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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별의 세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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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253회 작성일 22-10-02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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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4. 하정례의 이야기

사람들중에는 철학가와 리상가들도 있다. 철학가와 리상가를 구별짓는 특징이 무엇인지 나는 자신할수 없다. 그러나 철학가들이 리치를 중시한다면 리상가들은 감성을 더 중시한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리화녀대 프랑스문학과를 다니던때 나는 리상가들을 더 숭배하였다. 간디, 똘스또이, 슈바이처, 페스탈로치… 나는 그들이 겪은 인생에 매료(매혹)되였고 그들의 고민과 리상에 공감하였다. 그리하여 나 역시 인간에게 꿈을 지니는 법을 가르쳐주고싶었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생에 참여하는것을 가르쳐주고싶었다. 꿈이란 곧 사랑이였고 생의 참여란 곧 새 세계의 창조였다.

나는 그처럼 순진하였다. 아아-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이 그러했었다. 나는 리상가들의 세계가 펼쳐진 영사막앞에 앉아 가슴을 졸이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영사막에 그려지던 영화의 화면들이 홀연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나를 사로잡았던 주인공들도 사라져버렸다. 결국 나를 매료시켰던것은 그들, 영사막에 나타났던 주인공들의 꿈이였을뿐 나의 꿈은 아니였다.

내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환상의 세계에 대해 뇌까리고있다고 생각할수도 있다. 그렇지만… 참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나는 려수에서 나서 자랐다.

지금부터 꼭 두해전인 1948년 10월 19일 밤 11시 려수에서 제14련대의 봉기가 일어났다. 당시 14련대 인사계 선임하사관이였던 지창수(전라남도당에서 심은 14련대당책)가 제주도인민항쟁진압을 위해 급파된다는 소식을 받고 봉기를 주도했던것이다. 그 봉기자들속에는 선임중대장이였던 나의 오빠도 있었다. 그 오빠로 하여 우리의 온 가족이 참살당했다는것을 미리 말해둔다. 14련대는 악질장교들을 처단하고 려수로 진격했고 다음날엔 순천을 점령했다. 그날 벌교방면으로 진압나왔던 광주4련대의 1개 중대가 리진범일등상사의 인솔하에 봉기에 합류했다.

세상에 잘 알려진 14련대의 봉기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은 피하려한다. 다만 나의 이후의 생활에 거대한 영향을 준 주요인물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봉기가 시작되여 사흘후 리현상이 봉기지휘를 위해 순천에 도착했다. 그의 본명은 후에야 알게 되였다. 그때 리현상은 《로동무》라고 불리웠다.

봉기군에 장교 3명이 있었는데 김지회, 홍순석 그리고 우리 오빠 하정기였다. 오빠는 리현상의 지시를 받고 구례로 진출한 15련대를 돌려세우러 갔는데 변절자의 밀고로 련대장이하 련대참모, 하사관 15명과 함께 총살되였다.

한편 봉기군은 리현상을 사령관으로 하고 홍순석중위를 지휘관, 김지회를 부지휘관으로 지휘체제를 개편한후 15련대와의 합류가 틀려지자 구례진격을 포기하고 광양을 거쳐 백운산을 넘어 지리산에 입산했다. (지창수는 선발대로 입산했다.)

서울에서 14련대의 봉기소식을 들은것은 바로 그 무렵이였다. 나는 무서웠다. 14련대엔 바로 나의 오빠가 있었기때문이였다.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떠도는가운데 나는 정신없이 고향인 려수로 달려왔다.

…집이 없었다. 재무지만이 남아있었다. 당시 적들은 봉기군에 동조한 무고한 사람들, 교원, 로조성원들까지 닥치는대로 잡아다가 도살하였다. 아버지도 교원이였다. 거기에 아들이 봉기자였으니 가만둘리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검으로 찌르고 녀동생 정임은 유방을 도려내고 국부에 말뚝을 박아죽였다.

세상에!… 이런 변을 당하리라고 어찌 상상인들 했으랴. 그때 내가 어인 일로 미쳐버리지 않았는지 지금도 풀이할 길이 없다. 실성한것처럼 거리를 헤매고다녔고 눈에 보이는대로 물어뜯었다. 집터에 남은 인형애기를 가슴에 품고다녔고 누가 뺏을가봐 재무지속에 묻어두기도 했다. 그 인형애기는 정임이와 비슷했다. 나는 그것을 동생 정임이라고 믿고있었다. 사람들이 《정례가 미쳤는디. 이를 어쩔랑가?》 하고 쫓아다니며 울고불고하는것을 나는 멍하니 보고있었다. 정례란 애가 어인 일로 미친것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미친다는게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리상가들한테 미쳐있었다. 그런데 정례란 애는 무엇에 미친것일가?… 그때의 내 생각이였다. 어쨌든 미친다는건 좋은 일이다. 이 생각은 지금도 같다. 나는 미쳐야 한다. 사랑에 미치든 리상에 미치든 복수에 미치든!… 미치지 않고서는 견디여내지 못한다.

어떻게 생각하셔요? 미친다는건 취한다는 뜻일가요?… 아니죠. 절대 아니예요. 술에도 취하고 도박에도 취하니까요. 하지만 미친다는건 깡그리 불태운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나는 그것을 빨찌산에 들어가서야 깨달았어요. 헤롱헤롱 술에 취한다는것과 사랑과 증오에 미친다는것과는 엄청 다르다는것을…

내가 지리산에 입산한것은 11월 중순이였다. 리현상부대를 찾아 광양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지창수가 이끄는 이전 14련대의 200명부대를 만났던것이다. 내가 총살당한 중위 하정기의 누이동생이라는것을 안 지창수는 두말없이 대오에 따라서는것을 허락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지창수는 광주시의 어느 한 부자집아들이라고 한다.

장골이였는데 말이 적고 의젓하였다. 그가 어인 일로 14련대 당책으로 되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혁명을 시와 노래로만 아는 젊은 시절의 충동에 끌려온것이 아니라는것만은 확신한다.

지창수의 부대는 부지휘관 김지회가 구례를 공격하는것과 동시에 광양을 치고 구례군 문척면 중산리 반내골에 가서 《지리산의 호랑이》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박종하(초기엔 강사령으로 불리웠다.)부대와 합류했다.

그때 박종하는 구례군유격대장으로서 200여명의 대원들을 지리산 피아골에서 훈련시키고있었다.

12월 10일이였다. 잊을수 없는 그날, 인생을 다시 보게 한것만같은 그날, 강사령(박종하)이 나를 보자 소리쳤다.

《아따 먼(무슨) 사람들이 요리 렴치도 없으까이! 저렇게 고운 누우님(누이) 우리한테도 알리지 않고 숨겨가지구 댕겼지라?!…》

훤칠한 키에 목소리도 걸걸했다. 나는 한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그한테 대뜸 빨려들어가는듯 했다.

강사령이 다가와 나의 눈을 들여다보고 커다란 손을 어깨에 얹었다.

《누우님, 참 눈도 사불사불하는디. 우리께루 넘어오시오.》

사실 박종하야말로 부리부리한 눈에서 웃음이 샘솟는것같은 미남자였다. 그가 웃고있는데 그럴수록 나는 고드름처럼 얼어붙는것을 느꼈다. 정말이지 천하의 녀자들심장을 꽉 거머쥘 호남아였다. 소문을 들어 알겠지만 그는 용맹한 빨찌산대장이였을뿐아니라 대원들과도 허물없이 웃고떠드는 쾌남아였다. 그한테 많은 녀자들이 반했다고하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수 있으리라.

나는 얼나간듯 그의 웃는 모습을, 가쯘한 흰 이가 드러나도록 스스럼없이 웃고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있었다. 그러다가 소스라치듯 하면서 어깨우에 얹고있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싫어요. 미남자는!》

사람들이 웃어대고 강사령은 내가 이를 사려물고있는것을 빤히 들여다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게대기(고양이) 같지라?!…》

사실 그것은 모욕하려 한 말이 아니였다. 그러나 나는 진짜로 성을 냈다.

《알아두세요. 강사령님! 다시한번 그러면 용서치 않겠어요!》

웃음소리가 그쳤다. 박종하도 나를 놀라서 쳐다보았다. 내가 그들을 모욕한것이였다. 그렇듯 소탈하고 대범한 사람들을, 그들이 바라는 웃음과 유쾌한 분위기를, 그 진정을 모욕하였다.

왜 그랬을가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것이 무서웠던거예요. 그한테 빨려들어가는것같은 그 느낌, 그것이 겁났던거죠. 그때에도 난 생각했어요. 대검에 찔린 아버지, 어머니와 끔찍하게도 모욕받으며 죽어간 정임이… 그리고 오빠… 또 있어요. 방금 보신 그 구뎅이, 숯처럼 돼버린 감나무, 그래서 야릇한 감정같은건 거부한거예요. 자신을 증오한거죠. 나는 이미 녀성이기를 그만둔 녀자라고 생각했어요. 미친 녀자, 그래요. 미치는게 더 좋았어요. 복수를 할 때까진, 가슴속 원한을 다 풀기까진 미쳐야 했던거죠.

어떻게 생각하세요?… 령혼이 미치면 육신까지 미치는 법, 녀자답지 않다고 흉 볼테면 보라죠. 상관없어요. 내겐!…

빨찌산생활이 또한 나를 달라지게 했다. 리화녀대생이였던 내가, 똘스또이나 슈바이처에 취해있던 내가 이가 끓이는 머리를 가위로 깎고 토악질나게 더러운 뜨물도 서슴없이 퍼먹는 산사람이 돼버렸다. 물론 사람을 죽이는것도 무섭지 않았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49년 봄부터 백운산특수지구당(특각)이 조직되여 유격투쟁은 리현상이 지도하고 당사업은 전남도당이 지도하는 체제로 활동을 개시했는데 구례의 적 12련대를 격파하고 광양, 곡성 등에서 눈부신 활동을 벌리던 리현상지휘하의 800명대부대가 구례군당이 자리잡고있던 피아골에 들어갔다가 술도가(술을 만들어 파는 집)주인의 안내로 기여든 수천명의 군경에 의해 치명적인 손실을 입게 되였다.

얼마후 술도가주인을 오라를 지워 끌어왔다. 죄상을 폭로지탄하고 사형하기로 했다. 비렬한 밀고자를 나무에 비끄러매고 총을 든 사람들이 나섰다. 그때 나는 정신없이 사람들을 헤집고 나서며 부르짖었다.

《총탄이 아깝지 않아요? 대검으로 찔러야 해요. 저놈때메 죽은 숱한 사람들을 생각해봐요. 복장이 터지지 않는가요. 찌르세요. 심장에서 피가 튀여나게 찔러요!》

사람들이 놀라서 굳어져버렸다. 총을 들고나선 군인들조차 멍청해서 나를 보고있었다. 그러니 그때의 나는 싹수머리없는 녀자이거나 실성했던것인가?… 미칠듯 한 분노의 발작이였던것만은 틀림없다. 나는 한사람에게서 보총을 뺏아들고 그것으로 가증스러운 밀고자를 찌르려고했다. 나의 부모, 나의 형제들과 쌀 한웅큼 혹은 누룽지 하나때문에 무참히 탕쳐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원한을 풀려고했다. 총창으로 그자의 가슴팍을 찌르려고 나아갔다.

그런데 별안간… 나는 비틀거렸다. 벼락을 맞은듯 했다. 머리가 뻥해지고 눈앞이 뿌예지고… 나는 그만 총창을 꼬나쥔채 무너지듯 무릎을 꺾고 어푸러졌다. 그자가, 그 너절한 악한이 나를 물끄러미 보고있는것이였다. 나를 쏘아봤거나 비굴하게 몸부림치며 용서를 빌었다면 어찌됐을것인지… 그런데 그자는 죽은 생선의 눈알처럼 벌개진 눈으로 그저 물끄러미 지켜보는것이였다. 내가 총창을 겨누고 나가는데도!… 나는 몸서리쳤다. 사람을 죽인다는것이 얼마나 무섭고 진저리나는 일인가를 깨달았다. 벌써부터 나는 울컥하고 토할것만 같았다. 그런데 적들은 어찌했던가! 내 동생 정임이만 해도 발가벗긴채… 어찌했던가!… 나는 땅을 허비며 울부짖었다. 형제들, 여러분네들, 놈들은 우리를 어떻게 란도질하는가, 얼마나 참혹하게 도륙을 내고있는가, 저놈을 찔러주세요. 제발 나를 대신해서 찔러주어요! 하고 울며 소리치며 악을 썼다.

누가 나를 끌어냈던지… 총소리가 울렸다. 지금까지 숱한 총소리를 들었지만 그날처럼 맥빠지게, 어수선하게 울린 총소리를 들은 기억이 내게는 없다.

그해(1949년) 9월 16일 구례에서 《토벌》대와의 대격전이 있었다.

지리산의 리현상부대는 려순사건이후부터 부대를 지휘한 김지회, 홍순석 등을 잃고 수많은 병력손실을 당하자 박종하를 소환하여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사령관은 물론 리현상선생이다. 다들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빨찌산에서는 있을 법도 하지 않는 류다른 부름이나 꼭 그렇게 부르는것이 통례였다.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무슨 일에 부닥치든 바위처럼 끄떡없이 생각을 굴리고 결심한다. 그의 도수높은 안경알속에서 사색깊은 두눈이 내다볼 때엔 그가 나를 보는것인지 아니면 천년전의 산성흔적을 살피고있는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분이야말로 권총을 차고있는 고고학자의 모습이였다.

그러한 사령관과 도담하고 정열적인 전투지휘관 박종하는 잘 어울렸다. 한편은 사색형이고 한편은 행동형이다. 한편은 미소하고 한편은 걸쭉한 욕설을 퍼붓는다. 나를 놓고도 그랬다. 리현상사령관은 조용히 말했다.

《우리 맏딸도 정례동무와 동갑이요. 딸처럼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잘 들어줘요. 사람들과 잘 섭쓸리면서 정례동무 아는껏 배워주시오.》

전투지휘관 박종하는 소리쳤다.

《개젓머리(감기)에 걸렸나. 깜찍한 얼골 노상 찡그리면서… 당최 웃는걸 보기 힘드니 동지들이 숨차하지 않능기?! 바지를 확 벗겨놓기전에 웃으씨오, 웃어!》

그는 가는곳마다에서 오락회를 열었다. 굶주리고 포위에 들어 죽기내기로 싸울 때도 전투가 끝나면 오락회를 선동했다. 지식있는 강사가 없어서 나를 불러 무어든지 강의를 하라고 청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북에서 파견된 정치공작대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대신 오락회로 굶주림을 이기고 저상된 전투사기를 돋구었다. 그렇지만 나만은 웃고떠들지 못했다. 나와 같이 부모형제를 다 잃고 입산한 사람들, 녀자들도 웃고 노래부르는데 유독 나 하정례만은 그렇지 못하였다. 남들보다 유족하게 살아왔고 공부도 많이 한 나였지만 차차로 마음이 가난해져서 아픔과 눈물의 공식만을 외웠다.

비웃지 마셔요. 지금도 여전한걸! 하고 생각하실테죠? 그래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뭣때문에 내가 달라져야 하나요? 나는 복수를 위해 입산한 녀잔걸요. 아마 강사령부대에 있었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지리산빨찌산에 가장 참혹한 시기인 50년 봄이 왔다. 《토벌》대의 공격이 지리산으로 집중되였던것이다. 당시 지리산빨찌산은 3, 5, 7련대로 편제되여있었는데 분산투쟁을 위해 7련대만 지리산에 남기고 박종하가 인솔한 3련대는 백아산으로, 리영회가 이끄는 5련대는 쌍치가마골쪽으로 빠졌다. 그때 나는 식량구입을 위주로 하는 보급투쟁을 맡고있었다.

떠나기전에 박종하사령이 말했다.

《나랑 같이 다니면 예쁜이가 될수 있제라. 자 휘딱(얼른) 결심하소. 우리 련대 문화지도원 생각 없으까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였지만 나는 비뚤어진 성미그대로 머리를 저었다.

《아- 뇨, 난 강사령형님이 더 좋아요.》

박종하의 친형인 박정하가 보급사업을 맡은 우리 별동대의 지휘관이였던것이다.

봄철인데도 지리산엔 폭설이 내려 허리까지 눈에 빠지군 했다. 아까 본 감나무나 메워진 구뎅이의 참상도 그때 빚어진것이였다. 우리가 다녀간 이 마을에 《토벌》대가 달려들어 도륙을 낸것이다.

며칠후엔 별동대장인 박정하마저 잃었다. 바구리봉부근에서 있은 일이였다. 《토벌》대가 눈우에 난 발자욱을 따라 우리를 추격해왔다. 우리는 골안을 가득 메운 눈속을 파고들어갔다. 벼랑쪽을 따라 깊은 눈속을 두더지처럼 기여나갔다. 어느새 밤이 왔는지… 눈우에 머리를 내밀고보니 릉선마다 온통 불천지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우리 몇사람때문이 아니라 피아골(구례군) 릉선에서 왕시루봉(구례군), 백아산(화순군), 백운산(광양군)으로 좌충우돌하며 싸우는 박종하의 3련대를 지키고있은것이였다.

그때 박정하가 말했다.

《난 더 못견디여. 동무들, 내 마지막부탁을 들어주겠지라?》

믿어지지 않는 일이였다. 유명한 빨찌산대장 박종하의 형님이 그런 죽는 소릴 하다니?!… 물론 박종하와는 좀 다른 성격이였다. 구례군 간전면에서 나서자란 그들 형제는 어떤 연고여서인지 어릴 때부터 살틀하진 못했다고 한다. 형님은 착실하고 진중했으나 동생은 야단스러웠다. 형님은 고향밖을 나선 일이 없으나 동생은 일본에까지 갔다가 왔는데 그때엔 벌써 수배대상이 되여있었다.

우리가 놀라와하니 박정하는 《난 부상당했소. 더는 못견디여.》 하고 털어놓았다. 살펴보니 바지가랭이가 너덜너덜했는데 뼈까지 드러난것 같았다. 그의 무릎을 잡았던 내 손도 온통 피범벅이였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눈속을 기였는지… 마지막기력까지 다 짜냈을것이다.

그는 억이 막혀 떨고있는 우리를 보며 가까스로 말을 토했다.

《나때메 동무들까지 잘못되면 어쩔라능기?… 날 죽여주소. 소리없이… 저 총창으루… 여길… 이 가슴을 휘딱찌르면 돼.》

그는 머리우의 불무지며 놈들의 그림자를 눈짓하며 절절하게 호소하였다. 살아서 적들에게 체포되여 곤욕을 당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자기의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음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에 더이상 동지들에게 페를 끼치고 싶지 않았으리라. 그는 나를 붙들고 귀속말처럼 낮게 속삭이였다.

《하정례가 말해주소. 제발 부탁인디, 눈 꾹 감구 한번만 쿡 찌르면 되여. 응?!…》

복장이 터지는 일이였다. 나는 그를 붙안고 막 몸부림쳤다. 어인 일로 나에겐 그 대검으로 가슴을 찔러야 하는 일만 차례지는것일가. 정녕코 나를 미치게 만들자는걸가?…

동지를 편하게 해주려고 권총으로 쏘았다는 말은 나도 들은바 있다. 그러나 총창으로 동지의 가슴을 찔러 고통을 덜어준 례야 이 세상 그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모두 그를 붙안고 울었다. 맘놓고 울수도 없는 형편이여서 혀를 깨물며 눈물을 씹어삼키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가 살아나지 못하리라는것을 우리는 알고있었다. 상처도 험악했지만 오랜 시간 너무도 많이 피를 흘렸기때문이였다. 그렇지만 그를 업고 적들의 불무지사이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아무리 사정했어도 그가 시시각각으로 더 큰 고통에 모대기였어도 그밖엔 달리 할수가 없었다. 진정 그렇게 한것이 옳은 처사였을가? 육신도 정신도 더는 견딜수 없는 처지에 이른 중상자를 둘러업고 계속 고통을 주는것이 과연 옳은 일이란 말인가?…

골어구에서 적들에게 발견되여 아직 얼어붙지 않은(봄철이여서) 개울물속에 뛰여들었다. 눈속에서 꽁꽁 얼어들었던 몸으로 미끄러운 개울바닥을 뛰여가기가 헐치 않았다. 박정하를 업고 뛰던 사람(백운산 특각에서 강사령- 즉 박종하가 처음 유격대를 조직할 때 20명중의 한사람)이 먼저 넘어졌다. 그앞에 있던 내가 그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벌써 숨이 져있었다. 업혀가던 박정하는 머리에 총탄을 맞아 두개골이 깨여졌는데 뇌수가 쏟아져나오고있었다. 그때의 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수 있겠는지… 분노도 원한도 슬픔도 아니였다. 죽음에 대한 막연한 생각, 이렇게 나도 죽겠구나! 하는 생각뿐… 결국 적들이 그의 《고통을 덜어준》것이였다.

그날 적들이 포위를 기도한 박종하부대는 바구리봉이 아니라 피아골(구례군)의 구례군당아지트로 들어가고있었다. 그들과 다시 만난것은 조개골부근에서였다. 박종하에게 형의 죽음을 알려야 했다. 사람들은 나를 지목했다. 그의 죽음을 확인한 사람도 나였고 눈물없이 조용히 말해줄 사람도 나 하정례라는것이였다. 녀자인 나에게 그렇게 말했던것이다. 그러니 나는 녀자가 아닌셈이였다. 눈물도 모르는 사람, 얼음장같은 사람!… 그 말을 들었을 때엔 갑자기 왈칵 울음이 터질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무말없이 머리만 끄덕이였다.

박종하는 내 말을 태연하게 들었다. 대원들과 같이 합다리나물을 뜯으며 《오늘은 나물밥을 해잡숫자는거야. 하나도 남기지말고 야짓(모조리) 뜯어라, 뜯어!》 하고 호기있게 웨치기까지 했다.

사람이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나는 부모형제들이 참살된 뒤 실성한것처럼 돌아치던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별안간 그 박종하에 대한 환멸감에 몸살이 나는것을 느꼈다. 아무리 헌헌대장부라 해도 슬픔과 고통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괴로운 표정이라도 발견할줄 알았는데…

나는 그를 적의에 가까운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면서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되알지게, 숨찬 소리로 쏘아붙였다.

《나는 강사령이 이럴줄은 정말 몰랐어요. 형님이 이걸 안다면… 땅속에서도 통곡할거예요. 남들은 그걸 말하기가 힘들어 서로 밀군 했는데… 저는 오히려 웃고 떠들어대고… 그렇게도 돌심장이세요? 그래야만 혁명을 하는건가요?… 아니, 안예요! 그건 위선이예요, 위선!…》

홱 돌아섰다. 머리를 세게 흔들며 그앞을 떠났다. 잰걸음을 옮겨가면서 이제 그가 우악스럽게 나를 붙들리라고 생각했다. 집게처럼 꽉 거머쥐면서 정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디, 내 지금 얼마나 괴로운지 워찌 안다구 그따위 소릴 하는거야?! 하고 몰풍스럽게 웨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박종하는 망두석처럼 그 자리에 박혀있었고 나물을 뜯던 그의 대원들도 허리를 편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들이 내가 한 말을 들었는지 아니면 짐작하고있은것인지 나는 알수 없었다. 하지만 그네들의 침울해진 표정은 분명 나를 힐난하고있었다. 그것이 또 나의 가슴을 쓰리게 했다.

그날 밤… 나는 불침번이였다. 4월이라 하지만 지리산의 밤은 아직도 몹시 추웠다. 낮동안엔 봄볕이 눈더미와 얼음을 소리없이 깨물고 바수었지만 산중의 밤은 여전히 맵짰다.

나는 잉걸불을 모으며 가까스로 졸음을 참고있었다. 불침번이니 한사코 졸음을 이겨내야만 했다. 전투와 행군에 지친 대원들은 모두 불담곁에 빙 둘러누워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그들의 옷에 불이 당기지 않도록 살펴야 했고 삭정이를 조금씩 놓으며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밤에도 나는 많은것을 생각했다.

어린 시절 교정에서의 생활, 배불리 먹던 일들…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생각했던것 같다. 그러다가 깜박 잠들었다. 무정한 잠이 나를 안아 멀리 또 멀리 실어갔다. 불타는 화산재에, 용암속에 나를 던져넣는듯 했다. 후에야, 아니 금시 눈을 뜨면서 알게 됐지만 그때 나는 졸음에 취해 뜨거운 잉걸불에 모로 기울어지며 머리를 틀어박는 참이였다.

누군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얼굴과 머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을것이다.

소스라치듯 놀라며 눈을 떠보니 박종하가 나를 안고있었다. 숙영지를 돌아보던 그가 잉걸불우에 기울어지는 나를 발견하고 제때에 달려와 끌어안았던것이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그가 나를 꽉 껴안고 꼼짝하지 않는 그것이였다. 불침번이 졸았다고 책망하지도 않았다.

나 역시 꼼짝할수 없었다. 사나이의 굵다란 팔이 내 몸을 휘감고있는데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 누가 이렇듯 서슴없이 그리고 아무런 사심도 없이 나를 껴안고있은적이 있던가. 도대체 그는 어쩌자고 나를 바수라뜨릴듯 억세게 안고있는것인가?… 나는 거기서 빠져나올념을 못했다. 솔직히 말하여 가느다란 몸이 부서질지언정, 숨이 막혀 죽어버릴지언정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안겨있고싶었다.

마침내 그가 말했다.

《정례동무, 우린 다 죽을수 있제…》

벌거우리한 불빛이 그의 얼굴에서 어룽거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침통했다. 숱진 눈섭에 재티가 불려있던것을 평생 잊지 못할것 같다.

그때 나는 웬일인지 가슴이 짜릿해지는것을 느끼며 숨을 죽이고있었다.

《나도 죽을수 있구 정례동무도 또 이 사람들모두 죽을수 있제.》 그가 하는 말이였다. 《한다고 얼골 찡기고 울어야 하는디?… 빨찌산은 얼어죽을 각오, 굶어죽을 각오, 매맞아 죽을 각오를 가져야 한다구, 그런 각오가지구 싸워야 한다고 리선생(리현상)이 몇번이나 말했는디… 영명하신김일성장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거 정례동무도 알제라?!…》

나는 여전히 꼼짝 않고있었다.

강사령이 나의 밤송이같은 머리를 쓸어주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그때 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는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뜨거운 입김이 나의 눈언저리를 핥으며 스쳐갔다.

《참아야제. 괴로움도 슬픔도… 죽어도 웃으며 죽는 사람 돼야 하는디. 김장군항일빨찌산들처럼 말이지. 안 그렇능기?… 정례, 그래서 내 자꼬매(자꾸만) 부탁하는기여, 웃으씨오, 웃어요. 괴로워도 웃고 죽을 고비에서도 웃고… 그 고운 입술로 조깨만(조금만) 웃어도 얼마나 예쁠깐디, 응?!… 저혼자 살고싸우는게 아니제, 제가 힘들 땐 동지들부터 생각하면서 웃으씨오, 그럼사 온 부대가 정례를 떠받들거야, 잉?!…》

말해보셔요. 그는 진정 나를 예쁜이로 보았을가요? 매정한 이 정례가 웃기를 바래서 한 말이겠지요?… 좋아요, 부부장동지도 꼭 그처럼, 강사령처럼 말할테죠. 우선 내 말을 마저 들어주셔요.…

실로 어려운 나날이였다. 《토벌》력량은 늘어나고 부대는 계속되는 엄청난 피해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박종하는 웃으라고 한다. 그 용기, 그 호방함이 부러웠지만 나는 녀자였다. 남들과는 전혀 다르게 빚어진 녀자, 한때는 꿈도 많았지만 벼락을 맞고 미쳐버린 녀자… 내가 달라졌더라면 박종하는 부대가 대기동을 시작했을 때 기어이 나를 끌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정은 달리 되였다. 6월 6일인가 7일에 있은 일이였다.

지리산에서 만 1년 8개월간 유격투쟁을 계속해온 리현상은 한 자리에서 포위되여 전멸당하기보다는 활동무대를 크게 하여 적들을 분산시키려한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태백산줄기를 타고 북으로 들어가려 했다고 추측했지만 그것은 도시 근거가 없는 어벌쩡한 소리! 리현상과 박종하 그리고 정치위원 류주목 세사람만이 아는 비밀의 기동이였다.

7련대와 부상자들만 지리산에 남기고 나머지 3, 5련대, 본부, 호위중대 등은 동북방향으로 빠져나갔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그들은 함양, 거창을 통해 덕유산에 이르렀는데 6. 25전쟁이 터진것도 모르고있다가 인민군척후대를 만나서야 기동작전을 멈추었다. 한동안 휴식하다가 대전의 인민군전선사령부에 갔던 리현상이 돌아오자 락동강이남으로 돌아가 적후투쟁을 벌렸다고 한다. 지금쯤은 후퇴하는 인민군부대와 같이 움직일것이다.

나는 7련대와 함께 지리산에 남았다. 부상병들의 보급을 맡았다. 그전에 리현상이 말했다 한다.

《하정례를 불러오시오. 강사령(박종하)이 그녀가 영어도 안다며 데리고있고싶어하는데.》

그때 박종하가 반대했다고 한다.

《또 퉁을 맞으면 어쩌끌라구. 그만둡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섭섭했다. 속이 쓰려나는것을 견딜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내게 물었다면 뭐라고 했을가. 도리질을 했을것이 틀림없다. 박종하에게 끌리는 마음을 거부하고 무서워한 나였다. 사실은 그러했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사랑을 꿈꾸던 녀대생시절의 마음이 깨여진 꽃병의 쪼각처럼 남아있은것 아닐가? 사랑! 정말이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사랑의 바다에 갈매기처럼 날으는 꿈도 많았건만… 갈매기, 바다의 갈매기가 산제비나 산매가 되여버린것일가?…

그래 말해보세요. 사랑이란 도시(도대체) 무엇인가요?… 피와 눈물로 찬 호수에 몸을 잠그었다 나래를 편 정례였어요. 그러니 결국은 사랑을 멸시하고 죽음을 찬미하는거죠. 그런즉 미친년이지 뭐예요. 리현상선생이나 박종하사령 그분들은 판다르죠. 김진서부부장동무도 도민청부위원장까지 하던 사람이고 이북교육을 받았으니 나와는 판다르지 뭐예요 . 조국과 인민을 위해, 평등사회건설을 위해 한몸 다바쳐 싸운다는 숭고한 뜻을 품고있으니… 좋아요. 훌륭한 일이죠. 나도 공감이예요. 그렇지만 나는 혁명투사가 안예요. 부모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입산했던 녀자… 언제까지 어떻게 복수를 해야 하는지는 나도 몰라요.

알고싶지도 않고, 그저 속이 풀릴 때까지… 그러다 죽겠죠. 그런데 왜 강사령은 나를 거부했을가요? 이제 만나면, 그럴 때가 온다면 따져묻겠어요. 그리도 호협한 박종하사령이!… 그도 나를 멸시하는걸가요? 내가 부부장동물 멸시하고 증오한것처럼!… 아니, 말하지 마셔요. 마저 들어주세요. 제 얘긴 다 끝났어요. 이미 말했지만 내게 공화국의 포로정책이요 국제법이요 하는 말은 절대 하지 마셔요. 그러한 관용이 뭣때문에 필요한지 나는 알고싶지도 않아요. 놈들이 국제법 같은건 개똥만큼도 안 여기고 귀축같은 만행을 하는데도 끝까지 참아야 한단 말이죠?… 난 죽어도 그렇게 못해요. 알아두셔요. 난 달리될수 없는 그런 녀자, 한순간 벼락을 맞아 리성이 다 타버린 미친 녀자, 그저 그뿐이예요. 그래서 부부장동무도 멸시하고 증오한거죠. 그러면서도 지금 제 속마음까지 다 터놓고있으니 모순투성이죠. 한데 참 이상하네요. 제가 오늘 어찌된걸가요. 네?!… 이 장광설, 넉두리… 정말 미친것일가. 미쳐가는것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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