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재보선 패배보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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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裸體)로 말을 타는 아름다운 여인…. 에로틱한 상상일랑 하지 마십시오. 여인이 알몸으로 말을 타게 된 데에는 ‘요염’ ‘에로틱’ 따위와는 관계없는 고결한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고다이바(Godiva). 11세기 중세 영국 코벤트리시(市) 영주였던 레오프릭 3세의 부인입니다. 그녀의 남편은 당대의 가혹한 탐관오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도하게 세금을 징수해 소작농들 등뼈를 휘게 만드는 등, 백성들에 대한 착취로 원성이 자자했구요.
고다이바는 백성들의 딱한 처지를 아파하며 남편을 설득하지만 허사였습니다. 결국 “세금을 내리지 않는다면 나체로 말을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죠. 독한 남편이 끝내 아내의 청을 거절하자, 고다이바 부인은 자신의 선언을 몸소 실천하기에 이릅니다.
고다이바 부인이 거사를 치르던 날, 감동한 백성들은 절대 부인의 나신을 훔쳐보지 말자는 굳은 결의를 했다고 합니다. 모든 백성들이 집 커튼을 내리고 엄숙하게 부인의 순례를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고다이바 부인의 희생정신은 다양하게 기려지고 있습니다. 코벤트리 박람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다이바 행진’이 정기행사로 이어집니다. 코벤트리 대성당 앞에는 부인이 나체로 말을 타고 있는 동상이 서 있습니다.
영국화가 존 콜리어는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을 서정적 터치로 화폭에 담았습니다.(사진)
약자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었던 그녀의 정신은 ‘고다이버이즘’이란 용어를 탄생시킵니다. 통념이나 상식을 깨는 용기 있는 실천, 특히 관행이나 상식 혹은 힘의 역학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의 논리로 뚫고 나가는 정치를 가리킵니다.
갑자기 중세 때 얘기를 꺼내는 것은, 부디 고다이바 부인을 귀감으로 삼았으면 좋을 한 분이 떠올라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가 또 구설에 올랐습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릅니다. 청와대에서 김윤옥 여사 주재로 열렸던 ‘장애인의 날’ 행사에 참석할 장애인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1급 지적장애인은 참석하지 못하게 한 사실이 밝혀져 반발을 사고 있습니다. 행사를 준비한 공무원은 “1급은 소란을 피우거나 어수선하게 하면 곤란하니 다른 사람으로 대체해달라”고 장애인 단체에 요구했다고 합니다.
영부인 초청으로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리는 행사는 통상 참석범위나 숫자만 지정하고 참석자 명단은 해당 단체에 맡기는 게 관례입니다. 청와대는 경호상의 이유로 신원조회만 할 뿐입니다. 더구나 장애인들을 위로하는 행사면 장애 급수를 따질 일이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1급 중증 장애인을 배려해야 맞겠지요. 장애인의 날 행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또 장애의 특성상 중증 지적장애인으로 인해 행사장이 좀 어수선하면 어떻습니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요. G20 행사 기간 중에 쓰레기도 버리지 말라는 발상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건의사항을 전달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부인에게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죠. 할 말은 편지로 써서 내라며.
영부인 행사와 일정에 이벤트성 홍보가 너무 많다는 점을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영부인이 행사에 동원한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보다 1급 중증장애인이 못하다는 생각이야말로 장애인의 날을 맞아 없애야 할 나쁜 발상입니다.
재보선 참패로 당-정-청 전체가 쇄신의 소용돌이에 빠졌습니다. 청와대는 옷깃을 여미며 민심을 새기겠다고 했습니다. 쇄신을 해서 사람을 바꾼들, 옷깃을 여미며 민심을 새긴들, 중요한 건 정신이고 철학입니다. 사소한 일 같지만,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드러난 이 정권의 정신과 철학을 바꾸지 않는 한, 사람을 바꾸고 쇄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선거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법입니다. 청와대가 재보선 패배보다 더 아프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 이런 일입니다. 더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이 알려진 게 27일인데, 아직 사과 한 마디 없군요. 대통령과 영부인이 국민을 대하는 마음, 어려운 사람들을 대하는 진정성을 인정받지 않으면 존경은커녕 존중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청와대 관저 거실에 존 콜리어의 작품 <고다이바 부인>을 모조품으로라도 한 편 선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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