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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무지가 미국을 전쟁국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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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2,429회 작성일 11-02-0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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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펌)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해마다 늘기만 했던 국방비를 올해 처음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앞으로 5년 간 780억 달러 수준을 삭감하고 병력도 5만 명 가량 줄이기로 했다. 미 국방부도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 해소 노력에 동참한다는 취지다.

미국의 군비 감축은
중국의 군비가 매년 늘어간다는 사실과 대비를 이룬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중국의 경제력·군사력이 얼마나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군사전문가이자 국제정치학자인 앤드류 바세비치
보스턴교수생각은 다르다. 오바마 행정부가 말하는 군비 감축은 군비 증가율을 줄이는 것일 뿐이며, 그를 둘러싼 논쟁은 미국의 엄청난 군비 지출 문제를 은폐시킨다고 주장한다. 부상하는 중국의 위협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그랬던 것처럼 과장된 것이라고 말했다.

바세비치 교수는 지난달 27일 미국의 정치·군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웹사이트 '톰 디스패치'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말하며 미국의 국방비 지출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 있게 된 이유를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2차 대전 후 미국에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가 등장하면서 군비 지출을 통해 먹고 사는
조직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안보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군산복합체에 관한 바세비치 칼럼 번역 기사 바로가기) 둘째 이유는 미국의 특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미군을 해외에 주둔시켜야 한다는 전략적 목표 때문이다. 바세비치 교수는 미군 주둔의 효과가 불명확하고 중동에서는 오히려 반미주의만 키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낡은 전략 개념이 '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세 번째 이유는 애국주의 때문이다. 애국주의는
베트남 전쟁을 거치면서 그 실체 자체에 의문이 생겼지만 여전히 활개를 치면서 펜타곤이 국고에서 마음껏 돈을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바세비치는 미국인들이 2차 대전을 '선의의 전쟁'으로 잘못 기억하는 것이 끝없는 군비 지출의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세비치 교수는 이같은 네 가지 개별적인 요소가 상호 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세비치는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퇴역한 후 국제관계학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의 군사 팽창 문제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학자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원문 보기)

▲ 군 관련 조직들의 이기주의와 전략적 관성, 이념적 차이, 역사에 대한 잘못된 기억은 미국의 국방 예산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사진은 미 국방부 청사 펜타곤 전경.

미국의 군비 지출은 왜 신성불가침의 영역인가?
(Cow Most Sacred: Why Military Spending Remains Untouchable)


미 국방부의 예산 감축이 또 다시 논쟁거리가 됐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헷갈려서는 안 된다. 국방 예산 감축은 기껏해야 증가율을 줄이는 것일 뿐이다. 미국의 군비는 미국을 제외한 지구상 모든 나라의 군비를 합한 것보다 많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지금 펜타곤(미 국방부)은 '경쟁 국가'가 있던 냉전 시기의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오늘날에도 악의 제국(레이건 전 대통령이 소련을 칭하던 말 : 옮긴이)이 있나? 러시아의 낡은 항공모함을 가지려고 하는 중국의 미래에 겁을 먹고 있고,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의 헛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만 악의 제국이 있다.

미국인들은 그 많은 군비를 통해 무엇을 얻고 있나?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그토록 많은 군비를 쓰고 있지만 투자수익은 별로 없다. 9.11 이후 전쟁을 통해 얻은 중요한 교훈은, 군사력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펜타곤이지만 의미있는 승리를 거둘 능력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전쟁을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연장하는지를 알고 있지만,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알지 못한다. 그 가장 좋은 사례는 이라크다.

작전도 문제지만 전략도 문제다. 미국의 군사력을 투사하면 미국의 영향력과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는 냉전 시대의 낡은 기대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이슬람권에서 그러하다. 미국의 군사 행동은 불안정과 반미주의를 만들고 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전구(戰區)의 상황이 날로 악화되는 것은 또 하나의 좋은 사례다.

'주식회사 펜타곤'이 회사를 엉망으로 운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산처럼 많다. 고루하고, 비대하며, 변화가 느리고, 자원을 엄청나게 낭비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무기 조달 분야와, 군 기능을 민간 군사 기업아웃소싱하는 분야에서 특히 그러하다. 국가 안보에서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effectiveness)의 문제가 경제적 효율성(efficiency)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수준 이상이 되면 경제적 비효율성(inefficiency)이 '어떤 기능을 하는가'의 문제를 갉아먹게 된다. 펜타곤은 언제나 그 수준을 넘고 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 제조사 '빅3'(포드, 지엠, 크라이슬러 : 옮긴이)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그 회사들은 펜타곤보다는 잘 운영된다.

높은 실업률, 1조 달러에 달하는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 엄청난 부채, 교육·산업인프라·고용 부족 등 미국의 국내 문제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국방 예산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왜 그런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방패막이 있기 때문이다.

조직 이기주의

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국가안보가 영구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분위기를 낳았다.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가 상존한다는 관념은 1940년대 말 싹이 터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부는 진짜지만 일부는 꾸며진 그 두려움으로 인해 미국은 철저한 군사적 대비를 하게 됐다.

그에 따라 안보 국가(national security state)가 등장했다. 안보 위기감이 정부 기구의 존재 이유, 위상, 특권, 예산 배정을 정당화하는 국가 체제다. 무기 산업이 등장해 일자리와 이윤을 창출하는 주된 동력이 됐다. 공화·민주 양당의 정치인들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말했던 '군산복합체'와 결탁하는 게 이익이라는 사실을 재빠르게 알게 됐다.

국민들이 낸 세금을 예산 배정과 기업의 이윤, 선거 자금, 득표로 변환시키는 거대한 체제와 더불어 정부 지원 연구소, 대학 연구소, 출판사, 싱크탱크, 로비회사 등이 등장했다. 이 기관들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요소를 만들어내고, 언제나 위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 결과, 국가 안보를 위한 '논쟁'이 벌어지면 안보에 힘을 실어야 하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장악해 군비 지출 수준을 매우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이 나라의 안녕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는 것들이었다.

전략적 관성

미 국무부의 1948년 문서에 따르면, 외교관이었던 조지 케넌은 "미국은 세계 부의 5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인구는 6.3%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케넌은 이같은 불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대외관계를 만들어 내는 게 정책결정자들의 숙제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미국의 목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상시키고 세계 평화를 추구하며 글로벌 리더십행사해야 한다고 미화하는 것보다 훨씬 적나라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매우 특별한 위상을 갖게 됐다. 미국인들이 종전 직후의 시대를 중산층 번영의 황금기라고 기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케넌 시대 이후 정책결정자들은 미국의 지구적 특권을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그 노력은 헛된 것이었다.

1950년대까지 정책결정자들은 군사력을 (세계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 미국의 높은 위상을 지키는 핵심 과제라는 결론을 내렸었다. 해외 미군의 존재와, 그곳의 상황에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은 그곳을 안정시키고, 그곳의 시장과 자원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보장하며, 그 나라의 국력 향상에 기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후 유럽과 전후 일본에서 그 공식은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한국, 베트남, 중남미, 중동 등지에서는 복합적인 결과가 나오거나 큰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9.11 이후의 상황 전개를 보면, '미군 주둔 - 군사력 투사' 패러다임이 폭력적인 반(反) 서구 성전주의(Jihadism)의 위협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미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문제는 악화되고 있다.

'미군 주둔 - 군사력 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자기반성을 얼마나 많이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미국의 정치지도자들, 군부 최고위급 인사들, 정부 밖에서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토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군비 지출을 요하는 현재의 전략 패러다임은 무지와 오만, 상상력 빈곤 속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념·철학의 차이

티파티 운동(극보수 유권자 운동 : 옮긴이)의 부상은 이념·철학 등의 차이로 벌어진 대립(culture wars)에서 비롯된 미국 사회균열은 이미 치료됐다는 생각이 잘못됐음을 일깨워줬다. 1960년대에 시작해 베트남 전쟁에서 최고조에 달했던 이념적 격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차 대전 때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애국주의에 대한 일치된 생각은 1960년대 들어 무너졌다. 소위 '선의의 전쟁'(Good War. 2차 대전을 의미함) 당시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국가에 대한 복종을 의미했다. 나라 사랑은 개인들이 정부의 군 복무 명령권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보여주는 것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압도적인 다수의 미군 병사들은 징집된 이들이었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의 위협까지 감수하겠다는 애국주의를 몸으로 보여줬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은 '우리의 군대'였고, 그것은 그 군대가 곧 '우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을 거치면서 문제는 훨씬 복잡해졌다. 베트남전을 지지하는 이들은 2차 대전의 전통이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쟁을 반대하는 이들, 특히 징병 대상자들은 다른 주장을 했다. 그들은 나라(country)와 국가(state)는 다르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는 국가의 정책이 잘못되고 불법적이며 부도덕하다면 그 정책에 반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쟁 속에서 베트남 참전 군인들은 고통스러웠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군인은 순교자인가, 비극적인 인물인가, 얼간이인가? 묵묵히 용감하게 싸운 군인과 입대 후 전쟁 반대로 돌아선 사람 중에서 과연 누가 존경을 받아야 하는가? 입대를 하지 않고 전쟁에 저항한 사람이 진정한 영웅인가?

베트남전이 끝났지만 이러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우리'가 아닌 군인들이 나라를 더 잘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1971년 닉슨 대통령이 징병제를 폐지하면서 문제는 더 복잡하게 됐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밥 돌, 존 케리, 존 매케인 같은 전쟁 영웅들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아들), 버락 오바마처럼 군 미필자이거나 군 경험이 일천한 이들에게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문제는 더욱 꼬였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소말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미국의 피를 더 많이 뿌리는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그들의 가족들은 참전하지 않았다)

단순한 의미를 가졌던 애국주의는 이제 이처럼 혼란스럽고 논쟁이 분분한 개념이 됐다. 애국주의는 국민들에게 어떤 의무를 요구할 수 있나? 이 질문에 답이 없다면, 미국인들이 점점 더 선호하는 선택지가 없다면, 그 애국주의라는 것이 과연 실체는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길 원하면서, 또한 애국주의는 전쟁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은폐되길 바라면서, 정치인들은 군복무를 택하는 미국인의 수를 늘릴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그들의 논리는 이러하다. 군인들은 미국이 여전히 생명을 바쳐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임을 보여주는 산증인이며, 애국주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따라서 군인들은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이 나라 '최고의' 존재다.

군인들은 미국 사회의 소수만 지니고 있는 구식 가치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오늘날 전사들의 위상은 아이콘 수준으로 높아졌고,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미국은 특별한 나라라는 피상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순결한 결정체로 간주된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군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념적 스펙트럼을 뛰어 넘는 지상명령이 되었다. 군을 지지한다는 것은 곧 군을 욕해서는 안 되고 병사들이 불필요한 전쟁, 불필요하게 돈이 많이 드는 전쟁에 동원되고 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실제로 '군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은 펜타곤이 국고에서 마음껏 돈을 빼다 쓸 수 있다는 뜻이고, 상징적인 수준 이상의 군비 감축은 안 된다는 뜻이다.

역사에 대한 잘못된 기억

미국 정치의 양당 체제는 (군사적) 개입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두 당은 모두 전쟁 정당이다. 개입을 주장하는 명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화당은 자유를 주장하고, 민주당은 인권을 강조한다. 그러나 결과는 같다. 두 당 모두 많은 군비가 끝없이 들어가는 군사적 행동주의를 매우 선호한다.

미국 정치에는 반(反)개입주의 전통이 있었다. 조지 워싱턴, 존 퀸시 애덤스 같은 이들이 선각자들이다. 그 전통은 평화주의에서 나온 게 아니라,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에서 평화주의가 폭넓은 지지를 받은 적은 없었다. 그러한 현실주의적 전통에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간단히 말해 2차 대전이 그 전통을 없애버렸다. 1939~41년(2차 대전 발발 직후 : 옮긴이) 있었던 치열한 논쟁에서 반개입주의는 패배했고 '고립주의'라는 오명을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2차 대전은 엄청난 비극에서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동화로 바뀌었고, 개입을 반대한 이들은 나쁜 사람들이 됐다. 2003년의 이라크나 오늘날의 이란과 같이 말로만 위협이 되는 나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1941년 12월 7일에 있었던 일(일본의 진주만 공격 : 옮긴이)로 끝났던 논쟁의 재판이다. 꼭 전쟁을 해야 하느냐는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군사력 사용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유화론자나 고립주의자가 된다. 권력을 잡고자 하는 이들 중에서 그런 낙인이 찍히는 걸 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정치는 1930년대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지금 그때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히틀러를 찾고 있고, 처칠을 칭송한다. 히틀러는 오직 한 사람 뿐이고 그는 오래 전에 죽었다. 처칠의 성취와 그가 남긴 유산은 그를 옹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히틀러의 독일을 괴멸시키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을 사람이 있다면, 그건 스탈린이다. 스탈린은 히틀러만큼 지독하고 무시무시한 독재자였다.

미국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미국이 2차 대전에서 소련과 동맹을 맺고 독일과 일본을 무너뜨린 것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충분히 감안하며 2차 대전에 대한 보다 정밀한 시각을 갖게 될 때까지, '선의의 전쟁'(the Good War)이라는 신화는 '(군비가) 얼마면 충분한가?'에 대한 물음을 교묘히 피해나가는 그럴듯한 명분을 제공할 것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네 가지 요소들은 군사 예산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마치 펜타곤을 둘러싸고 있는 강력한 보안 철책 같다. 정책은 군사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위의 네 가지 요소는 엄청난 힘이 되고 있다.

/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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