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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아버지와 방사능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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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865회 작성일 11-04-1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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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님의 노트 펌)


아버지는 늘 보수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사신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계기가 있었는지 모르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끔찍히도 싫어하셨고, 늘 보수 정당을 옹호하셨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세상이 학교에서 가르쳐 주던 것하고는, 그리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것하고는 영 다른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면서 아버지와의 언쟁은 시작되었다. 처음엔 그저 작은 언쟁이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 저녁을 먹고 뉴스를 보면서 아버지가 내놓은 논평에 내가 겨우 한 마디를 하는 정도였다. 아버지는 늘 무서운 존재였고, 그런 아버지의 말씀에 꼬박꼬박 말대꾸를 할만큼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 언쟁은 격해졌다. 학생운동 언저리에서 아버지 모르게 머물던 나의 행적이 아버지 귀에 들어갈 일이 몇 번 있었고, 부모님은 그런 일들로 몇 번 서울 나들이를 하셔야 했다. 그러나 언쟁이 격해진 것은, 그런 과정에서 내가 아버지 앞에서 더 뻔뻔해졌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나의 우군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생들이 하나 둘 대학에 들어가면서 그들도 아버지 앞에서 발언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둘째가 한동안 수배를 받아서 도망다니고, 형사들이 명절 때면 새벽부터 집에 들이 닥치고, 아버지는 직장에서 사직 경고를 받으시면서 아버지와 아들들간의 언쟁은 갈수록 격렬해졌다. 그러나 그 기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언쟁은 이명박이 시장이던 시절, 테니스장 시설에 서울시 예산을 전용하여 쓴 일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에 나와 있다가 한국에 들렀던 6-7년 전의 일인가 싶다. 그리고선 한국 정치 얘기를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늙어가시는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고, 비싼 국제전화에 대고 서로 껄끄러운 정치 얘기를 할 시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사는 얘기와 손녀들 얘기만으로도 전화통화 시간은 충분히 길었다. 한국 인터넷 전화를 놓고, skype로 화상통화를 매주 하지만 이젠 더이상 서로 부딪칠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목소리마저도 약해지신 아버지와 할 이야기는 한국 정치 말고도 너무도 많다.

 

아버지와 참 오랜만에 부딪친 것은 결코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늘 하던대로 주말이 되어 아버지와 통화를 했고, 아버진 일본 원전 파괴에 따른 캘리포니아의 방사능을 걱정하셨고, 나는 한국의 방사능 영향을 걱정했을 뿐이다. 아버지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자식과 손녀들을 걱정한 것이고, 나는 한국의 부모님과 형제 자매를 걱정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버진 내가 한국의 방사능을 걱정하는 것이 역시 불순세력에 동조하는 말로 생각되셨던 모양이다. 결국 아버지는 너무 나가셨다. '빨갱이 교육감' 운운하시면서...

 

높아졌던 목소리를 낮추고 전화를 마무리를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겁다. 아버지를 통해 한국 보수의 입장을 다시 한 번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버지와 목소리를 높인게 마음에 걸린다. 아마도 아버지도 나처럼 큰 아들에게 목소리를 높인게 마음에 걸려하고 계실 것이다. 

 

글을 처음 시작할 때의 우려대로,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 지 모르겠다. 투명한 행정, 국민을 생각하는 정치와는 늘 거리가 먼 이명박 정부를 까대는 말로 마무리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버지 건강을 걱정하면서 마무리를 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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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리좋노님의 댓글

와이리좋노 작성일

참 공감이 많이 가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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