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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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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798회 작성일 22-08-29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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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18

청진바다가에 《자주호》자동차 한대가 와멎자 짐칸에 빼곡이 앉아있던 사람들이 떠들썩거리며 모래불에 뛰여내렸다. 페타르를 실으러 온 사람들이였다.

주혁민이도 운전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찌뿌둥한 하늘에서 부실부실 비가 내리며 을씨년스럽게 바람이 불었다. 바다의 사나운 멀기가 집어삼킬듯이 모래불에 밀려와 허연 거품을 일구며 검부레기들을 내던지고는 다시 쏴 - 소리를 내며 밀려갔다.

주혁민은 밀짚모자를 벗어들고서서 바다기슭을 따라 긴 언덕을 이룬 광재적재장쪽에 눈길을 돌리였다.

광재적재장우로는 제철소 용광로와 련결된 철길이 여러줄 뻗어있었다. 일제시기부터 수십년동안 용광로의 페산물들인 광재와 슬라크들을 내버린것이 저처럼 긴 산언덕을 이룬것이다.

비줄기는 점점 더 굵어지고있었다.

《이거 비가 와서 일을 할것 같지 못합니다. 어제밤 기상예보에 동해의 파도가 3메터 이상되고 해일이 일어날수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고 래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구의 부추김을 받았는지 당위원회 부원이 책임비서에게 찾아와서 머뭇거리며 말하였다. 차거운 비물과 스산한 바다바람에 부원의 얼굴은 벌써 파릿하게 일어있었다.

《뭐요?》

광재적재장을 지켜보고있던 주혁민이 홱 몸을 돌리였다.

《요만한 비를 못이겨 돌아가자는게 말이 되오. 그게 무슨 〈고난의 행군〉정신인가. 단조직장 당원들은 래일 무동력으로 3톤함마를 들어올려 40미리메터 강판을 찍어내는 결사전을 벌리는데 정치일군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요만한 비도 이겨내지 못하고 돌아가면 그들이 뭐라고 하겠소.》

주혁민은 정신상태가 틀려먹었다고 부원을 꾸중하고 인원점검을 해보았다. 직맹위원장 대리사업을 하고있는 곽경두가 오지 않았다.

주혁민이 대렬책임을 맡은 행정부문 부문당비서에게 물었다.

《곽동무가 왜 오지 않았소?》

《어제 밤 갑자기 곽경두동무와 설태섭동무를 평양에 올려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와서 오늘 새벽차에 떠났다고 합니다.》

《어디서 그런 지시가 내려왔소? 무슨 일로 그들을 부른다고 하오?》

주혁민은 전혀 뜻밖이여서 눈을 쪼프리며 물었다. 그러나 행정부문 부문당비서도 그 내막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하였다. 총국에서도 전화가 내려오고 정무원에서 또한 독촉이 불같아 지배인도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채 출장수속을 시켰다는것이다.

무슨 일로 그들을 부르는지 주혁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자, 그럼 시작해봅시다. 날 따라오시오. 먼저 페타르구경을 시켜주겠소.》

주혁민은 광재적재장을 향해 빠르게 팔을 저으며 걸어갔다.

비는 점점 더 굵어지더니 아예 억수로 퍼부어댔다.

이른 아침에 통강냉이밥을 대충 설때리고 나온 주혁민은 비물에 젖은 미끈미끈한 자갈들을 밟을 때마다 아래도리가 휘친거리였다. 벌써 허기가 져서 훌쭉 꺼져버린 배어방이 노끈에 졸리운듯 하고 눈앞에서는 꼬리벌레가 날아다니는것 같았다.

비는 그냥 퍼부어 머리에 얹은 밀짚모자와 작업복이 흠뻑 젖어버렸다.

광재적재장에 이르자 비소리는 더욱 소연해졌다.

적재장에 쌓인 슬라크며 광재덩이들은 모서리마다 유리쪼각처럼 삐죽삐죽 날을 세운채 비물을 받으며 번들거렸다.

바다물은 흰거품을 물고 기슭으로 밀려오다가는 적재장 절벽에 부딪쳐 뽀얀 비말을 날리군 하였다.

주혁민은 자갈돌 하나를 집어들고 적재장을 톺아오르면서 슬라크 짬새기들에 엉켜붙어있는 새까만 페타르를 뜯어냈다. 자갈돌로 슬라크를 두드리면 챙챙 쇠소리가 나면서 강엿처럼 시커먼 타르가 뭉청뭉청 떨어져나가군 하였다.

주혁민은 주먹만 한 타르 한덩이를 집어들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게 바로 타르라는거요. 콕스탄에서 나온 찌꺼기여서 페타르라고 하지만 저열탄보다 2천카로리나 더 높습니다. 겨울에 난로에 때도 됩니다.》

그는 높고 급하고 그리고 아득히 긴 언덕을 이룬 광재적재장의 체적과 페타르의 포함량을 얼추 타산해보았다. 페타르의 포함량을 낮추 잡아 5프로로 보아도 기업소에서 30년이상 쓸수 있는 매장량이 나왔다. 그것은 채굴조건, 운반조건이 다 유리한 백만금의 가치가 있는 연료자원이였다. 광재적재장에는 내화벽돌도 많았다.

《자, 이렇게 합시다. 근로단체일군들은 여기서 페타르를 뜯고 당일군들은 바다물에 들어가 탐사를 해봅시다. 거기에도 페타르와 내화벽돌이 있습니다.》

주혁민은 맨 선참으로 밀짚모자와 겉옷들을 벗어던지고 바다물에 뛰여들었다.

높이 솟은 물이랑이 철써덕 면상을 갈기면서 쩝쩔한 소금물을 한웅큼 입안으로 쏟아부었다.

그는 물에 개키여 기침을 깇으면서도 발더듬을 하여 물속을 누비여 나갔다. 뒤에서 알몸뚱이들이 장난군아이들처럼 와와 소리치면서 바다물속으로 뛰여들고있었다.

주혁민은 발밑에 벽돌장같은것이 밟히자 자맥질하여 벽돌 두개를 량손에 들고 허리를 폈다.

《동무들, 그렇게 물장구만 치지 말고 발더듬을 해야 돼! 벽돌같은것이 있으면 끄집어내시오. 그게 내화벽돌이요. 자, 이것 보시오.》

바다물밑에 수없이 깔려있는 내화벽돌 역시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제철소에서 쓰다버린것들이였다.

주혁민은 자맥질을 하면서 연방 내화벽돌을 주어냈다. 한쪽 모서리가 이지러진 벽돌이 있는가 하면 절반 토막난것도 있고 그울음이 새까맣게 오른것, 조금도 상한데가 없는 옹근 벽돌도 있었다. 비는 그냥 퍼부었다.

처음은 모두 물장구도 치고 자맥질도 하면서 기세좋게 페타르와 벽돌을 주어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허기가 지고 맥이 빠져 저마다 비칠거리였다. 더러는 벽돌쪼각에 발을 베여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소금물에 소독이 되여 별일은 없었다.

10시가 조금 지나자 점심을 먹고 벽돌을 줏자고 조르는 패들도 있었다.

이들이 비를 맞으며 페타르를 뜯고 내화벽돌을 줏고있을 때 설태섭이와 곽경두는 청진-평양행 급행렬차 침대칸에 누워있었다.

그들은 평양에서 서정후부부장이 자기들의 소환장을 손에 쥐고 기다리고있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곽경두는 광천합영회사 부사장이 되고 설태섭은 B광물연구소 연구사로 과학사업을 하게 된다는것이다. 새 일터로 가기전에 그들은 《HM기》의 유압설비들을 구하려 외국려행을 떠나게 된다고 했다.

지금 설태섭의 마음은 새 생활이 기다리는 곳으로 줄달음치고있었다. 그는 침대이불에 잔등을 고이고 비스듬히 누운채 차창밖을 내다보며 과학과 인간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있었다.

과학을 하나의 거목으로 상상해보자. 그 거목 꼭대기에까지 올라가본 과학자는 이 세상에 단 한명도 없다. 미끄러운 거목에 저마끔 발디디개를 파놓으면서 한단한단 오르다가는 중도에서 떨어져 생을 마치였다. 아인슈타인은 얼마쯤 올라가서 떨어졌을가? 발디디개를 몇개나 파놓았을가? 뉴톤은? 큐리는? 세계적으로 다문 한개라도 발디디개를 파놓고 죽은 과학자가 얼마나 될가? 많지 못할것이다. 뉴톤은 그 나무 어느 지점에선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지. 《저 우주를 리해하는데서 가장 중요한것은 천체다. 천체들의 크기, 위치 및 그것들사이에 적용하는 힘을 알면 우주를 특징지을수 있다.》뉴톤보다 더 높이 올라간 아인슈타인은 하늘을 보면서 《아니다. 천체보다도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아는것이 더 중요하다.》하고 뉴톤의 말을 부정했다지. 인간은 자기가 아는것만큼 보고 듣고 느끼고 받아들이는것이다. 그 차이로 하여 서정후부부장과 우리 라남사람들 사이에도 계속 충돌이 일어나고있는것이다. 아는것만큼 받아들이기때문에 나도 서정후부부장의 말을 리해하지 못했었다.

서정후부부장의 말이 옳다. 내가 라남 촌구석에 그냥 앉아있으면 과학의 거목에 내 발디디개를 파놓기는커녕 선대과학자들이 파놓은 발디디개조차 제대로 디뎌보지 못하고 떨어지고말것이다.

설태섭이에게서 이제는 모든것이 분명하고 확고해졌다. 그의 마음은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 사람들과 이미 작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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