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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생 모임 ‘청오회’가 변했다 (시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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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1건 조회 1,661회 작성일 12-09-0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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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이른 아침이었다. 날씨마저 궂었다. 8월15일 오전 8시, 서울지하철 4호선 동작역 8번 출구 앞에 검은 옷을 갖춰 입은 앳된 얼굴의 청년 열댓 명이 모였다. 이들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 준비로 분주한 국립서울현충원이었다. 추도식 현장에 도착한 청년들은 자연스레 남녀로 나뉘었다. 여성들은 추도식을 찾은 손님들에게 '근조'라고 적힌 검은 리본을 달아주고 식순이 적힌 리플릿을 전달했다. 남성들은 짐을 나르거나 손님들에게 동선을 안내했다. < 시사IN > 확인 결과 이들은 '청오회' 소속 대학생이었다.

정수장학회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청오회(靑五會)에 자동 가입된다. 재학생 모임인 청오회 회원들은 대학 졸업 후 상청회(常靑會)로 적을 옮긴다. 상청회원 중 상대적으로 젊은 회원은 따로 '청여울'이라는 모임을 운영하기도 한다. 정수장학회에 따르면 재단을 설립한 1966년 이래 학생 3만7751명을 지원했다. 그동안 장학금으로 지급된 금액이 약 500억원에 이른다. 2011년 장학금 수혜자는 625명, 지원한 장학금은 28억원이다.





ⓒ시사IN 조남진 8월15일 열린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서 청오회 소속 대학생들이 행사 진행을 돕고 있다.

1995년부터 10년 동안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던 박근혜 후보는 정수장학회에 관련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문제가 있었으면 지난 정권에서 가만히 내버려뒀겠느냐"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후 관여한 바 없다"라고 여러 차례 말해왔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 시절인 2005년 정수장학회가 쟁점이 되자 이사장직을 내려놓았다.

후임 최필립 이사장의 경력 탓에 정수장학회는 여전히 박 후보와의 관계를 의심받는다. 최 이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섭외비서관을 거쳐, 1978년에는 박근혜 담당 공보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수장학회 측은 논란이 일 때마다 "어느 개인의 의사에 따라 좌지우지될 수 있는 단체가 아니다"라고 반박해왔다.

8월15일 청오회 소속으로 추도식에 참석해 일손을 도운 정미영씨(21·가명)는 "자발적으로 오는 행사 중 하나이다. 장학회에서 하는 행사이고, 장학회와 관련된 분의 행사이다 보니 참여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다른 청오회 회원들 역시 자발성을 강조했다. 박 후보의 '관여'나 '의사' 없이도 정수장학회가 '자발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정수장학회 장학금은 여타 다른 장학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까다로운 성적을 요구하는 편이다. 지원하려면 먼저 '평점 85점(학점 3.5) 이상, 학과 석차 상위 5% 이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가정형편은 지원 자격 조건으로 따로 명시되지는 않았다.

면접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같은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한 청오회 회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세우신 장학회에 들어가려고 면접 보러 간 자리다 보니 여과 없이 내 생각을 말하는 걸 많이 망설였던 기억이 난다"라고 청오회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15만원가량 가입비를 내야 하는 것도 특이하다.

장학금을 계속해서 받으려면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청오회의 각종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 참석 여부는 점수화되고, 활동이 미진할 경우 장학금 지급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알린다. 한 청오회 임원은 "행사에 자주 빠지거나 비협조적인 장학생들은 점수에 팍팍 반영하겠다. 점수로 인해 다음 학기 때 볼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주시기 바란다"라는 글을 청오회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청오회 임원인 김 아무개씨(26)는 "장학금 지속 여부는 성적에 따라 결정되지만, 행사 참석률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점수에 반영한다고 회원들에게 이야기한다"라고 주장했다.

청오회는 지역별로 10개 지회로 나뉘어 운영된다. 모든 지회가 공통으로 참석하는 행사는 '장학증서 수여식 및 정수 가족 한마당' '전국 여름 수련회'가 있다. 이 두 행사는 참석하지 못할 경우 별도의 사유서와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가장 큰 행사인 장학증서 수여식에서는 뮤지컬 공연 등 장기자랑을 해야 한다. 2011년 5월 장학증서 수여식 당시 내부 영상을 확보해 확인한 결과 "정수장학회에 뼈를 묻겠다"라고 하는 대학생도 있었다. 이 행사에는 부모님이 반드시 참석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재학생과 졸업생 간 네트워크도 끈끈한 편이다. '청오회-상청회 송년회' '청오회-상청회 신년 교례회 및 초청 강연회'는 정례로 열린다. 박근혜 후보는 2011년 1월 신년회, 12월 송년회에 참석해 전 이사장 자격으로 축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각 지회마다 봉사활동, 학술회, 교수 간담회, 특강, 개별 수련회 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었다.

이 같은 행사에 직간접으로 간여하는 지도교수들은 상청회 소속이다. 상청회 회원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영역은 학계로, 400여 명이 현재 전국 각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한다. 그뿐 아니라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현경대 전 의원은 정치권에 진출한 상청회의 양대 축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박 후보의 원로 자문 그룹으로 알려진 '7인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청오회 행사 중에는 8월 육영수 여사 추도식,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도식, 11월 박정희 탄생일 생가 방문 등의 일정도 있다. 관련 행사가 있을 때 홈페이지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일정을 공지하는데, 청오회 임원은 "자발적 의사를 밝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라고 설명했다.

상청회, '7인회' 멤버와 교수들 참여

청오회가 처음부터 이렇게 장학생들을 꼼꼼하게 관리해온 것은 아니라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장학생으로 선발된 김 아무개씨(현재는 상청회 회원)는 "장학증서 수여식 이외의 행사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강제성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다만 매년 장학금 신청을 할 때마다 정수장학회 사무실로 직접 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라도 해야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지 않겠느냐"라는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청오회가 '출석부'를 작성하고 행사 후기를 쓰게 하는 등 멤버십을 강조하며 까다롭게 회원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을 전후해서다. 박 후보가 처음 대선 후보로 나선 시점인 만큼 논란이 제기될 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정수장학회의 한 관계자는 "점수화 같은 규칙을 정한 것은 임원들이 합의해서 한 일이지 어떤 정치적 일정도 고려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2007년에 이어 다시 한번 대권에 도전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정수장학회는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이다. 박 후보 측근들 사이에서는 "시기와 방식에 대한 이견이 있긴 하지만 최필립 이사장 등을 교체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겠나"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러나 최 이사장이 뒷선으로 물러나도, 이처럼 견고하게 관리해온 조직의 유대감까지 무너지지는 않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부산일보 > 의 한 관계자는 "장학금 지급을 내세워 장학생들에게 청오회·상청회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조직화'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수장학회의 주장대로라면 '재단법인 정수장학회가 보유한 재산은 이미 사회에 환원된' 공익재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 판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선거운동 조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장일호 기자, 김동인·차성준 인턴 기자 /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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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자님의 댓글

빙자 작성일

장학금을 빙자하여 조직과 세력을 구축해오고 있는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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