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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별의 세계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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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3,428회 작성일 22-10-3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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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4

김진서의 맏딸 김화순은 네데를란드의 로테르담에서 진행된 유럽나라들의 그리스도교계 인권옹호단체회의에 참가하였다.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울정도로 무수한 운하망으로 이어져있고 네데를란드 제2의 도시, 상공업과 무역항으로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있는 로테르담에서 그리스도교계 인사들의 회합이 진행된것은 관광지로도 소문난 라인강, 로드강, 뉴- 머즈강의 3각주를 끼고있는 한편 도시에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쎄인트 로렌스교회가 있기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이 회의(회합)에 멀리 극동에서 로씨야, 도이췰란드를 거쳐 날아온 조선녀성 김화순이 참가한것은 이례적인것이였지만 곧 만장의 주목을 받고 그리스도교계 인사들모두를 격동케 했다. 20세기를 마감짓고있는 오늘까지 정치적리유로 30~40여년의 기나긴 생을 철창속에서 보내며 온갖 고문에 시달리는것은 물론 고향의 부모처자들과 서신거래조차 못하는 비전향장기수들이 있다는, 그것도 한두사람이 아니라 근 100명에 달하는 수난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경악하였다.

그들의 대경실색한 모습에 화순이 역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네들의 신문과 방송은 도대체 무엇을 떠들고있는가. 역시 종교계인사들이면서 여러 인권옹호단체들에서 활동한다는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알고있고 어떤 인권문제를 론하고 싸워왔단말인가?… 대학강좌장인 그였지만 멀고 먼곳의 우주인들에 대해서처럼 너무도 판다른 세계에서 살고있는 그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너무도 아는것이 적었다.

회의는 《유엔인권문제에 관한 위원회》앞으로 보내는 메쎄지, 남조선당국과 교회협의회 인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바로 이러한 세계적운동을 위하여 조국에서는 돈한푼도 쪼개쓰는 어려운 사정이였지만 그를 지구의 한끝까지 보내준것이다. 동생 정순이도 지금 도꾜에서 열리는 인권옹호단체들, 종교계인사들의 회합에 참가하고있다. 출발은 거의 비슷하게 했지만 그새 화순이는 로씨야와 도이췰란드에서 열린 국제모임들에도 참가했었다. 정일심과 리미애동포녀성들과도 만나 그들이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해 온갖 성의를 다했고 약품을 보내는 일도 맡아준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였다.

실로 눈코뜰새없이 바쁜 며칠이였다. 그러나 인제는 계획했던 사업을 다 마무리짓게 되였다. 짐을 싸고 떠나면 된다. 2박3일의 짧은 려행으로 지리책에서나 보던 네데를란드도 떠나게 된다. 그새 화순은 자기가 들어있는 《로렐라이호텔》도 미처 살펴볼새가 없었다. 도이췰란드작곡가 질허의 노래로 유명해진 전설속의 미녀 로렐라이의 이름을 단 호텔… 그러나 돌아볼 생각이 없었다. 도꾜에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을가, 정순이한테 전화나 걸어볼가?…

그때 한 교포부인이 찾아왔다.

젊고 아름다운 녀성이였다. 우정 조선치마저고리차림을 했는데 해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그러하듯 어딘가 좀 어설핀데가 있어보였다. 찾아온 녀성은 뒤통수에 돌려감은 머리뭉치를 손으로 쓸어만지며 깍듯이 물었다.

《조국에서 오신 김화순선생이시죠?》

《예.》

《비전향장기수 김진서선생님 따님이시구요.》

《예, 그런데…》

그 녀자는 화순이에게 또한번 목례를 했다.

《꼭 만나고싶어 찾아왔어요. 바쁘시지 않으면 좀 시간을 내주셔요. 부탁드려요.》

《저… 뉘신지?…》

《예, 말씀드리죠. 제 이름은 조아라, 나이는 쉰세살…》

순간 화순은 저도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아라라고 한 녀인이 물었다.

《왜 놀라세요. 혹시 제 이름을 들으신 일이 있으세요?》

《아, 아녜요. 그저…》

사실 화순은 아라가 자기보다 두살이나 우였다는데 놀란것이였다. 풍족한 생활을 누려온 그 녀자의 몸전체에서 풍기는 이상야릇한 화장품냄새와 우아한 거동이 그토록 젊어보이게 한것인지 아니면 홀의 천정에서 아늑한 색으로 조화를 부리는 무리등의 불빛때문인지…

《그럼 제 소개를 마저 하죠.》 불시로 아라가 미간을 찌프리며 말했다. 《서울서 살다가 도이췰란드로 또 거기서 예까지 옮겨왔어요. 오래전에… 여기 로테르담에 눌러앉아서는 한번도 조국에서 오신분을 만나보지 못했는데… 오늘 뜻밖에도 김진서선생의 따님이 오셨다기에 정신없이 달려왔죠.》

《반가워요. 정말… 헌데 저의 아버님을 어떻게 아시는지요?》

《그건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고… 좀 시간을 내여주시겠죠?》

《그럼은요. 얼마든지!》

비로소 두 녀인은 따뜻한 미소를 담고 서로 마주 보았다. 아라가 생기를 띄우며 잰 말씨로 말하였다.

《난 거기서 거절할가봐 조마조마했댔어요.》

화순은 그 녀자의 얼굴이 한층 더 젊어지고 예뻐지는것을 놀랍게 바라보았다.

《늘 그렇게 사세요?》

《무슨 말씀인지?》

《생활이 기쁘고 즐거운것 같군요.》

화순의 그 말에 아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재빨리 시계를 보며 낮게 물었다.

《식당으로 가실가요, 아니면 공원으로?… 여긴 좀 복잡하네요. 차는 가지고왔어요.》

얼마후 그들은 라인강과 로드강을 련결하는 운하쪽의 다이아나공원으로 갔다.

야경을 장식한 수많은 줄전구들이 숲속의 매점과 나무들, 분수들우에서 보석알들처럼 반짝이고있었다. 공원입구에 활과 화살통을 어깨에 메고 머리에는 초생달을 달고서 사냥개를 끌고가는 로마신화의 다이아나(쥬피터의 딸, 아폴로의 누이, 달의 주인공, 그리스에서는 아르테미스) 조각상이 세워있었다.

조용하고 아늑했다. 공원이라기보다 어느 공작저택의 정원같이 보였다. 화순은 책에서나 보던 유럽의 귀족저택 혹은 왕궁의 내정에 안내된듯 한 기분이였다. 숲속의 파아란 네온등과 줄전구장식 그리고 자동매장들이 뻰취뒤에 놓여있는것을 제외한다면… 아라가 매장에서 음료들과 쵸콜레트를 꺼내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을 마지막으로 보신게 몇살때이죠?》

《겨우 네살나던 때…》

《그러니…》

《47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멀리 항구쪽에서 웅글은 배고동소리가 울려왔다. 흘러간 먼 시절에로, 추억에로 불러주는 배고동소리… 아라가 또 물었다.

《네살나던 때였으면 아버님이 어데 가시는지 알지 못했을테죠?》

《알았어요. 8.15후 남반부에 정치공작대로 파견되였다는건 몰랐어도 광주라는 말은 알았어요. 온 집안이 매일같이 광주, 광주 했거든요. 우리 할머니가 집을 떠나는 아버지께 편지봉투 100개를 사서 배낭에 넣어주며 매일 편지하라고 부탁했는데 단 한번 광주에서 편지가 오곤… 영영 소식이 끊어졌어요. 그래서 나도 인민학교에서 처음 조선지리를 배우던 날 선생님에게 광주가 어덴가고 물어보았죠. 그다음부턴 매일 의자에 올라서서 광주로부터 우리가 사는 덕천까지 뽐으로 재여보며 이게 그렇게 먼 곳일가, 엿새, 이레이면 올것같은데(한뽐 한뽐을 하루길로 봤거든요.) 왜 몇해가 흘러도 오시지 않을가 하고 속상해했군요. 그러던게 어느덧 반세기나 흘러갔으니…》

불시로 솟구쳐오르는 눈물을 참을수 없어 화순은 주먹을 깨물었다.

조아라도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녀성들간에 오가는 섬세한 감정의 파동때문인지 아니면 그 녀자에게도 아버지와 결부된 남다른 사연이 있는것인지?…

화순은 애써 눈물을 거두며 난연해하는 어조로 말했다.

《안됐어요. 제 생각에만 옴해서… 참 말해주세요. 우리 아버질 알고계신듯 한데… 언제 어떻게 되여 알게 됐는가요?》

《…》

조아라는 대답을 서둘지 않았다. 무릎우에 놓고있던 두손을 깍지끼며 흐느끼듯 숨을 톺았다.

《김진서선생님을 저는 잘 압니다. 따님보다도!… 거기선 네살때 헤여졌지만 전 일곱살때 아버님과 함께 있었거든요.》

《예?!…》

《김진서선생님, 나의 친아버지 같으신분!》하고 조아라는 눈물의 충동에 못이겨 부르짖었다.

《오늘 이렇게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고보니 선생님생각이 더 간절해지는군요. 아, 어째서 우린 다시 볼수 없을가요. 우린 왜 이처럼 한생 눈물에 젖어살아야만 하나요?!…》

화순은 놀라서 그 녀자를 지켜보고있었다. 그러나 한마디도 묻지 않았고 독촉하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얼마후엔 조아라가 좀전에 화순이가 그랬듯이 난연해했다.

《안됐어요. 그만 선생님을, 김진서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참 아버님을 어떻게 아는가고 물으셨죠?… 말하겠어요. 누구에게든 꼭 한번은 터놓고싶었던걸요. 그런데… 아버님과의 사연을 말하자면 저의 어릴적래력을 먼저 말해야 할것 같군요. 저와 저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부터말이죠.…》

하여 조아라는 천천히 숨을 돌리고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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