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남의 나라 이야기였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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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작성일 10-12-10 10:25 조회 4,035 댓글 2본문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던 그때, 미국은 상당히 분열 상태였습니다. 전체 득표수는 앨 고어가 더 많았지만, 일렉트롤 칼리지라고 불리우는 대통령 선거인단의 숫자를 더 많이 가진 것은 부시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플로리다의 선거에서 당시 주지사를 하고 있었던 조지 부시의 동생 젭 부시가 히스패닉 표를 상당히 끌어모아 공화당에 투표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훗날의 이야기였습니다. 젭 부시의 아내는 히스패닉계여서, 이같은 일도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어쨌든, 이 선거는 결국 대법원의 개입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조지 부시의 당선 이후 대법원 판사의 임명이 있었습니다. 이때 조지 부시는 무척 숙고해서 자기 편이 될 수 있는, 즉 보수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꽤 인기있는 '투나잇 쇼'의 사회자가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대법원을 무척 중요한 기관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으니까." 직접투표였다면 더 많은 표를 받아 고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을것을, 선거 제도 때문에 부시가 대통령이 된 것을 비꼬는 농담이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삼권분립이라는 말과 거의 같습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이 삼권분립제를 도입했을 때, 그것은 솔직히 인간의 선한 성품보다는 좀 악한 쪽을 고려해 만든 것과 같습니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적절히 서로를 견제하는 것. 야심가들이 서로를 견제하여 누군가가 홀로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제도의 골자였습니다. 문제는 이게 세계에 '민주주의의 전범'이 되어 퍼졌다는 것인데, 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는 나라들에서는 이 제도가 그 골간이 유지돼지 못했다는 겁니다. 삼권분립보다는 대통령에의 권한의 집중이 이뤄졌고, 이로 인한 폐해들이 세계 곳곳에서 속출했습니다. 그래도 이 대의민주주의, 즉 '의회민주주의'는 나름으로 국민들의 뜻을 정치에 반영할 수 있기에 많은 곳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민주주의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이 중요하고 그 존재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번 예산안 통과과정에서 보듯, 의회, 즉 입법부의 여당은 그냥 거수기가 됐습니다. 이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인민대표자회의와 다를 게 뭔가 싶습니다만. 하긴 우리나라에도 북에 질세라 그런 전통(?)들이 있었지요. 유정회, 통일주체국민회의... 그리고 이승만부터 박정희에 이르기까지 기형적으로 행정부의 권력이 큰 정권 하에서 이런 일들은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이명박 정권에 이어서 이 잔혹한 추억들은 그대로 되살아나는군요. 막걸리에 넘어가 그 사람들을 찍어줬던 중우정치의 시대나, 혹은 안정희구세력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그냥 이 현실이 지켜지겠지, 혹은 내 집값이 올라가겠지 하면서 별 고민 없이 지금의 집권세력에게 표를 던져준 분들이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로 돌아간 기분으로 지금의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말 가슴아프지 않으세요? 이 현실이? 그냥 체념하고만 있을 겁니까?
민주주의의 근간이 다시 완전히 흔들리고, 그 와중에 지켜져야 할 사회정의는 헌신짝처럼 버려지는 오늘날의 이 되살아난 구태에 대해서 그냥 눈 감고 가슴을 닫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눈 감고 살아버리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군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나름으로 그 나라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이것 때문에 요즘은 잠이 안 옵니다. 차라리 이게 남의 나라의 일이라서, 과거 아이티의 통통 마쿠트나 우간다의 이디 아민의 터무니없는 짓거리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에 별 꼴도 다 있네." 하면서 혀를 차고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남의 이야기'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이 다 든단 말입니다. 근데 왜 이게 하필이면 내가 태어나 자랐던 나라의 이야기란 말입니까.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 절망의 나락들이 현실의 일이라는 걸.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2
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마지막까지 행동하는 양심을 당부하시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모르는게 약이라는 옛말이 있지요...ㅠㅠ
그렇지만 민중이 모르는 사이에 민중이 가져야 할 몫을 모조리 가로채가는
날도적들이 날뛰는 세상을 훤히 보고 알면서 양심을 갖고
침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모든 민중이 알고 깨닫게 만드는 것이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똑똑한 민중에겐 야비한 권력이 절대로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