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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뺨친 이스라엘판 촛불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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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709회 작성일 12-05-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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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에서)

지난해 8월, 이스라엘 전국에서 물가 상승과 빈부 격차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경제 수도라 불리는 텔아비브에서 28만명이 참여한 것을 비롯해 예루살렘에서 3만명 등 전국적으로 45만명이 넘는 시민이 시위를 벌였다. 특히 텔아비브에서는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집값 폭등과 생활고를 호소하며 거리로 나선 시위대는 교육·복지·주택 부문에 대한 정부의 예산 확충과 간접세를 줄이는 세제 개혁 등을 요구했다. 이 같은 대규모 시위는 이스라엘 건국 이래 유례가 없는 일이다. 텔아비브에는 마치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처럼 시위대의 천막이 차려지고 “국민은 사회정의를 원한다” “젊은 세대는 미래를 원한다” 따위 구호가 울려 퍼졌다. 언어와 인종만 다를 뿐 아랍의 민주화 혁명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시위대는 “이집트 대통령처럼 물러날 때가 왔다”라며 정권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아랍 국가들에게 둘러싸인 채 60여 년간 ‘안보’를 이유로 침묵하던 이스라엘 국민이 드디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AP Photo
지난해 8월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졌다.

집세가 급여의 절반, 어떻게 살라고?


텔아비브 시위에 참가했던 주부 사라 씨(32)는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참는 것이 한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시위에 참가했다”라고 말했다. 회사원인 남편 월급은 1만 세겔(약 300여 만원)가량. 나름 중산층 수입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돈으로 아이 셋을 키우고 살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집값이다. 한 달치 집 임차료가 급여의 절반인 무려 4500세겔(약 135만원)이나 되어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지난 몇 년 사이 임차료는 계속 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싼 집으로 계속 이사 다니는 중이라는 그녀는 “각종 세금도 엄청 올랐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살인적인 물가로 촉발된 불만이 마침내 정부를 향한 분노로 폭발한 것이다. 이스라엘 집값은 2007년부터 올해까지 35% 가까이 올랐다. 월세도 연 10%가량 상승했다. 텔아비브만 하더라도 방 2개짜리 집 월세가 5년 전 3000세겔(약 90여 만원)이었던 데 비해 현재는 5000세겔(약 150여 만원)까지 뛰었다. 지난 1년간 이스라엘 빵 가격은 10%, 가솔린은 12%가량 인상됐다. 수도세는 간접세 인상에 따라 무려 134%까지 치솟았다.

이스라엘인들의 시위는 지난해 7월 중순, 다프네 리프(25)라는 여성이 월세가 너무 비싸다며 텔아비브 로스차일드가에 텐트를 치면서 시작됐다. 리프 씨는 페이스북으로 ‘내가 텐트를 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렸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텔아비브뿐 아니라 이스라엘 주요 도시에 텐트를 쳤다. 높은 집값에 항의하는 뜻에서였다. 이른바 ‘텐티파다(텐트를 치고 벌이는 개혁 시위)’라고 불린 이 시위는 고물가에 반대하는 수만 명의 도심 행진으로 이어졌다. 시위대 구성원은 대학생뿐 아니라 교사, 의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다양했다. 심지어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주부들도 대거 동참했다. 


  
ⓒXinhua
물가 상승에 항의하는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민들의 ‘텐트 시위’.


이스라엘은 건국 이래 팔레스타인, 레바논 등 주변 아랍 국가들과 잦은 전쟁을 치러왔다. 그런 만큼 ‘국론 통일’과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친다. 이 속에서 이스라엘 국민은 많은 희생을 강요당해왔다. 예루살렘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미카엘 씨(30)는 “이스라엘의 모든 불만은 ‘미사일’이라는 말 한마디로 모두 닫혀버린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미사일이 날아든다는 위협을 내세워 정부가 시민을 통제해왔다는 것이다. 시위를 주도한 전국학생연맹(NSU)의 이치크 슈물리 회장은 “우리는 ‘새로운 이스라엘인’이다. 새로운 이스라엘인들은 변화를 요구하고 실질적인 해결이 제시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세계 경제위기에도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은 나라이다. 2004년 이후 매년 4.5% 이상의경제성장률을 기록했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1767달러(2010년 기준)에 이른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겉으로는 탄탄한 경제 구조로 보이지만 돈이 일부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스라엘 은행 조사에 따르면 오페르스, 단크너스, 추바스, 피셔맨 등 10개 이스라엘 대기업이 이스라엘 경제의 30%를 독점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약 1000억 세겔(약 30조원) 규모다. 이들 대기업은 이스라엘 산업 전반에 걸쳐 문어발식 확장을 벌여왔다. 정경 유착에 따른 폐해도 심각했다(이스라엘인들은 정경 유착을 ‘혼 브쉴톤’이라 부른다). 정부 관료들에게 민간기업의 고액 연봉 일자리를 제공하고, 이들을 통해 다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나눠먹기를 일삼았던 것이다. 니르 길라드 전 감사원장이 오페르 소유 기업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 게 대표 사례다. 


고질적인 정경 유착, 양극화를 부르다

반면 서민들은 열심히 일해도 물가 상승과 비싼 집세로 인해 가난에 허덕여야 했다. 통계에 따르면 이스라엘에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른바 워킹푸어가 760만명이나 된다. 전체 노동자 중 3분의 1은 최저임금을 받는다. 대기업들의 독점이 부의 불균형을 불러왔고, 이것이 결국 중산층을 무너뜨린 셈이다. 시위에 나선 이스라엘 국민들은 고물가의 주범으로 재벌 기업을 지목했다. 소수 재벌 기업이 산업 전반을 지배하게 되면서 공정한 가격 경쟁이 사라져 물가가 치솟았다는 주장이다.

한때 키부츠(집단농장)를 통해 평등 사회를 지향했던 이스라엘이 오늘날 가장 빈부 격차가 극심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판국에도 이스라엘 정부는 국방비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국가 안보만을 부르짖고 있다. 최근에도 이스라엘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이란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란·이스라엘 간 전쟁 발발 가능성이 국제적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다.

그런데 안으로는 시민들의 시위가 터져나온 것이다. 이는 ‘국가가 위험하니 불만이 있더라도 침묵하라’는 이데올로기가 물가고에 지친 국민에게 더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몇 달간의 대규모 시위에 시달리던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부는 최근 드디어 80억 달러(약 9조원) 규모의 경제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5년 동안 아파트 20만 가구를 공급해 집값을 안정시키고, 간접세를 줄이며, 무상교육 개시 연령을 현행 5세에서 3세로 낮춰 육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내용 등이다. 이 방안은 특히 국방비를 줄여서라도 서민 생활 안정을 꾀하겠다는 기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4월22일 이른바 ‘재벌 해체안’까지 발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재벌 해체로) 독과점이 줄어들어 경쟁이 활성화되고, 국민 생활비도 내려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재무부도 2012년부터 수백 가지 생활·산업 용품에 대한 관세를 철폐했다.

아직까지 이스라엘의 물가는 요지부동이다. 그럼에도 지난 60여 년간 국가의 생존을 위해 필사적이던 이스라엘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이 이란의 핵무기도, 헤즈볼라의 미사일도 아닌,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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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님의 댓글

궁핍 작성일

다들 어렵다고 말을 해도 그나마 이스라엘은 괜찮은줄 알았는데
이스라엘도 궁핍의 시간을 보내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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