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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사회도 결코 사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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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1,771회 작성일 12-04-01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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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정국이 한참이던 2008년 6월부터 시애틀에서 가장 동포들이 많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갑론을박도 하는 사이트인 케이시애틀 (http://www.kseattle.com) 에서도, 촛불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당시 워싱턴 대학교(UW)에 재학중이던 한인 대학생이 조심스레 제안했던 시애틀의 상징 스페이스 니들에서의 촛불 및 피켓시위 제안에 대해 동포사회에서도 이런저런 논쟁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케이시애틀 사이트는 공론의 장이 됐습니다. 동포사회의 성향은 대체로 보수적인데,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은 '인식의 정체'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동포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떠나올 당시 그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사회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IMF 이후 당시 한국 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이곳으로 떠나온 새로운 한인 이민의 유입으로 그 간극들이 꽤 줄어들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한국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그것도 인터랙티브로 전해지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동포사회도 조금씩 과거의 닫힌 모습으로부터 달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LA나 뉴욕도 아닌 변방의 작은 도시 시애틀에 형성된 한인사회는 시애틀이란 도시가 갖는 개방성과 진보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물론 촛불을 찬성하는 쪽으로 온라인 토론을 하거나 글을 썼습니다. 인터넷이 생기기 전에 이곳에는 몇몇 진보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름이 알려졌던 단체는 '재미한국청년연합(한청련)', '한겨레운동연합' '통일형제 축구회'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단체 중 한청련은 '한 손에는 조국을, 한 손에는 동포사회를' 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이민사회가 받는 불이익에 대해 항의하고 반이민 정책에 대해 반대하며 미국 의회에 로비를 하는 등의 적극적인 동포사회 운동을 펼쳤었습니다.

'광주의 마지막 망명자'로 잘 알려진 합수 윤한봉 선생의 지도로 만들어진 이 단체는 늘 본국 정보기관의 사찰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영사관에서 감시는 물론, 진보인사에 대한 직간접적인 탄압을 자행할 때도 있었습니다. 시애틀에서 한국 식품점을 운영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 있던 통추위에 관계하고 있던 한 동포는 영사관에서 직접 나서서 자기가 운영하는 업소를 이용하지 못하게 압력을 넣어 문을 닫게 됐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시애틀엔 총영사관이 있습니다. 미 서북부의 5개주(워싱턴, 오리건, 알래스카, 아이다호, 몬태나)의 영사 업무를 맡아 하는데, 대부분의 모든 영사가 총영사의 지휘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긴 하지만 총영사가 아닌 워싱턴주의 주미 공사의 지휘를 받는 국정원 소속의 '정보영사' 입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당연히 정보 계통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부 들어서서 파견됐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김 모 영사의 경우, 촛불로 뜨거웠던 그 2008년부터 약 2년간을 직접 댓글알바로 일하시다가 인터넷에 대해 잘 아는 촛불에게 그 활동이 딱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건에서 시애틀에서 활동하던 촛불들은 참 온갖 꼼수와 간접 탄압을 받았었습니다. 다음 글을 참조하시면 그때 상황이 어느정도까지 갔었는지를 대략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538009&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sortKey=depth&limitDate=0&agree=F

그때 우리 촛불의 역량들이 참 많이 상실됐었습니다. 촛불을 들었던 우리 벗들 중에서는 영주권자여서 직접적인 탄압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도 있었고, 또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처럼 '유학생 간첩단 사건'과 같은 조작된 공안사건을 만들어 우리를 엮으려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기에 나름 굴하지 않고 온라인에 글을 올리며, 또 우리만의 싸이트인 한시애틀(http://hanseattle.com) 을 만드는 등 나름 활동을 계속하던 중, 저는 아는 지인을 통해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인회에서 문화활동을 하시던 아는 형님으로부터, 새로 정보영사가 부임했고, 그가 저를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도 그런 만남이 혹시 어떤 식으로 '엮이는 것'에 대해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그 만남을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은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다시 2년 정도가 흐른 시점입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사찰 사건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강도와 방법이 틀리더라도, 사찰은 이 정권 들어서 어디서든 지속적으로 실시되어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든 국외든, 자신의 정책에 대한 반대가 두려웠던, 혹은 진실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웠던간에, 그들은 자기들의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찰을 계속해 왔던 것이죠.

그러나, 정권과 그 실세들, 그리고 그들을 떠받치고 있는 이들이 느끼는 '잠재적인 위협'이라는 것이, 우리 일반 시민들에겐 '참으로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것들' 이며 우리가 배워 익히 알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 틀이었다는 것, 그것이 이번 사태의 진짜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원칙적으로 저항했고 저들은 그것을 불법을 자행하면서까지 막으려 했다는 것. 그만큼 자신이 없고 감출게 많았던 정권입니다. 그 감춘 것들을 백일하에 밝혀내고, 이들이 저질러 온 탈법 불법을 분명하게 단죄할 수 있도록 4.11 총선은 반드시 야권의 승리를 일궈내야 합니다. 그리고 투표는 그 첫번째 스텝이 되겠지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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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님의 댓글

시민 작성일

MB정권의 시민들에 대한 사찰은 이제야 이슈화 된 것이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직접 간접적인 감으로 느끼고 있었지요.
꼭 박정희 시절에 입조심 해야 하던 시절처럼 우리 모임에
가입했던 사람들도 몸조심 차원에서 슬슬 빠져나가게 했으니
일단 그땐 사찰이 성공했다고 저 정권은 여겼을 것입니다.

이제야 그 불법적이고 범죄적인 행동에 대해서 온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으니
이명박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은 법에 따른 심판을 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선거 제대로 해서 정의를 바로 세우는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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