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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별의 세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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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1,679회 작성일 22-10-22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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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5

김정일동지께서 초도와 판문점대표부를 현지지도하신후였다. 여러 중앙병원들의 권위있는 박사, 교수, 림상경험이 풍부한 의사들이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의 뇌졸중에 대한 치료대책을 토론하였다. 환자는 멀리 남녘의 광주에 있었지만 눈앞에서 지켜보듯이 온갖 있을수 있는 증상과 후과를 가상해보았다.

그리하여 얻어진 대책적의견이 곧김정일동지께 보고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약물치료대책에 특히 관심하시였다. 북과 남사이에 철의 장막이 내려진 현 시점에서는 그 길밖에 없는것이다. 해외에서, 제3국을 통하여 필요한 약재들을 보내야 한다.

그이께서는 로씨야의 정일심동포녀성과 도이췰란드에 사는 리미애, 총련녀맹 부부장 남주야를 먼저 생각하시였다. 제일 빠른 길은 남주야를 통하는 길이다. 비전향장기수들의 생존여부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남주야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그들에게 생활상 방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 자신의 많지 않은 로임을 전부 모아 보내는가 하면 총련녀맹조직을 발동하여 원호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것이 알려진 때로부터 그이께서는 한번도 만나보신 일이 없지만 그가 기특하고 사랑스러우시여 기억에 새겨두시였었다.

공화국영웅 안동수의 부인인 정일심동포와 도이췰란드의 리미애녀성도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로씨야나 도이췰란드는 너무 멀다. 지금 김진서에게는 하루한시가 새롭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를 드시였다.

《약품준비가 어떻게 됐습니까?… 좋습니다. 다 준비되면 내게 알려주시오.》

이어 리재명의 수기를 또 펴드시였다. 깨알처럼 작게, 촘촘히 박아쓴 그 글줄들에서 무엇인가를 꼭 밝혀내시려는것이다. 어느 한두사람의 운명만이 아닌 력사에 묻혀버린 투쟁사의 한 구간을 낱낱이 더듬어보신다. 때로는 진하게 밑줄을 긋기도 하고 옆에 놓은 종이에 급히 몇자씩 적어두기도 하신다. 대체로 이름들을 적으신다. 유격투쟁의 초기에 전사한 사람들도 빼놓지 않으신다.

6권의 수기, 어떤 페지들은 싯누렇게 퇴색하고 물에 젖은듯 비꼬이고 잉크가 피여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시였다.

그리하여 그이의 마음속에서 잃어진 력사의 많은 페지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유명무명의 전사들도 자기의 모습을 생생히 드러내였다.…

수기의 필자 리재명은 대구시출신으로서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괴뢰도당의 매국적인 분렬책동을 반대하는 10월인민항쟁의 중요조직자, 지휘자의 한사람이였다.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평양에 들어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녔다. 바로 그날에 그의 한생이 결정되였다. 그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에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울것을 결심하였다. 1947년 봄 그는 38°선을 다시 넘어갔다. 부산과 서울에서 지하당활동을 하던중 변절자의 밀고로 체포되여 서대문감옥에서 사형언도를 받았으나 형집행을 앞두고 인민군대의 서울해방을 맞았다. 감옥에서 나오자 한때 대구시당 조직부장, 부산시당위원장으로 활동한 경력이 참고되여 해방된 서울시당 조직부장으로 임명되였지만 자원하여 의용군부대를 이끌고 락동강전선으로 달려나갔다.

수기의 기본은 여기서부터 전개되였다. 그는 자기자신에 대한 이야기보다 자기의 동지들에 대하여 더 많이 쓰려고 애쓴것 같았다. 후날 지리산빨찌산의 정치위원으로서의 그의 사람됨을 그것으로도 엿볼수 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기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이름밑에 밑줄을 긋기 시작하시였다.…

×

…당시 의용군부대가 ××개 편성, 파견됐지만 대부분 인민군부대들에 편입되였다. 제일 선참으로 전선에 나간 우리 의용군부대는 락동강을 건너 창녕군, 밀양군에서 활동하였다. 미제놈들과 조우하여 전투하는 과정에 많은 희생자를 내고 화약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6. 25전부터 지하공작을 하던 김기만(당시 25살)이 지휘하는 소조 5명을 만나 가까운 곳에서 지리산빨찌산 리현상부대가 적후투쟁을 벌리고있다는것을 알았다.

나는 반가왔다. 리현상과 나는 오래전부터 이름을 들어 잘 알지만 한번도 직접 만난 일은 없다. 나는 대구, 부산에서, 그는 서울에서 지하투쟁을 했고 후엔 그가 지리산에서, 나는 또 서울에서 떨어져 활동해온것이다.

곧 부대당위원회를 열고 김삼흥을 특사로 파견하였다. 이틀후 창녕에서 활동하던 리현상동지가 김삼흥의 안내를 받으며 화약산으로 왔다.

우리는 정말 반갑게 만났다. 서로 이름을 대고는 부둥켜안고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박종하참모장과 리진범, 김흥복동지들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밤새껏 서로 싸워온 로정을 이야기하고 협동하여 적후투쟁을 더 적극적으로 벌리기로 했다.

밀양군, 청송군일대에서 미군지휘처습격, 교량파괴, 적수송대습격을 더 적극적으로 벌렸다. 그 전투들은 다음과 같다.…

갑자기 전선에 이상이 생긴것을 알았다. 인민군주력부대들의 락동강도하전투가 중지되고 수많은 미군무력이 밤에 낮을 이어 북으로 들어가는것이였다.…

9월말 어느날 화약산의 화약사에서 리현상동지, 박종하동지 그리고 나 셋이서 비상회의를 가졌다. 우선 인민군전선사령부에 련락을 파하기로 했다. 지리산부대에서 김영찬동무와 완도사람, 우리 의용군부대에서 방가성을 가진 사람이 락동강을 건너 영천까지 갔다왔다. 그들은 한 인민군부상병을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인민군대는 잠시 후퇴했는데 곧 나온다고 말했다고 했다.

우리는 청송군 보현산까지 들어갔으나 인민군대는 없고 적들만 계속 북상하고있었다.

리현상은 련합부대(지리산빨찌산과 우리 의용군부대) 간부회의를 열자고 했다. 그리하여 회의를 열고 두가지 문제를 토의했다.

첫째, 북으로 더 들어갈것인가?

둘째, 지리산에 들어가 유격투쟁을 할것인가?

지리산출신의 간부들인 박종하, 리진범, 김흥복, 류주목은 모두가 장군님께서 계시는 북조선땅을 밟아보고싶다고 했다. 그래서 태백산줄기를 타고 계속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그때 모두 로획한 미군복을 입고 미국제 엠원소총을 메고있었다.

처음엔 전투경험이 많은 150명 대오였던것이 차츰 불어나면서 복장도 얼럭덜럭했다.

매일 100리 내지 130리씩 행군했다. 녀대원들도 김장군님 계신 곳으로 간다면서 기세가 높았다. 박종하와 한고향출신인 양봉순동무가 서울출신 성악가였던 최영애, 하수복(일본에서 나서 자란 간호원, 락동강에서 부대에 받음), 임순실 등 녀대원들을 지휘했다.…

삼척계선에 이르렀을 때 대오는 2 000명정도로 불어났다. 식량사정이 말이 아니였다.…

10월 중순에야 양양에 도착…

강원도 회양군 후평리에서 행군을 멈추었다. 숙소를 배정받고 다음날 후평인민학교에 자리잡고있는 인민군 제2군단지휘부를 방문했다.…

11월 20일, 우리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보내신 명령을 구두로 전달받았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조국앞에 준엄한 정세가 조성되였으나 최후승리는 확정적이라는것을 밝혀주시면서 리현상을 사령관, 리재명을 정치위원으로 하는 적후투쟁부대를 정비개편하여 속히 적후방에 들어가 유격투쟁을 벌릴것을 명령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명령을 전체 대원들(900여명의 전투정원)에게 전달하고 궐기모임을 진행하였다.

며칠동안 부대개편이 있었다. 지휘성원들도 발표되였다.

사령관 리현상

정치위원 리재명

참모장 박종하

부사령관 리진범

각 부대별 지휘성원들은 다음과 같다.…

부대가 출발준비를 할 때 여운철(충청남도 론산군출신, 콤그룹성원, 전 충남도당위원장)과 차일평(광복전 만주 봉천에서 지하활동, 광복후 서울에서 활동)이 당중앙위원회의 파견장을 가지고왔다. 파견장에는 《여운철동지를 정치위원으로 파견》한다고 했다.

…리현상동지와 나는 이 문제를 놓고 따로 토론하였다. 리현상은 콤그룹성원인 여운철도 잘 알고 나와는 락동강에서 함께 싸웠으므로 몹시 딱해하였다.

문제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이 구두로 전달된것인데 그들은 정식 파견장을 가지고왔다. 어데 가서 물어볼데도 없었다.

리현상은 오래 생각한 끝에 《좀 두고봅시다.》 하고 말하였다.

11월 25일 전체 부대는 만단의 출발준비를 갖추고 정렬하였다. 900여명에 달하는 적후에서 보기 드문 병력이였다. 장비도 그쯘, 사기도 높았다.

출발에 앞서 사령관 리현상이 연설하였다.

그는김일성장군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조국통일을 위해 목숨바쳐 싸울것을 맹세한 우리들이다, 미제침략자들과 그 고용병들을 소탕하며 남으로 진군하자, 태백산, 소백산, 지리산을 거점으로 적후투쟁을 과감하게 벌려 조국의 통일을 앞당겨나가자고 했다.

전체 대원들이 만세 3창을 불렀다.…

제천군에서 미군세균무기의 세례를 받았다.

500명 이상이 재귀열에 걸려 행군대오는 4~6㎞나 늘어졌다.

…그때 부대에 김병택을 비롯한 인민군병사들이 편입되였다. 그들도 재귀열로 신음하였다.

…충북유격대에서 편입한 문춘(본명 유필준)이 적구에 들어가 병원을 털어서 의약품들을 가져왔으나 환자가 너무 많아 충당할수가 없었다.

박종하참모장이 결사대를 무었다.…

대원들은 세균탄까지 뿌리는 미국놈들을 이를 갈며 저주하였다. 미군부대만 발견하면 끝까지 추격하여 잡아족치군 했다.

…녀성소대장 양봉순이 소백산 죽령전투에서 미군땅크를 수류탄으로 까부셨다. 그때부터 더 대담하게 미군기계화부대도 습격하였다.

대원들은 《미제놈들이다!》하는 소리만 나면 환자들까지 전투에 뛰여들었다…

단양군 영춘읍습격전투…

다음날 전 부대의 통합의식을 진행하였다. 즉

후평에서 떠난 주력부대

문춘동무가 지휘하는 충북유격대

태백산밑 영주군 서벽뒤산의 골안에서 격전을 벌리고 살아남은 경북유격대

도중에 소규모로, 개별적으로 편입한 사람들

이들 모두를 하나의 군사지휘계통으로 통합하였다. 통합된 부대는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으로 부르기로 했다.

지휘성원들문제에서 정치위원을 누가 하는가 하는것때문에 론의가 심각했다. 최고사령부나 당중앙위원회는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신다. 그런데 리재명의 임명은 구두로 전달되고 여운철은 신임장까지 가지고 왔다. 이렇게 제일 앞장서서 열변을 토한게 차일평이다.

그는 달변가이고 설득력도 있었다. 사령관 리현상이 내 의견을 물었을 때 나는 대답을 못했다.

어쨌든 나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으로 임명된 사람이다. 적후에서 유격투쟁을 하는 조건에서 명령에 대한 절대적복종은 첫째가는 의무이다. 그렇지만 직제를 놓고 다툰다는것도 수치스럽고 차일평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었다.

내가 대답 못한것은 곧 동의한다는 의미로 되였다. (오늘까지도 이 일을 회상할 때마다 우유부단했던 자신을 저주하군 한다.)

결국 다음과 같이 결정되였다.

사령관 리현상

정치위원 여운철

참모장 박종하

제1부정치위원 리재명

제2부정치위원 차일평

각 부대의 지휘성원들은 다음과 같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벌써 이 대목을 두번째로 보신다. 그때 당중앙의 이름으로 신임장을 주어 파견한것은 리승엽이다. 그리고 여운철과 같이 파견된 차일평은 변절하여 지리산빨찌산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

그러면 최동환은?… 그에 대하여 리재명은 어떻게 썼는가?… 또 다음페지를 넘기신다…

1951년 1월 1일

새해를 맞으면서도 우리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포위를 뚫지 못하면 부대는 전멸된다.

리현상이 박종하와 나를 불렀다.(여운철과 차일평은 전투에 문외한이였으므로 대원들의 사기고무만 맡았다.)

포위를 뚫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되는게 있으면 말해보시오- 이렇게 리현상이 말했다. 박종하가 죽령의 기동로를 넘자고 했다. 적의 병력이 집중되여있는 곳이였다. 내가 그 의견에 찬성했다. 적은 많지만 단숨에 빠질수 있기때문이였다. 리현상이 동의하고 명령을 내렸다.

박종하가 결사대를 뭇고나가면서 나더러 후위를 맡아달라고 했다. 한사람을 붙여주면서 정치위원의 신변을 돌보라고 했다. 최동환이라는 사람이였는데 나는 그를 살펴볼새도 없었다. 방차대임무는 충북부대의 참모장 리중히동무가 맡았다…

박종하가 열어놓은 길로 전 부대가 신속히 빠지고 후위를 맡았던 우리 30명이 추격해오는 적들과 1시간이상 전투를 벌렸다. 놈들을 저지시키며 부대를 뒤따를 때 내가 깊은 눈구뎅이에 빠졌다. 누구 한사람 알지 못했다.

적들이 눈앞까지 왔을 때 최동환이 뛰여들어왔다. 발목이 접질러 기여가는 나를 업고 수류탄을 뿌리면서 빠져나왔다.

후에야 그가 인민군상사였고 25살이라는것, 고향과 처자에 대해 알게 되였다. 흉하게 생긴 사람이였다. (파편이 볼을 찢어놓아서) 무뚝뚝하고 거친 성격이였다. 나는 그를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면서 늘 관심해주었다.…

평양방송에서 참모장 박종하와 김흥복(전 괴뢰군 14련대출신, 23살)에게 락동강전선에서의 전투공로로 영웅칭호를 수여한다는 정령이 발표되였다.

단파무선기로 그 소식을 듣고 축하의 인사말만 하고는 1월 2일 새벽 또 장림지서습격전투에 들어갔다. 그날 최동환이 나에게 전투에 나가겠다고 제기했다. 나는 나때문에 고생하는게 미안하여 승인했다. 그런데 그는 박종하를 따라간게 아니라 장림지서습격과 동시에 벌린 단양습격(리중히가 지휘함)전투에 참가했다. 리중히부대는 단양에 주둔하고있던 미군지휘처를 습격하였는데 모든 대원들이 미제놈들에 대한 원한을 풀자고 백병전으로 넘어갔다.

장림지서전투에서는 박격포수 남철수(경남 사천군출신)가 공로를 세워 표창을 받았다.

최동한은 표창자들의 명단에 없었다. 나는 조금 서운했다. 그렇지만 그의 용감성은 의심치 않았다.

1951년 3월 1일 속리산기슭에 도착했다.

1951년 7월부터 우리에 대한 적들의 공세가 급격히 강화되였다. 전선이 고착되면서 전선부대들까지 투입되였다.…

영동군을 거쳐 민주지산, 무주군으로 행군을 계속했다. 8월초 어느날 무주군 덕유산골짜기에서 간부회의를 열고 전선이 고착된 상태에서의 차후대책을 토의하였다.

회의에서는 유격투쟁의 무대를 지리산으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전라남북도 유격대들과의 련합문제를 토의하기 위하여 리현상과 여운철이 먼저 지리산에 들어가기로 했다. 사령관을 위하여 호위성원들을 더 늘여야 했다. 내가 최동환을 추천하자 박종하가 찬동했다. 차일평도 그가 용감한 싸움군이라면서 최동환이 그새 나의 부관격으로 있은것을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떠날 때 최동환은 나에게 전리품 만년필을 기념으로 주었다. 미국제였는데 보기드문것이였다.

《이 좋은걸 왜 여태 숨기구 있었소?》 내가 롱삼아 한 말에 그는 무안해하면서 이담 아들이 크면 주고싶었노라고 고백했다.

어쨌든 그는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전리품 만년필을 숨기고있었다고 탓할 내가 아니다. 나는 웃으며 롱으로 한 말인데 뭘 그러는가고 좋게 말해주었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날이 밝은것도 모르고계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낡은 공책에 씌여진 이 수기를 읽기가 헐치 않을것이다. 숱한 지명과 날자들, 낯모를 사람들과 로획한 무장장비의 수자들까지 일일이 렬거한 이 글을 읽으며 고달픔을 느낄수도 있다.

허나 그것은 극히 적은 일부 사람들, 력사의 오솔길로 사라져버린 그들의 발자취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피어린 현대사가 씌여졌다는 엄연한 진리를 망각하거나 아무런 흥심없이 무심히 대하는 사람들뿐이리라.

수기는 이어 남부군의 지리산도착과 그곳에서의 처절한 싸움들을 차례로 적어갔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씌여졌는데 김진서, 아라, 하정례도 등장했다. 비록 얼핏얼핏 스쳐간 이름들이였지만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어느 한사람도 놓치지 않고 기억에 새겨두시였다.

창밖에서는 동터오는 새날이 희미했다. 비로소 그이께서는 창가림이 소리없이 열리고있는것을 의식하시였다. 서기가 들어와있었다.…

새날의 첫 일정은 김진서로인을 위해 마련된 약품들을 친히 보아주시기로 했다. 그이께서는 권형일에게 전화로 말씀하시였다.

《그 약품들을 여기로 가져오도록 해주시오. 마침 여기 선전선동부 책임일군들도 와있는데 같이 봅시다. 누가 그 약품들을 주관했습니까?… 송수길원장?… 좋습니다. 원장선생도 오게 하시오.》

약품이 들어있는 두개의 지함이 곧 운반되여왔다. 송수길원장이 명세표를 들고 뇌출혈을 비롯하여 여러 뇌혈관성질병들을 통털어 이르는 뇌졸중의 의학적진단과 치료방법에 대하여 먼저 설명해드리였다. 한쪽에서는 갖가지 약품곽들과 병들을 탁자우에 꺼내놓고있었다. 선전선동부 일군들까지 거들어나섰다. 아침해살이 크고작은 그 현란한 약병들을 밝게 비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손수 들어보시였다. 인제는 송수길원장이 더 설명해드릴것도 없었다. 그이께서 약품의 용도와 효능에 대하여 작은 글들까지 죄다 여겨보시기때문이였다.

《좋습니다. 준비를 잘했습니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성의껏 지성을 다해 준비했다는것이 알립니다. 특히 이 보약들이 마음에 듭니다.》

또 하나하나의 곽과 병들을 살펴보신다.

《인삼과 산삼, 록용도 있고… 이건 경옥고- 생지황, 인삼, 흰솔뿌리혹이 주성분이란말이지. 인진고- 간염치료에 효능이 높고… 뇌심향, 향간환도 있구만.…》

권형일이 말씀드렸다.

《김진서로인은 이미 간염을 앓고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이께서 머리를 끄덕이시였다.

《무슨 병인들 없겠소. 만신창이 된 육체… 그의 사진을 보아서는 살아있는 몸이라고 믿기 어렵습니다. 아마 의학적으로는 수십번도 더 죽음을 선고했을것입니다.》

그이께서는 또다시 화려한 포장을 한 곽뒤에 숨어있는 작은 약병을 들어보시였다.

《어떻습니까. 이 이상 더 필요되는건 없겠는지… 혹시 우리가 놓치고있는건 없겠습니까?》

송수길원장이 두 눈을 슴벅거리며 말씀드렸다.

《장군님, 저희들이 다 따져보았습니다.》

《음, 그럴테지. 그런데 꼭 하나가 빠진것같은데 그게 뭐드라?…》

그이께서 조용히 뇌이시는 말씀에 모두 서로 마주 보며 묻는듯 한 눈길을 던졌다. 송수길원장은 명세표를 다시 훑었고 다른 사람들은 진렬된 약품들속에서 무엇인가를 찾고저 헛되이 애쓰고있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웃으시였다.

《이제야 생각나는군. 무얼 빼놓았나 하면 솔꽃가루꿀입니다. 보시오. 그게 없지 않습니까?》

《?!…》

사람들이 또 입을 벌리고 서로 마주 보았다. 그것이 그토록 진귀한 약재였던가. 한생 의료부문에 종사해온 송수길원장도 그걸 모르고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실린 눈빛들이였다.

《왜 놀라서 그럽니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물론 대단히 귀한 약이야 아니겠지. 우리 나라 그 어느 산에서나 얻을수 있는 솔꽃가루… 그렇지만 한가지라도 빼놓으면 되겠습니까. 그만큼 우리의 지성이 모자란다는것인데… 아니, 그럴수 없습니다. 언젠가 어느 의학잡지에서 솔꽃가루의 효능에 대해서 읽은적이 있는데 허약자들의 몸보신에 특히 좋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여라문통 보내기로 합시다. 원장선생, 어떻습니까?》

《장군님,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한가지 더 부탁하겠는데 이런 보약들을 좀 더 많이 준비해주십시오.》

《?!…》

원장도 다른 사람들도 영문을 몰라했다.김정일동지께서는 탁자우의 약품들을 다시금 차례로 살펴보시였다.

《김진서로인뿐아니라 많은 비전향장기수들이 골병을 앓고있습니다. 인제는 그들이 더이상 쓰러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옆에서 돌보지 못하는이상 될수록 모든 비전향장기수들에게 보약이 가닿도록 애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정적이라고 하는것이 옳은것인지도 모른다. 점점 부채살처럼 비쳐든 해빛이 탁자우에서 현란하게 들뛰였다. 병들마다 보석마냥 빛을 발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권형일에게 눈길을 주시였다.

《비서동무, 이 약들을 어떻게 보내겠는지 생각해봤습니까?》

《예, 장군님. 일본과 로씨야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을 통해서 보낼가 합니다. 해외동포들속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좋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될수록 빨리 가닿게 조직사업을 해주시오.》

《알았습니다, 장군님!》

권형일이 차렷자세로 청높이 대답올리자 곁에 서있던 송수길원장도 군인들처럼 허리를 꼿꼿이 폈다. 속으로는 권형일과 꼭같이 《알았습니다, 장군님!》 하고 웨쳤는지도 모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들이 방에서 나가자 비로소 새날의 첫 일정대로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새날, 새 아침이긴 하지만 역시 어제 시작된 사업의 연장이였다. 어데까지가 하루의 끝이고 언제부터가 하루의 시작인지 그것은 그이 자신께서도 잘 알지 못하고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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