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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꼽살 9회, 그리고 다가오는 우리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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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2건 조회 9,371회 작성일 12-01-25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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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내려 통행이 불편하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이젠 너무 많은 비가 쏟아져 홍수를 걱정해야 할 정도입니다. 시애틀이라는 곳이 원래 '비의 도시'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역에 따라서는 사십 몇 년 만의 폭설이었다고도 하는데, 그 눈을 다 녹여 버리고 다시 이 도시를 이름나게 만든 그 비가 눈이 내렸던 그 자리를 다시 덮고 있는 것입니다.


불편하긴 참 무지 불편했지만, 그래도 세상을 바라보는 즐거움은 있었던 듯 합니다. 비 내리는 거리에서 아내가 '바가지 모자'라고 부르는 정글모를 쓰고 방수 재킷을 입고서 주어진 우편물을 다 배달한 후에 일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은 무척이나 막혔습니다. 집에 오니 큰아들 녀석은 귤을 자기 방에 대여섯개는 가져다 놓고 먹고 있습니다. 아직 저녁 시간 전인데 저렇게 과일만 먹고 있나 하다가 그냥 먹도록 내버려 두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온종일 마음이 참 무거웠던 것이, 오늘 아침 집에서 나가면서 '나는 꼽사리다' 제 9화를 계속 들으며 다녔기 때문인것도 같았습니다. 대한민국 청년층의 노동환경이 열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솔직히 내가 방송을 통해 들었던 그 정도까지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내가 한국에서 대학교 다닐 때, 아르바이트는 해외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방학때 여행 가기 위해 하는 것이었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학은 분명한 재충전의 시간이었고, 그때 하는 아르바이트는 내가 즐기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함이었지, 생존의 수단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집이 다른 집보다 특별히 더 잘 살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방송을 통해 들은 한국의 대학생들의 생활은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생존의 수준이었습니다. 이 몇 주 전에 같은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과일을 먹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들을 때 느꼈던 절망과 아픔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대형 마트에서 작업을 하다 숨졌다는 한 고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더 이상 맨정신으로 들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을 하다 말고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껑껑 울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나름 사회 문제에 관심있었던 터라 사회를 바꿔보겠다고 운동을 했고, 그런 생각들은 내 삶의 전반에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나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가 싸웠던 것의 총합이, 겨우 이 정도였는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쌍한 고학생이 위험한 알바를 하다가 숨져가는 것도 못 막을 정도로, 우리가 만들어 낸 세상이 겨우 이거였나 하는 자괴감은 쉽게 제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호와 지원이가 어른이 되어 살아야 할 세상을 우리는 이미 빌려서 살기 시작한 지 오랩니다. 그러나 이젠 그것을 갚을 수 없는 지경까지 됐습니다. 이걸 바꾸는 길은 보이지만, 지금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걸 바꾸려 들 리 없습니다. 결국은 우리가 다시 나서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만일 우리 세대에게 지워진 짐이 있다면, 지금의 이 세상을 우리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바꿔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내가 거의 22년을 산 이 땅이나, 혹은 21년간 살다 온 한국이나, 경제의 구조는 결국 정치의 구조이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 풀어내지 않으면 경제의 문제를 바꿀 수 없는,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꼽살에서는 '하후상박'을 이야기했고, 저도 그 점에서 분명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어내는 것은 우선적으로 세제의 개혁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입니다. 사회 상위계층이 이 사회가 더욱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그것이 복지의 재원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살인적인 등록금이 합법적으로 지속되는 한, 한국의 젊음은 미래를 빼앗길 것이고, 그것은 결국 한국의 미래를 갉아먹을 것입니다.


다시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물론 유럽보다는 학생들에 대한 복지 수준이 떨어지는 미국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보다는 상황이 조금 낫다고나 할까요.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원할 경우 매우 저리로 학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고 장학금의 수혜 폭도 큽니다. 무엇보다 대학이 학생들을 상대로 고리대 장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혜택의 폭들이 점점 적어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여러가지로 생각해보면, 결국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99% 의 월가 점령 운동 같은 것을 통해 우리의 불만을 표출하고 이를 정치적인 움직임으로서 발전시키는 것은 결국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즉, 참여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루고 정치권이 우리의 후세들을 위해 보다 나은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 정말 중요합니다.


이젠 더 이상 '아무렇게나' 미래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연대와 참여에 더욱 큰 의미가 부여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세대의 바른 결정과 정치에의 참여가 우리는 물론 우리의 다음 세대들, 그리고 그 다음 세대들의 미래들까지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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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과집착님의 댓글

욕심과집착 작성일

참으로 동감되는 말씀입니다.

좀 잘해서 모두들 정상적으로 바로 살아보자는 취지나 바램마저도
한가닥 욕심이나 집착이 아닌가 하고 공연스레 돌이켜지는 즈음입니다.

적어도 그런 바램이야 설마 욕심/집착은 아니겠지요.
꾸준히 한 번 잘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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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님의 댓글

19세기 작성일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의 비참했던 노동자들의 시대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살아 남으려고 노동 팔고 몸 팔고.................

확 바꿔버리지 않으면 우리 모두의 후손들이 쌩고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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