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스펙테이터 잡지의 '위스키 커버스토리'에서 보는 와인시장과 종이매체의 위기 > 통일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통일게시판

와인 스펙테이터 잡지의 '위스키 커버스토리'에서 보는 와인시장과 종이매체의 위기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권종상
댓글 4건 조회 2,892회 작성일 11-01-27 07:01

본문



가장 최근호(2011. 1.31- 2.28)로 발매된 '와인 스펙테이터'지의 표지는 상당히 뜻밖이었습니다. 세계 와인들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으로 유명한 이 잡지가, 일단 제목부터 '와인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스카치에 대한...' 이야기를 싣는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이 잡지가 과거보다 얇아진 것도 그렇고, 느닷없이 와인이 아닌 '스카치'가 메인 테마로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파격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이 잡지가 이렇게 남의 '나와바리'를 대놓고 건드린 적은 없는데, 무슨 일일까 궁금했습니다.

 

아침에 우체국으로 출근하니 와인 스펙테이터 지 몇 권이 제가 배달해야 할 우편물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펼쳐보기도 했는데, 이 잡지의 발행인인 마빈 섕큰의 말인즉, 와인샵에서 위스키를 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결국 와인을 가져가는 사람들이어서, 조금 더 깊은 정보를 주기 위해 이번 특집을 마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변명도 좀 치졸하다 싶었는데, 역시 그 안엔 위스키 광고가 상당히 늘어 있었고, 아마도 일반적으로 이들의 자매지인 '시가 아피시오나도'의 광고를 가져온 것이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와인과 하드리커로 불리우는 증류주, 즉 위스키나 브랜디 등의 소비는 늘어났는데, 이른바 대중주인 맥주의 소비가 줄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조사의 기준 연도는 몇년 전이었고, 지금은 아마 그 대세가 역전됐으리라는 것이 제 느낌입니다. 자세한 통계를 살펴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특히 와인처럼 '정치와 경제에 민감한' 술은 그 소비가 크게 줄었을 것입니다.

 

물론, 와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오히려 절대 소비량은 늘었다는 통계는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와인 소비자들이 과거처럼 고급 와인들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중저가 와인의 소비를 늘려서 매출 총액은 오히려 '절대소비량이 늘어난' 지금엔 그 규모가 훨씬 더 적다는 것이 핵심적인 사실이겠습니다만.

 

문제는 와인 스펙테이터(이하 WS)가 위스키 시장에 대해 뛰어들고 평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제를 다루는 잡지로는 '와인 앤 스피릿'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어지간하면 서로의 사업 영역을 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와인의 소비량, 그것도 WS 에서 주로 다뤄오던 고급 와인의 소비량이 떨어지고, 와인 업계의 커다란 거목인던 '컨스텔레이션 제국'(예전에 세계 와인 수출입 물량 1위의 회사였습니다)의 붕괴, 그리고 무엇보다 WS의 '밥줄'이던 그들의 광고가 떨어졌다는 것이 이번 WS의 위스키 특집 기사로서 드러납니다.

 

지금 WS는 과거에 비해 비교적 '군소 업체'들의 광고에 의존해 근근히 생존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 몇달 전부터는 전에 잘 안보이던 하드리커 광고들이 등장하기 시작해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정작 커버에 와인이 아닌 '위스키'가 떡 등장해 있는 것을 보니 시장의 변화가 실감납니다. 비록 '와인 애호가를 위한' 이란 수식어를 달긴 했지만, 이것은 WS의 수익구조의 변화, 그리고 미국 와인시장의 변화, 나아가 세계 와인시장의 변화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껏 와인 시장의 판도를 장악해 왔던 이 잡지마저도 그 물결에 의해 변화를 요구받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아마, 늘 이 잡지의 평점 매기기 장난에서 1등을 해 오던 프랑스나 이태리의 고급 와인들이 아닌, 미국 워싱턴주의 '콜럼비아 크레스트'사가 만든 와인이 '올해의 최고 와인'으로 선택됐던 그 때가 WS로는 가장 큰 광고 수입의 타격을 입었던 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와인을 소유하고 있는 '생 미셸'이 당시 최대의 광고주로 부상했었습니다. (사실 콜럼비아 크레스트나 도메인 생 미셸이 전면광고를 때리고 있는 동안, 과거 컨스텔레이션이 가지고 있었던 와이너리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로버트 몬다비 같은 경우엔 거의 광고 전부를 빼다시피 했었죠.)

 

몇년 전부터 나파 와인을 만드는 데 쓰이는 포도들이 와인메이커를 찾지 못해 와인가격의 대폭락(실제로는 중저가 와인으로의 포도 유입)이 일어나 중저가 와인들의 품질이 좋아질 것임을 예상한 기사들이 와인 전문 매거진들에 나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지금 현실로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심지어는 호황 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었던 나파 지역의 부동산 가격도 하락세로 돌아선 지 오래라는 말도 나옵니다. 어쩌면 와인이라는 술의 특징으로 볼 때, 지금껏 이만큼 버텨 온 것도 다행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 내에서는, 지금도 소비되는 와인의 85%가 미국산이긴 하지만 그 비율이 더욱 더 '중저가의 자국산, 특히 캘리포니아 와인'으로 몰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어쨌든 거품이 완전히 꺼진 와인 시장의 변화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지금 와인 공부를 하고 있는 저로서도 주의깊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와인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산물임은 분명하지만, 여기에 '정치'와 '경제'라는 화두가 분명히 눈에 띄게 작용하는 술입니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예측하건대, 한때 미국 와인 소비시장을 달궜던 이태리나 프랑스 와인의 열풍은 이제 분명히 쇠퇴할 것이고 스페인 와인과 같은 저렴하면서도 품질 받쳐주는 와인의 도약이 있을 법 합니다. 유로화나 파운드화의 변화, 달러가치의 계속되는 하락 같은 것이 아마 위스키 시장을 미미하게나마 변화시키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이같은 일이 시작됐다고 보는 와인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와인 전문잡지들 역시 생존을 위해 별별 수단을 강구할 것입니다. 와인의 절대소비량보다는 와인에 소비하는 '달러'가 줄어들면서, 매체 업계조차 '생존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는, 그런 때입니다. 그리고 이 작은 사건은, 왜 종이매체들이 그렇게 '방송'에 매달리려 하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profile_image

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

와인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가끔씩 권종상님의 글을 읽고 지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와인업계의 불황은 안됐지만 그덕분에 좋은 와인을 중저가로 시음할수 있으니 소비자로써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이기심이 드는군요..

profile_image

권종상님의 댓글의 댓글

권종상 작성일

사실 오래 전에 그렇게 됐어야 하는거죠. 그런데 그 거품을 믿고 끝까지 안고 버텼던 이들은 거품과 함께 터져버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profile_image

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변화하는 와인시장 추세에 대한 통찰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profile_image

권종상님의 댓글의 댓글

권종상 작성일

헉, 그리까지 말씀해주시다니... 감사드립니다.


서비스이용약관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상단으로


Copyright © 2010 - 2023 www.hanseattle1.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