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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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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6,315회 작성일 22-08-2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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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11

 

아침부터 내리던 보슬비가 저녁까지도 멎지 않고 오며말며 성가시게 굴었다.

궂은 날씨였으나 주혁민은 사뭇 경쾌한 기분에서 공장설계사업소를 향해 걸어갔다. 방금전에 그는 희천기계공장에 출장을 갔다온 자재과 부원으로부터 자강도사람들에 대한 격동적인 소식을 들었다. 지금 자강도사람들은 앞으로 반년안으로 자강도를 락원의 땅으로 전변시키기 위한 대전투를 벌리고있다고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첫 포성을 자강땅에서 울리도록 친히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셨다는것이였다.

주혁민은 그이의 뜻대로 이제 온 나라가 역경을 디디고 일어서게 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지금 그는 설계사업소 행정총화모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는 길이였다. 거기에 가서 자강도 소식을 전해주고 고무해줄 생각이였다.

설계사업소 청사안으로 들어선 주혁민은 젖은 옷을 대충 손으로 문대고 회의실로 향하였다.

총화모임은 이미 시작된지 오랜것 같았다.

집행부에는 소장과 부소장, 사업소 분초급당비서 그리고 공장지도일군으로 최강철기사장이 앉아있었다.

주혁민은 회의장 맨 뒤좌석에 조용히 앉았다. 회의장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연탁에 나와 토론을 하고있는 설태섭에게 쏠려있어 누구도 책임비서가 들어온것을 알지 못했다.

《… 바로 이렇게 충실성이 부족한탓으로 하여 저는 5~6년이 돼오도록 <HM기>를 꼬나내지 못하고 어버이장군님께서 근심하시게 하였습니다.》

설태섭은 마침 토론을 끝맺고있는중이였다.

《동무, 그게 다 말한거요? 비판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구만. 현상라렬만 하고 원인분석은 하나도 하지 않았소.》

설계사업소소장이 원주필로 집행부책상을 똑똑 두드리며 방금 토론을 끝낸 설태섭을 닦아세웠다.

《자, 방조토론들을 하십시오.》

어질고 무던하게 생긴 부소장이 회의장을 둘러보며 호상비판을 제기하고는 넌지시 옆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였다.

주혁민은 총화모임의 분위기가 이상스럽게 느껴졌다.

(사상투쟁형식으로 하는가? 설태섭이가 왜 비판무대에 올랐는가?)

회의장 중간석에서 한 설계원이 일어섰다.

《제가 좀 말하겠습니다. 저 동무의 가장 큰 결함은 자기를 모르고 자고자대하는것입니다. 그저 자기가 제일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저 동무가 맡고있는 유압계통의 설계가 제대로 되지 않아 <HM기>가 계속 말썽을 일으키고있지만 그 누구의 방조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보다 못하기때문에 다 필요없다는것입니다. 까놓고말해서 유압에선 우리 기사장동지가 권위자인데 기사장의 방조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기사장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가만, 동무!》

최강철기사장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토론자의 말을 막았다.

《그런 일은 없었소. 나도 <HM기>의 유압에는 자신이 없어 방조를 주지 못했소. 너무 과장하지 마오.》

《예, 제작단 후방조를 맡은 곽경두동지한테서 들은 말입니다. 제가 지어내거나 과장한것은 없습니다.》

토론자는 반발하듯이 언짢게 내뱉고 계속하였다.

《학구적인 측면에서 보아도 저 동무에겐 현학적인데가 많습니다. 현실에 발을 붙이고 인민이 절박하게 요구하는 문제에 머리를 쓰기보다는 어딘가 기이한 문제들에 자기 지식과 재능을 자랑하기 위한 측면에 머리를 씁니다. 저 동무의 학위론문쩨마가 모호수학과 관련된것이였습니다. 현재 박사학위론문은 <미립자해석법>이라든지 <소립자분석법>이라든지 좌우간 그런 기이한 쩨마입니다. 모호수학이요, 소립자요, 미립자요 하는것들이 과연 현재 인민들이 절실히 요구하는것들인가? 바로 거기에 현학적인 측면이 있지 않는가 하는것입니다.》

《모르면 가만 있소! 그것은 필요한것이요!》

설태섭이 별안간 소리치며 방조토론자를 노려보았다.

《여, 동무!》

누구인가 설태섭이 가슴에 손가락을 겨누며 일어섰다.

《동무, 비판을 받으러 나와서 그게 무슨 태도요. 어디에 대고 삿대질이요. 모르면 가만 있으라?

그렇게 잘 알아서 <HM기>가 33번이나 실패했는가.

그 실패의 책임은 동무한테 있소. 리동무가 말한것처럼 동무가 맡은 유압계통설계가 말썽이 아닌가?》

《그건 그런게 아닙니다.》

창문곁에 앉아있던 탁석준이 굼뜨게 일어났다.

《<HM기>실패의 책임이 설태섭에게 있는게 아닙니다. 그것은 설계조 우리 세사람모두의 책임입니다. 유압계통의 설계는 가장 어려운것입니다.》

《아닌게아니라 동무네 책임을 져야겠소. 기업소망신을 다 시키고있소.》

소장이 걸상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왼손으로 검은 머리를 쓸어올리였다.

《지금 많은 설계원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도 큰 성과를 거두고있습니다. 최근에만도 무연탄채굴용 유압식채탄기, 특대형권양기를 비롯하여 대상설비생산계획에 물린 기계들을 설계하였습니다. 그런데 동무넨 뭔가? 몇년째 공밥을 먹는다고 말할수 있소. 숱한 자재와 로력을 랑비하고… 1994년 11월 9일 중앙과 도의 큰 간부들이 모인 앞에서 무슨 꼴을 보여주었는가. 동무네 세사람의 말을 믿고 한 일이 33번이나 실패했소. 그래가지고도 설계급수를 한급수 떨구었다구 책임비서, 지배인을 찾아다니며 복잡하게 굴어 국가급수사정위원회에서까지 5월 10일이 별난 공장이라고 욕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설계급수는 책임비서, 지배인이 마음대로 올리구 내리구 할수 없소. 원칙이 있고 규정이 있소. 철저히 실적을 첫째로 봅니다. 개별적간부들에 대한 환상을 가져선 안됩니다.》

주혁민이 놀라며 소장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수 있을가싶었다. 내막을 깊이 모르는 사람은 그가 한 말이 원칙에 어긋나거나 사리에 맞지 않는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수 있었다.

《책임간부들이 계속 내세워주니 <HM기>제작단 설계조원들이 안하무인이 됐습니다. 태섭동무, 누굴 믿고 배짱을 부리고 어거지를 써?》

독고소장은 흥분하여 벌떡 일어섰다.

《나는 설계사업소 소장으로서 더는 묵과할수 없소. 당중앙위원회와 정무원총리에게 제기해서라도 막대한 자재, 시간, 로력을 랑비하는 설계도개조놀음을 당장 걷어치우게 하겠습니다. 5개 공장중 우리 공장 하나만 중뿔나게 개조놀음을 한단 말이요. 이게 벌써 문제가 있지 않는가.

전쟁시기부터 별의별 설비를 다 만든 그 유명짜한 공장들에서도 서정후부부장의 말대로 기존도면을 그대로 리용하지 않는가. 서정후부부장이 오죽 속이 탔으면 범과 고양이 그림을 그리기까지 했겠소?

태섭동무! 개별적간부들에게 환상을 가지고 맹종맹동하다간 인생을 망칩니다. 당에서 늘 강조하는 말이 아닌가?》

주혁민은 그 자리에 더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냥 앉아있다가는 급한 성미에 소리를 치며 일어설것 같아 슬그머니 뒤문으로 빠져나왔다.

보슬비는 아직도 내리고있었다.

그는 비에 젖은 땅을 맥없이 밟으며 자신을 심중히 돌이켜보았다.

내가 정말 설계조동무들을 너무 내세웠는가?

그래서 그들이 나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했는가?

주혁민은 고개를 저으며 걸어갔다. 주혁민이 《HM기》설계원들을 금이야 옥이야 해온것만은 사실이였다. 한것은 그들에게 기업소의 큰 운명이 걸려있기때문만은 아니였다. 그보다는 그들이 누구보다도 수고하는 사람들이고 걱정이 많은 인간들이고 헌신하고있는 당원들이기때문이였다. 병약한 몸으로도 6년세월 《HM기》작업현장을 하루도 떠나본적이 없는 윤현덕, 영양실조로 자리에 누워서도 도면을 펼쳐놓고 모대긴 탁석준, 과학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가지고 투신하는 설태섭…

그들은 《HM기》를 설계하는 기간에도 짬을 내여 설계사업소 설계원들의 설계작업을 많이 도와주었다. 특히 윤현덕은 사업소 설계실장으로서 공장에서 맡은 대상설비설계에 대하여 일상적으로 관심하면서 실안의 설계원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고 도와주었다. 무연탄채굴용유압식종합채탄기는 사실상 그가 설계한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설계도에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애초에 과업을 받은 부진설계원의 이름을 내게 했었다.

지난 6년기간 탁석준이와 설태섭이도 자기 이름을 내지 않고 다른 설계원들의 설계를 맡아서 해준것이 한두번만 아니였다. 그런데 급수사정위원회에서는 설계도에 그들의 이름이 밝혀있지 않기때문에 인정할수 없다고 하며 한급수 떨구었다는것이다. 하기는 윤현덕이 급수문제를 바로잡으려고 뛰여다니는 오성오지배인에게 우리를 어떻게 보는거요, 우리가 급수때문에 가슴을 앓는것 같소? 사람을 모욕하지 마시오 하고 성을 냈기때문에 그후 더 상정시키지 않았다.

주혁민은 공장지도일군을 대표하여 집행부에 앉아있는 최강철기사장이 이런 문제를 옳게 말해주지 않고 꿔온 보리자루처럼 앉아있어 독고소장이 회의를 독판치게 만들게 한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최강철기사장이 기술실력은 있으나 통제력과 장악력이 없고 여전히 《호인》처럼 지내고있는데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였다.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 걸어가던 주혁민은 무엇인가 시커먼 물체가 앞을 막아서는 서슬에 우뚝 멎어섰다.

불그틱틱하게 녹이 쓴 무개화차가 구내철도인입선에 검은 쇠바퀴를 가드라붙인채 침울하게 서있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로 왔는가?)

주혁민은 구내철길에 외로이 서있는 화차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기분이 더욱 흐려졌다. 몇해전만 하여도 이 구내인입선으로 공장에서 쓸 자재와 원료들이 차판으로 들어오군 하였지만 이제는 몇달이 지나도록 자재를 실은 화차를 구경할수가 없었다. 다만 이렇게 파철이 되다싶이 녹쓸고 상처입은 빈화차 한대가 궁상스럽게 서있었다.

그전에는 기업소가 압연강재를 비롯한 여러가지 자재들을 48개공장들에서 받아쓰군 했으나 지금은 저열탄마저 동이 나서 가열로들이 숨을 죽일 형편이였다. 그뿐아니라 멀리 황산에서 실어오던 형석광과 광평에서 가져오던 주물용모래도 떨어져 주강, 주물직장에서 결단이 날 지경이였다. 형석광원천지인 황산에서도 전기사정으로 형석광을 제대로 캐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설사 형석이 넘쳐난다 하여도 기차가 제대로 다니지 않아 수송이 걸린다는것이였다.

대책이 없이 이대로 반년만 지나면 모든 자재와 연료, 원료들이 거덜이 나서 생산이 아예 멎어버릴수 있었다.

주혁민은 사납게 밀려오는 시련의 파도를 보고있었다.

김정일동지의 말씀을 받들고 자강도의 전체 인민들이 소리치며 일어서고있는데 나는 어찌하여 불과 수천명밖에 안되는 한개 공장 종업원들 하나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고있는가.

주혁민은 새로운 결심을 다지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때 당위원회 부원이 래일부터 3일동안 도당에서 당조직책임일군들의 강습이 있다고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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