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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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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850회 작성일 22-09-04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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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24

서정후는 느지감치 10시가 좀 지나 국장을 데리고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로 찾아갔다.

정문에 들어서자 전에없이 화물자동차들이 분주스레 지나다녔다. 10톤급 대형자동차와 《자주호》가 구내길을 오고가는가 하면 생산직장들에 자재를 나르는 소형운반차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였다.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 호각소리, 자동차발동소리… 공장안의 모든것이 약동하고 활성화된듯싶었다.

서정후는 먼저 책임일군들과 만나려고 하였으나 책임비서, 지배인은 출장을 가고 기사장은 새로 개발한 형석광채굴장으로 나갔다고 하였다.

생산부기사장, 기술부기사장방들도 다 문이 걸려있었다. 할수없이 공업시험소 소장을 만나보려고 가니 헌 작업복을 입은 세사람이 시험소 앞마당에 도람통같은 원통쇠난로를 내다놓고 불을 때고있었다. 그들은 탁석준, 김경복, 박준들이였다.

《수고들 합니다.》

서정후는 그들에게 밝은 얼굴로 먼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언제 오셨습니까?》

제일 나이가 많은 박준이 작업모를 벗고 답례하였다.

《어제 저녁에 왔습니다. 그런데 지배인, 책임비서가 다 출장을 갔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예, 갔습니다. 아마 래일쯤 돌아올겝니다. 이번에 우리 기업소료해소조가 온다더니 그래서 오셨습니까?》

여전히 박준이 서정후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 선발대라 할가, 과학기술위원회에 계시는 박사선생을 데리고 먼저 왔소. 인사들을 하오.》

서정후는 그들에게 과학기술위원회 국장을 소개하여 인사들을 시킨다음 《기업소마당은 벅적거리는데 사무실들은 왜 그렇게 조용하오. 시험소 소장동문 어딜 갔소?》하고 물었다.

《며칠전부터 료양을 합니다.》

탁석준이 난로안을 들여다보다가 허리를 펴며 대답하였다.

《료양을 하다니? 〈고난의 행군〉시기에 간부들이 료양을 한다는건 무슨 소리요. 군중에게 주는 영향이 나쁩니다.》

서정후는 료해소조가 간다는 통보를 했는데도 책임비서, 지배인은 출장을 가고 시험소 소장이라는 사람은 료양을 하고있다니 자못 불쾌하였다. 《료해소조》에 대한 태도가 틀려먹었다고 생각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료해소조〉를 조직한것은 동무네가 〈HM기〉설계도를 개조한 다음부터 계속 골탕을 먹고있기때문에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요. 유압을 전문하는 유능한 박사선생을 데려왔으니 도면을 내놓고 방조를 받으시오. 총조립도가 어디 있소?》

《여기 시험소에도 청사진한 도면이 있습니다. 올라갑시다.》

탁석준이 손님들을 데리고 시험소 문헌실로 들어갔다.

탁석준은 문헌실 탁상우에 도면을 펼쳐놓고 베트의 길이를 유럽의것보다 1.2메터 짧게 했다는것, 40여종되는 전자변들을 20여개로 줄였다는것, 이렇게 개조한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한시간 가까이 탁석준의 설명을 주의깊게 들은 국장은 이마를 찌프리며 머리를 내저었다.

《모든걸 공장실정에 맞게 〈HM기〉를 개조하겠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지만 성공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유압기술수준을 가지고는 〈HM기〉의 유압속도전자조절변을 제대로 만들지 못합니다. 게다가 모든 기관구조들을 거의다 개조했으니 어디 될법한 일입니까. 때문에 복사해온 외국설계도대로 기계형틀을 만들어놓고 유압변들을 수입해오는 길밖에 없습니다.》

국장은 신통히 서정후와 똑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어느 나라에서 그걸 주겠답니까? 글쎄 걱정하지 마시오. 2000년 12월말까지 여러대의 〈HM기〉를 만들어내면 되겠지요.》

탁석준이 국장에게 더 상관하지 말라는듯 퉁명스레 말하고는 도면을 접어버렸다.

《동무!》

서정후가 도면을 들고 돌아서는 탁석준에게 소리를 질렀다. 탁석준이 몸을 돌리고 서정후를 직시하였다.

《동무도 지배인을 닮아가누만. 건방진 소리만 하고… 그러면 못써! 박사선생이 조언을 주면 허심하게 배울 생각은 안하구 그게 무슨 태도야. 걱정하지 말라?》

서정후는 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내며 《걱정하지 않게 됐는가. 〈HM기〉과업을 받은지 벌써 6년째 되지 않는가. 동무네 정신상탤 보라. 지금이 어느땐데 료양을 하고있소? 〈고난의 행군〉을 하는 때에 죽어도 기곌 베고 죽어야지. 시험소 소장이란 사람이 료양을 한다는게 말이 되는가.》하고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라이타불을 켰다.

《료양하는 사람이 몇명이요?》

《열한명입니다.》

탁석준이 거칠게 대답하였다.

《료양을 그만두고 다 나오라고 하오.》

《그렇겐 못합니다. 그건 당위원회결정입니다.》하고 당돌하게 나서는것은 김경복이였다.

서정후는 약이 올라 입에 물었던 담배를 뽑아서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부부장동지!》

눈을 내리깔고있던 탁석준이 고개를 쳐들었다.

《우리 동무들이 왜 료양을 하는지 아십니까?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받들고 당위원회에서 대책을 세운겁니다. 저도 며칠동안 료양을 하다가 어제부터 나옵니다. 〈고난의 행군〉, 〈고난의 행군〉하는데 부부장동지의 댁에서 굶어쓰러진분이 있습니까, 부부장동진 굶어본적이 있습니까. 내막을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서정후는 날카로운 칼끝에 가슴을 찔리우는것 같았다. 온몸으로 저릿저릿 전류가 통하는듯도 했다. 그는 사실 《고난의 행군》기간 어느 한끼도 배를 곯아본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이 기간에 더 잘 먹었고 화려한 생활을 하였다. 《말보로》담배도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가지고 다닌 기호품이였다.

하지만 서정후는 태연히 서있었다.

탁석준은 서정후의 얼굴에 깊이 박았던 시선을 과학기술위원회 국장에게로 돌리였다.

《박사선생! 제발 우리를 괴롭히지 마시오. 그런 식으로 찬물이나 끼얹겠으면 가시오! 우리의 신경도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우리는 〈HM기〉를 수십번 뜯었다 맞췄다 했소. 당신이 어떻게 도면 한장을 보구 된다, 안된다 결론할수 있소. 장군님께선 과학기술적결론은 함부로 하지 말라고 하셨소. 라남사람들을 얕보지 마시오. 그러다간 큰 경을 칩니다.》

탁석준의 떡메같은 주먹을 띠여본 국장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였다.

서정후도 가슴이 철렁하였다.

무던한 농군처럼 순하고 어져보이던 탁석준이 왜 저렇게 거칠고 사나와졌는지 알수 없었다. 그는 바지주머니에 쑤셔넣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고 라이타불을 켰다.

《석준동무! 너무 인사불성이구만. 외지에서 처음 온 손님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동무한테 말해야 이가 들것 같지 않아. 현덕실장은 어데 있소?》

서정후는 박준을 돌아보며 물었다. 박준은 한순간 놀란 눈으로 서정후를 건너다보았다.

《왜? 그 사람도 료양이요?》

《그는 사망하였습니다. 설태섭을 만나보러 가다가 객사했어요. 그래서 책임비서, 지배인이 앞지대로 갔습니다. 그걸 모르십니까?》

《아니, 사망했소?》

서정후의 두손가락에 꽂혀있던 《말보로》담배대가 떨어졌다.

《원래 몸이 약한분이였는데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돌아갔습니다. 설태섭이 그 녀석때문입니다. 고약한 녀석! 그 녀석때문에 아까운 사람을 잃었소!》

가슴을 두드리며 탄식하는 박준의 안경알에 물기가 뿌옇게 꼈다. 그는 젊은 자기 아들보다도 이제 환갑나이가 다된 윤현덕을 잃은것이 더 가슴아픈 모양이였다.

서정후는 그 자리에 서있을수가 없었다. 그는 어디론가 향방없이 걸어갔다.

그는 윤현덕에 대한 애석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한편 길을 막고있던 하나의 큰 장벽이 무너진것 같은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였다. 그는 가슴에서 뒤번지는 이 모순적인 두 감정에 놀라고 당혹해하면서 누가 자기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가싶어 흠칫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윤현덕이! 그는 사실 나에게는 장애물이였다. 그러나 그는 아까운 사람이야. 그만한 기술인재도 많지 못해. 그런데 그가 죽었단 말이지?)

서정후는 갑자기 오한을 느끼며 웃몸을 떨었다.

그는 윤현덕의 사망으로 하여 마음이 어수선하였으나 어쨌든 자기 의도대로 일을 완강하게 내밀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서정후는 그날부터 《HM기》료해소조원들과 외국으로 간 곽경두, 설태섭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는 곽경두네를 국가기술대표단이 아니라 친척방문의 명분으로 보냈다. 그렇게 해야 자기 마음대로 그들을 보내고싶은 곳으로 다 보낼수 있었던것이다.

이웃나라에 가면 영향력이 있는 곽경두 조카의 도움을 받아 외국행선지를 얼마든지 바꿀수 있다고 하였다.

성공의 열매가 눈에 보이였다. 미구에 손을 내밀면 무르익은 열매를 어렵지 않게 따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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