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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대동강서 압록강 넘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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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슴도치
댓글 1건 조회 1,633회 작성일 12-10-2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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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대동강서 압록강 넘어~(7)

글쓴이 : 민족통신 손세… 날자 : 2012-10-26 (금) 23:37 조회 : 58 btn_singo2.gif btn_prin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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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북기]대동강서 압록강 넘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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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성불사가 있는 정방산 중심에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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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손세영  특파원]북부조국 바로알기 방문단 평양도착 일곱째 날인 109 화요일이다. 이날도 이른 아침 오전6 기상해 대동강변 산책과 조찬회의, 성불사가 있는 정방산 방문, 애국열사릉, 모란봉기념품 상점, 조선우표박물관, 민예전람실 기념품사기, 열차로 출국할 준비 시간으로 일정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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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을
마치고 조찬과 함께 평양에서의 마지막 조찬식사 회의를 하고 도시락을 준비하여 성불사가 있는 황해북도 사리원 근처에 소재한 정방산을 향해 우리 일행 9명과 안내원들, 운전수 등을 실은 중형버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해 달렸다. 드디어 말만 들어 성불사가 있는 정방산에 도착했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가사를 읊조리는 일행도 있었다.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의 성불사의 묘사하는 정방산 4방의 경치는 과연 아름다웠다.

호수가 구석지에는 만수대창작사 회원 3명이 풍치수려한 경치를 화폭에 담고 있었다. 가까이가서 조용히 그들의 그림을 엿보았다. 국보유적 87호로 알려진 성불사는 역시 11백년의 역사를 담고 있었고, 주변의 산들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바람소리 한점 없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정방산 천성봉 기슭에 자리 잡은 성불사는 898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개건하고 개건해 오던 성불사는 6.25전쟁(이북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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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님의 댓글

고슴도치 작성일

성불사는 6.25전쟁(이북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일컬음) 시기에 미군 폭격기에 의해 폐허되다 시피 했다. 이 전쟁으로 당시 평양에는 40만여명의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도심지에도 미군 폭격기가 42만여개의 폭탄을 떨어뜨려 완전히 폐허지대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그 당시 이북의 중요 문화재들과 사찰들, 그리고 온갖 시설물들이 파괴되었다고 이북 동포들은 말한다.

이 정방산과 성불사 등에 관한 소개는 마침 남녘에서 발행하는 통일전문 월간지 ‘민족21’ 2012년 10월호에서 정창현 대표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참조)


 청풍루를 지나 절마당으로 들어가면 고려후기에 건립한 북의 국보급 문화재 제279호인 5층석탑이 보인다. 그 뒷편에 극락전(고려 공민왕 23년인 1374년)이 있고, 5층탑 옆에 목조전각의 하나인 응진전이 있고, 그 안에 금동석가모니들이 모셔져 있고 양 옆으로 얼굴표정과 자세가 다른 오백나한상이 나란하게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성불사를 나와 정방산 동서남북을 올려다 보면 기봉산(천성봉), 모자산, 노적봉, 대각산의 산마루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이 산들은 조선시대 명종때 의적으로 이름을 떨친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라고 한다. 정방산은 사리원시 중심부에서 20리 가량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또 국보유적 제92호 귀진사가 있는 숭덕산이 있다. 공기가 맑고 산수가 아름다워 북녘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이곳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이곳을 찾던 2012년 10월9일에도 수십여명의 소학교 학생들이 이곳에 참관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주로 일제 강점기의 항일 유격대원들이 묻힌 대성산혁명렬사릉과는 달리, 다양한 부류의 인물이 안장되어 있다. 신미리에 있는 애국열사릉은 1986년에 세워진 묘지인데 2012년 10월9일 현재 795명의 애국 선렬들이 여기에 묻혀 있다. 이곳에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 운동가들을 포함하여 전쟁시기 월북한  최동오, 조소앙, 김규식, 조완구, 윤기섭, 엄항섭, 유동렬 등의 묘소도 여기에 있고, 북녘의 고위급 정치인 출신으로 홍명희, 강량욱, 백남운, 연형묵과 변호사 허헌 등이 있고,  문예인으로는 무용가 최승희, 작곡가 리면상, 소설가 이기영과 한설야, 시인 조기천과 이찬, 학자로는 경제학자 김광진과 국어학자 이극로, 과학자 도상록 등이 묻혀 있다. 리인모를 비롯하여 비전향 장기수들도 사망하면 이 곳에 묻혀 왔다. 해외동포들로서 묻힌 인물들은 재미동포 홍동근 목사, 재미동포 최덕신 선생, 재카나다 동포 최홍희 선생 및 한덕수 선생과 서만술 선생 등 재일동포들 일부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전체 애국열사들의 묘비는 모두 같은 규격으로 되어 있고, 출생일자, 사망일자, 그리고 사망당시 직책들이 적혀있고, 그 상단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진들이 새겨져 있다.


이날은 또 우리 ‘북부조국 바로알기 방북단’ 일정 가운데  마지막 밤이기도 했다. 민예품 점 등에 들려 그림들을 포함하여 술, 담배 및 돌아가서 친지들에게 줄 선물들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북녘 초청기관인 해외동포원호위원회 간부들과 해외동포사업국 일꾼들과 지내는 마지막 밤이었기에 웬지 아쉬운 시간이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우리 해외동포들도 못내 서운해 하는 표정들이었다. 지난 한주 동안에 이미 정이 들어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감정은 북녘 동포들의 표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일행들은 모두 하나같이 일주일만에 분단의 장벽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북녘 땅을 떠나기도 전에 마지막 밤은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일행들은 평양호텔에서 지나면서 매일 방청소를 해 준 봉사원들에게 감사편지 쓰기에도 바빴다. 주최측 간부들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그 동안에 느꼈던 소감들도 주고 받았다. 5년만에 방문했다는 한 목회자는 이북이 너무 달라졌다고 지적하며 이번과 같은 통일토론회를 통하여 해외동포들과 북녘동포들이 서로의 가슴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대단히 기쁘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방문한 한 성원은 “자신감에 넘쳐 있는 북녘동포들의 모습을 보며 이 사회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북 동포들의 정신력과 도덕성에 놀랐다고 말하는 해외동포도 있었고, 김치 맛과 냉면 맛이 좋아 자주 오고 싶다고 말하는 동포도 있었고, “계속해서 방문하고 싶다.”, “강대국 미국에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다. 그리고 통일은 흡수통일도 안되고 적화통일도 안된다. 반드시 연방제로 해야 한다.”,  “차기 한국 집권자는 기필코  6.15선언, 10.4선언 이행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토론회가 일회성에 그치지 말고 지속성 있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등 방북 하기 전에 도저히 느끼지 못했던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며 우리 일행들은 모두 이번 방북을 통하여 북녘의 현주소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편 북녘동포들도 이번과 같은 방북단을 통하여 북부조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데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  ‘북부조국 바로알기 방북단’ 성원들과 초청측인 북녘동포들은 이번 방북단 조직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해 온 민족통신 노길남박사와 인솔진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는 한편 우리 해외동포들을 초청한 초청측이 성의를 다해서 따뜻하게 해 준데 대해 거듭 감사를 드린다고 반복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해외동포 방북단 일행은 마지막 밤을 지새며 다음날 오전10시10분에 평양역에서 중국 단동으로 떠나는 국제열차로 떠날 채비를 하고 난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을 재촉하고 있었다.


[사진]금 부처 양 옆쪽에는 5백나한상이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성불사가 있는 정방산 야외장에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나누며 떠나기 마지막 날 교제시간


[사진]정방산 성불사 근처에 수학여행을 온 황해북도 사리원 소학교 학생들

[사진]잠 못 이루는 떠나기 마지막 밤은 아쉬움만 가득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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