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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민주주의, 이집트의 쿠데타, 그리고 한국 시민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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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종상
댓글 1건 조회 1,665회 작성일 13-07-06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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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주 동부로 여행을 다녀온 후, 다음 여행을 하기 전 집에 잠깐 들렀습니다. 집에 배달된 우편물 중에 연방국세청(IRS)에서 온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바로 얼마 전에 제가 세금 몇백 달러를 더 내야 한다고 편지를 받았고, 그것 때문에 어렵게 세금을 낸 터여서 이번엔 또 뭐지 하는 심정으로 우편물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엔 먼젓번에 내야 한다고 통보받은 액수에 이자까지 붙어 다시 통지가 와 있었습니다. 이미 분명히 IRS에 수표를 보낸 터여서, 온라인 뱅킹 기록을 확인해 봤더니 분명히 우리가 IRS 에 보낸 수표가 몇월 며칠 몇시에 인출됐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화가 머리 끝까지 뻗쳐서 고지서에 나와 있는 전화번호로 IRS 에 전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멘트가 가관이었습니다. "지금 처한 상황(시퀘스터)으로 인해서 모든 직원이 (무급) 휴가중이오니, 다음에 돌아오는 근무일에 다시 전화해주시길 바랍니다." 한 마디로 기가 딱 막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중얼거렸습니다. 이게, 지금 미국의 모습이구나.

 

원래 우리의 여행 최종 목적지는 캐나다였습니다. 그리고 달포 전, 아이들의 여권 갱신을 신청해 놓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일이 가까워 와도 갱신된 여권이 집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진행 상황을 인터넷으로 확인해 봤습니다. 이것이 확인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제까지도 여권이 도착하지 않아, 우리는 여행 목적지를 워싱턴주 서부 해안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것 역시, 지금 미국 국무부가 처해 있는 상황과 무관하진 않습니다. 미국의 예산 강제 집행정지, '시퀘스터' 때문입니다. 군인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공무원들이 봉급 삭감과 함께 강제 무급 휴가를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오바마의 정치력 부재라고도 하지만, 공화당 측이 총기규제와 이민법 개혁, 그리고 '오바마케어'라고 불리우는 의료보험 개혁과, 무엇보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부자 증세'에 반대하면서 일어난 충돌로 인해 생겨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지금 국민들이 겪는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겁니다. 심지어는 일상 생활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 까지도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9.11 이후 공항 테러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신설되어 비행기 탑승객들의 소지품과 위험물 소지 여부를 단속하는 TSA의 직원들도 신분이 공무원인지라, 이들이 무급 휴가에 내몰리면서 이 휴가철에 근무 인원이 줄어 버렸고 이는 바로 여객 수하물 검사의 적체를 가져오는 거지요.

 

미국이란 나라가 지금 현대 민주주의라고 불리우는 체계의 선발주자이며,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공화정을 수립한 나라들의 대부분은 미국식의 체제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물론 완벽한 체계는 될 수 없으며, 태생적으로도 야심가들의 상호 견제를 이용해 체제를 안전하게 굴러가게 한다는, 인간 욕망의 비열한 면을 이용하여 이상적인 체계를 꿈꾸는 모순을 안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굴러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 욕망의 다양성이 더욱 강하게 돌출되면서, 또 자본주의 사회가 심화되면서 자기의 모순을 합리화시키고 이것을 대중에게 투영시키는 기술이 '광고'라는 것으로 치환되어 대중에게 대량 살포되거나 또는 매체의 사실 왜곡과 대중 기만 조작이 매우 교묘해져 '진실의 진실 여부'를 대중이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서 지금 이 민주주의조차 왜곡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민주주의의 종주국 미국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식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도 미국이 겪고 있는 것 같은 오류를 증폭해 겪지 말라는 보장이 없겠지요. 최근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무르시 축출 쿠데타처럼 무력을 쥔 집단이 약속으로 선출되어 집권한 세력을 힘으로 밀어붙여 밀어낸 후에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앉히려 하고, 미국은 이 뒤에서 이같은 왜곡이 자신들의 민주주의 정신과 맞지 않음을 뻔히 알면서 그 쿠데타 자체를 묵인했습니다.

 

뭐, 이는 굳이 다른 나라의 예를 들 필요도 없는지라. 29만원을 전 재산이라 말하고 있는 전두환이 기 펴고 살아 있는 이 사회가 이집트와 크게 다른 게 없잖습니까. 그간 껄끄러웠던 정권의 제거에 대해 속으로는 환호하는 식의, 자기가 원래 세워놓았던 대의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간과하는 부도덕적인 세상은 결코 이상하지도, 비정상적이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지요. 사실은 가장 힘의 논리대로 움직이면서도 그것을 그렇지 않은 것처럼 포장해내는 것은, 자본 자체가 권력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그들이 대중을 기만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한국의 상황은 또 어떨까요. 어쨌든,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었고, 그것을 통해 대통령이 뽑혔습니다. 행정부에 속해 있는 정보 기관이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공공연히 정보 조작을 감행했고, 그것이 들통나자 이걸 덮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비밀유지가 50년간 보장되어 있는 문서를 자기들과 가까운 정치인들에게 공개하고,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국정원의 운영체계를 볼 때, 행정부의 수반인 박근혜의 묵인 없이 이게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이들은 왜 이런 거래와 게임을 계속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이집트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습보다 더 나을 것도, 더 저열할 것도 없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민주주의'의 틀은 가져왔으되, 그 정신이 구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시행되어 왔고, 그 본령이 존재한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미국에서도 정치세력들의 욕망 표출과 대중에 대한 기만은 결국 삶의 피폐화를 가져옵니다. 어쩌면 지금 미국에서 미국민들이 겪고 있는 삶에서의 불편과 고통은 자기들이 선택한 정치 방식에 대한 무지에서부터 비롯될지도 모릅니다. 아니, 이 일련의 불편이 그 무지에 대한 형벌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희망은 우리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정원에 대한 해체 요구와 규탄, 그리고 더 나아가 박근혜 하야 요구 시위로까지 이어지는 분노의 불길은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인 요구임과 동시에, 대승적으로 볼 때는 대의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되돌아봐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의 한 부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기존에 우리가 갖고 있던 대중매체들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통해 대중들을 향한 일방적 정보의 송출이 아닌 개개인들의 양방향 소통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 각성한 민중들은 어떻게 정치란 것을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거대한 시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인터넷은 물리적 거리를 더 이상 제약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한국에도 많은 단체들이 지금 같은 운동을 하겠지만, 미국 내에서도 자발적으로 일어나 지금껏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국 시민들에게 깨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권소(유권자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모임) 운동이나, 역시 거주 지역은 미국이되 한국의 민주화와 상식이 자리잡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만든 미희연(미주희망연대) 등이 벌이는 운동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변화, 그리고 좁게는 박근혜의 퇴진과 국정원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길들은 국내와도 연결되어 한국의 지금 '민들레 혁명'이라고 불리울 수 있는 민초들의 꿈틀거림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각성한 개개인의 연대. 인터넷이 가능하게 만든, 마치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나게 만드는, 우리를 우리도 모르는 어떤 체제 안에서 수동적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정치의 주체임을 깨닫고 시민들이 이렇게 네트웍으로 엮여 함께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모습은 단지 한국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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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님의 댓글

지적 작성일

참으로 큰 통찰의 지적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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