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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렸던 당뇨병, 그리고 미국이 걸린 당뇨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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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2,079회 작성일 11-05-0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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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끝나고 나서 가볍게 일 하겠다고 하면서 했는데, 몸이 사실 타격을 받긴 받았나봅니다. 아침에 오전 5시면 칼같이 기상하던 제가 잠결에 알람을 꺼 버리고 나서 다시 아내 옆에 누워 잠들어 버린 것입니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눈을 떠 보니 이미 여섯시 반. 일곱시 반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깜짝 놀라 일어나선 커피만 어떻게 만들어 챙기고 씻고 하다가 밥도 못 먹고 나왔습니다. 도시락을 싸오긴 했는데, 어차피 그건 점심에 먹어야 할 거고, 인터넷도 못 들여다본 아침이어서 아예 인터넷 카페에서 간단하게 베이글이나 하나 먹자 싶어서 찾아들어와 토스트 된 피자 베이글과 커피를 마시니 세상이 다시 달라지는 느낌입니다. 다행히, 베이글 하나 먹으니 배가 정말 확 부르다는 느낌이 옵니다.

예전에 살이 지금보다 무척 쪘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제 블로그 어디에도 '그때의 사진'은 하나도 안 올라와 있을 정도로 제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또 제 자신을 거울을 통해 들여다보기가 부끄러웠던, 그런 시절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생각하기가 부끄럽기조차 하지만, 한때 제가 몸무게가 260파운드, 그러니까 117kg 까지 나갔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 모습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폭음, 폭식의 결과였을 것이고, 여기에 부족한 운동이 겹쳐서 나온 현상이 아닌가 싶은데, 몸은 편안하게 늘어지는 것을 좋아하게 되어 있나 봅니다. 여기에 맛잇는 것을 탐하는 입은 먹어도 먹어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런 경우에 배가 부르다는 사실을 아예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인슐린의 분비를 방해하게 되고... 당연히 그것은 질병을 부르는 지름길이었지만 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먹는 즐거움을 탐했었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베이글을 한 때는 앉은 자리에서 여섯 개를 먹어치운 적도 있었고, 피짜 한 판을 다 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왜 그랬나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미국 음식, 특히 피자나 햄버거 같은 것들이 그런 중독성이 있습니다. 그 안에 있는 갖은 양념들은 우리의 뇌로 하여금 우리가 충분한 칼로리를 섭취했다는 것을 인식 못하게 합니다. 특히 이런 음식과 함께 마시는 콜라 따위의 탄산음료는 우리로 하여금 음식을 계속 섭취하도록 만들지요. 미국 사람들 중에 거대하게 찐 사람들은 바로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다행히도, 저는 그 사슬을 끊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게 된 계기는 제가 찾은 새로운 길 때문이었지요. 저는 경찰이 되고 싶었는데, 도저히 제가 신체검사를 패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서 독한 마음을 먹기 시작한 겁니다. 음식을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3일은 정말 죽을 맛이었고, 그 다음 3개월은 운동을 해도 몸이 안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 이후엔 드디어 몸이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 마음도 변화됐습니다. 자신감이 생기고,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가지게 된 자성의 시간들,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믿음 같은 것이 제 삶에 끼친 변화는 막대합니다. 그것은 '변화의 힘'이었고, 저는 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미국의 모습, 가만히 보면 당뇨병 환자와도 같습니다. 금융산업을 통한 이자 장난, 더 나아가 서브프라임에 이르기까지 계속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안이함 같은 것은 마치 불로소득이라는 맛난 음식을 먹으며 계속 살을 찌워 왔던 비만환자의 모습과 진배 없는 것이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미국에 마치 갑작스런 당뇨병 선고처럼 다가왔지요. 그리고 나서 미국은 나름으로 살을 빼려고 퉁퉁거리며 뛰지만, 이걸 고치려면 우선적으로 식이요법이 필요합니다. 그 식이요법의 첫번째 단계는 사실 직장을 늘리고 기업과 최고 부자들에 세금을 더 많이 물리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세금은 줄이는, 머리로부터의 자각인데, 미국은 이것 대신에 무조건 전체 감세라는 인슐린을 대신 맞아 버렸습니다. 문제는 이 인슐린은 중독성이 있다는거고, 그렇다면 몸은 어떻게 조금 가벼워질지언정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마치 당뇨가 그 근본적인 치료는 환자 자신의 각성과 꾸준한 운동, 계속적인 식이요법을 통해 가능한 것처럼, 경제의 당뇨 역시 합리적인 세금 정책, 일자리의 창출, 이를 통한 최고소득층의 적극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과 사회 전반에 고른 영양, 즉 돈의 공급을 통해 치료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태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지금 이대로라면, 아마 두 세대 쯤 안에, 빠르면 우리 세대의 끝물이나 다음 세대들이 한참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때면 미국의 미래는 완전히 말라비틀어지지 않는가 하는 우려와 걱정이 앞섭니다. 미국은 저에게는 삶의 터전이고, 우리 민족에겐 애증이 공존하는 대상이며, 세계의 모든 재화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각성해서 체질을 개선하게 되면, 진정한 '정신적 트리클 다운' 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이 당뇨병을 빨리 고쳐야 우리 아들들도 살기 좋은, 그런 세상이 올 텐데... 하는 생각을, 배고팠던 아침에 해 봅니다. 그래야 유한한 이 별의 자원의 낭비도 줄어들고, 이 소비 위주로 돌아가는 경제가 주는 폐해에 대한 깊은 생각들도 모두가 함께 나누기 쉬워질지도 모릅니다.

이 베이글 하나가 저에게 육체적으로도, 또 정신적으로도 포만감을 주네요. 이제 열심히 일 시작해야겠습니다. .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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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카게산다님의 댓글

차카게산다 작성일

흥미있고도 의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말 동감되는 좋은 예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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