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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복지 논쟁을 벌이다... 나아지지 않은 미국 경제의 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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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2,959회 작성일 11-01-07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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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연시의 분주함 속의 한가함이 모두 지나가버리고 다시 정상적으로 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비록 그것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더라도, 한 해의 시작은 뭔가 해 보겠다는 의지가 세워지기 쉬운 때라, 올해 시작하고 나서 그래도 나름 꼬박꼬박 운동을 챙겨 하고 있습니다.

운동을 하는 곳에서 알게 된 백인 남자 제리는 키는 작지만 아주 훌륭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업은 식당 사장인데, 꽤 이름난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 줄도 아는 전형적인 미국인인데, 운동을 하는 사람답게 호인이긴 하지만 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더랬습니다. 아무튼 서로 역기 들어주는 것을 도와준 것을 계기로 통성명을 하고 그 뒤로 함께 스팟을 서 주기도 하고(누워서 역기를 들 때 뒤에서 받쳐주는) 서로 운동에 관한 조언을 나누며(대부분 제가 듣는 쪽이지만)친분을 쌓아 왔습니다.

 

제리가 어제는 씩씩거리면서 느지막히 운동하러 왔습니다.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기에 이유를 물어봤더니, 자기가 내야 할 세금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식당 규모도 있고, 또 식당 건물 자체도 자기 소유라니 돈을 꽤 벌긴 번 사람인데, 세금 때문에 저리 씩씩댈 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저희 집도 비즈니스를 운영한 적이 있고, 비슷한 처지의 고민을 해본적도 있지만 저렇게까지 화낼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제리의 답은 이거였습니다. "내가 불체자 직원 건강보험까지 내 줘야 하는거야? 그냥 고용해 주는 것도 감사해야지. 이것들이 아마 나를 찌른 모양이야."

 

대략 상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봉급 나가는 걸 줄이기 위해 서류미비 이민자를 고용했고, 이들에게 그냥 현찰로 봉급을 준 것이 말썽이 된 모양이었습니다.

"제리, 그 종업원들에게 얼마나 주는데?"

"무려 시간당 11달러가 넘게 준다고! 요즘 불법체류자 고용하면서 그만큼 주는 곳이 어딨어! 그런데 이것들이 내게 직원건강보험 없다고 이럴 수가 있는거야?"

휴우...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긴 저희 가족이 운영하던 업종인 그로서리 업계도 점원들에게 그냥 캐시로 봉급 주는 경우가 많고, 직원들의 복지혜택 내 주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죠. 그나마 어떤 이들은 자기 의료보험 내는 것도 아까워서 미루고 있다가 나중에 큰 병이 걸려 의료보험 없으면 집안 거덜내기 마련인 미국의 의료 시스템의 후진성의 제물이 되어 그냥 생 비즈니스를 날려버리는 경우도 많이 보았으니까요. 실제로 우리 친척 중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유로 돌아가신 분이 있기에 그 상황은 대략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 줄 건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도 비즈니스를 했었지만, 당연히 내야 하는 걸로 알고 내 줬다고."

제리가 그렇게 말하는 저를 딱하다는 듯이 쳐다봤습니다.

"이거 봐, 조셉. 얘들은 말야, 이거 해달라그래서 해 주면 저거 또 해달라고 해. 그래서 그거 해 주면 또 딴거 해달라고 하고. 아예 처음부터 딱 어디까지만 된다고 하고, 봉급만 꼬박꼬박 주면 되는 거라고."

속에서 조금씩 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니, 사람을 고용하면 최소한의 복지는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 그 사람들이 아플 때에도 혜택을 받을 수 있잖아? 유능한 직원들이 아파서 일 못하는 것도 그런데 최소한 병원에 가게는 해 줘야지."

"이게 세금 양이 장난이 아니라고. 우리가 아무리 적어도 보험의 절반은 내 줘야 하는데, 여기 보험 시스템 몰라서 그래? 하긴 자넨 우체부니까 연방정부에서 보험료를 내 주겠지만."

"우리도 100% 커버해주는 건 아냐. 매달 불입금의 1/3 정도는 우리가 내는거지. 다행히, 그래서 아플 때 병원도 가는 거라고."

"자네 복지주의자인가?"

"복지는 필요하다고 봐."

"그럼 됐네." 그는 말을 툭 끊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로 많은 것을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저는 노동자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우체부는 하는 일에 비해 꽤 보수를 받는 직종이라 여겨지는 모양입니다. 여기에 보수 뿐 아니라 각종 복지혜택이 주어지니 미국인들 중엔 우체부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꽤 됩니다. 굵게 가진 못한다 해도 최소한 연봉 5만달러 이상은 보장해주는데다가, 이런저런 복지혜택이 1년이면 3만 달러 이상 추가로 나오니 지금같은 때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을만도 합니다. 그리고 직장은 분명히 일에 흥미를 느끼고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보수가 주어져야 일할 동기가 생기는 것이라고 믿는 저와, 보수가 후해지면 게으름을 피우는 경우만 늘어난다고 보는 그의 시각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글쎄요, 자본주의 사회가 돌아간다는 것, 그것도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 소비경제에 의존한다고 하면, 그것은 충분한 보수를 받는 봉급쟁이들이 사회에서 소비자가 되어 돈을 써 줘야만 합니다. 제리도 미국엔 공장이 없기 때문에 지금 경제가 더욱 어렵게 돌아간다는 면에는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요한 점을 하나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가 고용하는 사람들이 '소비자'가 된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시간당 단 몇 달러라도 더 주고, 의료보험을 들게 해 줌으로서 오히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보다는 생산성이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그는 간과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게으름을 피우고 농땡이를 부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가 그런 것입니다. 저희 우체국에서도 게으르을 피우고 툭하면 일 빠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관리자들에게만 눈치보일 뿐 아니라 같은 동료들로부터도 눈총을 받게 됩니다. 그가 하루를 그냥 쉬어 버리면 남들이 그 일을 다 해 줘야 하고, 곧 이것은 남들을 힘들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관리업무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며, 노동자들이 자기들의 노동을 통해 충분한 보수를 받고 만족하게 일한다면 당연히 세워질 수 있는 기강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즐거워야 하고, 스스로 재충전이 될 수 있을 만큼의 급여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재원을 모으는 방법은 적어도 미국에서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CEO 급에 지불되고 있는 엄청난 연봉들을 깎아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기만 해도 될 겁니다. 스몰 비즈니스들은 사실 종업원들에게 복지 혜택을 줄 경우 당장 타격을 입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업주의 세제 혜택으로 돌아오게 돼 있습니다. 아무튼, 노동자들이 힘나서 일해야 하는데, 당장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나, 돈 빌리기 힘든 스몰 비즈니스들의 고통이나 혹은 집에서 살림해야 하는 안주인들의 빠듯한 살림살이까지, 많은 미국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시기인 듯 합니다. 즉, 이 불황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아무리 거시 지표가 나아졌다고 말한들,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은 그저 한파일 뿐입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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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해주는 기계라면
복지란 필요하지 않겠지요.
문제는 인정하든 않든
상대방은 고용인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사람에겐
사람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것.
그것도 많이는 아니라해도 최소한 법으로 정해둔 것만은
지켜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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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상님의 댓글의 댓글

권종상 작성일

이새퀴들은 그것도 안 지켜주니까 문제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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