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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회란?: 제대로 죽을 수 있는 나라, 걱정없이 죽을 수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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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1,666회 작성일 12-02-0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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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긴 편안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에 이것저것 고칠 것들이 많아서 속으로는 골을 싸쥐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집안일을 하다가 아이 방에 가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작은아들 지원이는 영화를 보고 있고, 토요일에 있을 교육구 음악 콩쿨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는 큰아들 지호는 내내 연습을 하다가 지친듯 머리가 아프다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여자친구 메어리와 통화를 했고, 가볍게 저녁을 먹은 저는 인터넷을 들여다보며 얼 그레이 차만 벌써 네 번째 티팟을 우려 마시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서모스탯이 고장나 벽난로가 켜지지 않았을 때 느꼈던 것은 갑갑함이고 무력감이었습니다. 아내의 자동차의 엔진 피스톤이 하나 금이 가는 일이 벌어져 이걸 고쳐야 하는데,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상황. 우리는 여기서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차를 버리고 새로 사기엔, 분할로 차를 산다 해도 우리의 금전적인 상황이 쉽진 않았고, 또 수리비도 절대로 만만치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차를 버릴 것인가 새로 사야 할 것인가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차를 고쳤는데, 그것은 타이어를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자동차 등록 갱신을 한 지도 한 달이 채 되지 않는다는 조건이 큰 이유가 됐습니다. 물론 아직 바디나 그릴 같은 것이 크게 상하지 않았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 밴을 고쳐 쓰기로 했고, 그것 때문에 몇천 달러의 목돈 지출이 있던 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벽난로가 고장난다던지, 혹은 집안의 자잘한 것들이 수리를 요하는 것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은 소시민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 출근길에 누가 뒤에서 들이 받아서 새로 갈게 된 뒷 범퍼에, 누군가가 주차를 하다가 살짝 긁은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나서 기분은 솔직히 절망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장 개스 벽난로가 켜지지 않아서, 손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된 데다, 스트릿 파킹을 해 놓은 차 범퍼에 흠집까지 생긴 것까지 본 것은 제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깜빡 잊고 아이팟 충전을 해 놓지 않아서, 음악과 팟캐스트들을 듣다가 딱 끊어져 버렸을 때 느꼈던 감정은 거의 내 자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너 뭐 했냐, 뭘 변변하게 하는 게 있냐, 뭘 고칠수가 있길 하냐, 니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뭐 있냐, 뭐 이런 내 자신에 대한 무력감, 절망감. 갑자기 이런 것들이 우울함이 되어 마음의 무저갱에서부터 쫙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푸르고 맑은 하늘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운전해 오는 것도 그런 문제들 때문에 괜히 더 피곤했고, 막히는 길 때문에 참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차는 그다지 눈에 확 띄게 데미지를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좀 걸리긴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기계치인 제가 서모스탯을 만지기 시작했는데, 고쳐질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사람을 불러서 고쳐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잠깐 인터넷 서핑중에 개스 흐르는 소리, 그리고 거기에 불이 붙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만히 눈길을 주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도 모르게 벽난로를 고쳐 놓은 것이었습니다. 역시 저처럼 맥이 빠져 있던 아내는 불이 다시 들어온 벽난로를 보고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사람 부르면 이 일도 적어도 1-2백달러는 들어가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벽난로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제 마음도 여유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까닭없이 초조해서 마시던 차가 여유롭게 마시는 차가 됐고, 아내의 조금 짜증어렸던 목소리가 봄눈녹듯 풀렸을 뿐 아니라 거기에 콧노래까지 섞어 넣는 여유도 섞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 존재던가요.


미국은 서비스라는 면에서 사람 값이 비싸긴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는 미국에서도 가장이 혼자 벌어 온 식구들을 먹여살리고 저축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70년대의 오일쇼크로 인한 불황과 그 이후 레이건 등장 이후 조직적인 복지혜택 감소, 노조 탄압 이후 미국은 그전까지의 미국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됐습니다. 여성들의 근로는 본인이 사회진출을 원할 경우, 선택적으로 이뤄졌고, 또 여성의 사회진출이 어렵고 남성과 대비해 낮은 보수를 받거나 한다면 그것이 한 사회의 후진성의 척도가 되기도 하지만, 지금 미국 사회는 평균적인 부부라면 맞벌이를 해야만 어느정도 삶을 꾸릴 수 있는 곳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 값이 아직 높다는 것, 그것은 희망일 수 있습니다. 사람 값은 곧 소비력이 될 테니까요. 문제는 특정한 산업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사람값이 높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임금도 임금이지만, 복지가 다시 살아나야 가능한 겁니다. 그 재원은 당연히 지금 비정상적으로 많은 재원을 빨아가고 있는 부유층들, 우리나라 같으면 재벌이겠지요. 당연히 이들이 부담을 해야 합니다. 기업도 소비자가 있어야 생산을 합니다. 문제는 지금 기업은 생산을 하지 않고 '금융업'을 한다는 겁니다. 기업이 돈 놓고 돈 먹기, 이자놀이를 하면서 제대로 생산을 해서 물건을 팔려고 할까요? 절대로 그게 아니라는 것이 미국의 경우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모을 수 있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은퇴하면 편안한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나라. 그것은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나라입니다. 좀 더 크게 보면, 그리고 넓게 보면, 생로병사는 그 자체로 가장 평등한 운명입니다.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나라는 물론 만들어야죠. 그렇지만 그만큼 행복한 노후와, 또 행복한, 혹은 편안한 죽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실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편안한 죽음이란 건 뭘까요? 걱정을 덜 남긴다는 것이죠.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 해도 나의 자녀와 자손들도 편안하게 나처럼 살며 여생을 보내다가 언젠가 내 뒤를 따를 때도 편안할 것이란 것을 먼저 떠난 사람이 확신하고 믿을 수 있는 그런 죽음. 그게 편안한 죽음 아닐까요. 적어도 죽음을 맞이하면서까지 내 자식들의 불안한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면, 그런 사회를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일상 안에서 부딪히는 이런 고민들이 적어지는 사회, 그리고 우리가 죽을 때 별 걱정하지 않는 사회, 그것이 복지의 핵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병원에 갈 때 고민하지 않는 사회, 정말 꼭 배우고 싶기에 대학에 가고 싶고, 그것이 부모 자식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사회. 그리고 내가 받은 사회적 혜택들에 대해 저절로 감사하게 되고, 그래서 사회에 갚고 싶어지는 그런 사회... 우리가 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사회는 이런 사회가 아닐까요.








시애틀에서...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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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님의 댓글

민중 작성일

복지사회는 이룰 수 없는 꿈같은 세상이 아니지요.
당장이라도 시도해볼 수 있는 것이고
복지를 통하여 스스로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의식만
개혁되면 정치인을 바꾸고 시스템을 바꿔서
이루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권종상 님의 글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린 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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