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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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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567회 작성일 22-08-31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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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20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강충현은 누구인가 몸을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옷을 함뿍 적신 주혁민이 페타르를 손에 들고 서있었다.

《페타르를 한자동차 실어왔소. 연료걱정은 없소.》

운수직장사람들을 데리고 아침부터 바다물속에서 네시간동안이나 역사질을 한 책임비서는 연방 재채기를 하였다.

조반을 굶은채 오랜 시간 바다물속에서 자맥질을 한 책임비서의 얼굴은 밀랍처럼 하얘지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있었다.

《40미리강판이 어떻게 됐소?》

《저보고 물어볼게 있습니까. 가서 보십시오.》

강충현은 범잡은 포수처럼 기세 등등해서 일어나 앉았다. 그러다가 문득 아침에 받은 글쪽지가 생각나서 웃주머니를 더듬었다.

《이거 설태섭이가 뭐 평양으로 가면서 책임비서동지한테 드리라고 했다는건데…》

주혁민은 강충현에게서 받은 종이접이를 펴보았다. 그의 낯빛이 달라지는것을 보고 강충현이 일어섰다.

《뭐라고 썼습니까?》

주혁민은 무어라 입안으로 쑹얼거리며 강충현에게 글쪽지를 내보이였다.

 

책임비서동지!

우에서 급히 불러 평양으로 올라갑니다.

곽경두직맹위원장과 함께 외국으로 가게 될것 같습니다. 《HM기》와 관련한 운명적인 려행입니다. 당과 조국을 위하여, 어버이장군님을 위하여 저의 있는 지혜와 힘을 다 바치겠습니다.

저는 조만간 중요기관으로 소환될것 같습니다. 책임비서동지와 헤여지자니 눈물이 납니다. 어디에 가나 책임비서동질 잊지 않을것입니다. 모든 수속을 우에서 다 해주겠다고 합니다. 시간이 바빠 총총히 란필을 적었습니다.…

 

강충현은 어리둥절한채 고개를 들었다.

무어라 이름할수 없는 쇠덩이같이 딴딴한것이 명치끝을 치받는것 같았다.

《설태섭이, 그래 이 자식이 도중에 〈HM기〉를 버리구 간단 말인가. 나쁜놈자식!》

강충현은 당장 글종이를 발기발기 찢어버리고싶었다.

주혁민은 벌써 앞에서 걸어가고있었다.

강충현은 그에게로 달려갔다. 주혁민이 단조직장출입문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소장동무, 성공했소?》

《예, 들어가보십시오. 그런데 설태섭이 소환된다는건 무슨 소립니까?》

주혁민은 그 소리를 못들은듯이 얼른 고개를 돌리고 출입문으로 들어섰다.

그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강충현은 흠칫 멈추어섰다. 그때까지도 결사대원들이 모두 세멘콩크리트에 드러누워있었던것이다.

《원 사람두, 자기만 방안에 들어가 눕구 대원들은 저렇게 세멘바닥에 눕혀, 쯔쯔…》

주혁민은 강충현에게 눈을 흘기고 혀를 차며 걸어갔다. 죄스럽게 그를 따라가던 강충현은 갑자기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머리며 얼굴이 온통 피자박이 된 박순진이 거푸집옆에 모자로 쓰러져있지 않는가. 부러지고 깨여진 안경, 세멘바닥에 점점이 새겨진 빨간 피… 그런데 격전을 치른 다른 단조공들은 옆에서 불상사가 일어난것도 모르고 잠을 자고있었다. 그것은 혼절상태도 아니고 죽음도 아니고 잠도 아닌 그런것이였다.

강충현은 지금 자기가 어떤 험악한 미궁속으로 끌리여온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점점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는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맥이 다 빠진 박순진이 허탈상태에서 발판을 내려서다 사닥다리를 헛디디고 세멘바닥에 강정배기로 곤두박히는 환영이였다.

《순진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순진아!》

강충현은 책임비서의 고함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주혁민이 박순진을 그러안고 세멘바닥에 주저앉아 실성한듯이 소리쳤다.

《순진아! 순진아! 아침에 김치깍두기타령을 기운차게 뽑은 네가, 당원이란 어떤 사람인가 하던 네가 죽다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냐?》

주혁민은 피자박이 된 순진의 몸을 잡아 흔들었다.

박순진은 눈을 부릅뜨고 주혁민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야, 순진아, 부릅뜨고 나를 보지만 말고 말을 해라! 순진아! 순진아, 순진아ㅡ》

아, 이것이 과연 생시인가 악몽인가? 강충현은 악몽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27살의 단조공청년은 분명 숨을 거두었다.

강충현이도 주혁민이 곁에 주저앉으며 오열을 터뜨리였다.

《무심하다. 어찌하여 앞길이 구만리같은 순진이 이렇게 간단 말이냐?》

박순진의 눈을 감기는 주혁민의 손등에 비오듯이 눈물이 떨어졌다. 그 눈물은 피묻은 박순진의 얼굴에도 사정없이 떨어져 상처입은 두볼과 턱으로 흘러내렸다.

박순진이 눈을 감자 주혁민은 아침에 박준이 가져다놓은 소다수에 손수건을 적시여 박순진의 얼굴에 묻은 피와 먼지들을 닦아냈다.

박순진의 얼굴을 닦아낸 주혁민은 헛손질을 몇번 하더니 그의 작업복주머니를 뒤지였다. 문득 웃주머니에서 한장의 사진이 나왔다. 그것은 한쌍의 젊은이가 다정히 어깨를 붙이고 서서 밝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였다.

안경을 낀 름름한 청년은 바로 박순진이였고 그옆에 서있는 얼굴이 동실하고 눈매가 고운 처녀는 가공직장의 고급기능공 강옥순이였다. 기업소적으로 일솜씨가 알뜰하고 선반기술이 높은것으로 소문난 7급선반공이였다.

주혁민은 사진을 번져 뒤면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고난의 행군》길에서 백년사랑을 약속하며-

 

《옥순이 너였구나!》

주혁민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어루만지며 실성한듯이 중얼거리였다.

강충현은 불시에 속안에서 열물같은것이 올라와 구역질을 하였다. 그는 가슴을 붙안고 몇번 구역질을 하다가 까무라쳐버렸다.

그는 몇시간후에야 진료소침대에서 의식을 차렸다.

뿌잇한 안개속에서 주혁민이와 진료소장의 얼굴이 어렴풋이 비치고 그 다음에는 눈물에 젖은 안해와 맏딸의 얼굴이 물속에 비낀 영상처럼 흐느적거리였다. 그리고 저쪽 창곁에 낯이 익으면서도 누구인지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 중년사나이가 앉아있었다.

《음, 정신을 차렸구만. 차렸어.》

책임비서의 목소리가 아득히 먼곳에서 들려오는것 같았다. 뒤이어 진료소장이 벌겋게 이물린 눈을 슴벅이며 《소장동지, 머리가 아프지 않습니까. 구토감이 없습니까?》하고 물었다.

그제야 강충현은 자기 머리에 붕대가 감겨있는것을 알았다. 혼절해서 쓰러질 때 콩크리트바닥에 세차게 머리를 짓쪼은것 같았다. 몇시간전에 있었던 일들이 선명히 떠올랐다.

《순진은 어떻게 됐소?》

강충현은 피자박이 된 그의 얼굴과 굳어진 눈동자를 분명히 보고 죽음을 확인했댔으나 혹시나 하는 기적을 기대하며 물었다.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책임비서동지!》

안타까이 부르며 책임비서의 팔을 붙드는 강충현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가슴이 어지럽게 뛰놀고 숨이 차올랐다.

《저의 무책임성으로 하여 순진이 저렇게 됐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전투지휘를 한 제가 순진이 발판을 내려올 때까지 지키고 서서 잘 보살펴주었더라면 이런 불상사가 나지 않았을것입니다.》

강충현은 머리가 빠개지는것 같고 심장이 터질듯 싶었다.

《승리후 5분을 각성하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5분을 각성하지 못했습니다.》

강충현은 옷자락을 움켜쥐고 전률을 일으켰다.

《소장동무, 진정하오. 지금 동문 흥분하지 말아야 해.》

주혁민이 소장을 침대에 눕히면서 말하였다. 《동무에게 무슨 책임이 있다고 하오. 전투를 조직한것도 이 책임비서고 순진일 3.5메터 발판우에 올려세운것도 나요. 내 불찰로 이런 불상사가 생겼소. 순진을 잃다니…》

살갗이 거친 주혁민의 두볼에서도 눈물이 줄을 그으며 흘러내렸다.

이때 윤현덕, 탁석준, 김경복이들이 놀란 얼굴들을 하고 들어섰다. 수봉작업장에 있던 그들은 박순진이 급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금 도착하는 길이였다.

그들을 보자 강충현은 또다시 설음이 북받치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장을 꺼내였다. 그는 벽을 향해 돌아서서 어깨를 들먹거리는 한정희를 흘깃 스쳐보고 윤현덕에게 글쪽지를 내밀었다.

《실장동무, 이걸 좀 보시오. 실장동무가 입당보증을 선 설태섭이가 이런 인간이였소.》

윤현덕은 어정쩡한 얼굴로 글쪽지를 받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을 붙안고 기침을 깇었다. 한정희의 흐느낌소리가 더 크게, 더 서럽게 방안을 울리였다.

《설태섭! 너 어쩌면 이럴수 있느냐?》

윤현덕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리였다. 박순진의 죽음, 설태섭의 배반, 감당하기 어려운 된타격에 그는 쓰러질듯 비칠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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