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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야전렬차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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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댓글 0건 조회 5,801회 작성일 22-12-25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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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 회

38

 

12월 16일 밤.

폭설이 내린 수도의 한적한 거리들에 내륙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오랜 세월 풍화에 청류절벽이 반나마 깎이운 숫눈덮인 모란봉이 된 추위를 알리면서 웅웅 울었다.

흰 눈갈기뭉치를 뽀얗게 말아올리며 점점 거세진 눈보라는 삽시에 도로의 가로등빛을 흐리게 하였고 은행나무의 단단한 잔가시들을 사정없이 뒤흔들고는 옥류교쪽으로 타래쳐갔다.

얼어붙지 못한 강복판의 눈얼음가장자리에서는 물오리들이 눈보라를 피하느라 부리를 깃에 틀어박은채 밤추위에 떨고있었다. 깃털에 눈가루를 흠뻑 들쓴 물오리들은 발밑에서 이따금 얼음장이 쩡쩡 소리를 내며 터갈라질 때마다 놀래서 황급히 날개를 퍼덕거리며 자리를 옮기군 하였다.

눈보라는 시민들이 깊이 잠든 불꺼진 고층살림집숲너머 뭇별들이 총총히 여물어가는 얼어붙은 밤하늘에서 우우― 소리를 질러대며 기승을 부렸다.

희푸른 하늘천정에서 배회하던 눈보라가 잠시 멎어 뽀얗던 눈가루가 우수수 가라앉으면 대기는 한결 맑아져 창문마다 불빛이 환히 내비치는 당중앙위원회 청사지붕우에 드리운 북두칠성이 유난스레 반짝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집무실에서 현지지도를 떠날 때면 의례히 하시던 관습대로 먼저 꼭 처리해야 할 당과 국가의 중요사업을 담은 문건들을 보시였다.

마감에 펼쳐드신 급한 서류는 설날에 평양시민들에게 물고기를 먹이는 문제와 관련한 보고문건이였다.

지난 시기 나라의 수산업을 발전시키고 물고기생산량을 늘이기 위해 여러모로 대책을 강구하셨지만 물고기수요는 의연히 부족되고있다.

고난의 행군을 겪은 후에는 수산물생산량이 대폭 줄어들어 인민들은 흔하던 명태도 먹기 힘들어졌다.

바다어장에 명태떼가 덜 회유하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그보다는 경제의 기간공업부문을 추켜세우느라 아직 수산업이 응당한 궤도에 올라서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그래도 설에야 시민들이 물고기를 먹어야 할것이 아닌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해에 명태와 청어를 들여다 평양시민들에게 공급하게 하시였다.

그때 시민들이 좋아하던것이 기억에 삼삼하시여 올해에도 설명절을 맞는 평양시민들이 먹을 명태와 청어를 들여오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해주신것이였다.

문건에 명태와 청어를 실은 배가 12월 19일이나 20일경에 원산항에 도착한다고 하니 더없이 기쁘신 일이였다.

그이께서는 활달한 필체로 문건을 비준하고서 송수화기를 들어 담당한 당중앙위원회부서의 일군을 찾으시였다.

《물고기공급문건을 보았소. 부부장동무, 배가 며칠후에 원산항에 닿는다고 마음놓기에는 이릅니다. 물고기량이 작지 않은데 항에서 부리워 화차에 실어 평양까지 운반하고 시내각지의 수산물상점들에 자동차로 분배하느라면 보름이라는 날자가 많은게 아니요. 설전에 시민들에게 명태와 청어를 골고루 내주자면 화물렬차수송조직사업을 짜고들고 바쁘지 않게 날자를 앞당겨야 합니다.》

《장군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부부장의 힘있는 대답을 들으시고 동안을 두었다가 말씀하시였다.

《겸해서 내 동무에게 한가지 강조할것이 있소. 이제 대엿새 지나면 동지입니다. 급양봉사망들에서 동지죽봉사준비를 하고있습니까?》

《예… 하고있습니다.…》

《어떻게 대답이 정 시원치 못한것 같다… 부부장이 해마다 있는 례사로운 일이라고 동지죽문제를 소홀히 했다면 이제라도 알아보고 관심을 돌리시오. 일반가정들은 말할것 없고 출장이나 나들이를 떠난 사람들도 먹을수 있게 식당들에서 동지죽을 맛나게 쑤어 봉사해야 합니다. 동지날전에 미리 수도의 급양봉사망들에 흰쌀과 팥, 찰수수 같은 원자재들을 넉넉히 공급하시오. 이 겨울날에 뜨끈뜨끈하고 구수한 팥죽이 별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소박하고 고유한 민족풍속을 알고 민족적향취를 가슴 후덥게 느끼게 해주어야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놓으신 다음 잠시 피로를 풀려고 팔걸이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시였다. 눈을 감으시였으나 쪽잠조차 오지 않고 강행군현지지도길에서 만났던 친근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시였다.

전기사정이 어렵고 식량도 모자라 굶어쓰러지면서도 강계정신을 창조한 자강도로동계급, 자신께 닭고기와 닭알을 맛있게 잘 먹었다고 고맙다고 인사하던 쌍둥이형제, 수령님께서 자주 외우시던 태성할머니와 같은 구봉령의 도로관리원 김성녀일가, 대형산소분리기를 만들어낸 락원의 로동계급, 함남의 불길을 창조한 대흥과 룡양, 흥남의 일군들과 로동자, 기술자들… 어제 만나셨던 하나음악정보쎈터 종업원들, 광복지구상업중심 봉사원들… 하많은 인민들의 모습이 엇바뀌여 련상되고 추억의 갈피에서 멀어졌다가는 그리움에 못 견디는 간절한 마음에 실려 다시금 안겨오는것이였다.

핀란드에서 열리는 국제전기기계공학부문회의에 참가한 우리 나라 천연흑연대표단에서 소식이 올텐데… 대흥국수집 봉사원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주었는데 받았는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초저녁에 보셨던 당일군들의 긍정적소행자료가 생각나시였다. 자신께서 온 나라 방방곡곡을 다 다니며 인민들을 보살필수 없으시니 친어머니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돌봐주고있는 훌륭한 당일군들의 사업자료를 보고받으실 때가 제일 기쁘시였다.

지방에서 올라온 어린 직포공처녀들이 공장에 마음을 붙이지 못해하면 간식꾸레미를 들고 합숙호실에 찾아가고 물고기탕을 끓여다 앓는 처녀로동자한테 먹이고 침대머리에 지켜앉아 병구완을 하는 평양방직공장 당비서…

평범한 로동자의 딸인 직포공처녀를 온 나라가 아는 선군시대 공로자로 키워낸 녀성당일군이 고마와 직포공처녀가 졸업한 중학교의 교장과 담임선생이 그곳 산촌에서 나는 향기로운 돌배를 배낭에 지고 방직공장 당비서를 찾아왔다. 아버지도 일찍 사망하여 병약한 홀어머니슬하에서 어렵게 자란 우리네 제자를 공장에서 잘 키워 장군님께서 아시는 직포공으로, 공로자로 내세워준 당조직이 정말 고맙다, 학교의 명예가 쑥 올라갔다, 학생들이 공로자선배언니, 누나처럼 공부를 잘하겠다고 한다, 우리 교직원들도 긍지를 안고 나라의 기둥감이 될 훌륭한 학생들을 키워내겠다. …

감동없이는 들을수 없는 진정이 우러나온 말이다. 당일군도 아름다운 인간이고 교장도 담임선생도 직포공처녀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사회사람들은 이런 후덥고 아름다운 인정세계를 안고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밤이 늦어 방직공장 당비서가 퇴근했으리라고 짐작하면서도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녀성들이 많은 공장이니 어느곳보다도 시름이 쌓이는 공장의 당비서인데 말 한마디라도 칭찬을 해주지 않고는 못 견딜 심정이시였다.

예상외로 수화기에서는 방직공장 당비서의 귀에 익은 화술 좋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 비서동무가 사무실에 있구만.》

그이께서는 반가우시였다.

방직공장 당비서는 합숙난방이 잘 돌지 않아 후방부지배인과 같이 지금껏 보이라작업반에 나가 대책을 세우고 사무실에 들어온 참이였다. 이 추운 겨울밤에 수백명이나 되는 방직공장로동자처녀들이 랭기서린 합숙호실에서 지내는것이 걱정되여 집으로 퇴근하지 못한 당비서였다. 여러 자식의 어머니이고 한가정의 주부이니 저녁 늦은 시간에 자기 집에서 관심하고 할일이 좀 많겠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심스레 물으시였다.

《방직공장비서, 합숙호실난방이 약한 원인이 뭔가?》

《장군님, 강추위가 급작스레 들이닥쳐 보이라저탄장의 탄이 얼어붙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동원해서 무연탄을 까냈습니다. 한쪽으로는 후방부지배인이 얼지 않은 가루탄을 자동차로 실어다가 때여 좀전부터 보이라화실온도를 부쩍 높였습니다. 이제는 합숙호실들의 난방관이 손을 대면 뜨거울 정도입니다.》

《수고를 했구만. 비서동무, 내 일이 바쁘다보니 물어보지 못했는데 직포공 홍순이의 결혼식을 제대로 했소?》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을에, 10월 첫 일요일에 저의 집에서 하였습니다. 신랑신부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결혼식상을 받고 너무 행복해서… 자꾸만 눈물을 흘려서 사진촬영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니 홍순이 친정은 비서동무인셈이구만. 잘했습니다. 당일군이 친정어머니가 돼주어야지. 북청읍에 있는 신랑집에도 갔댔소?》

《예, 제가 홍순이를 승용차에 태워 북청에 함께 갔댔습니다. 사과가 한창 무르익는 좋은 계절이였습니다. 온 북청읍사람들이 장군님의 축복을 받은 선군시대 공로자신부를 구경하겠다고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신랑집 대문에서 100여m 떨어진 큰길에서부터 꽃테프를 줄줄이 늘이고서서 신랑신부에게 꽃보라를 뿌려주었습니다. 신부가 곱게 생겼다고 다들 혀를 찼습니다.》

《홍순이야 인물도 곱고 마음도 곱지… 잔치를 참 잘해주었구만. 선군시대 공로자처녀한테 어울리는 결혼식입니다. 수십대의 직기를 돌려 숱한 천을 짜내는 직포공인데 마땅히 그렇게 사람들의 찬사와 축하를 받으며 시집을 가야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못내 기뻐하시였다.

《신혼부부가 지금 어데서 삽니까?》

《아직 맞춤한 집이 없어 림시로 합숙호실 한방을 내주었습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비서동무, 신혼부부더러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오. 창전거리에 짓는 고층살림집들이 래년에는 완공될테니 홍순이네를 현대적으로 꾸려진 창전거리 새집에 들게 합시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장군님의 사랑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래달라구… 그리구 방직공장비서… 밤이 늦었는데 이제는 퇴근하오. 집에서 가족들이 얼마나 기다리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에서 울리는 감격의 흐느낌소리에 자신도 가슴이 저릿해나시여 인츰 전화를 끊지 못하시였다. 자그마한 일이라도 인민을 생각하고 인민을 위하는 이런 시간, 이런 날과 밤이 그이께서는 정녕 좋으시였다.

집무실 창문밖에서 울부짖던 눈보라는 뜸해지고 밤은 한정없는 고요를 자아내며 깊어갔다.

새벽녘에는 야전렬차를 타고 북부지구에 대한 현지지도길을 떠나야 할텐데 눈을 좀 붙일가. …그이께서는 팔걸이의자에서 일어나시였으나 어쩐지 잠을 이룰것 같지 못해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며칠전에 시찰하신 조선인민군 대련합부대의 화력타격훈련이 떠오르시였다. 대련합부대지휘관들과 장병들이 평소에 다지고다져온 증오와 분노인양 위력한 타격수단들이 일제히 장쾌한 포성을 울리며 대상물들에 섬멸적타격을 가했다. 포연자욱한 포진지들에서 활화산같이 터져오르는 폭음과 포성으로 하늘땅이 진감하는 속에 급강하하는 붉은 매들에서도 불줄기들이 번개빛처럼 내리꼰져 삽시에《적》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침략자들을 단매에 요정내고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려는 백두산혁명강군의 필승의 기상,멸적의 전투정신을 가슴후련히 보여준 훈련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김정은동지가 직접 지도한 그 대련합부대 화력타격훈련에 크게 만족하시였다. 훈련은 우리 당의 주체적인 군사전략전술사상과 전법을 능숙하게 활용하였고 멋따기나 도식적인 틀에서가 아니라 수시로 복잡하게 변하는 전투정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진행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미전에 대련합부대를 자주 지도하여 현대전의 요구와 실전에 대비할수 있게 종합훈련장을 잘 꾸리고 백두의 훈련열풍을 세차게 일으키시였다. 실지 전투에서 불의에 맞다들수 있는 어렵고 복잡한 전투정황들과 조건들을 조성해놓고 전투조법을 습득시키기 위한 훈련을 강도높이 벌리게 하시였다. 대련합부대가 김정은동지의 그 높은 훈련요구성, 군사전술사상을 관철하였기에 이번 화력타격훈련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둘수 있은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산고지에 위치한 감시대에서 대련합부대장병들이 하늘과 땅으로부터 《적》진에 무자비한 징벌의 불세례를 안길 때 아무런 내색도 않고 태연자약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던 대장동지를 상기하시였다. 자신께서 수십년세월 험한 철령을 넘나들고 날새도 깃들지 않은 오성산 칼벼랑길을 오르고 초도의 풍랑세찬 바다길을 헤치며 키워오신 백두산혁명강군을 떠맡아 조국통일대전, 반미대결전을 승리로 치러낼수 있다는 철석의 믿음이 가시는 젊은 장군의 모습이였다.

그렇게 온 세상을 굽어보는 강철의 기상이 뿜기여 믿음이 가시고 출중한 군사적재능을 지니여 사랑이 가시는 대장동지여선지 엊그제 함께 계셨는데도 이밤에 또 그리워지시였다. 일이 바쁘지 않으면 늘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대장동지가 인민군대사업과 국방부문, 사회주의건설의 큼직큼직한 일들을 맡아 해제끼시니 자신께서 그만큼 힘들지 않으시고… 그러니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도 서운함을 누르고 참아내야 하는것이 아닌가.

집무실출입문이 가벼히 열리더니 뜻밖에도 검은색 겹섭외투를 입은 풍채름름한 김정은동지께서 들어서시였다.

《아, 우리 대장이 왔구만! 내가 보고싶어하는걸 어떻게 알았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너무도 반가우시여 한껏 미소를 지으며 대장동지한테로 마주 다가가시였다. 오래간만에 만나시기라도 한듯 찬눈기운이 청신하게 풍기는 김정은동지의 손을 꽉 잡아주시였다.

《저도 이밤에 어째선지 장군님을 만나뵙지 않고는 잠을 이룰것 같지 못해 왔습니다.》

《바깥날이 추운데 오기는…》

그이께서는 나직한 어조로 념려하시였지만 기쁨을 감출수 없어 김정은동지의 외투소매를 당겨 긴쏘파에 앉히시고 자신께서도 곁에 앉으시였다.

《대장, 내가 요전에 함흥에 갔을 때 인민군대에서 도와준 흥남지구의 급수분사업소 침전지에 가봤소. 보수한 건물에 새 지붕을 씌우고 주변지대정리까지 멀끔하게 해놓았더구만. 콩크리트를 쳐 든든히 쌓은 침전지도류벽에 성천강의 맑은 물이 철철 넘치게 감돌구. 정말 잘 꾸렸소. 흥남공업지구의 공장, 기업소들이 공업용수걱정은 하지 않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그지없었소.》

김정일동지께서 치하하시였지만 김정은동지께서는 그저 겸양의 미소를 지으실뿐이였다.

《내 침전지보수공사를 수록한 록화물을 보고 감동됐소. 군부대사령관은 물론 무력부장과 총정치국 장령들까지 병사들과 같이 감탕마대를 져나르는걸 보구 인민군대가 혁명적군인정신으로 사회주의건설에 어떻게 한몸 내대는가 하는걸 느낀바도 크지만 그보다는 장령으로부터 병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민군대가 일심동체가 되여 대장의 명령을 무조건 집행하는 강철같은 군률이 섰다는것이 기뻤소.》

《별치 않은 일을 가지고 말씀하십니다. 장군님께서 흥남지구에 얼마나 큰 로고를 바치셨습니까. 인민군대가 응당 도와주어야 할 일입니다.》

《별치 않은 일이 아니지. 단 엿새동안에 해제낀 공사이지만 한방울의 물에 온 하늘이 비끼는 법이요.》

화제는 더 이어지지 못하고 집무실에는 잠시 숙연한 침묵이 깃들었다.

《장군님…》

김정은동지께서는 인츰 다음 말씀을 잇지 못하시고 장군님쪽으로 몸을 반쯤 돌리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대장동지의 엄숙하면서도 간절한 청원의 뜻이 어린듯싶은 진지한 표정을 보시고 이밤에 찾아오신 리유를 가늠하시였다.

《며칠 있으면…》

김정은동지께서는 힘들게 말씀을 꺼내시였다.

《12월 24일… 장군님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모신 날입니다. 올해에 20돐입니다.》

《그렇던가?…》

《제가 이날을 뜻깊게 기념하기 위해 예술공연을 준비했습니다.》

《그래… 고맙소.》

《이해도 다 저물었는데 장군님께서 현지지도를 떠나지 마시고 며칠 휴식하시다가 경축공연을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보겠소. 대장이 품들여 훌륭한 공연을 준비했겠는데 내 북부지구에 갔다와서 보겠습니다.》

《장군님, 기상자료에 의하면 이번 주간에 우리 나라는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센 바람이 불고 몹시 추울것으로 예견됩니다. 래일 17일 아침에는 눈보라가 좀 멎겠지만 올해 들어와 최저기온으로 떨어집니다.》

《대장, 너무 그러지 마오. 일없소, 내가 언제 현지지도강행군길에 추운날 더운날을 가렸소. 비오건 눈오건 계획한 현지지도를 미뤄본적이 없소. 단련되였으니 걱정마오.》

김정일동지께서는 태연스레 말씀하시였으나 대장동지의 진지한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시였다.

《장군님, 부탁입니다. 떠나시지 말아주십시오. 장군님께서는 심장질환이 있으신데 이 겨울철에 특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갑자기 찬공기를 맞으면 피줄이 수축되면서 피흐름이 정상을 벗어나고 심장질환을 일으킬수 있습니다.》

《대장이 전문의사 못지 않구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걱정마오. 겨울추위가 그렇지. 눈보라가 칠뿐이지 길 떠나는데는 일없소.》

《장군님, 래일 아침엔 평양지방에만도 령하 14도이고 장군님께서 가시는 북부내륙지방에서는 령하 21도까지 내려갑니다. 강추위입니다.》

《강추위란 말이지… 주의해야지. 그런데… 이번이 스무돐이라고 했지.》

김정일동지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였다.

《벌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만. …》

그이께서는 깊은 감회에 잠기시였다.

20년전 12월의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군 중대정치지도원대회에서 엄숙히 선포하시였다. 어제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전체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의 일치한 의사에 따라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추대하였다, 앞으로 전군이 김정일최고사령관의 명령을 철저히 집행하며 최고사령관에게 충직하리라고 굳게 믿는다. …

그날의 수령님의 만족에 넘치신 모습이 삼삼히 어려오시고 갈리시면서도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귀전에 울리는듯싶으시였다.

지구상의 첫 사회주의국가가 혁명의 붉은기를 내리웠고 미국과 초대국지위를 다투던 막강한 군사력이 저절로 와해되고 무너지던 그때 자신께서는 김일성장군님의 뒤를 이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되시여 동방의 사회주의보루를 지켜오시였다.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하고도 끈질긴 고립압살책동, 엄혹한 자연재해를 물리치고 조국을 수호하고 숨죽은 경제를 일떠세워 부흥시키던 그 20년은 진정 자신의 한몸을 내대고 치른 준엄한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인민군대를 백두산혁명강군으로 만들기 위해 산이 많은 조선의 어느 령인들 넘지 않은것이 있으며 조선의 푸른 하늘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국방력을 다지던 눈보라강행군, 삼복철강행군의 나날은 얼마나 많았던가.

야전렬차와 야전승용차, 쪽잠과 줴기밥으로 이어지던 전선길과 공장길, 농촌길의 무수한 나날, 준엄한 20년에 비록 건강은 몹시 상하였으나 내 조국 조선은 핵대국들마저도 두려움을 느끼고 감히 넘보지 못하는 막중한 군사력을 소유했고 강성부흥하는 나라로 세계를 향해 나가고있지 않는가. 그러니 얼마나 행복한가. 우리 인민이 세상에 부러운것 없이 살고 우리 조국이 세계에서 제일로 강력한 국가로 될수 있다면 이제 또다시 강행군의 20년세월을 달린다고 한들 주저할수 있겠는가.

《대장, 오늘은 맘먹구 온것 같은데 리해해주오. 내 건강에 주의하면서 북부지구에 갔다오겠소. 돌아와서 우리 함께 공연을 보자구. 그때는 나도 좀 쉬겠소.》

김정일동지의 정이 넘치는 강인한 말씀에 대장동지께서는 눈굽이 찡해나시였다.

《장군님… 전번에 함흥으로 가실 때 원장선생은 안정을 하셔야 한다고 울면서 간청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눈바람을 맞으시며 함흥시의 여러 공장들을 현지지도하시고 돌아오셔서도 쉬지 않으시고 날이 추운데 어제까지 평양시안의 인민생활단위들을 또 지도하시였습니다. 장군님도 인간이십니다. 사람의 육체적능력도 한계점이 있습니다. 장군님의 년세에 지금 쌓이고쌓인 피로는 극한점을 넘어섰을겁니다. 안정하셔야 합니다. 저는 정말 걱정입니다.》

《대장, 맘놓소. 내 병원에서 주는 약도 제시간에 먹군 했더니 사업의욕도 높아지구 건강이 아주 괜찮아진것 같소. 이번에 갔다와서는 휴식하겠소. 이젠 밤도 깊었는데 어서 돌아가보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몸을 일으키시고 대장동지의 손을 꽉 잡아주시였다.

《어데서나 인민들이 나를 기다린다는걸 대장도 잘 알지 않소. 나도 언제나 인민들이 보고싶고 함께 있고싶소. 하루라도 인민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해놓지 않으면 사는것 같지 않소. 내가 고무해주면 어려운 단위도 일떠서고 기적을 창조하거던. 내가 가야 함남의 불길, 승리의 불길이 더 세차게 타번지오.》


×


긴 겨울밤의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이른새벽녘에 야전렬차는 기적소리도 없이 고즈넉이 잠든 수도를 떠났다.

검푸른 빛을 띤 하늘에는 잠에 취한 별들이 들꽃마냥 널려 희미하니 빛을 뿌렸다.

연회색으로 보이는 눈덮인 벌판에서 이따금 회오리바람이 얼어붙은 대기에 눈가루기둥을 뿜어올려서는 폭포수비말처럼 흩어지군 하였다.

차츰 려명이 밝아오면서 동녘하늘 가장자리가 딸기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어느새 바람은 잠들고 대지를 고루 덮은 희디흰 눈세계가 새벽음영속에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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