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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9)라마단의 본질-절제와 배려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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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4,891회 작성일 12-09-0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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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모 나그네 님의 글


 유럽여행기(9)라마단의 본질-절제와 배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두바이에 도착하던 날이 라마단이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서구의 기독교에 사순절이 있다면 중동의 이슬람에겐 라마단이 있습니다. 라마단은 바로
초생달이 뜨는 날부터 시작해서 달이 완전히 이지러지고 나서 다음 초생달이 뜨면 끝나는
데 초생달의 해석 견해차 때문에 수니파와 시아파가 결별하는 한 원인이 되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였다더군요. 그들의 천문역법과 수학이 고도로 발달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하여간 라마단은 무슬림의 5대 의무중 하나로 매우 중요합니다.
 
   알려진대로 당연히 이 기간에는 금식과 기도 그리고 자선과 봉사와 참회의 시간을
갖는 것이 무슬림들의 오랜 전통이자 이슬람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예언자 무함마트(마호메트)에 게 꾸란(코란)의 말씀을 전했다고 하는 신성한
달로 ‘라마단’은 우리말로 ‘더운 달’을 뜻하는 아랍어입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해가 뜨는 순간부터 지는 순간까지 음식물은 물론 물조차 마시지
못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순절은 늘 일정한 시기에 시작되지만 이슬람은 태양력이
아닌 태음력 즉 달을 기준으로 한 달력을 사용해서 우리의 전통율력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음력주기법과는 달리 윤달이 없어 1년이 330일이라서 우리의 일년보다
더 짧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차이가 성스러운 더운 달 라마단이
태양력 기준으로는 매년 바뀌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무슨 얘기냐면, 라마단은 양력달력으로는 겨울에 시작될 수도 있고 여름에 시작될 수도
있다는 소립니다. 그리고 지난 7월처럼 해가 가장 오래 뜨는 뜨거운 여름에 라마단이 시
작되면 금식하는 시간이 월등히 더 길고 더구나 수분섭취가 꼭 필요한 더위에서 버텨야
하는 가장 고통스런 라마단이 됩니다. 반면 해가 뜨는 시간이 짧은 겨울철의 라마단은
덥지도 않고 금식시간도 짧아져 비교적 수월하게 넘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도착한 날은 바로 그 한여름 라마단이 시작된 날이었습니다. 물론 무슬림
이 아닌 저는 금식을 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만, 문제는 모든 식당(물론 한국식당들은
문만 닫고 영업을 하는 모양입니다만 두바이까지 와서 김치찌개를 먹느니 차라리 호텔방
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는 쪽을 택했습니다)들이 전부 문을 닫아버리기에 점심을 사먹
을 곳이 없다는 것이고 식료품이나 음식을 살 수 있는 푸드코트에서도 싸가지고 가는 것
만 가능합니다. 공공장소에서는 눈치가 보여서 물도 함부로 마시기가 꺼려질 정도죠.
뭐 난 외국인인데 어때 할 수도 있지만 아침부터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섭씨 45도 이상
의 뜨거운 열기를 버티고 있는 이들 무슬림들 앞에서 나 혼자 맛나게 물을 마신다는 건
상당히 미안한 일이 됩니다. 게다가 아주 독실한 무슬림의 경우 목구멍 속에 아무것도 넘
겨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곧이곧대로 지켜서 침조차 뱉어냅니다.
 
  아침 5시 반 무렵에 해가 떠서 저녁 8시나 되어야 해가 지는, 거의 14시간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고통을 그것도 뜨거운 사막에서 겪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라마단 기간에는 사실상 근무시간을 줄이는 회사들이 많고 특히나 육체노동을
하는 경우는 뜨거운 정오시간엔 아예 작업을 중지하고 하루 6시간 이하의 노동만을 허가
한다고 합니다. 중동과 무역업무를 하시는 분들은 라마단 기간에는 업무량이나 일의 진행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사실상 일은 손 놓고 신을 만나러들
가기 때문이죠. 많은 직장인들이 이 기간에 휴가를 내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와 관계없이 하루 12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택시운전사의 경우는 정말 초인적인 인내
력과 자제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슬람의 계율이 엄격히 적용되는 곳에선 설사 외국인
이라도 라마단 기간에 공공장소에서 뭘 마시거나 먹으면 벌금을 내거나 경찰이 잡아
간다고 할 정도니...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없는 사람들 혹은 배고픈 사람들의 처지와
심정을 헤아리게 되고 그러면서 나눔을 실천하라는 신의 깊은 뜻은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이곳에 관광하러온 저는 눈치가 조금 보임에도 두바이에서 살살 몰래 몰래 물
마셔가며 싸가지고 온 간식을 먹어가면서 버텨야 했답니다. 하루 종일 40도가 넘는 더위
를 처음 경험하는지라 도저히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티는 건 어려웠습니다. 한밤중에도
35도를 가볍게 넘겨버리니 ...에어컨 없이는 못살아 였습죠.
   그래선지 두바이 체류비용은 다른 때보다 더 싸게 해주더군요. 사실 한낮의 더위가
무려 50도를 넘어가기 때문에 라마단이 아니더라도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움직이기가
매우 힘듭니다. 결국 이 시간엔 호텔방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해야
했습니다. 역시 자연에 도전해서는 안 될 대목이 분명히 있나봅니다.
 
   이리 버티다 해가 지고나면 그제야 이프타르라고 하는 그날의 첫 식사가 허락됩니다.
도착 당일 오후에 사막사파리를 갔다가 해가 지는 장관을 보고서 첫 이프타르 식사를
하는 무슬림들을 구경했는데, 묵묵히 그리고 단정하게 앉아서 맛나게 음식을 먹는 그들
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고 성스럽기까지 했습니다. 하루 종일 쫄쫄 굶어서 배가 무척 고
팠을 터인데도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기보다는 오히려 더 천천히 그러나 달게 음식을
음미하고 즐길 줄 아는 아랍의 무슬림들. 자제와 절제력이 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던.
아...물론 저희도 곳이어 특별 뷔페식으로 점심을 고작 컵라면으로 때운 걸 벌충했죠!
양고기 시시 케밥과 닭꼬치 그리고 여러 맛난 아랍음식들로요.
 
   라마단의 반전묘미는 바로 해가 지고 난 다음부터입니다. 그때까지 쥐죽은듯이 조용
하던 전체 도시가 갑자기 깨어나면서 활기를 찾는데, 가장 먼저 음식점들이 일제히 문
을 열고 라마단 특별식을 내놓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라마단 기간에 음식점들은 대호
황으로 장사가 평소보다 더 잘된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종일 굶기는 평소
취사를 담당하는 여성들(임산부와 병자는 면제해주죠)도 마찬가지여서 저녁들을 할 기
운이 없거나 귀찮기 때문에 외식이 급증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기간에는 상당수의
아랍 레스토랑에서는 아예 이프타르 뷔페라고 해서 따로 주문을 받기보다는 푸짐하고
다채로운 음식들 그리고 명절분위기를 내는 특별식을 내놓습니다. 원래는 램찹이 유명
하다고 해서 사전에 예약해두었던 알 할랩 식당도 이날은 이프타르 뷔페만을 선보였고
그 덕분에 24시간동안 푹 익혀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양고기찜과 그 뱃속에 넣고 같이
익힌 정말로 기막힌 향기쌀밥과 그리고 너무도 독특한 라마단 커피의 향취에 하루의 피
곤을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해서 밤새도록 축제를 즐기면서 먹고
마십니다. 무슬림들은 통상 이프타르와 함께 자정쯤에 한 번 더 그리고 해가 뜨기 전에
마지막 식사를 한다고 하네요. 두바이 첫날 호텔에 도착한 시간이 5시였는데, 복도마다
룸서비스로 시켜먹은 음식접시들이 여기저기 수북이 쌓여 있어서 좀 신기했었는데 그게
다 이런 이유에서였던 거 같습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금식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보면 더 잘 먹고 그것도 야밤에 먹는지라 평소보다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해서 라마단 기간
에 더 살이 찌는 경우도 속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진보적인 무슬림 율법학자들이
나 이맘(이슬람교의 성직자, 그러나 기독교의 사제나 목사들과는 위상과 개념이 차이가
있음)들은 라마단이 도리어 살찌는 기간이 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폐해를 시정하자고 목
소리를 높이기도 합니다.
 
    또한 라마단 기간은 특별할인행사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쇼핑의 도시로 정평이
난 두바이의 모든 쇼핑몰들이 특별세일에 나섰고 또 동시에 자선행사도 많이 벌어집니다.
특히나 빈자에 대한 선행을 강조하는 기간이어서 이걸 악용한 다른 아랍권의 약삭빠른
얌체 일당들이 돈 많은 두바이에서 구걸행각을 벌여 무려 10만 불이 넘는 돈을 벌었다가
경찰에 적발되는 일까지 있었다고는 합니다.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들이야 어디나 있
는 일이고 대다수의 선량한 무슬림들은 이 기간에 선행을 베풀고 없는 이들을 위해 기꺼
이 자신의 것을 나눕니다. 참고로 라마단 기간은 물론이고 빈민구제와 자선, 기타 사회봉
사에 무슬림 교단이 사용하는 재정 비율은 어떤 크리스트교 종파보다 높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의 계율에 기꺼이 복종하는 무슬림들이라는 소리죠.
 
    처음 아랍세계를 경험하면서 라마단을 함께 체험했다는 것은 행동의 제약과 불편한
점도 다소 있었지만 동시에 무슬림 세상을 더 직접적으로 체험했다는 장점도 있었습니다.
평상시의 두바이는 그 어느 도시보다 국제화되어 있어 아랍적 혹은 무슬림적 특성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긴 술도 마실 수 있고 또 비키니
차림으로 수영을 해도 되는 곳들이 널렸으니까요.
 
    각설하고 이 엄청난 더위에서도 묵묵히 신의 계율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라마단은
그냥 끼니를 굶는 것이 아니라 절제와 배려를 가르치는 알라의 뜻은 아닐까 미뤄 짐작
해봅니다.
 
 
   참! 그리고 뜨거운 지옥과도 같았던 여름 라마단 기간에 두바이에 먼저 있었던 덕분에
3주간의 유럽 여행이 훨씬 더 수월했다는 점도 고백합니다. 섭씨 45도에서 50도를 미리
체험하고 났더니 파리의 최고 온도 38도나 시칠리 섬의 42도쯤은 견딜 만 했지 뭡니까.
알라신이 두바이에 잠시 들린 여행자에게 주신 축복은 더위에 대한 확실한 예방주사였고
일생 한번 볼까 말까한 라마단 기간의 추억은 그래서도 오래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이 역시도 인샬라~즉 신의 뜻이겠죠? 앗살라말레이꿈(신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참고로 호텔에서는 무슬림이 아닌 경우 조식부페에서 얼마든지 아침을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라마단 기간에 여행을 할 경우, 아침을 정말 많이 먹어야만 이방인 여행
자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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