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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서 생긴 쌍꺼풀을 들여다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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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2,407회 작성일 11-02-17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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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다니랴 공부하랴 주경야독 중이어서 그런지, 아침에 좀 피곤했습니다. 우체부 일이 어쨌든 육체적인 일이어서 저도 모르게 피곤들이 쌓일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 일주일에 두 번 오후 6시부터 9시까지의 수업에 참여하고, 시험도 종종 보는 것이 부담이 될 때도 물론 있지요. 하지만 일 열심히 하고, 또 공부도 나름 열심히 하면서 좋은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때로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무원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런 여유를 갖기 힘들었을 거 같다는... 요즘은 우편물 양도 적어서 오후 네 시면 칼퇴근 하고 있는데, 그 이후의 시간을 보통 운동하고 나서 먹고 자는 것, 앉아서 글 쓰는 것으로 보내다가 지난 학기부터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무척 바빠졌습니다. 평소에 보지 않았던 '교과서'들을 펼쳐 봐야 하고... 원래 두주불사형 인간이었던 제가 술을 마셔도 그냥 음미하는 정도로 바뀐 것도 오후의 공부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학기엔 와인의 감각적 가치평가에 대한 클래스를 들었고, 이번 학기엔 세계 각국의 와인 클래스를 듣고 있습니다. 다음 학기엔 포도밭 선정과 포도밭의 특징에 따른 와인 맛의 변화를 논하는 클래스에 등록할 예정입니다. 아니면 원래 듣고 싶었던 와인과 음식의 매칭 과정을 들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해 볼 생각입니다.

 

총 서른 아홉 학점을 더 따야 하고, 원래 대학교 다니면서 따 놓은 학점들은 인정이 되니 따로 화학이나 수학, 작문 클래스 같은 것은 듣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고, 지난 학기에 세 학점 끝냈고, 이번 학기에 다섯 학점 이수 중이니 앞으로 31학점, 그러니까 대략 열 쿼터만 더 공부하면 원하던 자격증을 따게 됩니다. 뭐 이런 자격증을 가졌다고 지금의 직장을 그만두거나 할 생각은 아니고, 혹시 은퇴하게 되면 그 후에 뭔가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거라 지금 당장 직장 잡겠다는 사람들만큼 마음이 급한 것은 아닌데도 오히려 그 여유가 공부에 더 몰두할 수 있게 해주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도 신체적으로 조금 피곤한 건 사실이네요. 거의 매주 시험이 있어서 그거 준비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고.

 

오늘 아침엔 확실히 '시험의 여파'를 느낀 모양입니다. 운전하는데 하품이 뻑뻑 나오고... 직장 도착해서 일 시작하고 나서 갖는 첫 휴식시간에 화장실 가서 거울을 보니 쌍꺼풀이 져 있습니다. 웃음이 나옵니다. 왜 어렸을 때는 일부러 쌍꺼풀 수술을 한 친구들도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저 중고등학교 때부터 이상하게 쌍꺼풀 수술들을 했습니다.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 중에서도 간혹 그 수술을 받는 애들이 있었습니다. 원래 생긴거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산 지 오래라 저는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으니 이렇게 눈에 쌍꺼풀이 잡혀 버립니다. 미국에 와서 살다 보니 미국 아가씨들은 쌍꺼풀이 지지 않은 눈을 동경하는 경우도 봤는데, 그래도 나이 드니 이렇게 쌍꺼풀이 잡혔습니다. 즉 이건 나이들어 잡히는 주름에 불과한 거지요. 적어도 우리 아시안들에겐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부모님 따라 이민와서 접하게 된 미국 문화와, 여기서 깨게 된 편견들이 참 많은 듯 합니다. 쌍꺼풀에 대한 동경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구미인들의 쌍꺼풀은 아마 이들의 눈 구조 때문일 듯 합니다. 특히 북구인들의 경우 눈이 깊고 푸르며 눈썹이 긴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자연환경 때문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구의 경우 눈이 많이 와서 햇빛이 반사되면 눈을 보호해야 했고, 이런 자연적 환경은 그들을 이런 모양으로 진화시켰을 겁니다. 이들은 대신 피부가 너무 약한데, 툭하면 피부암이니 흑색종이니 하는 우리에겐 드문 병에 걸려 고생들을 합니다. 그들의 흰 피부는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하는 그들의 자연환경의 신체적 반영일 뿐이지요. 흑인들의 넓은 코는 햇빛과 뜨거운 열 아래에서 살았던 그들이 보다 쉽게 열을 배출하기 위해 그런 모습으로 진화한 것이고, 멜라닌 색소는 그들의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짙어졌을 겁니다. 알고보면 하나도 부러워할 것 없는, 그저 자연환경에 맞춰 진화되고 보다 나은 형질이 남아 변화가 고착된 인간의 모습일 뿐인데, 그것이 왜 그리 동경의 대상이 됐는지.

 

우리의 문화를 그대로 우리 것으로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토양은 사실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힘이겠지요. 역사 안에서 미의식이라는 것을 우리 안에 심어 놓은 그 토양들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앞으로 정말 강성하고 당당한 민족으로 도약할 수 있다면 미의식조차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문득 해 봅니다.

아, 피곤해서 내 얼굴 들여다봤다가 보게 된 쌍꺼풀 가지고 별 생각이 다 드네요. 하하.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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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님의 댓글

강산 작성일

갑자기 진 쌍꺼풀이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기회인데 쌍꺼풀 졌을 때 쫙 차려 입고 사진 빵빵하게 찍어두세요...ㅎㅎ
나중에 와인 관련 직장에 취직할 때 쓸 수도 있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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