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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우금치에서 죽으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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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논가외딴우물
댓글 0건 조회 3,362회 작성일 10-11-10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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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우금치에서 죽으라는 것입니까?”
(서프라이즈 / 논가외딴우물 / 2010-11-11)


지난 10월 31일에 홍대 앞 포장마차에서 ‘국민의 명령’ 번개가 있었습니다. 문성근 대표의 인사말이 인상깊어 현장을 중계하던 ‘라디오 21’에 영상을 부탁했는데 이게 어제 왔군요….

메일로 전달하려 용량을 줄여서인지 그리 좋은 품질의 영상은 아니지만, 이 인사말을 듣고 있자면 왜 그가 온 나라 방방곡곡을 다니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설명을 하고, 유인물을 전달하는 등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지… 그리고 왜 하필이면 동학 농민군이 대패한 우금치에 11월 13일에 모이자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요약 편집해 보았습니다.

우금치는 1894년 동학 농민군이 2차 봉기를 일으키고 나서 대패한 장소입니다. 이 패배로 말미암아 반봉건, 반외세를 목표로 했던 ‘동학 농민 운동’은 실패의 길을 걷게 됩니다.

남원에 주둔하고 있던 김개남의 농민군이 합류하기를 거절한 가운데, 전봉준이 이끄는 남접과 손병희가 이끄는 북접의 연합군 20만 명은 음력 11월 9일부터 14일까지의 전투에서 일본군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조일연합군에 의해 거의 전원이 도륙을 당했고, 이로써 순박한 농부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던 ‘동학 농민 운동’은 마침내 실패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조선이 정조 대왕 사후에 근대화에 실패했고, 세도정치로 빚어진 부패와 외세에 기대는 기득권의 무능으로 망했다고 한다면, ‘동학 농민 운동’의 실패는 일정부분 근대적 민주주의 또는 사회주의적 실험의 실패로도 볼 수 있는바, 정치 사회적 개혁에 성공하지 못해 마침내 일제 36년에 이어 분단의 현대사를 겪게 된 것이라면 이 패배는 매우 뼈아픈 교훈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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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개남 장군과 동학 우금치 혁명탑

오늘날 우리의 현실 또한 그리 밝지 못합니다. 당시 동학군에 참여했던 김구 선생의 암살이 보여주듯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 36년은 물론, 광복을 이룬 이후에도 외세와 결탁해 부와 명예만을 탐닉해온 반민족 수구 세력의 뿌리는 더욱 거대해졌고, 이들의 오만과 욕망은 결국 분단의 고착화 등 역사적 문제뿐만 아니라, 가까이로는 상상할 수 없는 부의 양극화로 우리 서민 대중을 힘겹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 수구 세력들은 이제 국가라는 권력의 틀마저도 바꾸고 있습니다. 자본과 언론, 정치권력이 결합해 영원히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해도 그 대통령이 권력이 아닌 세상에 우리는 살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니, 이미 그런 세상이 되었음을 우리는 노무현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지만 여야가 모두 우습게 대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가진 자, 자칭 배운 자, 힘있는 자들에게는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그의 실패와 죽음에서 알게 되었던 것이고, 이는 결국 국민의 주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들은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제는 물론이려니와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해 온 강산마저도 안중에 없는 악귀들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버린 이 악귀들은 왜 돈을 버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는, 그야말로 짐승들과도 같습니다.

오직 벌기만 합니다. 남의 것을 탐내는 정도가 아닙니다. 속이고 것도 빼앗는 것도 능력이라는 식의 의식이 팽배해진 이 사회는 이제 도둑놈들이 적반하장격으로 선량한 서민을 능력 없다고 해대는, 그런 해괴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양심적 가치도 소용없는 사회에서는 국가라는 틀도 결국 무의미해집니다. 언론은 자본에 휘둘리고 공생합니다. 정치는 돈의 있고 없음에 따라 왜곡되고, 언론의 먹잇감이 됩니다. 점차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사적 자본이 대신하는 일이 낯설지 않아지는 현실을 되짚어가면 그곳에 더러운 돈과 더러운 집단이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 등을 돈을 주고 해결하거나 권력과 연줄을 이용해 빠져나가는 현실을 매일 보면서 어떻게 국가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인 제가 군대에 가기를 온갖 방법으로 회피했던 가증스러운 인간들이 만드는 정책에 구속받아야 한다는 현실은 마치 악몽과도 같다 할 것입니다.

‘동학 농민 운동’의 정신은 3·1 운동으로 계승되었고, 독립운동은 물론 현대사 속에서의 반독재 투쟁 등에 중요한 정신적 토양을 제공했습니다. 1894년에 이름없는 농민들은 우금치에서 외세의 힘으로 농민을 학살했던 야수들에 의해 죽고 또 죽었지만, 그럼에도 야수들의 광기 어린 눈을 마주하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이를 계기로 마침내 성숙한 지식인과 양심적인 양반들은 갑오개혁 등 부분적 성과를 이루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항일 독립운동을 함께하는 성숙함으로 계승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이 마침내 독립을 이루어낸 역사,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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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3일, 그 우금치에 모이자고 문성근이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금치에서 죽으라는 것입니까? 함께 죽자는 것입니까?”라고 묻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아니라고 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면 또 죽겠지만, 그는 그 한 맺힌 핏빛 능선을 살아 넘겠답니다. 여러분과 함께 넘겠다고 합니다.

우금치를 넘어 한반도의 남쪽 전체로, 그리고 북으로, 아시아로 유럽으로, 대륙으로 바다로 널리 횃불을 들고 가자고…, 그가 외치는 모습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날만 추우면 이 고생을 잘도 시키던 분은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것도 팔자인 겁니다. 날도 추울 테니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나도 가렵니다.

죽을 수밖에 없다면 또 죽을밖에 별 힘은 없지만, 우금치를 함께 넘으면서 또 다지고 다지겠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칼날처럼 이번에는 기필코 뒤집어보겠다는 각오를 벼리고 또 벼리고 오겠습니다.

 

논가외딴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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