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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어떻게 오월을 훔쳐가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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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0건 조회 3,262회 작성일 13-05-01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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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새벽엔 긴 팔이나 두터운 재킷을 꺼내 입어야 마음이 놓을 정도로 춥습니다. 응접실에 설치된 개스 벽난로 불을 올리면 추위가 가실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 계절의 이름이 억울합니다. 5월이 됐기 때문입니다.  

 

파릇파릇한 잎사귀들. 이제 갓 얼굴을 내민 그 여린 잎사귀들의 물결이 햇빛 아래서 연록색의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거리를 걷다 보면, 이제 오월이 왔음을 실감하지만,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는 시애틀의 바닷가에서 몰려온듯한 습기 어린 추위가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후드가 달린 재킷을 꺼내 입고서야 응접실 컴퓨터 전원을 켜고, 물을 끓여 차를 우려 내었습니다.

 

오월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월은 참 수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이 달의 시작이 이리도 서늘한 것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일들의 무게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4월의 혁명을 찬탈당했던 5월, 그리고 빛고을의 아픔이 아직도 씻겨져나가지 못한 5월은 우리의 현대사가 얼마만큼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가를 반증합니다.

 

그리고, 그런 불의의 시대가 이제는 청산됐거니 했을 때 이명박 정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온 몰상식과 반동의 시대는 5월을 결국 잊혀지지 못할 한 남자의 이름으로 각인시켜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5월은, 노무현입니다.

 

자기 몸을 짓부셔가며 기존의 질서에 반항했던 사람. 한국정치의 가장 큰 벽인 지역주의를 허물고자 온몸을 던졌던 사람. 그러나 그 '기존 질서'는 한국 사회의 기존 카스트를 깨고 대통령이 된 아웃사이더를 가만 놔 두지 않았습니다.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로 한국을 통치해 온 지배엘리트들의 칼은 결국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귀향한 그로 하여금 온갖 모멸과 수모를 겪게 만들었고, 늘 승부사였던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 스스로를 던져 버림으로서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저들의 전횡과 불의를 고발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각성하고 싸울 것을 촉구하는 날개짓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슬퍼하고 분노했습니다. 해마다 노무현으로 하여금 극단의 선택을 강요하게 만들었던 그 세력은 그래서 그 5월이 두렵습니다. 우리에게 그 5월을 기억에서 지우게 만들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5월을 피해 왔습니다. 광주 묘역에도 발을 안 들여 놓으려 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기일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그 오월의 흔적들이 다시 되새겨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19 기념식 때 수유리를 공식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는 우리나라의 역사가 '3.1운동에 의해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그 4.19의 정신을 이어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3.1 운동은 아이들에게 '삼쩜일절'이라고 읽힐 만큼 역사교육을 배제하고, 4.19는 수구 친일부역세력의 주구들에게 의도적으로 잊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4.19를 짓밟고 탄생한 정권, 즉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세웠던 그 정권의 후예들은 지금 의도적으로 '박정희의 5월'을 부활시키려 하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습니다.

 

내주부터 한미 정상회담이 열립니다. 이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 정부로서는 이 한미정상회담의 기조에 대해 무척 기대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미국 군수산업의 일대 중흥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자리이며, 또한 미국이 전시작전권 논의를 무기연기함으로서 한국의 국사 체계를 미국에 종속시킴으로서 이 지역에 긴장을 영구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북한이라는 긴장거리가 있는데다가, 그 북한의 지원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적절한 긴장은 이 지역에, 특히 한국과 일본, 여기에 대만까지를 포함한 대규모의 시장에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강정마을에 갑자기 대규모 군항을 짓는 것도 바로 이런 '긴장의 영속화'를 노린 미국의 요구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댓가로 박근혜 정부가 요구할 것은 거의 분명합니다. 전두환이 그랬던 것처럼 '정통성을 부여해 줄 것'을 요구하겠지요. 국정원 개입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대선 문제도 그렇고, 바로 이 5월의 의미를 축소해서 국민적인 5월의 '항쟁 정서'를 묻어버리고자 하는 것이 이들에겐 급선무겠지요. 5월 초의 미국 방문에서 만일 오바마 정부가 박근혜 정부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멘트를 날리고, 여기에 '과거 그녀의 아버지도 비록 독재자이긴 했으나 한국의 번영에 크게 이바지했다' 정도의 멘트만 날려준다면, 이 멘트만을 가지고 수구 매체들은 '미국이 인정한 박정희의 공로' '기대 이상의 환대' 등등의 포장용 헤드라인을 뽑을 준비들이 되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5.16의 미화 작업에 들어갈 것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오월의 정서는 묻혀 버리겠지요.

 

이 오월, 개성공단으로 상징되는 남북의 극한 대립은 저 수구 세력들이 시계를 어디까지 돌려놓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가 싸워 얻어낸 이 오월까지도 다시 찬탈해가려는 데까지 이르르지 않는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영령들의 한이 맺힌 5월이며, 그 남자, 노무현이 몸을 날려 얻어낸 그 5월의 의미입니다. 이걸 잃을 수 없기에, 우리는 저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날을 세우고, 불의에 항거했던 그 오월의 정신을 다시금 되새길 때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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