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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민자 부부의 비극- 의료보험 민영화에 반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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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4건 조회 3,192회 작성일 11-02-02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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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을 휘청거리게 만든 서브프라임 사태가 있기 조금 전의 이야기입니다. 경기가 한참 좋던 시절이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론'을 믿고 있던 시절이라 사방에서 건축 붐이 일어 콘도미니엄(매매 가능한 아파트, 우리나라의 일반 아파트 개념)을 사방에 새로 짓고, 또 기존에 있던 아파트(임대만을 하는)들을 다시 콘도미니엄으로 개축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새로운 주택 단지들도 여기저기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자 당연히 건설업계는 노동력이 부족했고, 일당을 주고 고용하는 멕시칸 등 라티노계 노동자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교적 적은 임금으로도 불평 없이 일했습니다.

이들이 건축공사 현장마다 넘치게 되자, 그 주위의 비즈니스들도 활기를 띠었습니다. 이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기보다는 델리라고 불리우는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파는 가게들에서 간단한 먹거리들을 사다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로서리(작은 식료품점, 우리나라의 수퍼마켓 개념)와 델리를 겸하는 가게들은 이때 정말 호황들을 누렸습니다. 또, 모텔 비즈니스도 이때 함께 동반호황을 누렸습니다. 이유인즉,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고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라티노계들 중에서는 서류미비 이민자(흔히들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들이 많았고, 이들은 일터 근처에서 모텔을 잡고 일이 끝날 때까지 장기투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임금을 받게 되면 그 돈을 멕시코 등으로 송금하고- 그래서 보통 작은 식료품점에는 국제전화 카드들을 많이 팔았고, 송금 비즈니스를 함께 운영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 남은 돈으로 생활을 했는데, 이들은 낙천적이고 돈도 기분파 스타일로 쓰는 경우가 많아서 색다르고 예쁜 물건들을 보면 그냥 가격만 괜찮다 싶으면 샀고, 일 끝나고 나면 같은 라티노 동료들과 함께 모여 술판을 벌이곤 했습니다. 아마 그때가 사회 전반이 뭔가 흥청망청한 분위기로 넘쳐나던 시절이다 싶습니다.

 

공사가 한참이던 어느 큰 주택단지, 그리고 상업용 빌딩 옆에서 델리와 그로서리를 함께 경영하던 중년 부부가 있었습니다. 우리 집과도 어느정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그때는 저희 부모님께서도 비슷한 업종에서 일을 하시던 때라 그 집에서 조언을 꽤 받았습니다. 부모님은 건강상 이유로 은퇴를 하셨지만, 그 중년 부부는 우리가 가게를 판 뒤로도 계속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늘 장사 잘 된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마침내 '올 것'이 왔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것입니다.

이 부부는 한참 호황일 때 모아둔 돈으로, 부동산 불패론을 믿고서 시애틀의 고급 콘도미니엄 몇 채에 투자를 해 두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는 부동산 가치는 그 부부에게 가정불화와 걱정거리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은 결국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쓰러지신 겁니다. 이유를 들어본즉, 다운타운에 투자했던 최고급 콘도미니엄 중 두 채는 애초 구입가격이 채당 80만달러가 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물건들의 가격이 말 그대로 반토막 나버린 것입니다. 앉아서 1백만달러 가까운 돈을 까먹고 말았으니, 그 충격이 오죽 컸겠습니까.

 

그런데 이 부부의 비극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인해 가격이 떨어진 부동산을 팔지도 못했고, 매달 부담해야 하는 은행 대출금 이자가 부담스러워 계속 가지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게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던 공사들이 모두 중단되어 라티노 손님들이 말 그대로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들 임노동자들은 일이 없어지자 워싱턴주 동부의 농장 계절 노동자로 흡수되거나, 혹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들 노동력을 흡수할 공장이나 다른 생산시설 같은 것이 없는 이곳에서, '잉여'는 살아갈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이들 부부의 가게의 매출액도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고용하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해고하고 부부가 운영할 생각을 하고 덤볐다가 결국 건강이 급속히 악화된 주인이 쓰러지는 일까지 겪은 것입니다.

 

이 가게주인은 병원으로 급히 실려갔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라는 말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이들은 의료보험이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65세가 넘으면 '메디케어'라고 불리우는 은퇴자 보험으로 병원비의 80% 정도는 커버가 됩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20%의 액수도 만만치 않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20%를 커버해주는 보험을 따로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나이도 애매하게 62세 정도여서 메디케이드의 혜택조차 입을 수 없었고, 말 그대로 '생돈을  물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실려가서 며칠 입원하고 수술받고 나서 나온 의료비 청구서 액수는 무려 10만 달러가 넘어가 버렸고, 가게 주인 아저씨는 "내가 차라리 죽어 버렸다면" 하면서 의료보험을 들지 않은 것을 후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애초에 이 부부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은 월 불입금이 부부가 무려 1천달러가 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건강에 나름 자신은 있었지만,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 부부는 파산을 선언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이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의료보험의 민영화가 불러오는 비극들을 저는 여기서 너무나 자주 봅니다. 미국이 다른 유럽의 선진국이나 하다못해 가까운 캐나다보다도 못하다는 것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미국이 '사업하기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업을 감당하기에 '부대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들 하는데, 의료보험에서 오는 것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대로 종업원 의료보험 해 주면서 사업 운영하기엔 너무나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나 터무니없이 올라버린 병원 치료비 때문이기도 한데, 이것은 이른바 신약개발, 신기술 개발의 명목으로 의약회사나 의료기구 회사들이 병원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이윤 창출의 도구'로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건강은 '이윤 추구'의 목적으로 쓰일 수 없습니다. 물론 그럼 누가 신기술을 개발하겠냐고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지, 이렇게 천문학적인 의료비용을 사용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결국 지금의 이윤창출형 수익구조를 계속해 유지하기 위한 로비 비용이나 특정 병원에 특정 의약품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로비 비용, 그리고 의료보험회사(더 정확히 말하면 의료라는 이름만 붙인 금융회사)들의 '안정된 수익 보장'을 위한 장치에 대한 비용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의료서비스의 민영화는 빈부의 격차를 이런 식으로 보여줍니다. 기사를 하나 읽다 보니 그런 것이 더욱 짙게 느껴집니다.( http://news.mk.co.kr/v3/view.php?sc=30000001&cm=헤드라인&year=2011&no=72302&selFlag=&relatedcode=&wonNo=&sID= ) 이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진료도 받지 못하고 미국 영화 '식코'에서 그려졌던 비극을 피해가지 못할 것입니다. 부자들이 자기 돈을 내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겠다는데야 뭐라고 할 일이 없지만, 이런 경우 병원은 수익구조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래도 더욱 차별적인 진료를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돈 없으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의료보험 민영화(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영화' 또는 '영리화'일 것입니다)는 지금의 미국의 발목을 잡았을 뿐 아니라, 지금 미국을 제대로 선진국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단 아파 보면,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 건강을 믿고 있더라도, 언제 아플지 모르는 게 사람인데, 아플 때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 누릴 수 없다면 이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의료보험 민영화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들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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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툰님의 댓글

폰툰 작성일

결국 의료업계 주축들의 욕심이 발효되고 있는 셈이겠습니다.
좀 더 이익을 내어 더 벌어야겠다는 그들의 욕심이
종국에는 어느 한 편의 고통을 희생물로 삼는 것인데...

늘 어려운, 되풀이되는 ..정말 풀기어려운 주제라 생각됩니다. 
사회 전반의 삼박자적 인식이 같이 어우러지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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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종상님의 댓글의 댓글

권종상 작성일

예... 어떻게든 그 인식을 바꾸겠다고 우리도 함께 모여 있는 것인데, 쉽지 않네요.
하지만 함께 가는 여러분이 계셔서 늘 든든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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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생명과 건강은 이윤추구의 목적으로 쓰일 수 없다/는 말씀에 완전히 정 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 오늘날의 현상입니다.  물론 의료보험 업계 등의 로비로 현행 구조가 정착된 것인데 그것을 바꾸려는 것이 이렇게 벽에 부딪친 것은 아무래도 나쁜 매스컴의 영향이겠지요.  결국은 계몽하고 깨닫고 바꾸는 일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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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엘님의 댓글

제이엘 작성일

요즘들어 미하원의 다수당이 된 공화당과 보수언론, 특정 보험업계 관련업종들이 오바마 의료보험법을 원상복귀 시키려고 쟁점화하는 시도가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모처럼 이뤄진 의보개혁이 다시금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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