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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11]"백두산 경계선문제", "주체사상과 맑스주의"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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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미청년
댓글 1건 조회 5,265회 작성일 11-03-1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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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11]북녘 정기풍 교수와 특별대담(5)

<백두산 경계선문제>,<주체사상과 맑스>해명



[평양=민족통신 노길남/유태영 공동취재단]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은 북녘의 학자, 정기풍 교수와 대담시간을 갖고 남녘사회와 해외동포사회에서 나돌고 있는 이러 저러한 소문들을 즉흥적으로 질문하여 이들에 대한 궁금증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이번 대담은 상호 허심탄회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정 교수와 가진 대담 내용 중 다섯번째 질문, '백두산 경계문제'를 비롯 '북중관계 문제',그리고 <주체사상과 맑스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 문제에 대해 그의 답변을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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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문도 서슴없이 그리고 자신있게 대답하며 민족통신 특별대담에 응한 북녘의 정기풍 교수

[방북기-9]


[방북기-11]북녘 정기풍 교수와 특별대담(5)

<백두산 경계선문제>,<주체사상과 맑스>해명




[평양=민족통신 노길남/유태영 공동취재단] 민족통신 공동취재진은 북녘의 학자, 정기풍 교수(김철주 사범대학 사회정치학과 강좌장)와 대담시간을 갖고 남녘사회와 해외동포사회에서 흔히 나돌고 있는 이러 저러한 소문들을 즉흥적으로 질문하여 이들에 대한 궁금증을 듣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이번 대담은 상호 허심탄회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정 교수와 가진 대담 내용 중 다섯번째 질문, '북-중사이의 경계선 문제’와 함께 '북-중관계에 대한 우려점'에 대해 그의 답변을 들어 보았고, 마지막으로 남녘과 해외 일각에서 주체철학(사상)과 맑스철학에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논란이 일어 난적도 있어 이에대해서도 질문해 그의 답변을 들어 보았다.

[질문]이번에는 마지막 질문으로 서너가지 드립니다. 정 교수님께서 역사학자나 철학전공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저희들 취재일정 때문에 그런 분들을 만나 주고 받는 일정을 조직하기 어려운 관계 때문에 좀 무리이긴 하지만 그저 한 지식인으로서 혹은 평양의 한 시민으로서 그저 알고 있는 지식을 들려주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해외동포사회와 남녘사회 일각에서는 북-중간의 백두산 경계선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경향이 가끔 있었습니다. 이 백두산 경계선이 현재와 같이 결착되게 된 사연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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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를 다해 대담에 응해 준 정기풍 교수
[답변] 이번에 민족통신 노길남 대표선생과 유태영 상임논설위원 선생에게 완전히 당하는 기분입니다.(모두들 한꺼번에 폭소...) 사전에 여유도 주지 않고...야아~ 글쎄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털어놓고 말해서 비전문가입니다. 그래서 나로서는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말하겠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지금의 중국지역에 청나라가 존재할 때인 1712년5월로 기억됩니다. 그 당시 조선과 청나라, 두나라사이의 경계를 확정하는 문제가 제기되여 강희황제의 특사 오리총관 목극등일행이 조선을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조선측에서는 감계사 박권(리조참판급관리)과 함경감사 리아무개가 리의복, 조대상 등 군관, 역관으로 구성된 몇명의 수행인원을 거느리고 청나라의 목극등일행과 함께 조청국경에 표식비로 세울 경계비를 운반하여 백두산을 향해 떠났다고 합니다.

헤산을 떠나 지금의 보천보 부근에 이르러 산세가 험해지고 길이 어려워지자 감계사 박권 등 양반들은 경계비를 그어 방 아무데나 대충 세워두고 술추렴이나 하자고 했으나 김경문 등 몇명의 군졸들은 나라의 경계를 어찌 가볍게 정하여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청나라에 그냥 넘겨주겠는가라고 하면서 청나라 특사 목극등과 함께 경계비를 운반하여 백두산정점에서 동남쪽으로 3Km 가량 상거한 위치에 세워놓았다고 기업합니다. 보천보에서 가림천 건너편의 곤장덕(해발1,050m)이라는 지명에는 당시 김경문 등이 양반들의 의사를 거역하고 경계비를 백두산까지 가져다 세웠다고 하여 곤장형을 받았다는 기막힌 사연이 깃들어있다고 들었습니다. 애국적 활동을 한 사람을 곤장으로 때렸다고 하며 그 이후 이곳을 곤장덕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세운 정계비는 너비 55.4Cm, 높이 70Cm의 돌비석으로서 내리글로 쓴 9줄의 본문이 한자로 새겨져있는데 조선글로 풀이하면 《오리총관 목극등의 뜻을 받들어 주변을 살피여 이곳에 이르러 바라보니 서는 압록이요 동은 토문이라 그러므로 분수령우에 돌을 세워 기록한다. 강희51년 5월15일 필청식, 소의창. 조선군관 리의복, 조대상, 차사관 허량, 박도상, 총관 김응초, 김경문》이라는 뜻이 된다고 합니다. 이 경계비는 그 때로부터 1931년까지 220년간 이곳에 존재하였습니다.(이 자료는 대담이후 그 이틑날 정교수가 자료를 보충하여 알려준 내용을 삽입한 것임)

1931년 7월28일 당시 혜산진수비대와 무산군 삼장면수비대 인원들을 포함하여 100여명의 일본인이 몇명의 조선인들과 함께 백두산을 등산하다가 이 경계비가 서있는 부근에 이르러 조선인들과 몇명의 일본인들만 백두산천지로 올라가게 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그자리에 머물러있었는데 등산객들이 천지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보았을 때 이미 경계비는 종적을 감추고 다만 《백두산 등산로》라는 나무표말이 세워져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9.18사변을 앞두고 대륙침략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있던 일제는 조중국경문제를 의도적으로 야기시켜 조중인민들 사이의 반목과 대립을 조성할 목적으로 백두산 정점에서 동남쪽으로 3Km가량 떨어진 곳에 세워져있던 경계비를 그곳에서 훨씬 남쪽인 신무성일대에 옮겨 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여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1950년대 중엽에 이르러 국경문제를 관심할 때 신무성 일대까지 중국영토로 간주되여 중국인민해방군이 신무성 부근까지 경비인원을 주둔시키고 관할하는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

당시 이러한 사연을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의 지도자들을 직접 만나시여 백두산일대 조중 국경문제의 역사적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히시고 조중친선과 두 나라 인민의 의사에 맞게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있는 방안을 내놓으시였습니다.

그 때 중국의 지도자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백두산일대 조중 국경문제 해결의 원칙과 방안을 전적으로 지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조중 실무일꾼들은 백두산 일대의 조중국경선을 지금과 같이 합의하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백두산이 조선민족의 성산으로 영원히 빛을 뿌리게 된데는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이렇듯 거룩한 애국헌신의 자욱이 아로새겨져있습니다.

[질문]남녘 동포들과 해외동포사회 일각에서는 남북관계 악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북중관계가 혹시 한미관계처럼 종속화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북중관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서 질문드립니다.

[답변]남북관계가 이명박 정권들어와 최악으로 돌입하고 있다는 데 대하여 우리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중관계가 한미관계처럼 종속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조중관계의 기초는 공동의 원쑤 일제를 반대하고 조국의 해방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속에서 맺어진 역사적인 친선과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즉 사회주의 이념실현이라는 공통적인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조중 두나라 인민은 오랜기간 외세를 반대하고 나라의 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함께 싸워오면서 그 어느 나라관계들 보다 친선의 정을 쌓아 왔습니다.

그래서 조중 두 나라는 자체의 실정에 맞게 미래를 개척하고 국제적문제들에 대처해나가는 과정에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문제들에 부닥치기도 했지만 오랜 역사적 과정에 맺어진 친선의 정과 인류의 자주위업에 대한 공통된 지향으로 차이를 극복하면서 이해를 두터이 하였습니다. 물론 국제무대에서 벌어지는 일부 문제들을 처리해나가는 과정에서 중국측이 우리의 입장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 준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들의 처사가 때로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문제라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또한 이와 반대로 우리 공화국의 입장이 때로는 중국측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알다시피 국제관계에서 3대원칙은 자주, 평화, 친선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의존하는데 습관된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어디까지나 우리 문제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며 우리의 입장이 정당하고 우리가 잘 해나간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처사에 개의할 필요가 없다고, 때가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입장을 옳게 이해하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우리 장군님의 두차례에 걸치는 중국방문은 역사적인 조중친선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려세우고 두 나라 인민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그 어느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호상간의 주권을 가장 존중합니다. 이것은 우리 공화국이 생명처럼 지켜온 원칙입니다. 그래서 조미관계가 한미관계처럼 종속화된다고 우려하는 동포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우리를 몰라서 하는 생각입니다.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질문] 마지막 좀 무거운 질문 하나 드리고 특별대담을 끝내려고 합니다. 해외동포사회나 남녘사회, 그리고 세계진보계 사회에서는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상호관계에 대해 혼돈하는 경우도 있고, 그리고 이 문제를 놓고 논쟁을 하는 경우들도 관찰해 왔는데 이 두 철학의 상호관계성에서 공동점 내지 차이점 같은 것을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겠는지 질문해 봅니다.

[답변]나는 철학전공 학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평소에 내가 알고 이해하고 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평양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이에 대해 응답한다고 생각해 주시길 바라면서 간단히 대답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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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의 정기풍 교수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은 다같이 로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혁명철학입니다. 주체사상은 유물변증법의 과학적성과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맑스주의와 구별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맑스철학은 물질중심의 철학이라면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철학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은 무엇보다도 그 철학적원리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맑스주의는 물질과 의식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물질의 일차성을 논증한데 기초하여 세계가 물질로 이루어졌으며 물질의 운동에 의하여 변화발전한다는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체사상은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결정한다는 원리를 밝힌데 기초하여 인간의 운명개척의 옳바른 길을 발혀주고 있습니다. 맑스주의가 물질세계의 본질과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해명하는것을 기본과제로 내세웠다면 주체사상은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해명하고 사람의 운동인 사회적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밝히는것을 기본과제로 하고있습니다.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은 다음으로 사회적원리 즉 사회적운동에 대한 견해와 관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맑스주의는 물질세계발전의 일반적합법칙성을 사회역사에 적용하여 변증법적 역사관 즉 유물사관 확립함으로써 인류철학사에 거대한 공적을 쌓아올렸으나 사회적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해명하지 못하였습니다. 주체사상은 사회적운동의 고유한 합법칙성을 해명함으로써 사회적운동은 주체의 주동적인 작용에 의하여 발생발전하며 따라서 혁명운동에서 승리하자면 혁명의 주체를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원리를 밝혀주었습니다. 다시말하면 맑스주의는 사회를 존재와 의식으로 구분하고 존재가 의식을 규제한다고 정의하였다면 주체사상은 사회를 사람과 사회적재부, 사회적관계로 구분하고 사람이 모든것의 주인이며 모든것을 졀정한다고 정의하였습니다.

맑스주의와 주체사상의 근본차이는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합니다. 다시말하면 맑스주의는 사람은 사회관계의 총체로 보면서도 사람자체의 특성을 해명하지 못하였다면 주체사상은 사람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존재로 규정하고 사람은 바로 사회적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물질과 구별되는 본질적특성을 가진다고 해명하였습니다. 부언한다면 맑스주의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세계의 시원문제를 과학적으로 밝히는것이 초미의 문제로 제기되였다면, 주체사상은 세계의 시원문제가 과학적으로 밝혀진 조건에서 사람의 운명문제에 해답을 주어야 할 철학의 사명으로부터 사람과 주위세계와의 관계문제를 근본문제로 제기하게 되였습니다.

다시말하면 주체사상은 주위세계가 사람의 운명에 결정적영향을 주는가 아니면 사람이 주동적으로 주위세계에 작용하여 자기 운명을 개척할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명하고 인민대중을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것이 절박한 과제로 나섰던 역사적시기 시대와 혁명의 요구를 반영하여 세계와 사람과의 관계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게 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도서자료들을 놓고 진지하게 한번 연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체철학에 대해 대단히 높은 긍지심과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께서 창시하시고,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께서 다듬어 오신 보고로서 오늘날 주체사회주의가 강성대국으로 우뚝서 가고 있는 밑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민족통신 취재진] 바쁘신 데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시고, 각종 예민한 질문들까지도 성의를 다해서 대답해 주신 정기풍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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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공동취재단(노길남 대표와 유태영 상임논설위원)과 특별대담하는 북의 정기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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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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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족통신 공동취재단 201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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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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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급좌파님의 댓글

c급좌파 작성일

말 하고 인용하는 자유야 보장되어야 겠지만 "맑스주의는 물질중심의 사상이다"는 변증법에대한 오해 혹은 의도적 폄하라는 생각이군요. 이 부분이야 책으로 역사적 실천의 오류측면에서 쓴다면 한 질을 넘게도 써야되는 부분이겠지만 그리고 그러한 오류의 경험이 '자주사상'과 같은 '국지예외적' 맑스주의의  아류의 등장을 강제한 부분도 있다고 인정해야 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도구' 혹은 '물리적 개념의 물질'의 의식에대한 선차성의 문제로 유물론을 구분하는것은 진정한 실천철학으로서의 변증법과는 별 인연이 없다는것 말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자주사상의 '혁명적 수령관'이라는 스탈린시대이후 소련 도덕교과서의 사적 유물론부분에서의 '역사와 영웅에관'한 친절한(?) 가르침을 극단화한 '혁명의 영도성'부분은 차치하고서라도 '지난한 반혁명의 어두운 터널과 그 반격의 실마리가 희미하게 주워지는 세계사의 인식'하에 벌써 공화국만은 '사람'자체만을 고민하고 중심에 놓아도 될 정도로 계급의 문제 현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적 세계지배헤게모니의 착취질서로부터 자유스러우시다니 지금 당장 미국과 20년가까이 끌고있는 '정권의 안전성 담보와 소위 개혁과 개방을 교환'하려는 지지부진한 조미대화의 역사와 그 속에서 희생당한 작은 영혼들의 숱한 곡소리는 '자주시대의 전세계화'를 얼마 안남긴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희생이겠지요 의식적이고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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