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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이 아니라 사회의 의무, '보편적 의무급식'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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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0건 조회 1,879회 작성일 11-04-0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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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무상급식' 전면 실시 한 달 이후 이를 평가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많은 모양인데, 저는 이걸 보면서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일단 이것을 '무상'으로 받아들이는, 컨셉트의 정립 없는 비판들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이것은 '무상급식'이 아니라 '의무급식'이어야 합니다. 무릇,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이 '무상교육'이지만 그것은 더 깊이 따지고 보면 '의무교육'으로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의무교육이 되는 이유는 적어도 9년간의 의무교육을 통해 개인이 국가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교육 받아야 하는 의무와 국가 혹은 지역사회의 교육 당국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그 구성원에게 교육을 제공할 의무를 동시에 충족 시키는 교육, 또는 두 가지 의무 중 하나를 충족시키는 교육을 의무교육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복무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 그래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의무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면, 이 때 급식이 제공되는 것도 무료로 제공된다 해서 이걸 굳이 '무상급식'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적지 않은 위화감과  그 안에 남을 깔보는 듯한 못된 태도들을 갈무리할 수 있는지 잠시 생각해보면, '무상급식' 같은 말은 쓰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에 21년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이곳에서, 특히 저처럼 공무원 쪽에 복무하는 사람들은 눈에 문제가 있는 이들을 그냥 '블라인드(장님)' 라거너 혹은 청력에 문제가 있는 이들을 '데프(벙어리)'라고 불렀다간 큰일 난다는 식의 교육을 받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반드시 '아이 임페어드(시력 불균형자)' 이라던지, '히어링 임페어드(청력 불균형자)'라고 부르도록 강조를 받습니다. 물론 그 사람들의 기분이 상할 경우 걸릴 수 있는 소송을 피하자는 미국식 프래그머티즘의 영향도 크지만, 사회적인 차별을 어느정도 방지하자는데도 의미가 있습니다.

 

적어도 의무교육이 사회에서 필요로 해서 실시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드는 제반 부대비용들도 사실은 사회에서 마련해주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선 실감이 나지 않을 일이긴 하지만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급식 뿐 아니라 어린 학생들에게 필요한 제반 교육비용, 그러니까 교과서는 물론, 학용품이나 학생들이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의 마련을 위한 비용까지도 국가에서 대 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습니다. 이들을 마련하는 데 드는 제원은 대부분 '고소득층이 부담하는 세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그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회의 저소득층이 갖는 불만과 사회의 불평등이 가지고 올 수 있는 여러가지 불안요소들을 방치하는 것보다는 그 사회에서 돈이 많기 때문에 특혜를 누리는 계층들이 당연히 부담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요소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돈 많이 벌어 저소득 계층을 '밟고 올라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같은 논쟁도 생기게 되는 것이죠.

 

이른바 '구미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국가들 중에서도 사회보장이라는 면에서 가장 후진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경우도, 아이들의 급식은 매우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고, 연소득을 기준으로 해서 연방 빈곤선보다 20% 정도 높은 수입의 가정엔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제공받는 이들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이런 가정의 아이들은 대놓고 '왕따'를 당할 성 싶습니다만. 즉,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일수록 이런 보편급식 같은 제도를 더 받아들이기가 힘들도록 사회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것이지요. 그것은 국가라는 기관이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구성원을 제대로 길러내는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마치 국가가 베푸는 시혜인 양 선전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급식 정도는 이른바 선진국임을 자랑하는 국가라면 당연히 해 주어야 할 의무입니다. 그것은 단지 배 고픈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한때 배가 고프기 때문에, 밥을 제때 잘 먹고 싶어서 군대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런 수준의 나라입니까? 항상 말로는 G20 선진국... 운운하면서, 복지만큼은 후진국식 운용을 하겠다는 겁니까? 지금 국가가 군대에 가 있는 군인들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무상급식'입니까? 그것이야말로 당연히 먹여야 하는 것이니 먹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나라가 필요해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서, 급식조차 '무상'이라고 선전하면 그게 더 웃기는 거 아닙니까?

 

보편적 사회복지는 선진국가로서 떠 안아야 할 당연한 의무이며, 여기에 드는 제반 비용을 부유층의 세금으로서 마련하는 것 역시 선진국의 부유층들이라면 당연히 자기들의 '의무'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를 이런 식으로 계속 정글로 만들어 놓는다면, 나중에 이 불만들이 쌓여 정말 폭발하게 될 때는 어떤 식으로 감당하려는 것입니까? 그리고 지금부터 정부의 복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길러 놓아야만 통일 후에도 우리가 그런 문제에 대해 감당하고 논의할 수 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보편적 복지'들을 더욱 강화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팩트가 됩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는 결국 그 사회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그런 사실들을 생각한다면, 지금 실시되고 있는 보편적 의무급식을 '무상급식' 이라고 깎아내리고 거기에 어떤 계층 차별적 의식을 심어놓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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