 꾸리는 것이 다 군인문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들이 캠퍼스 청소한다고 하면 군대처럼 깨끗이 하자고 합니다. 군대는 모든 곳에서 모범이 되는 겁니다.

군인정신을 따라배우자는 것은 군대가 가장 모범적인 정신을 발휘하고 군대에서 창조되는 좋은 정신을 전체 인민이 따라하자는 겁니다. 노래 하나를 불러도 눈물이나 줄줄 나오는 퇴폐적인 노래 말고 신나고 고향을 사랑하는 따뜻한 노래, 선배를 존경하는 우정 넘치는 노래, 동무들과 함께 하는 힘나는 노래를 군대가 먼저 창출하고 인민이 따라간다는 의미에서 군대를 내세운다는 겁니다.

두 번째 의미는 인민군대를 단결의 핵심으로 내세운다는 말입니다. 사회가 옳게 발전하자면 사회 모든 성원들이 한마 음 한 덩어리로 뭉쳐야 합니다. 뭉치는 데는 핵심이 있어야 합니다. 복숭아를 비유하자면 안에 복숭아 열매가 있고, 보호하는 껍데기가 있고 그 위에 살갗이 있고 살갗 바깥에 얕은 막이 있습니다. 더 말하자면 복숭아의 씨가 충실해야 살이 잘 찌고 여물 것입니다. 벌써 씨가 병들면 살이 안 되죠.
이런 것처럼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하나로 굳게 묶어 세우는 데는 핵심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단결의 중심이 수령이라면 수령주위에 결사의 각오로 뭉친 집단이 인민군대입니다. 인민군대를 본보기로 해서 전체 인민이 뭉치는 겁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우리 최고영도자 김정일 장군께서 온 나라의 토지를 정비하자고 방침을 내놓으시면 군대가 먼저 일어납니다. 그럼 인민들이 군대가 하는데 우리가 가만있겠냐 하면서 일어납니다. 단결의 중심에 군대가 서있는 겁니다.

셋째로는 군대를 기둥으로 해서 사회주의 나라 사업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낀다는 말입니다. 전선이 형성될 때 어느 한 구멍을 뚫으면 다 뚫고 나갈 수 있는 중심고리, 이것을 군대가 맡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경제사정에서 가장 어려운게 전기다 하면 발전소 건설을 군대가 먼저 한다는 겁니다. 군대가 먼저 발전소를 건설해 놓고 ‘봐라 이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하면서 우는 소리 하지 말고 하자는 겁니다. 이렇게 군대가 앞장에서 돌파구를 열어놓고 전체 인민이 그걸 본받아서 합니다. 요약해 말하자면, 사상 정신적 풍모에서 보나, 일을 제껴나가는 기질과 일본새로 보나 모든 면에서 군대를 본보기로 내세우고 전체인민이 군대를 따라서 군대처럼 해나간다 이런 말입니다.

이를 잘못 왜곡하게 되면 ‘아 북에서는 군대처럼 사열횡대로 줄 세워서 앞으로 갓 이렇게 하는가 보구나’ 하는데 문명시대에 그런 사람은 없겠습니다만 지난 시대에는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체 인민을 병영식으로…. 기가 막히죠.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병영식으로 하다니 말도 안됩니다.

[질문4]정기풍 교수께서 서두에서 지적하셨지만 일제시대에 이어서 분단시대, 특히 90년대에 거듭된 고난의 행군시기에 우리 해외동포들이 생각하였던 것 보다 훨씬 더 고생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북으로서는 먹는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이며 그 대책과 전망에 대하여서도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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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풍 교수(김철주 사범대학 정치사학과 강좌장)
다른 나라는 먹는 문제 하면 다른 나라에서 쌀 사오는 것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는 먹는 문제에서 기본은 농사를 잘 지어서 자체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겁니다. 이것이 총노선입니다.

그럼 그 방도가 뭐냐. 첫째가 종자 문제입니다.
이 종자문제 해결에서는 기본이 우리나라의 기후풍토에 맞는 우량품종을 개발하는 겁니다. 개발에는 두가지가 있죠. 하나는 우리 자체로 연구하는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외국의 우수한 종자를 가져와서 풍토순화하는 거죠. 우리 풍토에 적응시킨다는 거죠.

우리는 자체로 연구하기 위한 사업에 큰 힘을 넣어서 일정하게 파악이 생겼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외국에서 가져오는 데서는 해외동포분들의 노력이 굉장했습니다. 사실 쌀을 10만톤 매고 오는 것보다 종자 한 줌으로 조국에 도와주는 사람이 정말 문익점 같은 사람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좋은 과일나무 종자 하나, 옥수수 종자, 감자 종자, 좋은 토끼 종자가 중요합니다, 쌀을 10만 섬 가지고 오는 사람도 고맙습니다만 종자를 가지고 오는 것이 더 힘들지 않습니까. 오죽하면 문익점은 붓대속에 넣어왔겠습니까. 우리 과학자들이 고심어린 연구를 하고 해외 여러분들이 애국의 마음을 발휘해서 종자 문제가 일정하게 파악이 생겼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힘을 넣은 것은 토지 정리입니다. 그전에는 토지개량이라는 말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토지정비라는 말을 씁니다. 토지개량이 나쁜 땅을 좋은 땅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토지정비란 뙤기밭-올망졸망한 밭들-을 큰 규모의 규격포전으로 만드는 겁니다. 이것을 고난의 행군시기에 30만정보 했습니다. 털어놓고 말해 이 규격포전에서만 제대로 생산해도 먹는 문제 기본적으로 풀릴 수 있습니다. 30만 정보에서 10톤씩만 나오면 300만톤인데 이 정도면 북 주민 먹고도 남습니다. 우리 총 경지면적이 200만정보 됩니다. 아직 10톤이 못 나오지만 이건 조만간에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들어도 이걸 하는 겁니다.

농사 문제에서는 다른 하나 중요한 것은 물문제입니다. 우리는 수리화를 60년대 기본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싹 파괴되서 물문제가 걸리고 전기가 보장되지 않아 양수기를 돌리지 못해 애먹었는데 최근 자연흐름식 물길이라는 것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은 일체 동력을 쓰지 않고 지형이 생긴 모양대로 물길을 돌림으로써 물이 저절로 자연적으로 흘러내려가면서 관개를 보장하는 겁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천-태성 물길인데, 이걸 통해서 평남도 일대 10만 헥타르를 적십니다. 이건 양수기를 돌리지 않기 때문에 정전이 되도 물이 저절로 해결됩니다. 평남도 10만 정보는 완전 풍년입니다. 평북도에서는 백마-철산 물길공사를 하는데 백마에서부터 철산까지 자연흐름식 물길입니다. 이것 역시 양수기 한 대도 쓰지 않고 평북도 일대 수만 정보를 적시게 됩니다. 황해남북도 일대는 서해갑문 물을 가지고 적십니다. 이렇게만 되면 황해남북도, 평안남북도 물 문제는 완전히 풀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종자가 전망 있고 토지 정리됐고 물문제가 풀립니다. 비료관리 잘하는 문제, 유기질 비료 쓰는 문제는 다 그 다음 문제입니다. 끝으로 중요하게 내세우는 게 감자농사하고 두벌농사입니다.

감자농사는 지난 시기 크게 장려 안했는데 최근 우리나라 기후 조건을 볼 때 북부산간지대는 감자를 심는 게 수확고를 결정적으로 높이는 고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옥수수를 심으면 두 정보도 못나오는 땅인데 감자를 심으면 40톤 이상이 나온단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4 대 1로 계산하면 강냉이 10톤이 맞먹지 않습니까. 최근 70톤까지 내왔는데 못 나와도 40톤까지는 나옵니다.

그 다음에 두벌농사인데 우리나라 중간지대인 평안남북도, 강원도 일대, 함남도 일부 지역 이남은 두벌농사가 거의 다 가능합니다. 두벌농사는 종자문제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먹는 문제를 풀어가자고 하는데 금년도를 고비로 해서 먹는 문제를 자체로 해결하자는 것이 우리 당과 정부의 기본노선입니다.

이 정도면 질문에는 기본적인 대답이 된 것 같고 몇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피해상황에 대해 몇백만이 죽었다고 말했는데 그건 말짱 거짓말입니다. 실지 굶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고생으로 말하면 죽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훨씬 힘들었습니다.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더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한창 고생할 때는 남들이 업수이 여길까봐 고생스럽다는 말도 못하고 참았는데 이제는 다 이겨냈기 때문에 승리자의 긍지를 가지고 말하는 겁니다.

비유해 말하면, 과학자들은 실패하다 성공하면 실패도 성공에 속한다고 말하지요. 우리도 그렇게 큰 어려움을 이겨냈구나 하는 긍지, 자랑스러움, 앞으로 더 큰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천리길을 걸어본 사람한테는 십리길, 백리길이 힘든 것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남들이 상상할 수도 없었던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유럽사람들은 빠다를 먹으면서도 사회주의를 지키지 못했지만 우리는 바깥에서 통강냉이 먹는다고 소문났지만 통강냉이도 없어서 대용식품이라고 해서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먹으면서도 이겨냈다는 데서 방점이 있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에 이제는 그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다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약이나 도박이 아무리 나쁜 것이라고 해도 일단 마약이나 도박, 오입질에 맛들이면 떼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를 못살게 구는데 맛들인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우리를 못살게 굴 수도 있겠죠. 이런 것도 각오합니다.


[출처 : 노길남 특파원 2005-09-30]

민족통신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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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님의 댓글

이선희 작성일

서로 싸우지 말고 잘 화해하면 좋겠어요 그저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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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님의 댓글

통일 작성일

참 귀한 글을 올려주셨군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닫게 해주는 글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좋은 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민족은 꼭 평화적으로 통일되어야만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통일을 잊고 지내는 지금의 세대가 모두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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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님의 댓글

나그네 작성일

헤어져 살아온 60년이 되다보니, 같은 한글을 쓰는데도 어투와 어휘가 낯설게 느껴지는 구절들이 눈에 띄네요. 이렇게 백년이 가다보면 남북은 말이 완전히 달라질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서 서로간의 교류를 더 돈독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이 공존해야 하는 한겨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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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신자님의 댓글

기독신자 작성일

내 이웃 사랑, 우리 북한동포에 대한 사랑을 먼저 이웃사랑 실천으로 가면 좋을꺼 같아요 ^*;
마침 요즘 남북화해 기미 보이네요...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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