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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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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818회 작성일 22-08-28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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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17

작업현장들을 돌아보고 사무실에 들어선 오성오는 구역질이 나면서 머리가 어질거려 쏘파에 누웠다. 반시간이 지나도록 진정되지 않고 그냥 구토감이 나면서 하늘땅이 물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돌아갔다.

오성오는 이것이 근심과 고민으로 하여 생겨난 아주 좋지 못한 증상이라고 생각되였다.

요즘 그는 유압계통의 설계도들을 새로 고치는 문제로 하여 머리가 보통 복잡하지 않았다. 그는 며칠동안 깊이 생각해보니 《HM기》유압설계도에 많은 결함이 있다고 한 기사장의 의견이 옳은것 같았다.

이제 설계도를 고치면 숱한 자재들을 새로 또 써야 하고 어렵고 복잡한 주물작업, 단조, 제관작업들을 하여야 하였다. 당장 급하게 된것은 단조직장의 전동기가 망가지고 650톤프레스의 부속품들이 못쓰게 되여 《HM기》제작에서 가장 많이 요구되는 40미리메터 특수합금강판을 찍어낼수 없는것이였다. 한편 설게사업소 독고소장과 일부 중견설계원들은 많은 로력과 자재를 랑비하면서 한정없이 실패만을 거듭하고있는 《HM기》의 개조놀음에 대하여 더는 묵과할수 없다고 로골적으로 항의해나서고있었다.

이런 복잡한 일들이 정신적타격으로 되여 급작스레 고혈압증상을 일으킨것 같았다.

허나 오성오는 구역질과 어지럼증이 일어나는데 대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자신의 고민을 로출시키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시간이 퍼그나 지나 머리가 조금 진정되여 이를 사려물고 일어섰다.

그는 배관작업장으로 향하였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속이 타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있었다. 공장시험장으로 가는 구내길 수양버들 우듬지에 하얀 쪼각달이 걸려있었다. 늘어진 검푸른 버들가지사이로는 매미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배관작업장에 들어서니 얼굴에 검댕이칠을 한 김경복이와 박준이네 부자가 10미리메터 특수강배관을 도람통만한 소형작업로 불통에 대고 구부림작업을 하고있었다. 그 소형작업로는 김경복이와 박준이 며칠전에 원래의 작업로곁에 새로 만들어놓은것이였다. 이들은 대형작업로에서 1차 구부림작업을 한다음 새로 만든 소형작업로에서 2차 정밀구부림작업을 하는 새로운 작업방법을 만들어냈다.

오성오가 들어서는것을 보고 김경복이와 박순진은 일손을 멈추고 인사들을 하였으나 박준은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기나 한것처럼 씁쓸히 돌아서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순진이가 효자로구만. 늘 아버지 일을 도와주니.》

오성오는 순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김경복에게 물었다.

《설태섭이가 여기로 자주 오는가?》

《매일 오군 했는데 요즘은 오지 않습니다.》

김경복이 작업장바닥에 널려있는 물건들을 정돈하며 대답하였다.

박준은 오금을 꺾은채 가느다란 합금배관 하나를 이리저리 굴리며 들여다보고있을뿐 오성오에게 여전히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오성오도 그에게는 시선을 돌리지 않고 순진에게 말을 건네였다.

《단조직장에서 40미리메터강판을 찍을 형편이 못되지?》

《예, 650톤프레스가 다 죽어서… 그런데 40미리메터강판을 또 찍어야 합니까? 금년 과젤 다 했다던데요.》

《또 찍어야 해. 〈HM기〉설비들을 또 고쳐야 하니까.… 그런데 야단이로군. 지금은 어디 가서 부속을 구하기도 힘드니 650톤프레스를 살려낼 방도가 없거든.…》

오성오는 긴 한숨을 내그었다. 이때 설태섭이 도면두루말이를 손에 쥐고 작업장으로 들어왔다. 그는 오성오를 보자 반사적으로 흠칫 놀라는것 같더니 인차 태연해졌다.

오성오는 그를 대엿새만에 처음 보는것 같았다. 늘 어두운 그늘이 덮여있던 태섭의 얼굴에서 이상하게도 화색이 돌았다. 한점 고민의 빛도 보이지 않는 그 편안한 얼굴이 오성오에겐 오히려 더 불안을 느끼게 하였다.

《태섭동무, 기사장의 의견에 대해 그새 좀 생각해보았소? 기사장은 유압전자변들의 규격을 좀 더 크게 하고 대신 지금 만들어놓은 40여개의 전자변들중 여라문개정도 없애버려야 되겠다고 하오. 내 며칠동안 깊이 생각해보았는데 금속재질뿐아니라 설계도자체에 문제가 있는것 같소. 윤현덕, 탁석준동무도 그걸 인정하고있소.》

《저는 달리 생각합니다. 더는 개조놀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정후부부장의 말이 옳았습니다. 괴로운 일이지만 우리는 용감하게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오성오는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그래서 이제 무슨 말을 하였는가고 물었다. 설태섭은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고 방금 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였다.

오성오는 그의 태연성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사람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갑자기 달라질수 있는가.

《그러니 〈HM기〉설계도를 전면개조하는데 대해 부정한다는 말이요?》

오성오는 걸상에서 일어났다.

《지배인동지, 그렇습니다.》

오성오는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설태섭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는것 같았다. 그는 물론 곽경두, 설태섭, 서정후 이 세사람 사이에 벌어진 일을 전혀 모르고있었다. 그것은 아직 누구도 모르는 그들의 비밀이였다. 곽경두의 초청을 받은 그날 저녁 설태섭은 서정후부부장에게서 두가지 확답을 받았었다. 그것은 《HM기》의 기술자료와 유압계통의 설비자재들을 얻기 위해 곽경두와 함께 이웃나라를 거쳐 서방나라에까지 먼 려행을 하게 된다는것과 과학원으로 적을 옮기게 된다는것이였다.

서정후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였다. 태섭은 그가 이 모든것을 능히 실현시킬수 있다고 믿었다.

태섭은 서정후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에게 운명을 의탁하여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곽경두의 말대로 그들과 운명의 배를 같이 타기로 결심하였던것이다.

《부정한단 말이지?》

오성오는 아래다리로 더운 피가 슬슬 새여나가는것 같은 허탈감을 느끼며 중얼거리였다.

《지배인동지, 다시 말하지만 우린 50번이나 실패했습니다.》

《그래 다른 공장에선 성공했는가? 동무대신에 ㄹ기계공장에 갔던 강충현소장도 그래, 평남도쪽에 갔던 탁석준동무도 그래 거기선 우리보다 더 한심한 형편이라고 했소. 서정후부부장의 의견을 따른 공장들이.》

오성오는 자기의 목소리가 오열에 떨리는것 같아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지배인동지, 이제 그 공장들의 〈HM기〉는 조만간에 돌아가게 될것입니다. 유럽에서 유압계통의 설비와 비밀자료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러면 순간에 다 해결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걷어치우라! 어디서 그따위 헌소릴 듣고와서 선전하는가. 내앞에서, 이 오성오앞에서.》

오성오의 가슴에서 드디여 분노가 폭발하였다.

《좋아, 래일부터 동문 〈HM기〉제작단에서 손을 떼고 설계사업소로 출근하라! 동상이몽이란것이 무엇인가 했더니 바로 이것이였구만.》

오성오는 급하게 걸어가서 출입문을 열어제꼈다.

《나가라!》

설태섭은 지배인을 외면한채 벽을 마주보고 서있었다. 그의 관자노리에서 굵은 피줄이 펄떡거리고 새파랗게 질린 얇은 입술이 경련을 일으키듯 파들파들 떨었다.

태섭은 지배인에게 등을 돌려댄채 날카로운 목소리로 마디마디를 찍어내듯 말하였다.

《지배인동지, 직권을 가지고 자기의 기술견해를 강요하지 마십시오. 강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이며 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늘 강조하신 문제가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수십번 실패하면서도 마음놓고 〈HM기〉시험을 계속할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배인동진 자기의 기술견해와 달리한다고 해서 저를 배신자처럼 취급합니까. 저는 지배인을 배신하는지는 몰라도 당을 배반하지는 않습니다.》

《당을 배반하지 않는다?》

오성오는 또다시 구역질이 나고 어지럼증이 일어났다. 그는 리성을 가다듬으며 애써 분노를 삭이였다.

《태섭동무!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오. 우리에게 〈HM기〉를 맡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무엇을 바라고계시는가? 전 지배인이 사망하기 직전에 물어본 말이요.

우린 아직 그 물음에 완전무결한 답을 찾지 못하고있소. 다시말해서 장군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고계시는지 그 깊은 뜻을 아직 다는 모르고있소. 그러나 한가지만은 명백하오. 100프로 우리 식의 〈HM기〉를 개발하면 장군님께서 제일 기뻐하신다는것을. 그렇게 할 때 완전히 우리의것, 나의것이 되며 나라의 자주, 자립, 자위로선에 조그마한 편차도 없게 된다는것을. 그래서 지금 우리 제작단동무들은 죽으나 사나 전면개조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는거요. 그런데 우리와 함께 굳게 맹세를 다졌던 동무는 우선 자신을 배반했고 동지를 배반했고 기업소 전체 당원들이 손을 들어 채택한 당조직의 결정을 배반했소. 이런 사람은 꼭 당과 조국을 배반합니다.》

설태섭의 얼굴은 처음 거멓게 질렸다가 심한 출혈을 한 사람처럼 하얘지고 다음에는 벌겋게 붉은 혈조가 피여올랐다.

《지배인동지, 사고를 정확히 하십시오. 나라에 리익을 주는것이 당에 대한 배반인가 손해를 주는것이 배반인가? 지배인동지의 그 리상은 수십년후에 이를테면 지배인동지의 년세가 80~90에 이를 때 실현될수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21세기전으로, 즉 4년동안에 〈HM기〉 여러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당이 바라고 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때문에 서정후부부장은 첫 단계에서 유압설비만은 유럽의것을 리용하여 〈HM기〉를 개발하도록 목표를 세운것입니다.

비극은 그것을 이제 비로소 정확히 알게 된것입니다. 옳은것을 따라가는것이 배반일가요? 지금까지는 우리모두가 광복후 우리 나라에서 민주주의혁명을 거치지 않고 공농쏘베트를 건설하자고 주장한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를 하였습니다.》

이때 별안간 땅! 하고 철판이 깨여져나가는듯 한 소리가 일어나 오성오도 설태섭이도 소스라쳐 놀라며 옆을 돌아보았다.

박순진이 분격을 참지 못해 바닥에 놓여있는 10미리메터 철관을 집어들어 유압작업로 벽을 후려쳤던것이다.

《뭐, 공농쏘베트?! 그래 우리 아버지, 우리 책임비서, 지배인이 다 수령님의 로선을 반대한 그런 놈들과 같은 생각을 한단 말이야!》]

《순진이, 그렇다! 똑똑히 알아두라! 기술혁명에서의 좌경이고 조급성이다. 력사가 단죄할것이다. 숱한 로력, 자재, 시간을 랑비한 그 좌경을.》

설태섭은 손에 쥐였던 도면두루말이를 내던지고 열려진 출입문으로 구두발소리를 크게 울리며 걸어나갔다.

오성오도 거의 무의식적으로 비칠거리며 출입문으로 빠져나왔다. 얼마동안 걸어가던 그는 복도창문턱에 손을 짚고 망연히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그때로부터 두시간후 책임비서의 방에 주혁민, 오성오, 최강철 세 책임일군이 모이였다.

토요일 밤 10시부터 11시사이는 3위1체 주총화모임시간이였다.

그들이 토요일 밤 쏘파에 앉을 때에는 말없는 약속이라 할지 혹은 습관이라 할지 늘 책임비서를 가운데 두고 왼쪽에는 지배인, 바른쪽에는 기사장이 앉았다.

오성오는 배관작업장에서 설태섭이와 충돌했던 일을 화제에 올리였다.

《우리가 21세기전으로 여러대의 〈HM기〉를 개발하지 못하면 서정후나 설태섭, 독고명천이와 같은 사람의 말이 옳은것처럼 됩니다. 여기에 심각성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때문에 최신최첨단기계개발에서 사대주의가 조장될수 있습니다.》

오성오는 절망적으로 뇌이였다. 그러자 주혁민이 오성오의 어깨를 무랍없이 주먹으로 치며 《여보 지배인, 우리가 하지 못한다는건 무슨 소리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설태섭이는 속이 울컥해서 한번 밸을 쓴거지 본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HM기〉를 우리 공장의 실정에 맞게 우리 식으로 개발해야 된다고 제일 먼저 적극적으로 나선 기술자가 바로 설태섭동무요. 그렇지 않소. 기사장?》하고 최강철을 돌아보았다.

최강철은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오성오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목석처럼 앉아있는 기사장이 괘씸하였으나 애써 감정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게 됐는가. 〈HM기〉는 50번 실패했는데 21세기는 4년밖에 남지 않았소. 자재, 원료들이 떨어지다 못해 이젠 석탄마저 거덜이 나서 가열로들이 다 숨을 즉일 형편이고 유압설비들을 다시 고쳐만들자면 40미리메터 합금강판이 요구되는데 부속과 전기설비들이 다 마사져서 단조직장의 프레스, 함마들이 더는 가동할수 없게 되였습니다. 앞이 막막합니다.》

《사실 우리가 계획, 계획하면서 설비들을 너무 혹사했습니다. 이제는 부속 하나도 어디서 얻어올 형편이 못되는데 대상설비생산계획에만 정신이 팔려 설비관리에는 낯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최강철이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였다. 순간 참아오던 오성오의 분노가 폭발하였다.

《여보, 그게 바로 기사장이 할 일이 아니오. 왜 설비가 혹사되는걸 보고도 가만 있었는가. 기사장은 호인이라고 칭찬을 받고 지배인은 욕설만 하는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고… 호인으로 칭찬을 받는 동안… 당신의 그 빛나는 인격이 〈HM기〉도 말아먹었소.》

《지배인동무! 흥분하지 마오. 왜 자꾸 그럽니까.》

주혁민이 지배인의 팔을 잡아 흔들었다.

《뭐가 암담하다고 그럽니까. 위대한 장군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탐구하면 자재도 나오고 원료도 나옵니다. 윤현덕령감이 자기 로친네한테 부탁해서 알아보았는데 형석광과 주물용모래를 라남근처에서 해결할것 같다고 하오. 라북천에 있는 형석광과 생기령의 모래를 분석해보니 황산형석이나 광평모래에 못지 않다고 합니다. 거 보시오. 탐구하면 된단 말이요. 그리고 가열로의 연료도 해결할 방도가 있소. 액체연료를 써봅시다. 청진 앞바다가에 가면 제철소에서 수십년동안 내버린 페타르가 가뜩합니다. 페타르 한덩이를 뜯어다 실험해보았는데 갈탄보다 오히려 발열량이 높소.》

주혁민은 벌떡 일어나더니 사무탁앞으로 뛰여가 아래빼람에서 시꺼먼 돌덩이같은것을 꺼내보이였다. 그것이 바로 페타르였다.

주혁민은 액체연료를 쓰기 위해 자기가 현재 기업소에 있는 증기복합식가열로들을 액체연료와 고체연료를 다 같이 쓸수 있는 만능가열로로 개조하겠다고 자신있게 말하였다.

《로벽을 조금 넓히고 몇군데만 손질을 하면 됩니다.》

기분이 앙양된 주혁민은 페타르를 도로 빼람안에 집어넣고 힘있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가열로와 연료문제는 내가 당위원회일군들과 사회단체일군들을 데리고 맡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당장 걸린건 40미리 특수강판을 찍어내는건데 그것도 전혀 암담한건 아니요. 윤현덕실장이 룡성기계에 가서 프레스부속을 구해보겠다고 했소. 거기 프레스직장장이 자기 동창생이라오. 세상 고정한 령감이 하도 급해맞으니 〈외교〉사업에까지 나서는 판이요.》

(윤현덕실장이?)

오성오는 그동안 주혁민이 40미리메터 특수강판문제로 행정기술일군들보다도 더 안타까이 뛰여다닌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하고 자책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는 윤현덕실장이 프레스부속을 구해오는 최선의 경우에도 현재 단조직장의 전동기가 고장난 조건에서 프레스를 가동시킬수 없다고 생각하고 기사장에게 독촉하였다.

《기사장동무, 전동기를 빨리 고쳐야겠소.》

《전동기 역시 부속이 걸렸습니다. 고칠수 없습니다.》

기사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부속이요? 도대체 어떻게 설비관리를 해서 모조리 그판인가.》

오성오는 부아가 나서 소리쳤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욕할것이 못되였다. 부속품사용기간을 보면 거의 다 몇년씩 초과된것들이였다. 낡은 부속을 가지고 그만큼 쓴것만 하여도 기적이였다.

기사장은 오성오의 신경질에 대해 조금도 티내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앞으로 다른건 몰라도 전동기부속같은건 우리자체로 생산할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될것 같습니다. 그건 후에 할 일이고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겠습니다. 제가 40미리강판을 찍어낼수 있는 한가지 방도를 생각한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성급히 소리치며 물어보는 사람은 지배인이 아니라 주혁민이였다. 성미가 누긋하고 량순한 기사장은 고개를 수긋한채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야, 거 빨리 빨리 좀 말하오. 난 탁석준동무의 늘어진 성미에 딱 질색인데 기사장도 동류항이요?》

《3톤함마로 40미리강판을 찍어내자는겁니다.》

《전동기가 고장인데 3톤함만들 쓰겠소? 무슨 대단한 방도가 나오는줄 알았더니…》

주혁민이 맥이 풀려 혀를 찼다.

《전동길 딱 써야 맛입니까. 무동력으로 하지요.》

《뭐요? 무동력? 3톤함마를 무동력으로 들어올린단 말이요?》

이번에는 지배인이 눈을 치뜨고 기사장에게 고개를 돌리였다.

《왜 못들어올리겠습니까. 알키메데스는 전기가 없던 기원전시기에 지지점만 주면 지구를 들어올리겠다고 하였는데 3톤함마를 못들어올리겠습니까. 지레대의 원리를 쓰자는겁니다.》

최강철은 3톤함마 량쪽에 각각 10메터의 쇠지레대를 련결하고 단조공들이 그 두개의 지레대를 누르면 어렵지 않게 3톤함마가 발방아공이처럼 공중 들린다고 하였다.

《설사 그렇게 중세기식으로 3톤함마를 쓴다고 하여도 40미리메터강판을 만들어내겠소? 그건 650톤프레스로 찍는건데… 거 말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오.》

주혁민은 고개를 저으며 쏘파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책임비서동지, 3톤함마를 220번 내리치면 650톤프레스에 해당한 일을 할수 있습니다. 계산을 해보았는데 10분동안에 220번 내리치면 됩니다.》

《10분동안에 220번?》

주혁민은 입을 딱 벌린채 어리둥절해하였으나 성미가 마르면서도 침착한데가 있는 오성오는 실눈을 지은채 까딱없이 앉아있었다.

그는 생각을 더듬었다.

3에 220을 곱하면 660이였다. 그러니 3톤함마를 220번 내리치면 650톤프레스에 해당한 일을 할수 있을것 같기도 하엿다.

하지만 일격에 650톤의 힘을 가하는것과 3톤의 힘을 10분동안에 220번 반복하는것이 과연 동일한 결과를 가져올수 있겠는지 의문이였다.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여도 순전히 사람의 뚝힘으로 10분동안에 3톤함마를 220번 내리치는 일이 조련치 않을것 같았다. 더구나 몇달째 식량고생을 겪어 영양상태가 나빠진 사람들이 3톤함마를 무동력으로 다루는것은 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어쨌든 꼼꼼히 계산해보자! 계산해보자.…)

오성오는 눈을 감고 머리속으로 수자들을 굴리기 시작하였다.

《책임비서동무, 해봅시다. 십분 가능합니다.》

까딱없이 앉아있던 오성오가 날카롭게 부르짖으며 일어섰다.

《지배인이 된다면 되지. 지배인이 된다고 해서 안된 일이 있습니까.》

주혁민이도 덩달아 일어서며 밝은 웃음을 띠고 말하였다. 실지 그는 지배인의 실력을 믿고있었다. 물리, 수학에 대한 지배인의 조예도 보통수준이 아니였다. 특히 재료력학에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어 대학 초청강의에도 여러번 출연했었다. 오성오는 지금까지 암산을 하고나서 결심을 내린것이였다.

《책임비서동무, 이것을 위해 당원결사대를 무어주시오. 만약 이것이 성공하면 기가 꺾이였던 종업원들에게 큰 영향을 줄거요.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자 없다는 장군님의 말씀의 의미를 설명해줄겁니다. 결사라는 말은 죽음을 각오했다는 소린데 결사를 해야 살수 있습니다. 옛 병법에도 죽자하면 살고 살자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예, 해봅시다. 지레대도 만들고 두루 만들것이 있겠으니 그런 기술적문젠 기사장이 맡아서 하오. 지배인동무의 지시대로 당원돌격대는 내가 직접 조직하겠습니다.》

주혁민이 역시 이것이 지배인의 말대로 단순히 40미리메터 특수강판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것 같았다. 여기에 전체 종업원들을 불러일으킬수 있는 흥분점이 있었다.

쏘파에서 일어난 기사장이 반롱담처럼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미 16세기에 우리 조상들이 이런 방법으로 현대의 프레스를 대신하는 대형쇠함마를 썼습니다. 모든것이 바른 〈고난의 행군〉이니 우리는 잠간 16세기로 물러났다가 높이뛰기선수처럼 냅다 달려 21세기로 도약합시다.》

오성오는 웬일인지 눈굽이 쩌릿해져 창문쪽으로 몸을 돌리였다.

그 이튿날 주혁민은 단조직장 부문당비서와 토론을 하고 든든하고 날파람있는 젊은 당원단조공들로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지레대 량옆에 다섯명이 붙는것으로 보고 교대인원까지 예견하여 21명을 선발하였다. 이중에서 한명은 3.5메터높이의 발판우에 올라서서 상하운동을 하는 함마의 중심각을 잡아줄 사람이였다. 그 함마잡이를 박순진에게 맡기였다. 21명의 당원결사대원들중 박순진이 하나가 당원이 아니였다. 아버지를 닮아 손재간이 있는 박순진은 4년동안 3톤함마를 다루어온 기능높은 단조공으로서 입당준비를 하고있는 때여서 주혁민이 일부러 그를 결사대에 망라시키였다.

함마에 지레대를 련결시키는 일은 기계조립의 능수들인 김경복, 박준들에게 맡기고 총전투지휘는 감각이 예민하고 단조기술도 있는 강충현소장이 하도록 하였다.

일요일 반나절 손을 맞춰보고 월요일 아침 9시부터 전투를 벌리도록 하였다.

주혁민은 결사대를 조직해놓고는 당위원회와 사회단체 일군들을 데리고 페타르를 실어오려고 청진 앞바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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