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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서운 세상, 나는 '사람' 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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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2,869회 작성일 11-01-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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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살이 좀 빠졌습니다. 아내는 나름 꾸준한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좀 다릅니다. 정말 밥맛을 잃고 살기 때문입니다. 밥 먹고 싶은 생각도 별로 들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어제는 몇 시간동안 책을 팠습니다. 요즘 다시 개강한만큼 해야 할 공부들도 있고, 책도 꽤 많은 분량을 봐야 합니다. 이래저래 책을 파다 보면 이 멍한 상태가 좀 나아지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책을 덮으면 다시 그 상태가 그대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컴퓨터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고라에서의 클릭질, 그리고 이 상황을 조금 더 깊게 볼 줄 아는 다른 이들의 눈을 빌려 세상을 들여다보고 나면 내가 과연 정상적인 세상을 살고 있는건가 다시한번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30만 마리 이상의 가축을 살처분해야 하는 상황에 왔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고, 이렇게 구제역이 확산됐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이 사실 자체가 원체 믿기지 않는 사실이고, 감사원장에 앉을 사람의 프로필과 행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어떻게 이런 뻔뻔함이 있을까 싶을 정도고... 사실 미국에 살기에 그쪽 상황 딱 신경 안 쓰고 사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기엔 속이 답답하고 물만 들이켜게 됩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상황이 나은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나름 이곳에서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제게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불황은 저와는 거의 상관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언제든지 사측이 원할 때는 레이옵 통지서를 받을 수 있는 연한의 최고 상한선이라 할 수 있는 6년의 근무기간은 넘겼으므로 철밥통 챙긴 셈이고, 공무원 봉급동결 나오기 바로 직전에 스탭 인크리즈(연공서열로 인한 봉급인상)도 받았고, 나름 아직까지는 '휴가 계획' 때문에 고민할 수 있는, 매우 개인적으로는 만족할만한 삶이지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가슴아프고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애들 친구의 엄마 한 분은 얼마전 혈관이 막혀 터지는 상황을 맞고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응급실에서 정확한 병명을 통보받고 그래도 아들 때문에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온 병원비가 수십만달러. 문제는 이 분은 보험도 없고, 그렇다고 저소득층 보험이 있느냐 하면, 올해부터는 그 보험조차도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생돈 물어내게 생겼습니다. 그녀에게 남은 방법은 단 한가지. 평생 그 돈을 분할해 갚아 나가는 것 뿐입니다. 이런 방법조차 없는 이들은 수술 받을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죽어가야 하는 것이 이곳의 현실입니다.

 

이런 경우에 처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서 전국민 국민의료보험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연방 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나서 이들은 공공연히 오바마의 의료개혁법을 다시 원상태로 돌려놓겠다는 것을 공언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연방정부의 지원책도, 주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비참한 상태로 살게 될 지는 이 한 개의 독립적인 사건만 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의 종주국이고, 소련 붕괴 이후 영국과 함께 이른바 '구미 열강'들 중에서 가장 먼저 '복지의 가면'을 벗은 곳이라 해도, 과거엔 이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늘상 강요해 오던 '효율'은 결국 '인간'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정신 속에서 '인간'이란 요소가 배제된 자본주의사회는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에게 잔혹한 탈락을 요구합니다. 이미 '경쟁과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배제되어 버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이 사회는 편린의 배려만큼도 해 주지 않는, 아니 어쩌면 해 줄수조차도 없는 그런 곳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추운 겨울이 더욱 춥습니다. 시애틀엔 어제도 눈이 조금 왔고, 아마 내일 오후부터는 더 많은 눈이 내리리라고 합니다. 눈이 세상을 덮으면 참 보기엔 깨끗하고 좋지만, 그 눈은 우리에게 운전하거나 길을 걸을 때 굉장한 주의를 요구하고, 그 눈이 녹아내릴 때는 엄청난 더러움을 그대로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생산성의 극대화, 효율의 극대화를 요구하는 지금의 이 세상이 그 수많은 물질적 목표들의 달성과 신기술의 혁명으로 인해 눈이 덮인 세상처럼 그냥 보기엔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그것에 덮여 있는 세상은 꽁꽁 얼어버린 인간성과 몰인정이 숨어 있습니다. 마치 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 더러움들처럼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제게는 마치 고문처럼 아프게 느껴집니다. 오로지 '이윤'과 '효율'이 세상을 움직이는 기준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왜곡된 가치관은 지금 눈 앞에서 죽어가는 이들에게도 계산서를 들이밀고 돈 낼 것을 강요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마치 19세기의 망령이 눈앞에 부활해 나타난 것과 같은 상황들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이 세상이 어떤 극단으로 치닫게 될지, 저는 그것을 생각하면 늘 두렵습니다. 그래서 손 잡고 함께 나아갈 사람들이 늘 그립습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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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한국의 민란처럼
미국에서도 민란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돈이 최고라고 모두들 믿는 신앙을
확 뒤집어놓고
인간답게 인간이 사는 세상을 꿈꾸는
민란을 이끄는 지도자가 나오고
들불처럼 민란이 퍼져가는 것..

자연발생적으로도 그날이 오는 것이
멀지 않을 것 같군요.

우리 모두
그날을 맞이할 것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등에 기름을 미리 채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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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갓더파워님의 댓글

유갓더파워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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