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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라남의 열풍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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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001회 작성일 22-09-03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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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23

평양ㅡ두만강행렬차가 라남역에 도착하였다.

큰길옆에 서있는 《라북천려관》의 담홍색벽체와 복도유리창들은 손님들을 청하듯 붉은 락조를 눈부시게 반사하고있었다.

역에서 내린듯 한 양복차림의 중늙은이가 간판을 보고 접수구앞으로 다가갔다.

중늙은이는 려관수속을 하려는듯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접수구옆에 써붙인 알림글을 보고 눈동자가 굳어졌다.

《쌀을 가지고온 손님만 접수합니다.》

중늙은이는 뭐라 중얼거리며 가버렸다. 얼마후 려관을 찾아온 또 한 손님도 접수구옆에 써붙인 알림글을 보고 가버렸다.

려관건물은 덩지도 크고 시설도 괜찮았으나 그 인사불성의 알림글때문에 언제나 빈집처럼 조용하였다.

세번째로 려관에 찾아온 손님은 서정후부부장이였다. 누런 악어가죽 들가방을 든 그는 과학기술위원회의 국장이라는 중년남자 한명을 데리고왔다. 그는 라남에 출장을 오면 이 려관을 단골집처럼 썼다. 미리 전달을 받았는지 려관책임자와 관리원들이 귀빈실로 쓰는 웃층에 대기하고있다가 서정후가 도착하자 새 이불을 내놓는다 욕조에 물을 채운다하며 분주히 돌아쳤다.

서정후는 려장을 풀고 목욕을 한다음 국장을 데리고 뒤골방으로 들어갔다.

조선식으로 돗자리를 깔고 초물방석을 받쳐놓은 아늑한 뒤골방에는 앙증스러운 조미료단지들을 갖가지로 갖추어놓은 큰 네모밥상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옻칠을 한 윤기도는 까만 밥상 가장자리에는 장수생으로 이르는 송학을 대조적인 흰색으로 연하게 그려놓아서 자못 정갈하면서도 품위를 돋구었다.

《참 려관을 깨끗이 꾸리구 봉사도 잘합니다.》

국장은 초물방석에 들어앉으며 흰색으로 소나무와 학을 그린 밥상을 희한하게 내려다보았다.

《봉사를 잘한다구요? 접수구에 써붙인걸 못봤소? 제 먹을 쌀을 가지고오는 손님만 접수한다구 한걸. 귀빈실은 괜찮지만 일반칸은 한심하오.》

서정후가 남방샤쯔 웃주머니에서 《말보로》담배곽을 꺼내며 선웃음을 지었다. 영국제 가스라이타로 담배불을 붙이고 무슨 말인가를 계속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하얀 앞치마를 두른 접대원이 음식쟁반을 들고 나타났기때문이였다. 뒤따라 음식그릇을 든 젊은 녀자가 또 들어왔다.

밥상우에 프랑스제 포도주 한병에 소고기를 듬뿍 썰어넣은 채소볶음을 안주로 받쳐놓고 닭알과 닭고기고명을 놓은 메밀국수를 들여왔다.

이윽고 중년부인인 려관책임자가 들어와서 서정후에게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말을 하였다.

《부부장동지, 변변치 못한 음식이지만 많이 드십시오.》

《씨원한 국수를 먹고싶었는데 고맙소. 요즘 이런 메밀국수가 쉽지 않지. 참 인사를 하오. 이분은 과학기술위원회에서 온 국장이며 박사선생이요.》

《그렇습니까.》

려관책임자가 국장을 마주 바라보며 고개인사를 하였다. 순간 국장은 웬일인지 갑자기 눈을 흡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인차 그의 얼굴은 평온하게 가라앉았다.

서정후는 그의 거동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려관책임자에게 말하였다.

《나하고 국장은 오늘부터 한 열흘 이 려관에 있어야 할것 같소. 그리고 사나흘 지나 라남탄광기계련합기업소를 검열하려 사람들이 내려옵니다. 한 10명이 와서 대엿새 있게 됩니다.》

서정후는 기술료해를 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 내려왔으나 검열하러 왔다고 하였다. 원래 그는 라남의 《HM기》제작단사업에 대한 기술검열을 하도록 당위원회에 제기하였댔으나 검열이라는 이름을 료해로 고치라고 하여 결국 《료해소조》가 되였다.

《예, 라남기계공장 직맹위원장인 곽경두동지한테서 들었습니다. 라남기계에 말썽이 많아 부부장동지가 검열그루빠를 데리고 내려온다고요. 그분이 부부장동질 대접해드리라구 음식감들을 많이 가져다놓았습니다. 이 메밀, 술, 고기두 다 그분이 가져온겁니다.》

《곽경두 그 사람은 이젠 라남사람이 아니요. 다른 기관으로 승급했소. 그는 지금 외국에 가있소.》

《야 참, 대단하군요.》

려관책임자는 부러운듯 탄성을 올리였다.

서정후는 이번에 설태섭이와 곽경두의 소환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고 그들을 외국에까지 보내게 된것을 자못 만족스럽게 생각하고있었다.

《책임자동무.》

서정후는 상우에 놓인 저가락을 집었다 놓으면서 너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오래 있지는 않겠으니 며칠동안 수고해주시오. 이번에 오는 검열그루빠동무들은 늘 집을 떠나 외지에서 고생하는 동무들이요.》

그는 료해소조를 지난기간 사업을 통해 인간적으로 가까와진 사람들로 조직하였다. 료해소조 기술책임자로 선발한 과학기술위원회 국장만 하여도 과학원에 있을 때부터 서정후를 선생처럼 존경하고 따르던 사람이였다.

《로씨야의 문호 똘스또이는》하고 서정후는 국장과 려관책임자를 번갈아보며 입을 열었다.

《재물을 쌓아두면 인분처럼 악취를 풍기고 뿌리면 땅을 걸군다고 하였는데 곽경두가 우리 검열그루빠사업의 중요성을 리해하고 가산을 다 털어 많은 돈을 냈소. 애국자요. 그는 이웃나라로 해서 유럽을 돌아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큰걸 물어올게요. 오성오는 별치 않은 기계하나 개발하고도 영웅이 됐으니 곽경두는 2중, 3중영웅이 될수 있지. 그 사람 조카의 기업판도가 대단히 넓어 서방나라 〈HM기〉회사까지 미치고있소.》

서정후의 이 말속에는 자기자신의 꿈이 있었다. 사실 그는 곽경두에게 운명적인 기대를 걸고있었다.

곽경두는 외국에 자주 다닐수 있는 기관에 넣어주면 《HM기》뿐아니라 그밖의 중대한 최첨단과학기술자료들을 얼마든지 뽑아올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그러면서 사업용으로 쓰라고 서정후에게 외국제물건들을 적지 않게 주었다.

서정후가 《말보로》담배를 피우기 시작한것도 곽경두와 인간적으로 가까와진 때부터이고 라북천려관을 단골집으로 다니며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된것도 그때부터였다.

서정후는 려관책임자가 나간 뒤 국장과 마주앉아 술을 치면서 넌지시 물었다.

《여보, 아까 려관책임자를 보는 순간 왜 그리 놀랐소? 아예 기절할것 같더구만. 허허허…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려관책임자가 몹시 어리둥절해 하는것 같았소.》

《사람이란 죄를 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국장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면서 자기가 청년시절에 한 처녀를 사랑하다가 다른 녀자에게 매혹되여 첫사랑을 하던 녀자를 배반하게 되였는데 지금도 그 녀자와 얼굴이 비슷한 녀인을 보게 되면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고 하였다. 려관책임자를 보는 순간에도 그런 리유로 해서 당황했다는것이였다.

《어느 영화엔가 사랑을 배반하는자는 조국도 배반한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 온몸이 오싹하더란 말입니다. 하 하 하.》

서정후도 흥겹게 따라 웃었다. 그에게도 젊은 시절 그러루한 일이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 인물이 괜찮은 어느 하급생처녀에게 반하여 따라다니던끝에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게 되였는데 대학을 졸업한후 인물에서나 가정환경에서 훨씬 더 나은 새 녀자와 사귀게 되여 본래의 처녀를 예술적으로 슬그머니 떼버렸었다.

그러나 국장처럼 그 녀자때문에 놀라거나 불안을 느껴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 일은 청년시절에 흔히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돌이켜보면 인생관, 가치관은 매우 가변적인것 같았다. 더두 말고 곽경두와 가까이 지내면서부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지는것을 의식하게 되였다.

사치스러워지고 향락에 취미를 붙이게 되였으며 사심이 많아지고 저속한 잡생각에 잠기는 때가 뜨문해졌다. 그전에는 새 과학기술을 습득하고 지식을 갱신하기 위해 책을 보는 일로 밤시간을 보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 저녁처럼 화려한 음식상에서 향락의 밤을 보내는 시간이 더 잦아졌다.

(내가 속물로 되여가는게 아닌가?)하고 여러번 두려운 마음으로 자문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군 하였다.

서정후는 밤늦도록 국장과 사담을 하다가 침대우에 곯아떨어졌다.

그는 몇시간 자지 못하고 북소리와 나팔소리에 깨여났다. 어제밤 시간을 랑비한데 대한 후회를 느끼며 도이췰란드어 원문으로 된 유압에 대한 기술서적을 손에 들려고 하는데 방송차가 소란스럽게 려관앞으로 지나갔다.

《라남의 로동계급은 결사의 각오를 가지고 일떠섰다. 일어나라. 1985년 6월 우리 라남의 로동계급이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제2차공작기계새끼치기운동의 봉화를 지펴올렸던 그때처럼…》

방송차에서 울리는 녀방송원의 야무진 목소리가 서정후의 잠자리에서도 크게 들리였다.

그가 책을 덮고 일어나 잠옷바람으로 창문가에 다가서는데 조심스러운 손기척소리가 울리였다.

관리원처녀가 양치물을 들고 들어왔다.

《밤새 편히 주무셨습니까?》

《예- 감사합니다. 방송차가 매일아침 저렇게 다니오?》

서정후는 원탁우에 놓여있는 약수병을 흰 사기고뿌에 기울여 한모금 마시며 물었다.

《예, 라남탄광기계에서 매일 아침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집단출근을 합니다. 저도 한번 봤는데 참 구경스럽습니다.》

《집단출근을 한다?》

서정후는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그는 속으로 그따위 형식주의가 무엇에 필요한가, 괜한 도섭을 부려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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